경제성장, 지속가능성, 환경

물론 식습관과 입맛은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가 담긴 우리의 생활양식이 대지와 강과 바다, 대기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차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P440

또한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에 있는 나라들이라면 어디든 환경파괴를 겪기마련이지만 1인당 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환경은 자연스럽게 개선될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예컨대 Chua, 1999 참조).  - P441

 그들은 1인당 소득 증가가 오염을 줄이는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도 많다고 주장한다(예컨대 Harbaugh 외, 2002 참조). 환경이 좋아지는 1인당 소득은 4,000~1만 3,000달러로 추정된다. - P441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성장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으며, 더 많은 돈과 더 새로운 기술이 결국 환경파괴를 완화시킬 것이라고 믿어야 할까? 아니면 환경파괴를 초래하는 그런 활동들을 줄이기 위해 우리의 경제적·사회적 삶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할까? - P441

중국은 1980년대에 의도적으로 서양의 경제성장 모델, 주로 미국식 모델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가장 중대한 결정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산업 중심의 경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Gallagher, 2006:Leslie, 2007 참조). 그들은 자동차산업이 미국과 일본, 대한민국 경제의근간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련 산업들의 발전을 부추길 거라고 믿었다. - P441

하지만 구형 자동차가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 생산된 신형 자동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환경을 더 많이 오염시킨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Gallagher, 2006 참조). - P442

중국의 도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혼잡하고 위험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해마다 교통사고로 25만 명이 죽는다. 이는 미국의 6배에 해당하는데 미국은 중국보다 자동차가 18배나 많다(Leslie, 2007). - P442

중국의 (중략)
환경오염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나라 20개국 가운데 16위가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해마다 40만 명의 국민이 호흡기질환으로 죽는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증가한 탓도 일부 있다. - P442

중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철광석, 강철, 구리, 주석, 아연, 알루미늄, 니켈을 수입하는 나라다. 또한 석탄과 냉장고, 곡물, 휴대전화, 화학비료, 텔레비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기도 한다(Leslie, 2007). - P442

인도는 중국과 합하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경제성장의 형태도 중국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자동차는 2009년에 매달 10만 대씩 팔렸다(Choudhury, 2009). - P442

 부의 증가와 인도 중산층의 부상은 혼수품의 규모와 종류를 크게 확대했다. 특히 귀금속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 전 세계의 귀금속 수요가 치솟는 가운데 인도와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80퍼센트에이른다. 2008년 인도에서만 전 세계 귀금속의 47퍼센트가 팔렸다(Perlezand Johnson, 2009, 60쪽). - P443

금반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30톤의 암석을 파내고 희석된 청산염을 뿌린 흙을운반해야 한다. 날마다 50만 톤의 흙을 파내고 운반하는 광산들도 있다.
금을 채취하고 난 뒤 남는 청산염은 주변의 토양과 물로 스며들어 핵폐기물과 비슷하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폐기물을 만들어낸다(Perlez andJohnson, 2009, 58쪽). - P443

지속가능성 문제와 국가

환경문제는 소비자들이 "이제 그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하고 더는 소비를많이 하지 않으면 쉽게 완화될 수 있다. 실제로 그동안 전 세계에서 소비를 줄이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사회운동이 많이 전개되었다. - P443

1990년대 중반 지구의 벗이라는 환경단체의 네덜란드 지부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2010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얼마나 소비를 줄여야 하는지를 정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분의 2로 줄이기 위해서는한 사람이 평균 하루에 탄소 기반의 연료를 1리터까지만 쓸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P444

조지 비오(2009)는 우리가 단순히 구매 습관을 바꾼다고 해서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기대라고 주장한다. 그는 동네 슈퍼마켓에 재활용품을 갖다 주고 받은 많은 상품권으로 비행기를타고 카리브 해안으로 휴가여행을 다녀왔던 한 영국인 부부의 사례를들어 설명한다. 그 항공여행은 그들이 재활용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보다 수천 배가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 P444

1962년 미국에서 디디티DDT가 환경에 끼친 파괴적인 영향을 기록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뒤유권자들은 정부가 깨끗한 대기와 물을 보장하고 그 밖의 여러 환경자원을 보존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더 깨끗한 환경을 바라는 국민의 이런 요구는 1970년 대기청정법과 1972년 연방수질오염관리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 P445

따라서 전 세계의 민주 정부들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정부는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시민의 요구와 반면에 기업의 이익과 경제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기업가들의 압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Kroll and Robbins, 2009 참조) - P445

지속가능한성장이라는 개념은 1987년 노르웨이 수상 그로 할렘 브룬틀란이 이끈한 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로 명성을 얻었다(The World Commission onEnvironment and Development, 1987). - P445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지속가능성은 정부의 개입으료 겅장을 지속한다거나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를 시장에서 사고판다거 나 조직화된 정치적 행동을 막을 정도까지만 오염 수준을 낮추는 것과같은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의 행동은 ‘혼돈의 무정부주의‘라고 간단히 무시하면 끝이다(Hartwickand Peet, 2003, 209쪽). - P446

예컨대 돌고래 떼가 참치의 남획으로 위험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을 때 미국정부는 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공포하고 이런 법률을 따르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참치 수입을 금지하는조치를 취했다. 멕시코는 이 법률이 WTO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미국이 그것을 폐지하거나 미국 수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해달라고WTO에 제소했다.  - P446

WTO는 돌고래를 보호하는 법률이 교역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벽이라고 선고했으며, 따라서 미국은 돌고래 보호를 위한 법률을 폐지해야만 했다. WTO의 관련 조항(20조)은 협정문에 "인간과 동물, 식물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하거나 "고갈될 수 있는천연자원의 보존과 관련된 ・・・・) 조치들을 당사국들이 채택하거나 집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은 아무것도 없음을 보장한다. - P446

따라서 각국 정부는 환경보호문제가 경제성장과 충돌하는 경우 그 재판권을 WTO의 분쟁위원회에 위임함으로써 시민들의 환경보호 요구를들어주지 못하는 데 따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 P446

대니얼 C. 에스티와 마리아 H. 이바노바 (2003)가 제안했던 세계환경기구GEM의 설립 노력이 난항을 겪었다는 것이 그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각국 정부들이 WTO를 지지했던 것만큼 강력하게 GEM의발전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전 세계 정부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있는지를잘 보여준다. - P447

 1970년대 초 샤론 베더(2002)가 세계를 대상으로 한 정보조작 환경주의에 대한 기업의 습격 Global Spin: The Corporate Assault on Environmentalism에서 상세하게 보여준 것처럼 기업들은 자신들이 환경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한 홍보에 엄청난 돈을 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고 환경파괴와 그에 따른 인류 보건의 악화와 관련된 과학적 발견에 대응하는 데도 수백만 달러를 쓰기시작했다. - P447

하지만 나오미 오레스케스(2004)는 여러 과학저널에서 심사중인 기후변화와 관련된 928편의 논문을 연구한 결과, 지구온난화가 진행 중이며 그것이 인간의 활동 탓이라는 일반적 합의에 반대하는 논문은 하나도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주요 언론매체(예컨대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나온 3,500개가 넘는 지구온난화 관련 기사들에 대한 또 다른 연구 (Boykoff and Boykoff,
2004)에 따르면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 그 기사들 가운데 53퍼센트가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견해와 자연의 변화 때문이라는 견해를 얼추 비슷하게 다루었다. - P447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1993, 19쪽).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데도 시스템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위기는 잠재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오늘날 생태계에서 특히 명백하게 나타난다. 지구의 환경위기는 본질적으로 지구 전체의 운명과 대단히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 생태적 문제들이 오늘날 유력한 생산 형태로까지 이어지는 모든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만일 생산, 분배, 기술, 성장의 근본 문제들이 지구적 차원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세계의 환경위기가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없다. 그런 문제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본주의는 생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지속 불가능하며 폐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진다.


•존 벨라미 포스터 - P4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라, 오랜만에 역까지 산책해보기로 했다. 보통은 버스를 이용할 때가 많으나 걸어도 30분 남짓한 거리다.
역 앞으로 나가 제일 먼저 책방에 들어갔다. 여기서 미스터리 문고판을 산 다음 파친코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게 이때의 내 계획이었다. - P45

과열 경쟁에 살아남지 못한 사례일 수도 있겠으나 그 분야 자체의 인기가떨어진 점도 원인이리라.
그 예가 과학 잡지다.
한때는 여러 회사에서 냈었는데 요즘은 줄어들었다. 여기서도 이과계 외면 경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리라. 애독하던잡지가 휴간해 나처럼 쓸쓸한 심정을 품은 사람도 있겠으나아무래도 소수인 듯하다. - P46

나는 활자 애호가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양장본을 사는 일은 없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가격이 비싸다. 조금 기다리면 싸게 문고판이 나오는데 굳이 비싼 돈을 내는 사람의 심리를 모르겠다. - P46

그런 이유로 나는 이날도, 한눈팔지 않고 문고판 책장을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쌓아 올려진 신간 앞을 지날 때 불가사의한 감각이 나를덮쳤다. 음산한 표현을 쓰자면 유령이 뺨을 쓰다듬은 듯한감각이었다. 다만 차갑지 않았다. 따뜻한 감촉이었다. 나도모르게 그쪽을 봤다. - P47

「이과계 살인사건」에서

살인 현장인 연구실에 놓여 있는, 칠판 크기의 공동 작업용 컴퓨터 디스플레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P48

"이건 노환 같은데요. 상당히 고령이었던데다 외상도 없고, 독극물이 들어간 흔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노구치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 연구소 연구원들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소. 이치이시 박사는 분명 고령이나 아직시한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소."
"그러나 노화는 자기도 모르게 찾아오는 법이죠." - P49

"그런 이유로 이치이시 박사가 노환으로 죽을 만큼 노화했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더 잘 파악하고 있단 거요. 그리고 그런 사실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소. 그러니까 타살이오. 알겠나?" - P51

"몇 번이나 똑같은 소리를 해야 한단 말이오! 이치이시 박사의 혈관은 그렇게 노화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뇌혈전을 일으켰단 말입니까?"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앞서 언급했듯이 에이즈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으뜸 질병이다. 이 말은 에이즈가 발생하고 확산되는 조건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신념과 태도, 행동양식이라는 뜻이다. 에이즈는 1981년에 세상에 갑자기 나타났다. - P486

 처음에 사람들은 이새로운 질병을 동성애와 관련된 면역부전증GRID 이라고 불렀다. 초기에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증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1982년에그 명칭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바꿨다.  - P486

유럽과 아프리카의 연구자들은 그들의 논문을 저명한 의학저널에 게재할 수가 없었다. 논문을 사전 심사하는 동료 과학자들은 에이즈가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유럽과 아프리카의 연구자들이 무엇인가 어떤 다른 전달양식을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 P487

기독교방송네트워크의 설립자이며 198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침례교목사 팻 로버트슨은 과학자들이 에이즈가 이성애를 통해서도 전염될 수있으며 콘돔을 사용하면 막을 수 있다는 ‘생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는 동안 에이즈는 이성애자, 남성 동성애자, 정맥에 마약을 주사하는 마약 상습 투여자, 에이즈에 감염된 피를 수혈받은 혈우병 환자들 사이에서 계속 퍼져나가고 있었다(Garrett, 1994, 469쪽). - P487

우리는 보톤 에이즈가 처음 임간에게 전염된 것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의 영장류 동물로부터이며, 1970년대 말까지는 아주 소수만 걸렸지만 그 이후에 전 세계로 퍼졌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따라서 인간의 문화가 에이즈 발병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세계문화의 어떤 특징이에이즈 확산에 영향을 끼쳤는가? 에이즈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은 우리 문화의 어떤 특징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우리 문화는 사람들이에이즈와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 P489

굴드가 말하고자 한것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중심, 즉 비행기를 타고 금방 왕래할 수 있는그런 대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그들과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보다 서로 접촉이 더 잦다는 것이다. 이것을 굴드가 표현한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면 오늘날 인간들 사이의 접촉 형태의 특징은 ‘인접 공간을 통한 확산‘이 아니라 ‘계층별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 P489

에이즈는 흑사병이나말라리아, 뎅기열처럼 병원체를 옮기는 곤충이나 동물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행하는 것은 질병을 옮기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에이즈의 확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문화에서 사람들이 왜 여행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P490

관광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유럽의 부자들이 수세기 동안농촌에 별장과 땅을 소유하고 살았던 반면에 여행과 관광은 상대적으로 신홍 중류계급에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었다(Hobsbawm, 1975, 203쪽). 중기선과 철도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관광산업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성장하기 시작했다. - P490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관광은 주요 산업으로 발전했다. 특히 중심부 국가의 사람들 대다수는 적어도 한 번 이상 관광을 다녀왔다. 관광은 해마다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가운데 하나다. 1998년 미국의 관광 수입은 4.390 억 달러로 성장했다(Pera and McLaren, 1999). - P490

관광 여행의 결과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일부 연구자의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에이즈로 가장 큰 타격을받은 나라는 아이티와 태국이라고 한다. 이 두 나라에서 에이즈에 걸리기 쉬운 이유는 두 나라 모두 ‘섹스 관광‘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 P491

인류학자이자 의사인 폴 파머(1992)는 아이티의 에이즈 역사는 그 나라가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쿠바가 봉쇄되면서 미국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대안 관광지로 떠올랐다. - P491

아이티에서는 관광객이 늘면서 매춘이 성행했다. 60~80퍼센트에 이르는 실업률과 가난은 남녀를 불문하고 매춘을 유일한 경제대안으로 만들었다. 특히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까르푸 지역은 싼값에 섹스를 할 수있는 곳으로 명성을 얻었다. 남성 동성애자들을 위한 관광 안내서들에는 아이티가 좋은 관광지로 나왔다. - P492

1980년대말 관광객들에게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노동자들 가운데 에이즈 감염자 비율은 12 퍼센트였다. 아이티는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지만, 아이티 노동자들은 에이즈가 어떤 병인지 알게된 뒤에도 그것을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직업재해‘라고 생각했다 (Farmer,
1992, 1454). - P492

태국에서도 관광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었다. 에이즈는 상대적으로아시아에 늦게 상륙했다. 1984년 미국에 다녀온 태국의 한 남성 동성애자가 에이즈에 걸려 죽은 것이 최초의 발병 사례였다. 1987년 정맥 주사를 맞는 마약 중독자들 가운데 에이즈 감염률은 불과 몇 달 사이에 15퍼센트에서 43 퍼센트로 급증했다. - P492

1990년 태국을 방문한 관광객 수는 530만 명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 일본, 타이완에서는 남성 혼자서 태국 관광을 오는 경우가 많았고, 특별한 ‘섹스 관광‘을 즐기기 위해 태국을 찾는 일본, 중동, 유럽, 특히 독일 관광객이 많았다. 섹스산업이 발전하면서 15세에서 24세사이에 있는 태국 여성 전체 인구의 10 퍼센트에 해당하는 50만~80만명의 여성들이 매춘업에 종사했다. 1990년대 초 방콕 일부 지역의 에이즈 감염률은 90퍼센트에 이르렀다. - P492

태국 정부는 에이즈 발병 사례가 1987년에 늘어나기 시작했는데도 국민의 ‘공황 유발‘을 이유로 에이즈퇴치운동을 전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989년 임신한 여성 전체의 0.5퍼센트가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였다. 일부 북부 주에서는 3퍼센트까지 양성반응을 보인 곳도 있었다.  - P493

방콕의 한 신문은 에이즈가 항문 성교와 정맥 주사를 통해서만 전염된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동성애자보다는 이성애자가 에이즈에 걸리는 경우가 40배더 많았다. 1992년 세계보건기구는 태국에서 45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추정했다. - P493

이주노동자들이 전 세계에 에이즈를 확산시킨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전파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여행 형태 때문이라는 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 P493

장사나 사업을 위한 여행도 에이즈 확산에 영향을 끼쳤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감염경로는 이동이 많은 트럭과 상업 운송로를 따라 지나간다.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에이즈 확산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상품과 함께 에이즈도 실어 나른 홍해 어귀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철도종착역인 지부티에서 시작했다. - P493

수단에서는 ‘술집에 드나드는 매춘부‘의 80퍼센트가 에이즈-1형에 양성반응을 보였다. 우간다에서 모잠비크까지 운행하는 트럭 운전사들을 표본조사한 결과, 최소 30퍼센트에서 최대 80퍼센트까지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나왔다. - P494

폴 파머(1992, 149쪽)는 카리브해 지역의 에이즈 발생이 그 나라의 경제가 ‘서대서양 경제체제‘에 어느 정도통합된 상태인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립국가가 아닌 푸에르토리코를 빼고 도미니카공화국, 바하마, 트리니다드토바고, 멕시코, 아이티같이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나라들은 하나같이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아서 미국 경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나라들이다. - P494

에이즈의 기원과 중앙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확산에 영향을 준 요소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에이즈 출현을 야기한 극적인 사건이 1975년 무렵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1970~1975년은 게릴라전, 내전, 부족갈등, 피난민의 대규모 이주, 독재자의 잔혹한 학살행위가 난무하던 시기였다. - P494

그런 분쟁에서는 일반 국민이 큰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지난 20~30년 동안 중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수많은 군사작전은 하나같이 적을 철저하게 공포에 몰아넣고 정복하기 위해 (보스니아에서 목격한것처럼) 부녀자들을 강간했다. 어떤 군대는 병사의 절반이 에이즈 양성반응을 나타냈다. 이 - P495

이 밖에도 다수의 상대방과 하는 성교행위의 증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더욱 약화시키는 기근과 영양실조, 대량이주와 피난민의 집단수용 같은 사회붕괴로 초래되는 여러 가지 인간활동도 에이즈의 확산을 더욱 촉진했을 수 있다(Garrett, 1994, 367~368쪽). - P495

폴 파머는 『감염과 불평등』Infections and Inequality(1999)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전염병 감염률 사이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고 썼다. 확실히 가난은 결핵, 콜레라, 매독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에이즈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즉 동성애자나여성, 아이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 P495

유럽과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거의 이성 간의 섹스를 통해서만 에이즈가 전염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에이즈의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에이즈에 대한 연구와 교육 노력을 지연시켰는지는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P495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아프리카는 지금까지 에이즈 발병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경제가 파탄 나고 공중보건체계가 무너진 동유럽에서 에이즈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P496

미국은 끊임없이 아이티의 독재자들을 지원하면서 20세기 내내 아이티를 지배했다. 그 결과, 아이티는 1983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315달러에 불과했다. 농촌의 경우는 그보다 적은 100달러였다. 농업 상황은 매우 나빠서 거의 모든 식량을 수입해야 했다. - P496

아이티는 북아메리카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기로 작정했지만 에이즈의 발원지라는 오명 때문에 관광산업마저 붕괴되었다. 60퍼센트에 이르는 실업률과 극심한 대미 경제의존도는 아이티를 파머(1992.
189~190쪽)가 말하는 ‘서대서양 전염병‘의 무대로 만들었다. - P497

우리는 앞에서 빈곤과 기아에 대해 살펴보면서 여성과 어린이가 특히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에이즈의 경우에도 전 세계에서 보고된 감염 사례 가운데 대부분이 여성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에이즈의 가장자리에 있던 여성들이 감염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된 사실은 세계 자본주의 문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떤지를 잘 반영하고있다. 여성들이 에이즈에 감염되는 나이는 남성보다 더 어리다. 많은 나라에서 새로 에이즈에 걸리는 사람의 60퍼센트가 15~24세의 젊은 여성들이다 - P497

많은 나라에서는 여성과 섹스에 대한 이런 태도 때문에 섹스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금지한다. 실제로 여성들에게 섹스와 관련된 교육을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게다가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의 문맹률이 높기 때문에 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심지어 여성들에게 에이즈의위험을 알리는 계몽운동이 잘 조직된 나라에서도 남성들은 여전히 콘돔쓰기를 싫어한다. - P497

또한 여성들은 매춘을 통해 에이즈에 걸리는데 특히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하는 경우가 많다.
로리 개럿(1994, 368쪽)은 우간다의 에이즈와 매춘에 대해 다음과 같이말했다.

-
매춘은 암시장에 버금가는 사업이다. 여성들 대다수가 사는 방법은 두가지 선택밖에 없다. 남성의 도움 없이 아기를 갖고 가축이나 도구의 도움 없이 먹을 것을 키우거나 암시장 시세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것이다.

- - P498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쓰던 주삿바늘을 다시 쓴다. 정맥 주사를통해 아이들에게 에이즈가 전염되는 일은 주변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에서도 공산주의 붕괴와 그에 다른 사회적·경제적 혼란은 국가의 보건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특히 농촌 지역의 병원에서는 새 주사기가 없어 썼던 주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경우에는 한 주사기로 400번을 재사용하기도 했다. - P498

에이즈 연구자 르네 사바티에(Garrett, 1994,
475쪽 인용)는 에이즈계몽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나는 우리 [세계] 사회가 마침내 처음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나중에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나뉠 위기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에이즈에 대한 정보와 건강보험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그렇지 못한 사람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럴 수 없는 사람들. 나는 우리 가운데 절반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다른 사람들을 그저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기만 하는 에이즈 관음증 환자가 될 위험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 - P499

그 신약 발표는 열렬한 찬사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그 약을 써서 에이즈 사망률을 75퍼센트로 낮췄지만 치료약값이 1년에 최소 1만~2만 달러나 들기 때문에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 약을 구입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새로 개발된 에이즈 치료제의 모방약을 제조하거나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나라에서 수입하는 방식으로 그 약값을 50~90퍼센트까지 낮추려 하자 미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 P499

어쨌든 에이즈 치료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말라위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양성반응을 보이는 100만명의 사람들 가운데 겨우 30 명만이 신약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 P499

그러나 에이즈의 경우보다 피해자가 더 책임을 추궁당하는 현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중에서도 아이티의 사례는그런 현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초에 에이즈가 세계적인전염병으로 처음 확인되었을 때,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티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요소‘였다. 그들은 동성애자나 혈우병 환자나 헤로인 복용자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범주로 추가되어 옛날4H클럽(homosexuals, hemophiliacs, heroin users, Haitians)을 완성했다. - P500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브루스 채브너는 1982년 뉴욕의 동성애자들은 아이티로 휴가여행을 많이 간다. 우리는 그들이 아이티의 유행성 바이러스를 미국에 가져와서 동성애집단 사이에 퍼뜨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Farmer, 1992, 201쪽 인용)라고 말했으며, 이 말은 여러 사람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 P500

아이티 정부는 미국 질병통제센터에 분노했다. 카리브 제도의 다른 지역들과 미국 도시 대부분이 아이티보다 에이즈 감염률이 더 높다는 것이 명백해졌는데도 질병통제센터는 아이티 사람들을 위험분자집단으로 지정한 것을 폐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500

 보스턴의 한신문 사설이 지적한 것처럼 식품의약국의 결정이 모순되지 않으려면 아이티 사람들보다 에이즈 감염률이 10배는 더 높은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보스턴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카리브 제도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헌혈을 모두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Farmer, 1992, 220쪽 참조). - P501

왜 아이티가 표적이 되었을까? 폴 파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대중에게 아이티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에이즈와 관련된 부류, 다시 말해 몸을 파는 원주민이나 흑인, 이민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 P501

에이즈의 기원에 관한 주변부 국가의 견해는 중심부 국가의 견해와 크게 다르다. 기존의 연구자들이 에이즈의 기원으로 아프리카를 주목하자아프리카 국가들은 서양에서 자기 나라들을 에이즈의 주범으로 비난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 P501

아이티 사람들은 에이즈를 성난 미국인들이 자신들에게 전염시킨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티의 한 교사(Farmer, 1992, 232쪽 인용)는 이렇게말했다. "1804년 이후로 미국인들은 언제나 아이티에 대해 분노했어요.
그들은 강하기 때문에 우리를 혼내줄 수도 있고 모욕할 수도 있죠. 에이즈는 바로 그렇게 하기에 아주 알맞은 도구였어요." - P502

결론

우리가 이 장에서 살펴본 질병과 관련된 요소들은 현실에서 실제로 영향을 준다. - P502

미국 정부는 에이즈의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에이즈 치료와 관련된 연구기금을 마련하는 데는 늦장을 부렸다. 항문 섹스가 에이즈를 전염시킬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동성애자 사회에서는 에이즈가 단순히 자신들의 생활을 불신하기 위해 만들어낸 술책에 불과하다고 믿은 채 안전한 섹스를 경고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 P503

모든 전염성 병원체의 생존과 번식을 총괄하는 전지전능한 어떤 세균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자본주의 문화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행동을 능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문화 안에서 인간이 선택한 행동들이 쌓이면서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런 소굴로 떨어진다. - P503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쉽지 않지만 우리가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연대를 통해 대개 가공의 사회적·정치적·종교적인 적들에 맞서 힘을 결집시킬 수 있다면, 우리를 압도하며 위협하는 병원체들에 대항하도록 사람들을 규합하는 일은 분명 가능해 보인다. - P5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읽다보면 예전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에 나왔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 이것과는 다르지만, 관점을 바꿔 각 개인의 느낀점 등 개인적인 것들을 딥러닝 시켜버린다면, 그것도 그 당사자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내용은 최근 다른 책에서 본 것 같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1980년대에 처음 선보인 ICD는 그간 미국에서만 50만건 넘게시술되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와 그 부모들이 삶을 마감할 시점에가까워지면서 이제 매년 15만 명이 장치를 이식받는다. 의사와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환자도 많다. 곁에서 보살피는 사람들은 장치 비활성화에 대해 말도 꺼내지 않는다. - P67

따라서 이식 당시 의사들은 비활성화에 대해 상의하는것이 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환자와 ICD 간의 심리학적 관계다. 시간이 지나면서 ICD는 차차 신체의 일부로 인식된다. 인공호흡기나 혈액투석 장치 등체외 생명유지 장치와 전혀 다른,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종종 ICD의 생명유지 기능을 과대평가하며, 심지어 장치를 ‘믿을 수 있는 친구‘로 간주했다.⁵ - P68

결국 환자들은 ICD가 건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장치를 이식받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든 없든 전기충격에 대해서는 매우 큰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비활성화에 관해 의사와 상의하고 싶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ICD 비활성화는 곧 심정지라는 그릇된 관념은 모든 환자가 굳게 믿는 신념이었다. 반면 환자들은 ICD가 심부전 악화나 다른 질병으로 인한 죽음을 막아줄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 P69

몸속에 이식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는경우가 많으며, 의사가 환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의사가 언젠가는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으며, 환자에게 죽음이임박했다고 말하기를 꺼리는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다. - P60

언젠가는 어떤 방법으로도 죽음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환자도 의사도 절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 문제를 상의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장치를 비활성화하는 것도 매우 꺼린다. - P70

앞으로 더 많은 첨단의학기술이 개발될 것이므로 ICD처럼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 일도 많아진 것이다. ICD의 경우 이식 당시에 비활성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해도, 그때 내린 결정이 먼 훗날 삶이얼마 남지 않았을 때 환자가 느끼는 감정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 - P71

다. 인공심장과 심장보조장치 관련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훨씬 급진적인 해결책이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수백만 개의 나노봇을 프로그래밍하여 기능을 상실한 심장을 대신하는 것이다. - P71

 인공장기일 수도 있고,
수많은 심장보조장치 중 하나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신경이식일수도 있다. 이런 장치가 점차 익숙해져 ‘뉴 노멀‘로 인식되고, 결국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확장되어 장치를 우리의 일부로 인식하게 될수 있다. 이제 뉴노멀은 이식장치의 도움을 받아 오래도록 삶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뇌사 상태에서 외부에 존재하는 생명유지 장치를 끈다는 개념조차 이제 겨우 익숙해지는 참이다.  - P72

생물학적/인공적이라는 구분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은 또 있다. 다음 장에 소개하겠지만 현재 과학자들은 인공부품과 인간세포를 하나로 통합하는 생체공학 장기들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이식형 장치는 우리 몸에 훨씬 고도로 통합되어 유기물/무기물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 P75

사실상 죽음이 우리 손에 달린 시대가 오리라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때 이식형 장치는 죽음의 과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언제 비활성화할 것인지에 관한 결정이 가까운 미래에 더 쉬워질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현재도 의사들은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 P75

프랭크 바우어스 Frank Bowers를 보면 그가 신장질환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그는 64세로 세 자녀가 모두 장성했지만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하지만 프랭크는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혈액투석을 받는다. 한 번 시작하면 세 시간 반이걸린다. 콩팥 기능이 5퍼센트밖에 남지 않아 몸속에 축적되는 독소들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79

프랭크는 평생 건강하고 활발하게 살았다. 그런데도 48세가 되자 콩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통증은 없었지만,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소변에서 단백질이 검출되었다.
콩팥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였다. - P79

특수식을 처방받고, 수분 섭취를 늘리고,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 몇 년은 도움이되었지만 1996년이 되자 콩팥 기능이 완전히 나빠지고 말았다. 프랭크는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적합한 신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37개월간은 끔찍했다. - P80

2013년에는 체내에 너무 많은 수분이 축적되어 체중이 200킬로그램을 넘었다. 그야말로 ‘비참한‘ 느낌이었다. 콩팥에서 물을 배출하지 못해 몸무게가 두 배가 되다니! 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다. 가족과 친척들이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왔다. - P80

 합병증 또한 중요한 문제다. 투석을 하려면 인공혈관을 이식해야 한다. 그래야 굵은 튜브를 통해 많은 양의 혈액이 투석기로 원활하게 흘러들어가 독소와 수분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혈관은 어느 정도 지나면 손상되거나 혈전이 생겨 못 쓰게 된다. - P81

. 그가 자녀와 손주들을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도 콩팥이 나빠지면 어쩌나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조금 망설여졌지만 다음 계획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신장이식을 받는다면 10년 정도 새로운 삶을 누리겠지만 수술과 면역억제, 기타 의학적 조치에 따르는 고통과 번잡스러움을 그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 P81

어떤 결정을 내리든 생명이 위험하거나, 삶의 질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인공신장은 어때요? 시도해보실 생각이 있나요?" 그는 잠시 생각했다.
"좋지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기니피그 노릇을 할 겁니다." - P82

 신장이식을 받는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어떤 이식장기도 환자가 타고난 수명을 누릴때까지 버티지는 못한다.
원래 장기를 손상시켰던 질병이 재발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거부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물론 면역을 억제한다. 그러나 아무리 적합한 장기를 이식해도 면역계의 끈질긴 공격 앞에 언젠가는 무릎을 꿇게 되어 있다. - P82

가장 흔한 것이 장기기증 서약자가 응급실에 가면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생명을 구하는 일을 최우선순위에두는 의료인들에게 이런 생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가 사망하는 것을 실패로 받아들인다.
감정적 트라우마를 입는 경우도 많다. 환자의 사망은 심지어 전문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낙인이 되기도 한다. - P83

대개 가장 가까운 가족이 기증에 동의해야 한다.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즉시 동의를 철회할 수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들의 태도를 조사한 몇몇 연구에서 의사들은 환자가 명시적으로 죽기를 원해도 영웅적인 노력에 의해 생명을 살릴수만 있다면 최대한 생명을 연장하는 쪽으로 편향되는 경향이 있다.  - P83

앞서 말했듯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말기 신장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 병이 유전은 물론 당뇨병 등의 위험인자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¹ 투석을 받는 환자는 대부분 오래도록 신장질환을 앓고 콩팥 기능이 10~15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물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끔찍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혈관이식 부위를 못 쓰게 되어 계속 새로운 시술을 받아야 하는 문제는 피할 수 없다. - P82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장기 부족은 전 세계적인 문제다. 이에따라 사람들의 장기를 착취하여 불법거래하는 암시장이 크게 성행한다.⁴ 미국 등 부유한 국가의 넘치는 수요와 저개발국가의 가난한사람들이 겪는 절박한 사정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 P84

장기밀매는 수지맞는 장사다. 2004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브라질에서 살아 있는 기증자가 콩팥을 파는 경우 6천~1만 달러를받는다. 최저임금이 월 80달러에 불과한 나라에서는 엄청난 돈이다.⁵ 사업 과정은 정교하다. 일단 기증자를 모집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데려간 후, 거기서 신장을 적출하고 돌려보낸다. 이렇게얻은 신장은 개당 최대 15만 달러에 팔아 넘긴다. - P85

젊은 나이에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에게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않다. 여러 차례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데다, 그때마다 적합한 장기를 찾고 재발이나 거부반응에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안정적인 대책이라 할 수 없다. 설사 장기를 자발적으로 기증받고,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다고 해도 의료진이 해결해야 할 딜레마는 남는다. 헤파린을 투여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 오징어 게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