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나는 소크라테스 생각을 많이해. 소크라테스가 말했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육체가 망가지면 영혼은 감옥에서 벗어난다고. 그런데 나는 그와는 반대로 파고들었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말처럼, 내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머리카락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어.  - P62

내가 내 삶은 다 기프트라고 했었지? 내가 산 물건도 따져보면 다 글을 써서 산 거야. 내 물건 중에서 글과 관계없는게 하나도 없어. 글 쓰는 걸 기프트로 받았고, 글을 통해 또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선물을 나는 받았네.  - P62

실토하지 않을 수 없군. 글이 안 써지는 거야. 내가 암에 걸리고마지막이 되고, 그러면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하는 기가 막힌 글이나올 것이다. ∙∙∙∙∙ 절실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안 돼.
당황스럽더군. 그래서 기도했지. - P63

왜 용기가 필요한 줄 아나? 인간은 차마 맨정신으로는 자기의 몸뚱이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거야. - P63

내 모든 지식, 모든 생각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더군. 다 지워버렸어. 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였어.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모든것의 지우개였어. 지우개로 지워놓으면 내가 뭘 쓰나? 공백이야. - P63

그래서 한밤중에 녹음을 해봤어. 아침에 깨어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어보면 웃기지도않는 얘기야. 고통 속에서 절실하게 얘기했는데, 대낮에 해 뜨고 보면 형편없는 거야. 유행가도 있잖나.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라고. - P64

게다가 지금처럼 이어령 선생님에게 작은 지혜라도 얻어가려고 시간을 내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매주 화요일 나는 그분을 찾아뵙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니! - P66

지우개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 작고 아름다운 것들, 요즘엔 그런 것들로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어. 세 줄로 된 글. 3행시라고나 할까. 가령 사람이 발톱을 깎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 P67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몸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어.
매일 가벼워지거든. 옛날에는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매일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디지털 저울은 액정에 숫자 나오면끝이지만, 옛날 체중계는 동그랗게 얼굴이 달려 있었어. - P68

만년필 볼펜 같은 거 처음 쓸 때 시험 삼아 아무 글자나 써보잖아. 그때 뭐라고 쓸 것 같나. 시인이고 소설가고 거창한 말 쓸거같지? 삶의 무게, 시간의 절정・・・・・・ 이런 것?
아니야. 볼펜 안 나올 때 써보라고 해봐. 대한민국, 출생 주소, 이런거 써, 사람, 도로, 신발・・・・・・ 이런 일상어 쓴다고. 절대로 심각한 내용 쓰지 않네. 한 방울도 그래. - P69

과거엔 부고가 우편 전보로 날아왔어. 5일 동안 장례를 치렀으니까. 돌아보면 인간이 죽음과 함께 살았던 때가 생명의 시대였네. 길거리에서 거적에 덮인 시체를 보고, 방에서 할아버지가 죽고 장례 치르는 것을 어린 손자가 보았지. - P70

"한때 뉴욕 거리에 시체 안치소가 들어서고 시신을 실은 냉동력이 즐비했습니다. 서늘한 광경이었어요."
"비로소 지구의 인간들이 생명이 뭐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거야 오늘 있던 사람이 내일 없어질 수도 있구나. 요즘은 젊은 사람들, 아니 어린아이들도 생명을 하찮게 말할 때가 많아. 야단 한번쳐도 ‘누가 낳아달랬어? 공연히 낳아서 고생만 시키잖아‘ 쏘아붙이기 일쑤지." - P71

자기 호주머니 속에 덮여 있던 유리그릇 같던 죽음을 발견한 거야. 주머니에 유리그릇 넣고 다녀봐. 깨질 것 같아서 불안하지? 그게 죽음이라네. - P72

"한국인은 함께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죠."
"얼마나 강했으면,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사과 다섯 개중 두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지?‘ 했더니 학생이 ‘두 개요!‘ 하더래. 이 녀석아, 다섯 개에서 두개 먹으면 세 개가 남지 왜 두 개냐?‘ 했더니 답변이 걸작이야. ‘에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먹는 게 남는 거랬어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게 남는 거라는 거야. 배던 시절의 슬픈 유머지.
(후략) - P73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에는 엄청난 결속력이 있거든. 서양도 마찬가지야. 회사를 컴퍼니company라고 하는데, com 이 함께고 pany가 빵이야. 회사라는 말도 결국 한솥밥을 먹는 공동체라는 뜻이지." - P74

"나는 말일세. 오히려 스마트폰 보며 혼밥하는 장면보다 스마트폰이 양복 주머니에서 툭 불거져 나온 모습에서 직장인들의 ‘고독의 덩어리‘를 봐. 남자들 호주머니를 보게. 스마트폰을 넣어서 축처져 있지. 축 처진 양복 호주머니를 볼때마다, 나는 남자들이 참애잔해, 그 울퉁불퉁한 고독, 숨겨도 숨길 수 없는 고독 때문에 여자들은 핸드백 들고 다녀서 모르지." - P74

선생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이런 작은 이야기들을 좋아한다네." - P75

몇년전 나는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쓴 일본의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50년간 1만 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이 ‘운의 현자‘는 ‘운을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 P78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당신이 생각하기에 운 좋은 인생을 사셨나요?"
"내 인생이 운이 좋다 나쁘다. 그런 평가를 해본 적은 없네." - P79

"그렇다면 운을 시험하는 제비뽑기 같은 건 어떤가요?"
"지금까지 팔십 평생 살면서, 심지 뽑아서 하는 일은 한 번도 된 일이 없어. 여럿 중에 무작위로 뽑는 것에 징크스가 있거든. 어릴때는 고무 신발이 귀해서 나무 게다를 신고 다녔어. 시골 학교에서 한 번씩 신발 배급을 하면 개수가 모자라 제비뽑기를 했거든. 그때마다 번번이 헛것을 뽑았지. 그래서 그 부분에서는 단념을 했지. - P79

 그런데 전화가 귀하니까 정부에서 일반 전화를 뽑기를 해서 준 거야. 지붕 하나에 벽으로 두 집을분리하는 ‘나가야 연립주택에 살았는데, 그런 집이라도, 전화 한 대 놓으니 세상 다 가진 것 같았어 - P80

지금은 은수저, 금수저로 서로를 가르지만, 6·25 직후는 다 피난민이었고 평등하게 가난했던 시절이었어. 집 가진 사람도 폭격 맞아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았고, 고아들이 지천이었네. 운 좋은 놈이 어딨어? 다 불행했지. - P80

"배급 시절의 풍경이죠. 한정된 자원을 나눠갖던 시절의 ‘웃픈‘ 이야기입니다." - P81

있지. 뽑기로 정하면 공평한 것 같아도 재수 없는 사람은 항상 소외되는 거야.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도 밤낮 지는 사람이 있어.
주사위를 굴려도 매번 재수 없게 건너뛰는 사람이 있다고. 확률상으로만 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래. 카지노에 가도 잃는 사람은꼭 잃어. 속임수가 없더라도 따는 사람이 있고 잃는 사람이 있지. - P81

"운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했나? 그 생각이 궁극적으로는 운명론이라네."
"운명론이라고요? 결국 인간의 행운과 불운은 예정된 프로그램대로 흘러간다는 그 운명론이요?"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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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구자로 학문을 파지 않은 이유가 있네. 뻔한 이론에 주석까지 달아야 돼. 주석을 많이 안 달면 논문 통과가 안 되거든 학문세계에서는 달린 주석이 줄줄이 새까맣게 돼야 논문 대접을 받아. - P42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셨군요."
"못 참아. 지루해서. 책도 마찬가지네. 내 책이라고 다르지 않아.
모든 책을 다 의무적으로 서문부터 결론까지 읽을 필요는 없네." - P43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난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지 않는다고. 그런데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그 책이 법전인가? 원자 주기율 외울일 있나?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 P43

사람들도 친구 사귈 때,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사귀잖아. 오랜 친구라고 그 사람의 풀스토리를 다 알겠나? 공유한 시절만 아는거지. 평생 함께 산 아내도 모르는데(웃음).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도모르는 거야. - P43

"그럼 뭐지요? 논문의 정체성은?"
"발견이지. 이미 있는 것을 찾아낸 것. discover cover를 벗기는거야. 재미난 것은 아메리카 대륙 찾아낼 때까지 ‘발견‘이라는 말조차 없었다는 거네. 디스커버는 포르투갈어에서 왔어. (후략) - P44

(전략) 개성, originality가 인정받은 것도 19세기 이후 낭만주의가 생기면서부터였네. 그전까지만 해도 오리지널리티는 나쁜 뜻이었어. 보편적인 것을 위반했거든." - P44

인터뷰가 뭔가? inter. 사이에서 보는 거야. 우리말로 대담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대담은 대립이라는 뜻이야. 대결하는 거지. 그런네 말 그대로 서로 과시하고 떠보고 찌르면 거기서 무슨 진실한 말이 나오겠나. 위장술밖에 더 나오겠어? - P44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그러니 지금 할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을 참이야. 하지만 내 말은 듣는 귀가필요하네. 왜냐하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 P45

라스트 혹은 엔드리스

선생이 일평생 맺은 인연들이 많아, 이즈음에 누군가는 이어령의 삶 쪽에, 누군가는 이어령의 죽음 쪽에 발을 딛고 더 나은 영광을 찾으려 했다. 사람들은 벌써 그에 대한 추도문을 쓰기 시작했다. - P48

"내 기분을 말하자면, 나는 시끌벅적한 것은 싫어하지만 모든 일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네.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나는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지 않겠나." - P49

그러니 나의 이야기를 자네의 문맥 속으로 집어넣게 그러면 헤어져도 함께 있는 것이라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자네가 나를 잘몰아주게나. 나만 허허벌판에서 떠들 순 없는 노릇이야. - P50

"이보게. 사람들이 죽을 때는 진실을 얘기할 것 같지? 아니라네. 유언은 다 거짓말이야."
급격한 커브에 놀라 마음이 출렁거렸다. - P51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록새록 보게 돼. 거짓 유언이 진실로 열매를 맺는 과정을. - P51

그렇다네. 진짜 전하고 싶은 유언은 듣는 사람을 위해서, 듣는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로 한다네. - P51

"아버지라면 성실과 지혜를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초강수를 둘 수 있죠. 그런데 스승의 유언이라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이건 어떤가. 스승이 죽기 전에 가르치던 제자 세 명에게 유언을남겨.
‘나에게 낙타가 몇 마리 있는데 너희들에게 물려주마.
첫째 제자, 너는 수제자이니 1/2을 가져라.
둘째는 열심히 했으니까 1/3을 가져라.
막내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1/9 을 가져라.‘
그런데 스승이 떠나고 보니 낙타가 열일곱 마리야. (후략) - P52

"한 마리 허수를 넣어야 계산이 되는군요."
"그렇지. 그게 수학의 신비고 유언의 신비라네. 그냥 가르쳐주면 안 풀어. 못 풀어. 나눌 수 없는 열일곱 마리를 준 후, 나머지 한 마리의 퍼즐은 남은 자들이 더해서 풀게 한 거지. 쉽게는 못 풀어 생각을 해야 풀 수 있다네. 스승은 수학이란 무엇인가를 유언을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했어. 수학은 체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개념의 세계라네." - P53

배신할 것을 전제로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거야. 라스트 인터뷰는 유언의 기법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되기 때문에 이러운 인터뷰가 되겠지.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말게나. - P53

"묻는 자로서 저는 어떤 질문을 경계해야 합니까?" - P54

다짜고짜 그러더군.
‘선생님,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큰 질문이로군요!" - P54

나는 이런 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 빅 퀘스천bigquestion이지. 문인에게 다짜고짜 ‘문학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문학을 못 하네. 그런 추상적인 큰 질문은 무모해.  - P54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질문이 너무 커. 책 한 권으로도 담을 수없는 큰 것을 내게 물어본다네. 평생 공부하고 써야 할 것을, 나한테 물어본다구. - P55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지.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있다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는 부류. - P55

마지막이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걸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 P56

"큰 질문을 경계하라 하셨으니, 작은 질문을 드리지요. 지금 몸 상태는 어떠신지요?"
"그것도 유언의 형식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어. 내가 암에 걸리기 전에도 나는 바울이 한 말을 제일 좋아했네. ‘나는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난다." - P56

 난 여섯 살 때부터 죽음을 느꼈어. 밤에 잘 때 어머니 코에 손을 대보곤 했지. 숨을 쉬나 안 쉬나. 수십년 동안 내가 반복적으로 했던 얘기가 그거네. - P57

존재의 정상이잖아. 뭐든지 절정은 슬픈 거야.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에도 그런 구절이 있어. 분수는 하늘로 올라가 꿈틀거리다, 정상에서 쏟아져 내린다…… 상승이자 하락인 그 꼭짓점. 그 절정이 정오였어. 정오가 그런 거야. 시인 이상의 「날개」에도 정오의 사이렌이 울려. - P57

"어린 이어령은 그때 무엇을 본 걸까요?"
"대낮의 빛, 그걸 느끼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어. 어린아이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네. 가장 순결한 영혼이어린아이야, 프로이트도 어린아이 놀이에서 그 유명한 ‘포르트-다(있다 없다 놀이)‘를 발견했잖아. (후략) - P58

"‘엄마 있네‘의 확신이 없으면 인생에 바람구멍이 뚫려버리죠. 가장 가까운 타자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영영 떠난 게 아니라는 믿음.
그 믿음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압니다." - P58

의사에게 암 선고를 받은 후 나는 입으로 되뇌어보았네. cancer.
cancer. 캔서는 라틴말로 ‘게crab‘란 뜻이야. - P59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암이라는 질병 그 자체보다암에 대한 인간들의 의식이 문제라고 썼지. - P60

그때 내가 수술하지 않겠다고 했지. 물론 방사능 치료도 주치의도 내 생각과 같았어. 놀라운 의사였어. 전이가 됐다는 말은 앞으로 또 전이된다는 얘기거든. 그러니까 나는 거기서 끝내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라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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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만 요번에 살짝 읽어야지.

많은 사람들이 몇 년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미움받을 용기》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매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자존감에 대한 책이나 강연회 등에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이유는 뭘까? - P8

 요즘 한국인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대인 관계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중의 문화가 실종된 상황, 혹은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기 힘들어진 현실에서 비롯된 문제다. - P9

이를테면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상대의 성격이나 도덕성이 아니라 직업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방의 수입)부터 알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초면부터 노골적으로 "연봉이 얼마예요?"라고 물어보기는 좀 민망한지라 이렇게 돌려 묻곤 한다.
"뭐 하는 분이세요?" - P9

한마디로 한국인의 전형적인 대인관계 방식은 상대를 돈으로 평가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자각조차 못하는 한심한 상태라는 것이다. - P10

그 어떤 경우에도 한쪽에 의해서 관계가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잘못이지만, 나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된다는 사실이다. - P10

그래서 이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
라는 식으로 자책하며 결론을 내린다. - P11

공동체의 힘으로 굴러가던 시대와 달리 자본주의 체제는 개인 이기주의에 의해서 굴러가는사회다. 개인 간의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붕괴되고 개인은 원자화, 파편화된다. 현대인에게 고독이 최대의 문제로 부상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P11

.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한테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나라도 나를 존중하는 것‘ 외에는 없다. - P12

70~80년대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물결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적어도 기층 단위에서는, 공동체를 지켜왔다. 덕분에 이때까지만 해도 마을 공동체, 직장 공동체, 학교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가능했다. - P12

이 최후의 희망이 절망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존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존감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중요하며, 한국인들의 자존감이 왜 이토록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이를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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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여자는 죽었어.
다행이야.
이제 됐어. 모두를 위해서도 잘된 일이지. 이로써 날조 논문은세상에 나오지 않을 테니 시노자키 선생님의 명예를 지킬 수 있어. 이제 마음 편히 연구할 수 있을 테니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실험 지침도 충실하게 쓰자. - P316

"뭘 히죽히죽 웃고 있어!" 히로야마 부교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히익!" 다바타 조교수는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왜 그리 당황해? 진정해."
"하지만!" 다바타 조교수는 비통한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 P316

"무슨 사건?"
"자살입니다."
"자살? 오지라는 박사 연구원 이야기야?"
"아니요. 그 사람이 아니라 선생님이......"
"내가 자살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살아 있잖아." - P317

"왜 갑자기 내게 꿈 이야기를 하는 건데?"
다바타 조교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일까요? 하지만 어쩐지........
"어쩐지?"
"진짜 있었던 일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꿈이 진짜 같은 느낌이었다는 거야?" - P317

"이상한 학생 커플요?"
"응. 이상한 나라가 어떻고 저떻고 했잖아."
"아아. 그런 사람들이 왔었죠."
"망상이니까 신경 쓸 것 없어." - P318

"그런 것보다 오늘 오전 중에 모든 약품의 목록을 제출해 보유량과 연간 사용량 그리고 가격과 제품 안전 데이터시트도 덧붙여서."
"우리 연구실에는 약품이 천 가지도 넘게 있는데요."
"그래? 하지만 오늘이 마감이야. 반년이나 전에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이제 와서 미뤄달라고 할 수는 없어."
"저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 P318

그 녀석, 실실 웃고 있었어. 내가 죽은 줄 알았겠지. 뭐 아까까지는 그게 현실이었지만.
이 세계에서 히로야마 도시코가 죽더라도 이상한 나라에 본체인 메리 앤이 살아 있는 한 몇 번이라도 초기화되어 히로야마 도시코는 부활해 나만 특별히 그런 건 아니야. 그게 붉은 왕이 꾸는 꿈의 규칙이지 - P319

그건 그렇고 이번에 손댄 일련의 사건은 정말로 골치 아팠어.
첫 번째 오산은 잘못해서 험프티 덤프티를 죽인 거지. 그게 원인이 되어 앨리스가 말려들었고, 그리핀 말고도 흰토끼와 빌과 앨리스도 죽여야 했어. 계획을 세우기는 정말 귀찮았지만 아무튼해냈다고. - P319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왜 돌아왔어? 빨리 목록이나 만들어 오늘 밤 안에 만들어서 내일 아침에 주면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제품 안전 데이터시트는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전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놔."
"난 그런 번거로운 일은 안 해요."
여자 목소리. 그것도 아는 목소리다. - P320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앨리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뇨. 죽었어요, 앨리스는 구리스가와 아리는 조용히 말했다. - P320

그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작은 회색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얘가 앨리스의 아바타라이자 내 소중한 가족인 햄순이예요."
"햄스터? 앨리스의 아바타라는 네가 아니라 햄스터였어?"
"그래요. 어제 내 방에 느닷없이 날아든 돌이 창문을 깨고 햄순이의 집에 떨어졌어요. 햄순이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어요." - P323

"그건 사고야, 앨리스는 목걸이와 팔찌,발찌를 한 채로 몸이 커져서…………."
"앨리스는 평소에 장신구를 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그런 걸 하고 커지는 버섯을 먹다니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 P324

"인류와 설치류의 관계가."
"뒤바뀌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 여기는 붉은 왕의 꿈속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지. 그래서?"
"당신이 앨리스를 죽였을 때 난 앨리스의 호주머니 속에 있었어 - P325

"나도 앨리스가 무슨 증거를 떨어뜨린 게 아닐까 싶었어. 하지만 손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허세인 줄 알았지. 설마 살아 있는 증거였을 줄이야."
"단념해요, 메리 앤." - P325

"경찰은 날 체포 못 해. 왜냐하면 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이상한 나라에서 다섯 명이나 죽였어요."
"하지만 지구에서는 한 명도 안 죽였어. 꿈속에서 몇 명을 죽이든 현실 세계에서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실제로는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고, 지구가 꿈이에요.‘ - P326

"네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넌 친구가 죽어서 정신이 나갔어. 다들 그렇게 여길걸. 네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런데 그게 있거든." 문 오른쪽 사각지대에서 다니마루 경감이 나타났다.
"언제부터 있었어?" 히로야마 부교수의 안색이 변했다. - P327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
"그래. 당신은 자백했어."
"그건 그냥 농담이야."
"앨리스가 사망했을 때의 상태는 기밀이야. 당신은 범인밖에 모르는 사실을 나불나불 떠들었어." - P327

"두 명이 아닙니다." 문 왼쪽 사각지대에서 니시나카지마가 나타났다.
"도대체 몇 명이나 숨어 있는 거야?"
"더 이상은 없습니다. 당신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걸 증명할 수있는 증인은 세 명입니다."니시나카지마는 말했다. - P328

"이상한 나라에서 증언하면 뭐가 달라져? 거기에는 거짓말쟁이나 바보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 무슨 증언을 하든지 신경도 안 쓰겠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건가?" 다니마루 경감이 말했다. - P328

"그런데 대관절 누가 증언을 들을까?"
"물론 판사지."
"판사는 누구지?"
"국왕이야. 하지만 실제로는 실권을 쥐고 있는 여왕이 판사인셈이지."
"흠. 그럼 여왕만 수긍하면 증거 따위는 필요 없지 않겠어?" - P329

"여왕은 머리가 나쁘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말은 이해 못 해. 오직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만 이해하지."
"과연 여왕은 머리가 나쁘군."
"응, 아주 나쁘지."
"중요한 정보야, 니시나카지마, 메모를 하도록." - P329

"그런데 히로야마 선생." 경감이 말했다. "머리가 나쁜 여왕이라도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건 이해하는 거지?"
"그래. 하지만 여왕이 보고 들어야 할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사건은 전부 일어난 뒤니까." - P329

 다니마루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아무개 형사가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
"가짜 거북?"
"그는 공작부인이야." - P330

아리 눈에는 한순간 히로야마 부교수의 눈알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내가 공작부인이라는 거짓말은…………."
"들통난 지 한참 됐지. 구리스가와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당신은 가장 중요한 피의자로 지목됐어." - P330

"이봐, 아무개 씨." 히로야마 부교수는 니시나카지마를 불렀다.
"당신도 알잖아. 여왕은 바보에다 의심이 많다는 걸."
"글쎄요. 어떨까요."니시나카지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P330

"나, 그러니까 메리 앤이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걸 받아들이도록 여왕을 설득할 자신 말이야."
"아아, 그 자신요?" 니시나카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설득할 생각이 없는데요."
히로야마 부교수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어때? 아무개 씨는 이미 포기한 것 같은데?" - P331

"아니,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그런데 왜 여왕을 설득할 필요가 있지?"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니시나카지마가 말했다.
"어? 당신들 내가 저지른 짓을 눈감아주려고?" - P331

"여왕을 설득할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여왕은 이미 당신이 진범이라는 걸 알거든." - P331

"하지만 여기에 여왕은 없어."
"아니, 있어." 다니마루 경감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여왕이야." - P333

"네가 꿈속에서 한 일은 자백뿐이야. 범죄는 모조리 현실인 이상한 나라에서 저질렀지. 그러니 이상한 나라에서 벌을 받는 거야."
"생각났어요. 전 협박당해서 거짓 자백을 했어요."
"누가 협박했는데?"
"겨울잠쥐요." - P333

"그건 이상한데. 누명을 씌우려면 자백을 시키지말고 증거를날조하면 돼. 그럼 굳이 네가 스스로 자백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있잖아."
"아니에요. 제가 착각했네요. ・・・・・ … 그래요. 제가 우월한 지위를 남용했다는 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어요." - P334

"너도 계속 앨리스를 의심했으면서." 메리 앤은 목을 주무르며말했다. "지구에서는 중학생인 너희에게 돈도 줬잖아."
"그건 네가 주겠다고 해서 받은 거야. 뇌물이라는 자각도 없었어. 애당초 네가 범인인 중도 몰랐다고. 네 냄새가 앨리스와 똑같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 P336

"야, 3월 토끼야. 혹시 앨리스와 메리 앤의 체취는 완벽히 똑같지 않아?‘ 이렇게. 그럼 난 ‘응, 맞아. 냄새로는 누가 누군지 전혀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야‘라고 대답했을 거야." - P336

"예."스페이드 3은 엎드려 있는 메리 앤의 목에 칼을 내리쳤다.
뭔가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 메리 앤의 목덜미에서 피가 배어났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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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기의 즐거움
『길가메시 대서사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그리스 서정시인들
호라티우스의 『송시』
『베오울프』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지옥편』
『거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
제프리 초소의 『캔터베리 이야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존던
『킹 제임스 성경-시편』
존 밀턴의 『실낙원』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노래 •경험의 노래』
윌리엄 워즈워스
제뮤얼 테일러 콜리지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앨프리드 테니슨 경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크리스티나 로세티
제라드 맨리 홉킨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폴 로렌스 던바
로버트 프로스트
칼 샌드버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랭스턴 휴스
W. H. 모든 - P515

‘시‘란 규정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한 말이다. ‘시‘는 로버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에 나오는 것처럼 상당히 직접적으로 보이는 단어가 결합되기도 한다. - P518

시는 역사처럼 과거의 한 면모를 연대순으로 기록할 수 있고, 소설 기능을 흉내 내서 한 인물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 P519

소설과 자서전, 역사 그리고 대부분의 희곡은 산문이다. 시와 운문은 각각 서로를 정의하는 말이다. 문학적인 이름표로서 ‘시‘란 대부분
‘산문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 P520

시는 잠망경을 통해 관찰되는 무엇, 즉 시가 포착하려는 감각이나 분위기 혹은 문제, 사람, 나무, 숲, 강등의 ‘사물‘의 속을 들여다보는 관찰자(독자)를 언제나 연루시킨다. 하지만 시의 대상은 관찰자의 눈에 대상자체를 직접 각인시키지는 않는다. - P520

‘잠망경‘ 중 두 개의 거울은 시인과 시적 언어다.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그의 정신과 정서, 경험은 시의 일부가 된다. 소설가나 희곡 작가는 종종 시선 밖에 머무르려 한다. - P520

 오스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은 지금 막 다아시의 거만한 청혼을 거절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머리를 식히려고 산책을 나선다. - P521

골목길 외진 곳을 따라 두세 차례 거닐다가 아침이 주는 상쾌함에 이끌려 공원 입구에 멈춰 서서 안쪽을 들여다봤다. 켄트에서 지낸 지도 어느덧 5주가 흐른 사이에 시골 풍경도 크게 변했고 어린 묘목들은 나날이 푸르름을 더해 가고 있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엘리자베스는 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숲이라고 부를 만한 녹지에서 어떤 신사의 모습을 흘긋 봤다. 남자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으나, 다아시 씨일까 겁먹은그녀는 얼른 몸을 뺐다. 하지만 다가오던 사람 쪽에서 이제는 엘리자베스가보일 만큼 가까웠던 까닭에 길음을 앞으로 옮겨 소리 내어 이름을 외쳤다.
이미 돌아섰던 엘리자베스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다아시 씨의 목소리가 분명한데도 입구 쪽으로 길음을 재촉했다. 그때 다아시 씨도입구에 다다랐던 터라 편지 한 통을 엘리자베스에게 내밀었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편지를 받았다. 다아시 씨는 오만해 보일 만큼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숲에서 잠시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읽어 주시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다아시 씨는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건넨 다음 숲으로 돌아섰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산문이다. - P521

술에 기대어 앉아 있다 보니
천 가지 뒤섞인 틈틈이 들리는데
그 달콤한 분위기에서 기쁜 생각은
슬픈 생각을 불러왔다.

(중략)

이런 믿음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이런 것이 자연의 거룩한 뜻이라면
인간이 만든 것을
슬퍼해야 하지 않을까? - P523

잠망경으로 내부까지 뚫어지게 보면서 독자는 나뭇가지와 새 앵초꽃 덤불을 본다. 워즈워스 자신은 숲 한가운데 드러누워 ‘인간이 만든것‘을 애도하고 있다. 시인의 감각과 시인의 지각, 시인의 결론은 그 장면의 직물을 완전히 통과하며 짜여졌다.  - P523

시인의 존재는 시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시인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애써 의식적으로 표현한 시에서조차 그렇다. 다음은 마크 스트랜드가1980년에 쓴 시 「그대로 두기 위하여」이다.


들판에서
나만이 들판에
없다.
언제나
그렇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만이 빠졌다. - P524

이런 존재로 인해 시인은 자기 작품의 주제에 대하여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시는 언제나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오히려 시인은 세 가지입장 중 하나를 취한다. - P524

시인은 자기 바깐으로부터 무언가를 기원하거나 자신이 느긋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무관하게 존재하거나, 이 세계에서는 불쾌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자신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적인 진리를 향한 물길을 내는 것이다. 즉 시인은 외부의 어떤 힘을 목격하며 서 있다. - P524

시는 모두 신이나 사랑, 우울에 관한 것이다.
잠망경의 둘째 ‘거울‘은 언어다. 시의 언어는 자의식적으로 형식적이다. 즉 각각의 시에서 형식(시의 언어, 언어의 배치와 순서)은 시의 관념과 분리될 수 없다. 산문의 언어와 관념은 그보다 헐겁게 연결된다. - P525

하지만 시는 원래의 언어를 간직하는 범위에서만 시다. 『오만과 편견』을 여섯 시간짜리 영화로 각색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제인 오스틴이지만, 〔그대로 두기 위하여」를 그렇게 각색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마크 스트랜드가 아니다. 시인의 언어는 의미가 비춰지는 투명한 창이 결코 아니다. 한 편의 시에서는 언어가 의미다. - P525

"시는 삶의 모가지를 틀어쥐는 방법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시는 흡사 농담과 같다. 농담의 마무리로 단어 하나를 잘못 선택하면 전체 의미를 몽땅 잃어버린다." (W.S. 머윈) - P526

"시는 사랑과 같다. 그것과 부딪히면 기쁨을 경험하니까 알아보기 만족스러운 정의로 납작하게 고정해 두기는 아주 어렵다." (마리 폰소)

"시는 수천 년을 끊기지 않고 방송할 수 있는 라디오와 같다."(앨런 긴즈버그) - P526

의 시가 이런 모든 기교와 그 이상의 것을 사용하는 데도, 이런 독특한 시적 기교로 시를 특징짓지 않는다. 시적 언어의 관습은 세기가 바뀌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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