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여자는 죽었어. 다행이야. 이제 됐어. 모두를 위해서도 잘된 일이지. 이로써 날조 논문은세상에 나오지 않을 테니 시노자키 선생님의 명예를 지킬 수 있어. 이제 마음 편히 연구할 수 있을 테니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실험 지침도 충실하게 쓰자. - P316
"뭘 히죽히죽 웃고 있어!" 히로야마 부교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히익!" 다바타 조교수는 제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왜 그리 당황해? 진정해." "하지만!" 다바타 조교수는 비통한 목소리로 외치듯이 말했다. - P316
"무슨 사건?" "자살입니다." "자살? 오지라는 박사 연구원 이야기야?" "아니요. 그 사람이 아니라 선생님이......" "내가 자살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살아 있잖아." - P317
"왜 갑자기 내게 꿈 이야기를 하는 건데?" 다바타 조교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일까요? 하지만 어쩐지........ "어쩐지?" "진짜 있었던 일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꿈이 진짜 같은 느낌이었다는 거야?" - P317
"이상한 학생 커플요?" "응. 이상한 나라가 어떻고 저떻고 했잖아." "아아. 그런 사람들이 왔었죠." "망상이니까 신경 쓸 것 없어." - P318
"그런 것보다 오늘 오전 중에 모든 약품의 목록을 제출해 보유량과 연간 사용량 그리고 가격과 제품 안전 데이터시트도 덧붙여서." "우리 연구실에는 약품이 천 가지도 넘게 있는데요." "그래? 하지만 오늘이 마감이야. 반년이나 전에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이제 와서 미뤄달라고 할 수는 없어." "저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 P318
그 녀석, 실실 웃고 있었어. 내가 죽은 줄 알았겠지. 뭐 아까까지는 그게 현실이었지만. 이 세계에서 히로야마 도시코가 죽더라도 이상한 나라에 본체인 메리 앤이 살아 있는 한 몇 번이라도 초기화되어 히로야마 도시코는 부활해 나만 특별히 그런 건 아니야. 그게 붉은 왕이 꾸는 꿈의 규칙이지 - P319
그건 그렇고 이번에 손댄 일련의 사건은 정말로 골치 아팠어. 첫 번째 오산은 잘못해서 험프티 덤프티를 죽인 거지. 그게 원인이 되어 앨리스가 말려들었고, 그리핀 말고도 흰토끼와 빌과 앨리스도 죽여야 했어. 계획을 세우기는 정말 귀찮았지만 아무튼해냈다고. - P319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왜 돌아왔어? 빨리 목록이나 만들어 오늘 밤 안에 만들어서 내일 아침에 주면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제품 안전 데이터시트는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전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놔." "난 그런 번거로운 일은 안 해요." 여자 목소리. 그것도 아는 목소리다. - P320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앨리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뇨. 죽었어요, 앨리스는 구리스가와 아리는 조용히 말했다. - P320
그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작은 회색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얘가 앨리스의 아바타라이자 내 소중한 가족인 햄순이예요." "햄스터? 앨리스의 아바타라는 네가 아니라 햄스터였어?" "그래요. 어제 내 방에 느닷없이 날아든 돌이 창문을 깨고 햄순이의 집에 떨어졌어요. 햄순이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어요." - P323
"그건 사고야, 앨리스는 목걸이와 팔찌,발찌를 한 채로 몸이 커져서…………." "앨리스는 평소에 장신구를 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그런 걸 하고 커지는 버섯을 먹다니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 P324
"인류와 설치류의 관계가." "뒤바뀌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 여기는 붉은 왕의 꿈속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지. 그래서?" "당신이 앨리스를 죽였을 때 난 앨리스의 호주머니 속에 있었어 - P325
"나도 앨리스가 무슨 증거를 떨어뜨린 게 아닐까 싶었어. 하지만 손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허세인 줄 알았지. 설마 살아 있는 증거였을 줄이야." "단념해요, 메리 앤." - P325
"경찰은 날 체포 못 해. 왜냐하면 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이상한 나라에서 다섯 명이나 죽였어요." "하지만 지구에서는 한 명도 안 죽였어. 꿈속에서 몇 명을 죽이든 현실 세계에서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실제로는 이상한 나라가 현실이고, 지구가 꿈이에요.‘ - P326
"네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개소리에 지나지 않아. 넌 친구가 죽어서 정신이 나갔어. 다들 그렇게 여길걸. 네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런데 그게 있거든." 문 오른쪽 사각지대에서 다니마루 경감이 나타났다. "언제부터 있었어?" 히로야마 부교수의 안색이 변했다. - P327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 "그래. 당신은 자백했어." "그건 그냥 농담이야." "앨리스가 사망했을 때의 상태는 기밀이야. 당신은 범인밖에 모르는 사실을 나불나불 떠들었어." - P327
"두 명이 아닙니다." 문 왼쪽 사각지대에서 니시나카지마가 나타났다. "도대체 몇 명이나 숨어 있는 거야?" "더 이상은 없습니다. 당신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걸 증명할 수있는 증인은 세 명입니다."니시나카지마는 말했다. - P328
"이상한 나라에서 증언하면 뭐가 달라져? 거기에는 거짓말쟁이나 바보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 무슨 증언을 하든지 신경도 안 쓰겠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건가?" 다니마루 경감이 말했다. - P328
"그런데 대관절 누가 증언을 들을까?" "물론 판사지." "판사는 누구지?" "국왕이야. 하지만 실제로는 실권을 쥐고 있는 여왕이 판사인셈이지." "흠. 그럼 여왕만 수긍하면 증거 따위는 필요 없지 않겠어?" - P329
"여왕은 머리가 나쁘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말은 이해 못 해. 오직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만 이해하지." "과연 여왕은 머리가 나쁘군." "응, 아주 나쁘지." "중요한 정보야, 니시나카지마, 메모를 하도록." - P329
"그런데 히로야마 선생." 경감이 말했다. "머리가 나쁜 여왕이라도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건 이해하는 거지?" "그래. 하지만 여왕이 보고 들어야 할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사건은 전부 일어난 뒤니까." - P329
다니마루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아무개 형사가 이상한 나라에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 "가짜 거북?" "그는 공작부인이야." - P330
아리 눈에는 한순간 히로야마 부교수의 눈알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내가 공작부인이라는 거짓말은…………." "들통난 지 한참 됐지. 구리스가와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당신은 가장 중요한 피의자로 지목됐어." - P330
"이봐, 아무개 씨." 히로야마 부교수는 니시나카지마를 불렀다. "당신도 알잖아. 여왕은 바보에다 의심이 많다는 걸." "글쎄요. 어떨까요."니시나카지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P330
"나, 그러니까 메리 앤이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걸 받아들이도록 여왕을 설득할 자신 말이야." "아아, 그 자신요?" 니시나카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설득할 생각이 없는데요." 히로야마 부교수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어때? 아무개 씨는 이미 포기한 것 같은데?" - P331
"아니,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그런데 왜 여왕을 설득할 필요가 있지?" "저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니시나카지마가 말했다. "어? 당신들 내가 저지른 짓을 눈감아주려고?" - P331
"여왕을 설득할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여왕은 이미 당신이 진범이라는 걸 알거든." - P331
"하지만 여기에 여왕은 없어." "아니, 있어." 다니마루 경감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여왕이야." - P333
"네가 꿈속에서 한 일은 자백뿐이야. 범죄는 모조리 현실인 이상한 나라에서 저질렀지. 그러니 이상한 나라에서 벌을 받는 거야." "생각났어요. 전 협박당해서 거짓 자백을 했어요." "누가 협박했는데?" "겨울잠쥐요." - P333
"그건 이상한데. 누명을 씌우려면 자백을 시키지말고 증거를날조하면 돼. 그럼 굳이 네가 스스로 자백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있잖아." "아니에요. 제가 착각했네요. ・・・・・ … 그래요. 제가 우월한 지위를 남용했다는 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어요." - P334
"너도 계속 앨리스를 의심했으면서." 메리 앤은 목을 주무르며말했다. "지구에서는 중학생인 너희에게 돈도 줬잖아." "그건 네가 주겠다고 해서 받은 거야. 뇌물이라는 자각도 없었어. 애당초 네가 범인인 중도 몰랐다고. 네 냄새가 앨리스와 똑같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 P336
"야, 3월 토끼야. 혹시 앨리스와 메리 앤의 체취는 완벽히 똑같지 않아?‘ 이렇게. 그럼 난 ‘응, 맞아. 냄새로는 누가 누군지 전혀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야‘라고 대답했을 거야." - P336
"예."스페이드 3은 엎드려 있는 메리 앤의 목에 칼을 내리쳤다. 뭔가에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 메리 앤의 목덜미에서 피가 배어났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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