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나는 소크라테스 생각을 많이해. 소크라테스가 말했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육체가 망가지면 영혼은 감옥에서 벗어난다고. 그런데 나는 그와는 반대로 파고들었어.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말처럼, 내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머리카락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어. - P62
내가 내 삶은 다 기프트라고 했었지? 내가 산 물건도 따져보면 다 글을 써서 산 거야. 내 물건 중에서 글과 관계없는게 하나도 없어. 글 쓰는 걸 기프트로 받았고, 글을 통해 또 세상으로부터 수많은 선물을 나는 받았네. - P62
실토하지 않을 수 없군. 글이 안 써지는 거야. 내가 암에 걸리고마지막이 되고, 그러면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하는 기가 막힌 글이나올 것이다. ∙∙∙∙∙ 절실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안 돼. 당황스럽더군. 그래서 기도했지. - P63
왜 용기가 필요한 줄 아나? 인간은 차마 맨정신으로는 자기의 몸뚱이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거야. - P63
내 모든 지식, 모든 생각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더군. 다 지워버렸어. 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였어.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모든것의 지우개였어. 지우개로 지워놓으면 내가 뭘 쓰나? 공백이야. - P63
그래서 한밤중에 녹음을 해봤어. 아침에 깨어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어보면 웃기지도않는 얘기야. 고통 속에서 절실하게 얘기했는데, 대낮에 해 뜨고 보면 형편없는 거야. 유행가도 있잖나.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라고. - P64
게다가 지금처럼 이어령 선생님에게 작은 지혜라도 얻어가려고 시간을 내달라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매주 화요일 나는 그분을 찾아뵙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니! - P66
지우개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 작고 아름다운 것들, 요즘엔 그런 것들로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어. 세 줄로 된 글. 3행시라고나 할까. 가령 사람이 발톱을 깎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 P67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몸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어. 매일 가벼워지거든. 옛날에는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매일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디지털 저울은 액정에 숫자 나오면끝이지만, 옛날 체중계는 동그랗게 얼굴이 달려 있었어. - P68
만년필 볼펜 같은 거 처음 쓸 때 시험 삼아 아무 글자나 써보잖아. 그때 뭐라고 쓸 것 같나. 시인이고 소설가고 거창한 말 쓸거같지? 삶의 무게, 시간의 절정・・・・・・ 이런 것? 아니야. 볼펜 안 나올 때 써보라고 해봐. 대한민국, 출생 주소, 이런거 써, 사람, 도로, 신발・・・・・・ 이런 일상어 쓴다고. 절대로 심각한 내용 쓰지 않네. 한 방울도 그래. - P69
과거엔 부고가 우편 전보로 날아왔어. 5일 동안 장례를 치렀으니까. 돌아보면 인간이 죽음과 함께 살았던 때가 생명의 시대였네. 길거리에서 거적에 덮인 시체를 보고, 방에서 할아버지가 죽고 장례 치르는 것을 어린 손자가 보았지. - P70
"한때 뉴욕 거리에 시체 안치소가 들어서고 시신을 실은 냉동력이 즐비했습니다. 서늘한 광경이었어요." "비로소 지구의 인간들이 생명이 뭐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거야 오늘 있던 사람이 내일 없어질 수도 있구나. 요즘은 젊은 사람들, 아니 어린아이들도 생명을 하찮게 말할 때가 많아. 야단 한번쳐도 ‘누가 낳아달랬어? 공연히 낳아서 고생만 시키잖아‘ 쏘아붙이기 일쑤지." - P71
자기 호주머니 속에 덮여 있던 유리그릇 같던 죽음을 발견한 거야. 주머니에 유리그릇 넣고 다녀봐. 깨질 것 같아서 불안하지? 그게 죽음이라네. - P72
"한국인은 함께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죠." "얼마나 강했으면,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사과 다섯 개중 두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지?‘ 했더니 학생이 ‘두 개요!‘ 하더래. 이 녀석아, 다섯 개에서 두개 먹으면 세 개가 남지 왜 두 개냐?‘ 했더니 답변이 걸작이야. ‘에이,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먹는 게 남는 거랬어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게 남는 거라는 거야. 배던 시절의 슬픈 유머지. (후략) - P73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에는 엄청난 결속력이 있거든. 서양도 마찬가지야. 회사를 컴퍼니company라고 하는데, com 이 함께고 pany가 빵이야. 회사라는 말도 결국 한솥밥을 먹는 공동체라는 뜻이지." - P74
"나는 말일세. 오히려 스마트폰 보며 혼밥하는 장면보다 스마트폰이 양복 주머니에서 툭 불거져 나온 모습에서 직장인들의 ‘고독의 덩어리‘를 봐. 남자들 호주머니를 보게. 스마트폰을 넣어서 축처져 있지. 축 처진 양복 호주머니를 볼때마다, 나는 남자들이 참애잔해, 그 울퉁불퉁한 고독, 숨겨도 숨길 수 없는 고독 때문에 여자들은 핸드백 들고 다녀서 모르지." - P74
선생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이런 작은 이야기들을 좋아한다네." - P75
몇년전 나는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쓴 일본의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50년간 1만 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이 ‘운의 현자‘는 ‘운을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 P78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당신이 생각하기에 운 좋은 인생을 사셨나요?" "내 인생이 운이 좋다 나쁘다. 그런 평가를 해본 적은 없네." - P79
"그렇다면 운을 시험하는 제비뽑기 같은 건 어떤가요?" "지금까지 팔십 평생 살면서, 심지 뽑아서 하는 일은 한 번도 된 일이 없어. 여럿 중에 무작위로 뽑는 것에 징크스가 있거든. 어릴때는 고무 신발이 귀해서 나무 게다를 신고 다녔어. 시골 학교에서 한 번씩 신발 배급을 하면 개수가 모자라 제비뽑기를 했거든. 그때마다 번번이 헛것을 뽑았지. 그래서 그 부분에서는 단념을 했지. - P79
그런데 전화가 귀하니까 정부에서 일반 전화를 뽑기를 해서 준 거야. 지붕 하나에 벽으로 두 집을분리하는 ‘나가야 연립주택에 살았는데, 그런 집이라도, 전화 한 대 놓으니 세상 다 가진 것 같았어 - P80
지금은 은수저, 금수저로 서로를 가르지만, 6·25 직후는 다 피난민이었고 평등하게 가난했던 시절이었어. 집 가진 사람도 폭격 맞아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았고, 고아들이 지천이었네. 운 좋은 놈이 어딨어? 다 불행했지. - P80
"배급 시절의 풍경이죠. 한정된 자원을 나눠갖던 시절의 ‘웃픈‘ 이야기입니다." - P81
있지. 뽑기로 정하면 공평한 것 같아도 재수 없는 사람은 항상 소외되는 거야.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도 밤낮 지는 사람이 있어. 주사위를 굴려도 매번 재수 없게 건너뛰는 사람이 있다고. 확률상으로만 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래. 카지노에 가도 잃는 사람은꼭 잃어. 속임수가 없더라도 따는 사람이 있고 잃는 사람이 있지. - P81
"운은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이라고 했나? 그 생각이 궁극적으로는 운명론이라네." "운명론이라고요? 결국 인간의 행운과 불운은 예정된 프로그램대로 흘러간다는 그 운명론이요?"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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