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저작권 표시 Photographs indicated below copyright ⓒ 2017, 2018 이 책의 모든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 유산 관리소의 허가를 받아 실은 것으로, 유산 관리소의 승인이나 허락을 받지 않은 사진은 단 한 작품도 싣지 않았습니다.
비비안 마이어 유산 관리소와 말루프 컬렉션 제공 표지, 2, 10, 13, 14, 15, 46, 54, 56, 68, 77, 84, 99, 65, 101, 105, 106, 108, 110, 115, 118, 120, 121, 122, 125, 126, 129, 132, 134, 136, 137, 139, 140, 143, 144, 146, 147, 150, 153, 157, 158, 159, 160, 161, 162, 163, 165, 166, 167, 168, 170, 171, 173, 177, 178, 180, 182, 185, 186, 188, 190, 192, 195, 196, 197, 200, 203, 207, 208, 209, 212, 214, 216, 217, 218, 220, 221, 222, 224, 225, 226, 228, 231, 232, 233, 234, 236, 237, 238, 239, 241, 242, 244, 247, 253, 255, 259, 260, 261, 262, 266, 267, 276, 278, 281, 286, 287, 288, 289, 290, 291, 292, 293, 295, 306, 308, 310, 311, 333, 338, 341, 344, 345, 349, 350, 367, 369, 402, 404, 405, 406, 408, 411, 413, 414, 415. All rights reserved.
비비안 마이어 유산 관리소 제공 26, 31, 49, 88, 89, 91, 93, 94, 95, 97, 98, 105, 107, 108, 109, 110, 113, 115, 116, 123, 132, 140, 141, 143, 159, 177, 182, 242, 245, 248, 253, 257, 286, 295, 398, 400, 401. All rights reserved.
미국인/프랑스인 • 권위적인/소극적인 • 배려하는/냉담한 •여성적인/남성적인 •재미있는/엄격한•너그러운/고집 센 • 쾌활한/냉소적인 • 깔끔한/지저분한 • 친절한/심술궂은 • 열정적인/둔감한 • 매력적인/심각한 • 정중한/퉁명스러운 • 책임감 있는/무신경한 • 사교적인/비사교적인 • 페미니스트/전통적인 • 눈에 띄는/은둔하는 • 메리 포핀스/사악한 마녀 -비비안 마이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묘사한 비비안의 모습 - P11
이야기는 2007년, 시카고 경매장에서 시작한다. 경매장을 찾은 존 말루프John Maloof는 구매한 물건(당시 집필하던 책에 실을 만한 사진이 있을까 싶어 낙찰받은, 낯선 사진으로 가득 찬 버려진 상자들)을 살펴보다가 자신이 엄청난 보물을 갖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P11
그는 경매에서 같은 작가의 사진을 구매한 사람들을 찾아내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들을 사들였다. 그 뒤로도 계속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진을 구매해, 그무명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모을 수 있었다. - P11
사람들은 비비안 마이어를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09년 4월, 며칠 전에 시카고에서 세상을 떠난 보모가 그 모든 사진을 찍은 작가임을 알려주는 부고를 발견했다. - P12
그사이 말루프는 자신이 모은 돈 상당 부분을 비비안의 사진을 사는 데써버렸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작품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판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 P12
(전략) 비비안의 사진에 감탄한 많은 이들이 사진을 공유하고 또 공유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플리커에 올린 사진은 스무 장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주제와 인물을 다루는 비비안의 작품에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풍부한 감정과 개성이 담겨 있었다. - P12
결국 말루프는 비비안 사진의 또 다른 주요 구매자 제프리 골드스타인Jeffrey Goldstein과 함께 비비안의 아카이브를 준비해나갔다. 두 사람이 구매한 작품 14만점 가운데 인화한 사진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네거티브필름이거나 현상하지 않은 필름이었다. 작품을 모두 분류하자, 비비안이 인쇄한 형태로 남아 있는 7000여 점 외에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 P12
말루프와 골드스타인이 비비안의 작품을 공개할 때마다 그녀의 대단한 업적과 탁월한 재능을 입증하는 증거가 쌓여갔다. 언론은 새롭게 발견한 경이로운 보모에 관한 기사를 계속 실었고, 그에 힘입어 강연과 전시, 책과 찬사가 순환하듯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 P13
비비안이 시카고에서 입주 보모 일을 했던 집을 십여 곳 찾아가 그녀에 관해 물었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 집에머물며 아이들을 돌봤던 여인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비비안이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사진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 P16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2014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는 2015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사진작가였던 보모를 명성이라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성층권 안으로 쏘아올렸다. - P16
영화 제작팀은 비비안이 어렸을 때 6년 동안 프랑스 친척 집에 머물렀으며,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맨해튼에서 살았음을 밝혀주는 가족력을찾아냈지만, 뉴욕에서 비비안이나 비비안의 가족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만나지 못했다. 서른 살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시카고에서 살았지만, 비비안의 고용주 가운데 그 누구도 비비안이 태어난 곳이나 성장한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고, 비비안에게 가족이나 친구가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사진을 찍었는지, 왜 직업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는지, 어째서 찍은 사진 대부분을 현상하지 않았고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 P17
이 사진작가와 관계를 맺게 된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그 궤도로 들어갈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나는 회사의 임원으로 일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동기,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연구와 분석을 하며 30년을 보냈다. 나에게는 하찮은 세부 사항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답을 모르는 채로 남겨둬도 좋을 의문은 하나도 없었다. - P17
몇 주 안에 나는 존 말루프와 제프리 골드스타인에게 연락해 함께 비비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1940년대 이후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비비안의 오빠, 찰스에게 일어난 일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비비안의 귀중한 유산의 직접적인 상속자가 될 찰스와 찰스의 후손을 찾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 P18
(중략), 찰스의 죽음으로 모두가 미심쩍어하던 사실이 명확해졌다. 비비안의 유산을 물려받을 분명한 상속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사실 말이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은 내 이야기를 특집 기사로 실었고, 쿡 카운티의 유산 관리자들은 정보를 교환하자며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 P18
내가 비비안의 생애를 계속 쫓는 동안, 말루프와 골드스타인은 각자 나에게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 전반을 다룬 권위 있는 전기를 집필해달라고요청했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사진을 언제라도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이 수집한 비비안의 사진 14만 점을 검토한 사람이 되었고, 그 사진들은 이 전기의 초석이 되어주었다. - P18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비비안 마이어가 태어난 세상의 얼개를 짜기 위해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내가 찾은 비비안 가족의 매장지 정보는 흔치 않은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비비안의 가족 열 명은 모두 맨해튼에 묻혔는데, 묻힌 장소가 아홉 곳이나 됐다! - P19
마이어 가족이 모두 다른 곳에 묻혔다는 사실은 그들이 영원히 함께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한 불화가 가족 내에 있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교육 받은 기록도 없고, 직업을 가진 기록도 없고, 사람들과 교류한 기록도 없는 비비안의 오빠가 마이어 가족의 비밀을 풀 열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P19
그리고 마침내, 뉴욕 주립 문서 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콕사키 뉴욕 주립 직업훈련원 수감자 목록에서 칼 마이어라는 이름을찾아냈다. 1936년도 기록이었다. 물론 이 칼이 내가 찾는 비비안의 오빠라는 확신은 없었다. 콕사키는 세 개 주가 만나는 지역으로, 이곳에 살았던칼 마이어는 K로 시작하는 칼도, C로 시작하는 칼도 많았고, 찰스 마이어도 많았다. 하지만 수감자의 출생일을 보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성 베드로 루터파 교회에 남아 있는 세례식 기록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 P20
문서 보관소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7~8센티미터가량 되는 두툼한 서류철을 내밀었다. 편지와서류가 가득 차 있던 서류철에는 칼과 칼의 두 할머니, 칼의 부모, 감화원의 시각으로 전하는 비비안 가족의 완전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 P20
당시 나는 칼의 입대 기록과 제대 기록을 포함한 칼의 군 생활 기록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열심히 들쑤시고 있었다. 하지만 1973년에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개인정보 보관소에 불이 났고, 그때 기록이 모두 소실됐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 P20
약간의 반발심을 가지고 나는 다시 군대 문서보관소를 조사했고, 마침내 칼 마이어의 이야기를 담은 두툼한 서류철을 찾아냈다. 군대 기록에는 칼의 복무 내용뿐 아니라 남은 인생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정보가 담겨 있었다. - P21
비비안은 사진에 정보를 거의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비비안과 교류한 사람들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년 동안 사진에서 찾은 단서들 위에 다른 정보들을 추가하면서 사진에 찍힌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애썼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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