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카르트가 모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용한 표현에 따르면 "이는 육체 기관에 좌우된다." 이는 동물을 포함한 적절한 육체 기관을 가지고 있는 어떤 존재에게도 귀속할 수 있는 감각이다. 예를 들어 인간과 기린은 모두 이러한 ‘감각을 갖는다‘라는 의미에서 시각적 감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동물이 감각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외부의 자극을 통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감각 기관(예를 들어 눈과 귀)을 갖는다고 말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 P92
그리고 이러한 자극은 "영향을 받은 육체 기관과 마음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도, 따라서 의식 없이도 발생할 수있다고 데카르트는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 P92
데카르트에 따르면 첫 번째 등급의 감각 외의 다른 감각을 가지려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데카르트의 가르침은 동물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등급의 감각을 갖지 않는다"가 되어야 한다. - P93
데카르트가 동물이 ‘생각한다‘는 것을부정할 때, 그는 간략하게 말해 동물이 갖는 감각이 "외부 대상에 의한 육체 기관의 직접적인 영향" 이상임을, 그리고 동물이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인지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 P93
실제로 철학자들 중에서 혹은, 우리가 살펴볼 것이지만, 당대의 과학자중에서 오직 데카르트만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 P94
데카르트에게는 잘 돌본 애완견(pet dog)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의식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 자신의 애완견을 잘 보살핀 것이다.¹²
12) Keith Gunderson, "Descartes, La Mettrie, Language and Machines," Philosophy 39, no. 149(July 1964): 202에서 언급됨. - P94
1.2 데카르트에게 도전하지 않는 방법
하지만 데카르트는 전혀 미치지 않았으며, 우리는 동물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는 그의 입장을 대인 논증¹⁴의 방식으로 외면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가 말하는 바를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그를 공격함으로써 외면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것이다.
14) (옮긴이) all hominem.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그 주장 자체를 반대하거나 작성하는 논증. - P95
우리는 데카르트가 이러한 믿음을 일종의 ‘편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편견이란 우리가 정당화할 필요성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 P95
우리는 데카르트가 이러한 믿음을 일종의 ‘편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편견이란 우리가 정당화할 필요성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 P95
데카르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이와동일한 평가가 동물에게 의식이 있다는 믿음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이해하고 정당화하는 데 별다른 시간을 들이지 않은 것이다. - P96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도 동물의 의식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유사한 이유로 번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설령 "우리 모두가 동물이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데카르트의 목소리를 감안한다. 면, 어떻게 이것이 사실일 수 있는가?)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단계에서 ‘우리 모두가 믿는 바에 호소하는 것은 적나라한 편견을 신뢰함이라는 포장으로 그저 감싸는 것이다. - P96
개는 뛰어오르고, 짖고, 문을 긁어대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참으로 이러한 모습은 황홀 상태에서 빙글빙글돌거나 격렬하게 춤을 추는 등의 의식을 행하는 탁발 수도승을 닮았다. 만약 데카르트가 개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마저도 거부하려 했다면, 우리는 동물에 대한 그의 입장을 쉽사리 거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96
데카르트와 동물에게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는 동물의 공공연한 행동에 관한 어떤 사실을 놓고 발생하는 불일치가 아니다. 양자 간의 불일치는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최선의 방식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 P97
일단 이 정도를 확인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동물이 행동하는가에 관한어떤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동물에 대한 데카르트의 견해에 대응하려는 것은 논점을 잘못 짚은 것이라는 점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데카르트와 그의 비판자들이 나누어지는 지점은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이다. - P97
의인화
현재의 맥락에서 상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고찰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의인화(anthropomorphism)의 문제이다. 웹스터 사전은 의인화하다라는 동사의 적절한 의미를 "인간 아닌 것들에 인간의 특징을 귀속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 P97
정의는 가령 "달이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혹은 "풀이 비와 계약을 맺었다"의 경우와 같이 우리가 오직 인간에게만 귀속하는 어떤 특징을 인간이 아닌 사물들에 귀속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 P98
. 의인화는 말한 대상의 실제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아님에도 마치 그 대상이 인간인 양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의식이 오직 인간만의 특징이라면 우리가 동물이 의식을 지닌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의인화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이는 실제 이상의 존재로 동물을 간주하는 것이다. - P98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게 의식이 있다고 생각해도, 그러한 사람들이 단지 의인화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일 수있다. 의인화에 대한 비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동물들에게 의식이 있다는 고집을 꺾지 않으려 함으로써,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함으로써 비판에 대응하는 방법의 결함을 감안라면, 우리는 분명히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 P98
더욱 합당한 대응방법을 생각해내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척도로 보아도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으며, 철학·수학·자연과학 분야에서 진정으로 선구적인 사상가인 데카르트가 왜 그토록 상식에 맞지 않는 견해를 개진하고 있는지를 고찰해보아야 한다. - P99
1.3 절약의 원리
여기서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선택지(이를 기계론적 선택지 [Mechanistic Alternative]라고 부르자)는 순전히 기계론적 용어로 동물의 행위를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선택지는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물들을 "자연의 기계로 간주한다. 이는가령 핀볼 기계와는 차이가 있는데, 다시 말해 동물은 살아 있음에 반해핀볼 기계는 살아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 P100
그런데 기계론적 선택지네 따르면 동물의 행위 메커니즘은 비록 행위 메커니즘이 살아 있지 않은 기계와는 다르지만 핀볼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적어도 데카르트 당대의 과학은 동물의 경우 전선과 회로를 통과하는 전기 전류 대신, 혈류를 통과하는 ‘다양한 체액(humors)‘¹⁷ 혹은 ‘동물 정령(精靈, animal spirits)‘¹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17) (옮긴이) 서양 고대에서 중세까지를 지배했던 생리학 가설로, 혈액, 점액, 황담액, 흑담액의네 가지 체액이 인체를 이루는 기본 성분이며, 이것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질병이 생긴다고 보았다. 18) (옮긴이)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있었던 개념인데, 데카르트에서는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신비한 성질은 버려지고 피의 미세한 부분이라는 물체적 성질만 남는다. - P101
오늘날 동물 정령 혹은 체액에 대한 믿음은 자극-반응 설명 모델에서 사용되는 생리학적, 신경학적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우리가 동물생리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늘림으로써 기계론적 선택지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신뢰를 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으로 보인다. - P101
동물들이 지르는 고함과 낑낑거리는 소리는 ‘틸트(Tilt)‘¹⁹ 라는 불이 들어올 때와 다를 바 없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발생하는 소리에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기계론적 선택지는 관찰 가능한 동물의 행동 방식과 관련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19) (옮긴이) 핀볼 게임을 할 때 볼을 뒤로 가게 하기 위해 게임기의 앞을 드는 식으로 기계에조작을 하면 ‘틸트‘라는 경고가 울린다. - P102
두 번째(비기계론적 선택지) 선택지는 첫 번째의 것과 차이가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두 번째 선택지가 동물의 해부학 혹은 생리학에 관한 어떤 사실을 반박하거나 동물이 현재와 같이 행동하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는 두 번째 선택지가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수많은 동물들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 P102
. 즉 여기에는 동물들이 단순히 어느 정도 복잡한 ‘살아 있는 기계‘가 아니라는 가정, 그리고 이들이 어느 정도 의식을 갖추었거나 인식을 한다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P102
우리가 절약의 원리를 받아들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논의를 위해 방금 설명한 두 가지 선택지 각각이 다른 선택지와 동등하게 동물의 행위를 적절히 설명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선택지 중에서 선택하기에 합당한 것은 어느 것인가? - P102
우리가 데카르트의 논의에서 일부 결점을 발견할 수있지만, 적어도 위의 이야기는 데카르트가 동물의 인식을 부정하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고, 논거를 확실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가 논의의 공백 상태에서 동물의 의식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가 훌륭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음을 보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P103
아울러 우리는 단순히 상식에 호소하거나 ‘우리 모두가 믿는‘ 데에 호소함으로써 데카르트의 입장을 비판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호소할 경우 그러한 방식이 ‘편견‘을 구현하고 있다는 예측 가능한반박이 데카르트로부터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 P103
1.4 라메트리의 반박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기계론적 선택지가 단언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만약 우리가 동물의 행동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동물이 의식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면, 인간의 경우에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면,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 또한 ‘기계‘라고 결론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 P103
데카르트와 대조적으로 라메트리는 기계론적 선택지를 한 걸음 더 이끌어간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정신적 삶‘은 인간 신경계 ‘체액의 변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 P104
뉴캐슬 후작²¹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동물이 우리처럼 의식이 있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개연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이 이러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지 않으면서 일부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있다고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굴과 해면과 같은 다수의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는 그들이 너무 불완전합니다."²²
21) (옮긴이) 윌리엄 캐번디시(William Cavendish, 1593~1676)를 말한다. 22) Kenny, Descarres: Philosophical Letters (Animal Rights and Human Obligations, ed. Regan and Singer에 재수록), p. 208. - P104
여기서 데카르트는 혼동을 하고 있다. 어떤개체가 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그 개체가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음을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무덤을 넘어선 삶‘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이승에서의 삶에서 자신의 의식을 부정하거나 다른 존재들의 의식을 유사한방식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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