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중요한 정보를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는 질책을 감수하실 겁니까? 우리가 외국인 범죄자들을 비호했다는?"
"그건 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걸세." 뤼드베리가 말했다. "경찰이 어떤 외국인들을 찾고 있다는 말이 새어 나가면 난민 캠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나?" - P60

크리스마스이브 이틀 전, 이혼 서류가 배달되었다. 봉투를 열었을때 그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면에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달아나려는 시도처럼, 그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병가를 내고 덴마크로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났었다. - P62

거의 트렐레보리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그는 연노랑 불빛에 물든 부두를 가로질렀다. 대형 트럭이 선사시대 괴물처럼 으르렁거리며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글자가 쓰인 문을 지났다. 그곳에있는 두 명의 수속 경찰 모두 모르는 사람이었다. 발란데르는 자신을소개했다. 둘 중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잿빛 턱수염을 길렀고, 이마에 길게 난 흉터가 있었다.
"위스타드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맡으셨군요." 그가 말했다.
"범인들을 잡으셨습니까?" - P63

대화는 페리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하는 승객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중략).
20분 후에는 아홉 명의 승객만 남았다. 저마다의 이유로 스웨덴으로의 망명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이었다. - P63

"오늘 밤은 꽤 조용한 편이군요." 더 젊은 경찰이 말했다. "가끔씩 백 명에 육박하는 망명 신청자가 한 페리로 도착합니다. 그게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 P64

"말뫼의 출입국 경찰이 그들을 데리러 올 겁니다." 나이 든 경찰이 대답했다. "오늘 밤은 그들 차롑니다. 페리에 여권이 없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우리는 무선으로 통보하죠. 가끔은 추가 인력을 요청해야 합니다." - P64

"헤드라이트를 꺼야겠습니다." 발란데르가 말했다. "그런 다음 둘이서 얘기를 나누죠."
(중략)
"경찰인 줄 몰랐소" 스트룀이 사과의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게다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발란데르는 큰 망치를 치우고 그 자리에 앉았다.
"뢰브그렌 부인이 지난밤에 사망하셨습니다." 그가 말했다. "와서직접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 - P67

이 부부는 침묵했다. 여자는 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남자는 엽총을 만지작거렸고, 발란데르는 신중하게 총구를 피해 앉았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죽었군요." 뉘스트룀이 천천히 말했다. - P67

"왜 그들은 말을 길렀습니까?" 발란데르가 궁금해했다.
"은퇴한 낙농가에 빈 마구간은 시체 안치소나 같소." 스트룀이대답했다. "말은 가족이었지."
발란데르는 이곳 마구간에서라면 질문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도 안 주무시고 불침번을 서셨겠군요." - P68

"선생님은 집 안에 돈을 두고 계십니까?" 그가 물었다. "누군가가그걸 훔치려다가 집을 잘못 안 것일 수도 있을까요?"
"우리 돈은 모두 은행에 있소." 뉘스트룀이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도 적이라곤 없다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커피를 마셨다. 발란데르는 한나 스트룀의 눈이 벌게진 것을 보았다. 자신들이 마구간에 가 있는 동안 숨죽여운 것처럼, - P69

"두 분에게 두려운 기색이 있었나요?" 발란데르가 물었다. "걱정스러워 보인다든가?"
"요하네스는 감기에 걸려 있었어요." 한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평상시랑 다를 게 없었어요." - P69

"난 총기 허가증이 있소." 그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겨냥한 게 아니오. 당신에게 겁만 줄 생각이었지."
"잘하셨습니다." 발란데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좀주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짓을 한 자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당신 같으면 잠이 오겠소?" 뉘스트룀이 물었다. "당신 이웃이 말못하는 짐승처럼 도살당했다면 잠이 오겠소?"
적절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발란데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70

 침대 밑에 숨긴 돈 한 푼 없는 두 노인, 골동품 가구 한 점 없는 두 노인이 한낱 강도 짓 이상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살해되었다. 증오혹은 복수의 살인.
분명 두 노인에게 예사롭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말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는 말에 대해 편치 않은 감정을 느꼈다. - P71

발란데르는 밖으로 나가 플라스틱 머그잔 두 개에 커피를 담아 뤼드베리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문 앞에 멈춰 섰다. 내 결정이 뭐였더라? ‘수사상의 이유‘라는 명목으로 피해자의 마지막 말을 언론에 알리지 않는다? 아니면 알려야 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해 짜증이 난 그가 발로 문을 밀어 열었다.  - P72

두 사람은 다시 수사의 진행을 검토했다. 감식반은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했고, 그것들을 중앙 지문 기록소에 조회 중이었다. 한손은 노인 폭행 전과가 있는 범죄자들의 소재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조사결과, 그들은 교도소에 수감 중이거나 알리바이가 있었다. 경찰들은 룬나르프 거주자들을 계속 탐문 중이었고, 그들이 돌리는 질문지가 어쩌면 실마리를 가져다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 P73

"(전략). 이 사건의 이몀에 복수나 증오가 숨어 있습니다. 그 둘 다거나요."
(중략)
"자네도 알다시피 사람들을 무슨 짓이라도 하게 하는 마약이란 게있네."
발란데르는 그게 뭔지 알았다. 범죄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고, 그 범죄의 이면에는 거의 언제나 마약 밀거래와 마약 중독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위스타드 관할이 증가하는 범죄의 추세에서 벗어나 있다하더라도 그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범죄가 사람들에게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 P74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죠?" 그가 물었다.
"수사 책임자는 자네야." 뤼드베리가 대답했다.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P74

"먼저 회의부터 하러 가죠." 발란데르가 말했다. "그런 다음 림함에가 보세요."
오전 10시에 그들 모두는 발란데르의 사무실에 모였다.
회의는 매우 간단했다. 발란데르는 그들에게 피해자가 죽기 전에한 말을 알려 주었다. 당분간 그 정보를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모두 이의가 없어 보였다. - P76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릅니다." 노렌이 말했다. "그냥 생각난 것뿐입니다."
"다 뭔가 의미가 있는 거야." 발란데르가 말했다.
"그 말을 기억하십니까?" 노렌이 물었다.
"물론이지."
"저더러 그 말에게 건초 좀 갖다 주라고 하셨죠."
"물도"
"건초와 물.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발란데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지?"
"말에게는 이미 건초가 있었습니다. 물도요." 발란데르는 노렌을 보며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 P77

"죽은 사람이 말에게 먹이를 줄 순 없지." 발란데르가 말했다. "누가 줬을까?"
노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한 노릇이군요." 그가 말했다.
"우선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에게 올가미를 건다.
그리고 마구간으로 가서 말에게 건초를 준다. 대체 어떤 놈이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할까요?"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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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중엽 콜롬비아에서 이루어진 합의는 이랬다. "우리는 계몽된 민주주의를 원한다. 즉, 지성과 부가 인민의 운명을 방향 짓는 민주주의 말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주의와 무지가 행복의 씨앗을 말려 죽이고 사회를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리는 야만적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⁴² - P159

42 Gutiérrez Sanin (2003, 185). - P343

1867년이 되어서도 월터 배젓은 이렇게 경고했다.

하층계급들의 정치적 결속은, 그 자체로도, 그들 자신의 목적에 비추어서도 가장 큰 해악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항시 결집한다면 이제 그들 가운데 아주 많은 이가 선거권을 지니고 있으므로) 나라에서 최고 세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현재 상태 그대로라면 그들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교육에 대해 무지가 우월권을 갖고 지식에 대해 숫자가 우월권을 가짐을 뜻한다.⁴⁵ - P159

45 Bagehot (1963 [1867], 277[24, 25쪽]). - P343

이런 새로운 구별은 민주주의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은 자신에게 최선인 이익을 부유한 남성이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선거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선거권은 위험한 무기였다. - P160

민주주의와 재산권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정치적 평등은, 그것이 효과적이라면, 다수가 법을 통해 재산이나 재산 사용에 따른 이득을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이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이며, 대의제 정부가 시작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적이다. - P160

민주주의와 재산권 사이의 이런 긴장의 역사를 보려면 우선 수평파*를 살펴봐야 하는데, 데이비드 우튼이 보기에 이들은 대의제 정부를 국민국가 단위에서 사고했덤 최초의 민주주의자다.⁴⁸ - P160

+ [옮긴이] 수평파는 영국 내전 시기 (1642~51년)에 소시민, 직공, 자영 농민, 군대의사병 등 소외되었던 사회 기층 계급을 기반으로 그들의 이해를 공개적으로 대변해공화주의·민주주의 운동을 벌인 집단이다. - P161

48 Wootton (1993, 71). - P343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요구는 프랑스혁명 시기인 1795년 프랑수아노엘 바뵈프의 평민 선언plebeian manifesto에서 등장했다. 그때까지 혁명정부는 교회와 망명 귀족의 토지를 몰수했지만 이를 농민에게 재분배하지않고 부유한 평민에게 팔았다.⁵⁰ 바뵈프가 원한 것은 재산의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사유재산의 폐지였다. - P161

50 Fontana (1993, 122). - P343

그는 자신의 공산주의 강령에 공동 행복le bonheur commun의 원리라는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평등한] 공유communauté, 곧 "모두의 평온, 모두를 위한 교육, 그리고 모두의 평등·자유·행복으로 이끌어줄 원리다.⁵¹ - P162

51 Palmer (1964, 240, 241) ㅇㄴ용. - P343

그러나 도덕적 근거가 아니라 순수하게 실증적인 근거에서, 즉 민주주의가 정치적 평등을 통해 경제적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실제로 어느 순간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은 삼단논법을 거쳐 연결되었다. - P162

(전략). 프랑스의 보수논객인 자크 말레 뒤팡도 이런 생각을 공유했다. 1796년 그는 법적 평등은 반드시 재산의 평등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공공서비스 [부의] 세습, 결혼, 산업, 상업이 사회에 불러들인 불평등으로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당신은 평등한 사람들의 공화국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사유] 재산을 타도해야할 것이다."⁵⁴ - P163

54 Palmer (1964, 230)  - P343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이 같은 삼단논법은, 일단 만들어지자 그 뒤로, 민주주의에 들러붙은 공포와 희망 모두를 지배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민주주의, 특히 보통선거권이 재산권을 약화한다는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선거권을 유산층으로 제한하자는 복잡한 주장의 이기적인 성격이 명백해졌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1834년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Ro-sanvallon 2004). - P164

마르크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의 족쇄를 풀어 놓는다." 즉, 빈자는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데 민주주의를 이용한다.
위협을 받은 부자는 탄탄히 조직된 군부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이양"abdicating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전복해 버린다. - P166

마르크스가 지적한 "공화주의 헌법의 근본 모순"은, 자산 소유권이저절로 확대되거나, 재산이 없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인해, 재산권을 폐지하는 데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 P166

*제임스 밀은 자신의 논적에게 이렇게 도전했다. "인류 역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어떤 나라에서든, 인민이 재산권 일반에 적대심을 표출했거나, 재산권을 전복하려는 욕구를 드러낸 예시를 단 하나라도 보여 달라" (Collini, Winch, and Barrow 1983,
104에서 인용). - P167

 베이츠가 말했듯이, 역사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주요 목표는 경제와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의 효과를 정치 영역에서 바로잡는 것이었다.⁶²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궁극적인 목표를 지니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제1 인터내셔널 헤이그 대회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사회혁명의 승리와 그 궁극적 목표- 계급 철폐를 확실히 달성하려면 프롤레타리아트를 정당으로 조직해야 한다." - P167

62 Beitz (1989, xvi). - P344

 장조레스가 이끈 프랑스 사회당은 1902년 투르 대회에서 "사회당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정책을 거부한다. 사회당은 당장실현해야 할 개혁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라고 선언하며, 54가지 구체적인 조치를 나열했다.⁶⁵ - P167

65 Ensor (1908, 345 °). - P344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내내 괴롭힌 질문은, 1886년 [스웨덴 사민당 지도자이자 총리였던] 칼 얄마르 브란팅이 제기했듯이, "인민의 의지가 그들의특권 폐지를 요구하더라도 상류층은 인민의 의지를 존중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⁶⁷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파가 행사하는 인민주권에는 한계가 있는가?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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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인간 아닌 동물의 선호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전형적인 인간은 분명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와 관련된 것들 이상의 선호를 가지고 있다.
미술, 음악 그리고 문학에 대한 관심과 관련된 바람과 목표의 연결망은 이의 분명한 사례들이다. - P244

이 책에서 이러한 논쟁을 해결할 수는 없으며, 심지어 적절하게 소개할수도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물이나 보금자리에 대한 필요와 같은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가 포함된 내용들, 그리고 인간의 복리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더 중요한 일부 내용들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이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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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물의 그림자가 석양처럼 드리워진 미로를 걸어가면서, 우리는 구멍이 나타날 때마다 그 내부를 살피며 들어갈 수 있을지 가늠했다.
어떤 구멍들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고, 일부는 지붕도 없는 언덕의 성벽에서처럼 폐허가 되어 얼음에 덮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널찍한 구멍이 우리를 부르듯 끝없는 심연을 향해 열려 있기도 했다. - P285

얼마 뒤 창문들이 줄줄이 나타났는데, 5개의 홈이 파인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의 불룩 튀어나온 부분에서 창문 너머 잘 보존된 큼지막한 공간이 돌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 P285

그 방은 공회당이나 집회 장소로 보였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벽을 따라 넓은 수평 띠처럼 전통적인 아라베스크 무늬가 오싹한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다. 좀 더 수월한 건물 출입구를 찾지 못한다면, 그 창문으로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위치를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 P286

거대한 왼쪽 건물에 잔해가 쌓여 있어서 밟고 올라가기는 수월했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바라던 기회를 앞에 두고 한동안 망설였다. 태고의 신비 속으로 들어서긴 했지만, 완벽하게 보존된 불가해한 세월의 내부는 우리에게 더욱 끔찍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다시 마음을 추슬러야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 P286

우리가 들어갈 공간이 얼마나 넓을지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봐야 알일이었다.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빙하가 거대한 건물 내부까지완전히 침투하지는 못했으므로, 붕괴되거나 지표면이 갈라진 곳이 아니라면 계속해서 빙하 밑의 다리를 지나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P287

(전략). 그러나 빙하가 오랫동안 단계적으로 도시를 몰락에 빠뜨린 것은 아니었다. 눈사태, 강물의 범람, 산맥에 있는 얼음벽의 갑작스런 붕괴 등이 눈앞에 펼쳐진 독특한 상태에 대한 더 유효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 도시와 관계된 것이라면 어떤 상상력도 설득력이 있었다. - P287

VI

영겁의 죽음을 간직한 원시 석조물의 지하 미로는 벌집이 따로 없었다. 숱한 세월 만에 처음으로 인간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던 그 기괴한 소굴을 우리가 어떻게 헤매고 다녔는지 자세히 늘어놓는다면 지루할것이다. 여기저기에 많은 벽화들은 한 번도 세상에 보고된 바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곳에 들어간 최초의 인간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 P288

우리가 들어간 곳은 규모가 크고 정교한 건물 중 하나여서, 아득한 태고의 건축 양식에 대해 인상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내부 구획은 외벽만큼 거대하지 않았지만, 지하 공간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 P288

 보이는 것마다 거대함과 웅장함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윤곽과 차원, 비율과 장식, 불경한 고대 석조물의 구조적인 뉘앙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인간이 아닌 숨결이막연하면서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벽화들은 그 기이한 도시의 역사가 수백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알려 주었다. - P289

수평과 수직의 배열에서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양식은 하나였다. 그러나 가끔씩 아라베스크 띠장식을 따라 점무늬가 박혀있는 매끈한 카르투슈¹¹⁵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곧 그 기법이 모든 면에서 인류의 전통과는 무관하지만, 완숙미가 탁월할 뿐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고도로 발전된 문명의 소산임을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정도의 섬세함을 갖춘 조각품을 본 적이 없었다.
정교한 식물이나 야생 동물의 세밀한 표현은 대담한 조각 기법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생생했다. 나아가 전통적인 도안에 나타난 기교대차그ㄴ 시ㅇ하 수하 - P289

115) 카르투슈(cartouche): 바로크 건축 양식의 장식 디자인에서 판지의 끝이 말려 올라간 것 같은 모양의 무늬. - P352

아라베스크 장식은 풍화 작용을 겪지 않은 벽면에 깊이는 2.5센티미터에서 5센티미터 정도로 오목새김한 형태였다. 점무늬가 박힌 카르투슈의 경우 알려지지 않은 원시 언어와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비문이 분명했는데 매끄러운 표면을 오목새김한 깊이가 3.5센티미터 정도,
점무늬의 경우는 그보다 1센티미터 가량 더 깊었다. - P290

원시 종족의 비범한 역사의식 - 우리에겐 기적처럼 유리하게 작용했을 환경론은 벽화를통해서 놀라운 정보를 전달했으며, 우리는 사진을 촬영하고 스케치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 P291

영겁의 침묵에 빠져 있는 비인류의 석조물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 어땠는지 대충이나마 설명하려면 쫓기는 듯한 분위기, 기억, 인상들이 뒤엉키는 무기력하고 당혹스러운 혼란을 떠올릴필요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 오싹한 세월의 깊이와 황폐함만으로 짓눌리겠지만, 워낙에 캠프에서부터 불가사의한 공포를 체험한데다 섬뜩한 진실을 담은 벽화들로 충격에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 P292

우리는 주위에서 계속 발견되는 5각형의 모티프를 원시 자연물에 대한 문화적, 종교적 찬미에 불과할 뿐이라고 각자 절박하게 스스로에게되뇌고 있었다. 황소를 신성시했던 크레타인, 갑충석을 신성시했던 이집트인, 늑대와 독수리를 신성시했던 로마인, 그밖에 다양한 동물을 토템으로 삼았던 원시 부족들의 장식 모티프처럼 말이다. - P293

그들은 지구생명체의 창조자이자 통치자였으며, 『프나코틱 필사본』과 『네크로노미콘에서 섬뜩하게 암시한 사악한 원시 신화의 근원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어느 별에서 신생 지구로 스며든 ‘그레이트 올드원‘이었다. 그들의 형태는 전혀 다른 진화를 거친 결과이며, 지구상의 어떤 존재보다 강력한 힘을 소유했다. - P293

앞으로 공개할 사진들이 없었다면, 나는 정신병자로 감금되지 않기위해서라도, 내가 보고 추측한 것들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역사의 초기 부분별 모양의 머리를 지닌 존재들이 지구에오기 전에 다른 우주, 다른 은하, 다른 행성에서 살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들만의 신화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 P294

짧은 시간에 우리가 그토록 많은 사실을 추측해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가 아는 것은 대략적인 윤곽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그중의 상당 부분은 나중에 우리가 가져온 사진과 그림을 연구해서 얻은 결과다. 그 후속 연구 때문에 되살아난 기억과 막연한 인상이 댄포스의 예민한 성격과 그가 마지막에 봤다는 공포와 결합해서 그는 신경 쇠약에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해야만하는 일이었다. 충분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효과적인 경고를 할수 없으며, 우리는 경고를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질서한 시간과 생경한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미지의 남극을 향해 꿈틀거리는 사람들의 미련 때문에 더더욱 이후의 탐사 활동을 기필코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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