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 콜롬비아에서 이루어진 합의는 이랬다. "우리는 계몽된 민주주의를 원한다. 즉, 지성과 부가 인민의 운명을 방향 짓는 민주주의 말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주의와 무지가 행복의 씨앗을 말려 죽이고 사회를 혼란과 무질서에 빠뜨리는 야만적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⁴² - P159
42 Gutiérrez Sanin (2003, 185). - P343
1867년이 되어서도 월터 배젓은 이렇게 경고했다.
하층계급들의 정치적 결속은, 그 자체로도, 그들 자신의 목적에 비추어서도 가장 큰 해악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항시 결집한다면 이제 그들 가운데 아주 많은 이가 선거권을 지니고 있으므로) 나라에서 최고 세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현재 상태 그대로라면 그들이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교육에 대해 무지가 우월권을 갖고 지식에 대해 숫자가 우월권을 가짐을 뜻한다.⁴⁵ - P159
45 Bagehot (1963 [1867], 277[24, 25쪽]). - P343
이런 새로운 구별은 민주주의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은 자신에게 최선인 이익을 부유한 남성이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선거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선거권은 위험한 무기였다. - P160
민주주의와 재산권
[사회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정치적 평등은, 그것이 효과적이라면, 다수가 법을 통해 재산이나 재산 사용에 따른 이득을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이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이며, 대의제 정부가 시작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적이다. - P160
민주주의와 재산권 사이의 이런 긴장의 역사를 보려면 우선 수평파*를 살펴봐야 하는데, 데이비드 우튼이 보기에 이들은 대의제 정부를 국민국가 단위에서 사고했덤 최초의 민주주의자다.⁴⁸ - P160
+ [옮긴이] 수평파는 영국 내전 시기 (1642~51년)에 소시민, 직공, 자영 농민, 군대의사병 등 소외되었던 사회 기층 계급을 기반으로 그들의 이해를 공개적으로 대변해공화주의·민주주의 운동을 벌인 집단이다. - P161
48 Wootton (1993, 71). - P343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요구는 프랑스혁명 시기인 1795년 프랑수아노엘 바뵈프의 평민 선언plebeian manifesto에서 등장했다. 그때까지 혁명정부는 교회와 망명 귀족의 토지를 몰수했지만 이를 농민에게 재분배하지않고 부유한 평민에게 팔았다.⁵⁰ 바뵈프가 원한 것은 재산의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사유재산의 폐지였다. - P161
50 Fontana (1993, 122). - P343
그는 자신의 공산주의 강령에 공동 행복le bonheur commun의 원리라는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것은 [평등한] 공유communauté, 곧 "모두의 평온, 모두를 위한 교육, 그리고 모두의 평등·자유·행복으로 이끌어줄 원리다.⁵¹ - P162
51 Palmer (1964, 240, 241) ㅇㄴ용. - P343
그러나 도덕적 근거가 아니라 순수하게 실증적인 근거에서, 즉 민주주의가 정치적 평등을 통해 경제적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실제로 어느 순간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은 삼단논법을 거쳐 연결되었다. - P162
(전략). 프랑스의 보수논객인 자크 말레 뒤팡도 이런 생각을 공유했다. 1796년 그는 법적 평등은 반드시 재산의 평등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공공서비스 [부의] 세습, 결혼, 산업, 상업이 사회에 불러들인 불평등으로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당신은 평등한 사람들의 공화국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사유] 재산을 타도해야할 것이다."⁵⁴ - P163
54 Palmer (1964, 230) - P343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이 같은 삼단논법은, 일단 만들어지자 그 뒤로, 민주주의에 들러붙은 공포와 희망 모두를 지배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민주주의, 특히 보통선거권이 재산권을 약화한다는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선거권을 유산층으로 제한하자는 복잡한 주장의 이기적인 성격이 명백해졌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1834년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Ro-sanvallon 2004). - P164
마르크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의 족쇄를 풀어 놓는다." 즉, 빈자는 부자의 재산을 빼앗는 데 민주주의를 이용한다. 위협을 받은 부자는 탄탄히 조직된 군부 세력에게 정치권력을 "이양"abdicating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전복해 버린다. - P166
마르크스가 지적한 "공화주의 헌법의 근본 모순"은, 자산 소유권이저절로 확대되거나, 재산이 없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인해, 재산권을 폐지하는 데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 P166
*제임스 밀은 자신의 논적에게 이렇게 도전했다. "인류 역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어떤 나라에서든, 인민이 재산권 일반에 적대심을 표출했거나, 재산권을 전복하려는 욕구를 드러낸 예시를 단 하나라도 보여 달라" (Collini, Winch, and Barrow 1983, 104에서 인용). - P167
베이츠가 말했듯이, 역사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주요 목표는 경제와 사회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의 효과를 정치 영역에서 바로잡는 것이었다.⁶²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궁극적인 목표를 지니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제1 인터내셔널 헤이그 대회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외쳤다. "사회혁명의 승리와 그 궁극적 목표- 계급 철폐를 확실히 달성하려면 프롤레타리아트를 정당으로 조직해야 한다." - P167
62 Beitz (1989, xvi). - P344
장조레스가 이끈 프랑스 사회당은 1902년 투르 대회에서 "사회당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정책을 거부한다. 사회당은 당장실현해야 할 개혁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라고 선언하며, 54가지 구체적인 조치를 나열했다.⁶⁵ - P167
65 Ensor (1908, 345 °). - P344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내내 괴롭힌 질문은, 1886년 [스웨덴 사민당 지도자이자 총리였던] 칼 얄마르 브란팅이 제기했듯이, "인민의 의지가 그들의특권 폐지를 요구하더라도 상류층은 인민의 의지를 존중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⁶⁷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파가 행사하는 인민주권에는 한계가 있는가? - P1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