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재판관들은 지난 90여일 동안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왔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께서도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 P4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시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합니다. - P5

그리고 탄핵결정은 대상자를 공직으로부터 파면하는 것이지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기재하면 됩니다. - P6

소추사유가 여러 개 있을 경우 사유별로 표결할 것인지, 여러 사유를 하나의 소추안으로 표결할 것인지는 소추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고, 표결방법에 관한 어떠한 명문규정도 없습니다. - P8

아홉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와 같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국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으로서, 탄핵소추로 인한 대통령의 권한정지상태라는 헌정위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가 됩니다. - P9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유진룡이 면직된 이유나 김기춘이 여섯 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한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아니합니다. - P11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압력을 행사하여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 분명하지 않고 피청구인이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 P12

다음 세월호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의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전략).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중략).
헌법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후략). - P13

지금부터는 피청구인의 최서원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전략).
또한, 최서원은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일부는 최서원의 이권 추구를 도왔습니다.
(중략).
최서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종을 통해 지역 스포츠클럽 전면 개편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문건을 전달받아, 케이스포츠가 이에 관여하여 더블루케이가 이득을 취할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 P16

다음으로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를 보겠습니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여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고, 이 의무는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피청구인의 지시 또는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서원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한 것입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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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전 11시를 지날 무렵부터 프런트 앞이 붐비기 시작했다. 체크아웃 시간인 정오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비즈니스 손님 대부분은 좀 더 이른 시간에 체크아웃을 하지만 요즘 같은 시즌에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 P104

우지하라가 호텔 코르테시아요코하마에서 이쪽으로 옮겨 온것은 나오미가 신설된 컨시어지 데스크로 이동한 직후의 일이었다. (중략). 장래 야망은 총지배인이되는 것이라는 소문도 귀에 들어왔다. - P105

프런트 카운터와 마찬가지로 컨시어지 데스크도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 시간대에는 점심 식사를 하려는데 어딘가 추천할 만한 식당이 없느냐는 상담이 많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별일도 아니지만, 대개는 어려운 조건이 붙는다. - P106

 일부러 컨시어지 데스크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그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컨시어지는 어떤 어려운 희망 사항에도 결코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 P106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데스크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장을 입었고 마흔 살 전후로 보였다.
"잠깐 실례 좀 할까요?"
나오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무슨 일이신지요."
"1801호실의 구사카베라고 하는데, 부탁할 게 좀 있어서……………."
구사카베라는 이름을 듣고 그 즉시 나오미의 머릿속에서 한자로 변환되었다. 닛타가 얘기했던 게 생각난 것이다. - P109

"이 호텔의 서비스가 일류인지 어떤지는 내 부탁을 어디까지 들어주는가, 라는 것으로 판단하도록 하지요."
닛타가 어쩐지 밉상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구나, 라고 나오미는 생각했다. 상당히 개성이 강한 인물인 것 같다. 하지만 소중한 고객님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 P110

"별거 아니에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으면 좋겠어요."
(중략).
"네, 잘 알겠습니다. 즉시 레스토랑에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 P110

"그러시다면 별실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드릴까요? 혹시 빈곳이 없다고 해도 파티션 등을 이용해 다른 고객님들과 칸을 구분해드릴 수 있을 텐데요." 무리한 요구에는 대안을 제시해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사카베는 손을 내두르며 고개까지 가로저었다.
"그런 좁아터진 곳은 안 되지. 그래서는 내가 계획하는 행사를 할 수 없어요. 더구나 벽 하나로는 다른 손님의 기척을 없앨 수 없잖아요. 파티션 같은 건 더더구나 말도 안 되고." - P111

드라마틱한 프러포즈를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 1년에 몇 번은 컨시어지 데스크에 반드시 날아오는 상담이다. 그런 때를 위해 평소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궁리해 바로 이거다 싶은 것들을 차곡차곡 저장해두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구사카베에게는 이미 뭔가 계획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 - P113

구사카베는 두 팔을 앞으로 쭉 펼쳤다. "우선 우리 테이블에서 레스토랑 출입구까지 레드카펫을 깔아주세요. 폭은 1미터 정도면 되겠지요."
"레드카펫 말씀이시지요." 나오미는 메모를 했다. 레드카펫이라면 연회부에서 빌려 올 수 있다.
그다음에, 라고 구사카베는 말을 이어갔다.
"그 양쪽으로 장미꽃을 주르륵 장식하는 거예요. 반드시 새빨간 장미여야 합니다. 되도록 간격을 두지 말고 촘촘히." - P114

얘기만으로도 듣고 있는 이쪽이 오글거릴 만큼 어설픈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임팩트도 있고, 구사카베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충분히 감격할 것이다. - P115

"어때요? 역시 이 호텔에서는 그런 다이내믹한 이벤트는 안될까요?" 구사카베가 양쪽 눈썹을 꿈틀 치켜들며 말했다. 일류호텔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면 이 정도의 희망 사항은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나오미는 딱 잘라 대답했다. - P116

구사카베가 정면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배웅한 뒤, 나오미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우선은 레스토랑 스태프와의 협의다. 그다음에는 레드카펫과 장미, 오늘은 더 이상 또 다른 번거로운 상담이 들어오지 않기를, 이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 P117

10

(전략).
레스토랑 스태프와의 회의도 끝났다. 요리를 내는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며 피아노 연주, 조명의 조정 등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구사카베가 그녀에게 주기로 한 108송이의 장미 꽃다발은 미리감치 테이블 뒤편에 숨겨두면 된다.
역시 어려운 것은 ‘장미의 길‘이었다. - P118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데스크로 다가왔다. 30세 전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많을까. 침착한 분위기의 동양적인 미인이었다.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공손한 어조로 말을 건네왔다.
(중략).
"어제부터 이 호텔에 구사카베라는 분이 투숙 중이지요? 구사카베 도쿠야라는 분." - P119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왜냐면 오늘 밤 그와 이곳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까요."
이 여자였구나. 나오미는 상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고 싶은 충동을 지그시 억눌렀다. - P120

"다른 고객님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질문에는 답해드릴 수 없지만, 저희가 뭔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여자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이 시선을 떨구었다.  - P121

"어떤 일인지......"
"그의 말에, 그의 프러포즈에, 나는 예스라고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오미는 숨을 헉 삼키며 여자를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혹시거절하실 생각?"
네, 라고 그녀는 턱을 끄덕였다. "네, 거절할 생각이에요." - P122

"그의 프러포즈에 나는 노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래서는 소중한 오늘 밤도 뒷맛이 씁쓸한 시간이 되고 말 거예요. 그걸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중략).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상의하러 왔어요. 그 사람이 창피해하지 않게, 서로 어색해지지 않게 프러포즈에 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요?" - P125

11

(전략). 서류의 맨 위에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참가자 목록‘이라는 제목이 인쇄되었고 그 아래로 줄줄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잠깐 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닛타는 서류를 손에 들었다. - P126

"대표자 이외의 참가자 이름은 알 수 없습니까?"
"그것까지는 모르지요." 에가미가 말했다. "거의 전원이 숙박예약 때 이번 파티를 함께 신청했어요. 숙박 예약 자체가 대표자 이름만 적게 되어 있어서 동행한 손님들의 이름까지는 우리 쪽에서 알지 못합니다." - P127

닛타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주었다. "이거 받아둬."
"뭡니까, 이건?"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의 참가자 목록이야. 대표자 이름만 적혀 있는데 그것도 본명인지 어떤지 확실하지는 않아." - P128

"호텔리어끼리는 고객님에 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라고 알려준 사람이 야마기시 씨예요."
"고객님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일의 경우에는 별개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래도 야마기시 씨 이외의 다른 직원들에게 모두 다 비밀로 한 건 아니잖아요? 일을 도와줄 스태프들에게는 얘기했을 텐데?"
"네, 맞는 말씀이지만 닛타 씨가 도와주실 일은 없어요." - P130

"그게 걱정이에요. 구사카베 씨는 자신만만한 분이라 거절당한다는 건 요만큼도 머릿속에 없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아예 본인에게 미리 말해주면 어떨까요? 당신 거절당할 겁니다, 라고." - P132

"뭔가 찾아냈습니까?"
아니, 그게 말이지, 라고 노세는 그리 탐탁지 않다는 목소리를냈다.
"우선 과거 1년 치를 조사해달라고 했는데, 이번 사건과 연결될 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야. 젊은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 몇 건 있었지만 공통된 키워드가 없다는 거야." - P133

"아니, 생각해볼수록 나는 닛타 씨의 가설이 맞는 듯한 느낌이들어. 어쨌든 좀 더 달라붙어서 뛰어볼 생각이야. 아 참, 그리고 그 레지던트 말인데, 오늘 저녁에도 만나러 갈 거야. 이번에는 죄다 털어놓게 할 테니까 두고 봐." - P135

12

구사카베 도쿠야가 호텔로 돌아온 것은 오후 7시를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컨시어지 데스크로 다가온 그는 "어떻게 됐어요?"
라고 나오미에게 물었다.
"지시하신 대로 진행 중입니다. 레스토랑 직원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구사카베 님은 직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주시면 되겠습니다." - P137

"뭔가 좋은 방법이 있나요?" 가노 다에코가 물었다.
나오미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 결과, 공연히 말을 빙빙 돌리거나 말끝을 흐리지 말고, 거절은 거절대로 좋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가노 다에코의 얼굴이 흐려졌다. "분명하게 말해버리라는 건가요?" - P138

"어려울 거 없어요. 똑같은 이벤트를 준비하는 거예요."
"똑같은 이벤트를?" 가노 다에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표정이었다.
네, 라고 나오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구사카베고객님과 똑같은 것, 즉 ‘길‘이에요." - P139

13

(전략).
"사실은......." 닛타는 작은 소리로 구가에게 말했다. "수사 회의보다 프렌치 레스토랑 쪽이 너무 궁금해요. 지금쯤 일이 어떻게 되었나 하고."
아하, 하고 구가가 입을 헤벌린 채 컨시어지 데스크 쪽으로 시선을 내달렸다.
"그 얘기, 나도 들었어요.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프러포즈를 계획한 고객이 있다면서요?" - P140

 "고객님에 관한 정보 공유가 아니라 그저 가십거리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다니."
"엇, 실례. 이 정도만 해두죠." 구가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한 뒤,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급히 사라졌다. - P141

아, 하고 여자는 입을 살짝 벌리더니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고개를 끄덕였다.
"나카네 신이치로예요. 미안합니다. 예약한 본인은 나중에 올 예정이라 나한테 먼저 체크인을 하라고 했어요." 허스키하고 섹시한 목소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1월 1일까지 3박, 두 분, 객실은 코너 스위트룸으로, 틀림없으십니까?" - P142

원래는 예약자의 이름을 적어야 하지만 성씨가 일치하기 때문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 우지하라도 다시 적어달라고 하는 일 없이 고맙습니다, 라고 받아 들었다.
"나카네 고객님,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용카드입니까 아니면 현금이십니까."
우지하라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 신용카드일 거예요." - P143

"나카네 고객님, 복사해 신용카드는 실제 결제하실 때 사용하는 카드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뭔가 신용카드를 갖고 계시다면 그것으로도 가능합니다."
"내 카드여도 괜찮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 P144

우지하라가 카드키를 준비하는 동안, 닛타는 슬쩍 신용카드 복사본을 확인했다. 그곳에 찍혀 있는 이름은 〈MIDORI MAKIMURA>라고 되어 있었다. - P144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호텔에 숙박한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어요. 그런데도 굳이 똑같은 성씨를 써넣은 것은 뭔가 켕기는 일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P145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고객님은 우리 호텔의 귀중한 손님이에요. 남의 눈에 띄면 좋지 않으니까 레스토랑은 이용하기가 힘들어요. 필연적으로 냉장고 이용과 룸서비스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이익률이 아주 높아요." - P145

14

(전략).
"노세 씨의 성의 얘기 말인가요? 그게 어떤 식으로 힌트가 됐지?"
"그건 직접 보면 알아요. 아, 하지만 잘될지 어떨지, 자신이 없네요. 어쩌면 나중에 구사카베 씨가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어요."
"와아, 이거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요."
닛타가 호기심의 눈빛을 보였을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 P147

오오키는 석연치 않은 기색이었지만 굳이 되묻는 일 없이 "입구 쪽의 조명을 낮춰서 안이 상당히 어두워 조심해요"라면서 문을 열었다.
오오키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아닌 게 아니라 어둠침침했다.
하지만 바닥에 레드카펫이 깔리고 양쪽으로 꽃 장식이 줄줄이놓여 있는 것은 알아보았다.
2꽃을 본 닛타가 뭔가 말하려는 낌새를 보이자마자 나오미가 급히 집게손가락을 입에 대며 제지했다. - P148

아직 식사가 이어지고 있을터인 유일한 테이블은 창가에 놓인 1.5미터 정도 높이의 칸막이 때문에 나오미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 바로 앞쪽까지 레드카펫이 깔렸고 꽃 장식도 진열이 끝나가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낭비도 없었다. - P149

"빨간장미의 꽃말을 알고 있어?" 구사카베가 물었다.
"장미의 꽃말은...... 사랑?"
가노 다에코의 대답에 구사카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 장미 꽃다발은 좀 더 특별해, 108송이야. 이 숫자일 때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어. 혹시 모른다면 지금 바로검색해봤으면 좋겠는데." - P151

가노 다에코는 반지와 구사카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반지 쪽으로 손을 내미는 일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략).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유감스럽지만 장미의 길이 아니에요. 열정적인 사랑의 길이 아니랍니다." - P152

엇, 하고 구사카베가 놀란 소리를 올렸다.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허리를 숙여 장식된 꽃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장미가 아니잖아."
"그래요." 가노 다에코는 말했다. "장미가 아니라 스위트피요." - P152

 가노 다에코가 말했다. "실은 오늘 밤에 당신이 프러포즈를 할 거라고 짐작했어요. (중략). 그 말을 듣고 전적으로 공감했어요. 이거라면 당신의 진심 어린 프러포즈에 나름대로 성실한 대답이 될 것 같아서." - P153

"스위트피의 꽃말을 알고 있어요?"
(중략).
"이별, 이라는 게 있는데."
"새 출발, 이란 것도 있죠. 그리고 우아한 추억, 이라는 것도." - P153

구사카베는 촘촘히 놓인 스위트피 꽃장식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팽팽히 당겨졌던 표정이 온화하게 풀리더니 그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얄궂은 일이네. <메모리>라는 노래에 이 스위트피의 길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점점 드니까 말이야." - P154

15

(전략).
"오늘 오후 4시경에 경비실 방범 카메라 담당 형사에게서 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남자가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면 현관으로 들어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 행사 일정이 없는 연회실이며 대기실을 살펴봤다고 합니다. (후략)." - P155

"다만 도리어 질문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어떤 질문을?"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에서는 항상 경찰이 감시하고 수상쩍은 사람은 검문을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이나가키의 한쪽 눈썹이 꿈틀 올라갔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오늘은 우연히 이렇게 된 거라고 답했습니다." - P156

모토미야의 대답에 이나가키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칫솔과 면도기를 입수하려는 것은 DNA 감정에 가장 적합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피해자 이즈미 하루나는 임신 중이었다. 태아와의 친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면 결정적인 단서가 될터였다. - P157

하지만 이건에 관해서는 호텔 측의 협조는 일절 얻을 수 없었다. 무단으로 고객의 DNA를 조사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하우스키핑에 입회한 수사원이 몰래 회수해 오는 방법을 써보려고 했던 것인데, 모토미야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았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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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사키 군, 교육위원회에서 지정했던 ‘바람직하지 않은 도서‘를 관장실에 가져다주지 않겠나. 대출 중이 아닌 책은 예비본까지 모두."
부관장이 시바사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그날의 폐관시각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 P148

아직 40세 남짓인 관장대리보다 열 살 이상은 젊을 텐데, 그 말투는 어리석은 부하를 대하는 것 같았다.
"헤에, 이런 시간에 행정관계자가 오다니 드문 일이네요."
각종 행정위원회가 도서관을 방문하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방문 시간은 대체로 오후다. 폐관시각인 19시에 가까운 늦은시간에 방문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 P149

지정된 도서를 관장실로 가져다주고 폐관시각을 맞았을 때였다. 관내에 비상벨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급박한 관내방송이울렸다.
「경계 중인 경비로부터 연락, 양화특무기관이 당관을 포위중! 전원 신속히 경계태세로 들어가도록! 관내에 남아 있는 이용자는 즉시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시바사키가 실무를 맡게 된 뒤로 처음 있는 양화특무기관의습격이었다. - P149

"서고 봉쇄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외치며 지하 서고로 뛰어갔다. - P150

피난할 곳은 2층의 방호실이었다. 교전 규정에서 방호실은 공격하지 않기로 정해져 있다.
이미 현관과 뒷문에서 각자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총격 소리가 안팎에서 울린다. 그 때문에 전관에 방탄유리를 사용했지만 그래도 관내를 이동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 P151

비상벨에 다다른 시바사키는 인터폰을 들었다. 관내방송으로 회선을 잇는다.
"업무부로부터, 적의 목표는 관장실입니다!"
그 말만 외치자마자 인터폰을 끊고 시바사키는 이번에야말로 방호실로 피난했다. - P152

비상소집으로 달려가고 있던 이쿠는 흠칫하며 관내방송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시바사키의 목소리다. 무슨 소리인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이 움직였다. - P152

"시바사키가 관장실이라고 했어!"
"무슨 바보 같은.. 도서관원인 일사와 도조 이정의 지시 중 어느 쪽이 우선이야!"
"이 경우는 시바사키야! 그 녀석은 이럴 때에 의미 없는 말을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근거가 없잖아!"
"나는 시바사키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어, 그게 근거야!" - P153

양화대원 가운데 등짐을 짊어진 한 사람이 위로 도망쳤다. 도망친 한 사람을 쫓아야 할까, 남은 양화대원의 뒤를 쳐야 할까.
『테즈카, 카사하라! 거기에 있나!』 - P154

날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철책에서 지면을 내려다보자 등짐은거의 바로 아래쪽 뒤뜰, 수풀 속에 떨어진 듯했다. 테즈카가 무선으로 도조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회수를 요청했다.
그때 난간에 총탄이 튀었다. 지상에서 날아온 공격이었다. 황급히 엎드려 살피자 충격이 그치고, 지상에 배치되어 있던 양화부대가 등짐을 회수하러 오는 기척이 났다. 도조가 회수하기엔 시간이 맞지 않았다. - P155

이쿠가 외치자 테즈카는 흠칫했지만 곧 반박했다.
"너 따위에게 걱정을 들을 이유는 없어, 내가 간다! 여자를 표적으로 삼도록 내버려둘까봐!"
"적당히 좀 해, 뭐든 네가 1등이어야 마음이 풀리겠어?! 적재적소는 궁핍한 군대의 기본이라고!" - P156

관내에서 낯익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출입구에서방위원이 뒤뜰로 뛰쳐나와 반격이 시작되었다.
격렬한 충격은 단시간에 종식되어, 양화특무기관은 목표달성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 P157

이쿠는 도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도조 교관님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습니다."
"너란 녀석은..!"
"잠깐, 어째서?! 엄청 진지하게 사과했는데?!"
진지한 사죄가 도리어 화를 부르는 바람에 잔소리는 대단히길어졌다. 사후처리를 하는 대원들이 쿡쿡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쿠는 우울해져서 몸을 움츠렸다. - P158

다른 대원이 부르자 자리를 뜨면서 도조는 지시를 남겼다.
"도서를 열람실로 돌려놔. 업무부가 사후처리를 시작했을 거다. 그 김에 시바사키에게 말해줘.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
경고의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 P159

"뭐야, 그 부루퉁한 얼굴은. 아직 뭐 불만 있어?"
옥상에서 윽박질렀던 게 마음에 안 들었나 생각하면서 묻자테즈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제안하겠는데."
(중략).
"너, 나랑 사귀지 않을래?"
"........하?" - P160

3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전략).
『지금 텔레비전 볼 수 있나? 어디든 좋으니까 민영방송 뉴스 봐둬라.』
갑작스런 명령이라 이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영방송이라는 지정도 수수께끼다.
"민영방송요? NHK가 아니라?"
『이 경우에는 떠들기 좋아하는 방송국이 좋아.』 - P162

돌아온 시바사키가 주전자 콘센트를 꽂으며 보온으로 설정했다.
"어쩐 일이야? 돌아오자마자 네가 텔레비전을 켜고."
"왠지 모르겠는데, 도조 교관님이 전화해서 봐두래."
"뭣, 교관님이 전화했어?! 나한테 해주지!"
시바사키는 대체 어디까지 진심인 걸까. - P166

시바사키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과연, 봐두라는 게 이거구나."
고교생 대상의 바람직하지 않은 도서‘로 교육위원회의 목록에 올라 있는 책으로, 전투 뒤의 확인 작업에서 미디어 양화위원회의 검열대상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된 호러 작품이다. 검열사유는 ‘지나친 잔혹묘사‘다. - P164

"미디어 작품이 범죄를 조장한다면 남자는 어리든 늙었든 죄다 성범죄자 예비군이야, AV니 에로책이니 조교물이니 능욕물이니, 성범죄 지망의 온퍼레이드잖아. 미디어를 흉내 내서 범죄가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여자한테 총기 휴대를 허가해야 할걸." - P164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검열을 정당화하는 움직임이 높아지기 때문에 도서관이나 미디어 관계자로서는 골치가 아파진다.
"하지만 이 뉴스가 방송된 날에 교육위원회가 검열을 하러 들이닥치다니 타이밍이 너무 좋은데? 문제도서와 소년의 장서가 일치한다는 점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같고." - P165

아무리 도서관법 제4장에 내부감사규정이 없다고 해도, 양화위원회의 검열에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다면 도서관의 이념과 신용을 뒤흔드는 커다란 문제가 된다. 관장대리의 관여가 입증되면 칸토 도서대의 의사를 걸쳐 인사변경도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모르는 척 묵인하고 넘어갈 듯하다. - P167

"뭐야, 그게... 테즈카가 괴롭히는 새로운 수단이야?"
우와, 개그말고도 다른 해석이 있었다. - P168

확실히 연애 감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쪽이 납득할 만하다. - P169

빈축을 사기 쉬운 입장이란 뭐든 잘 해내서 그런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어머, 몰랐어? 그 녀석 아버지가 도서관협회 회장이야." - P169

"아무튼 그만큼 처신을 잘 하고 딱 부러지는 녀석이 너한테만은 그렇게 털을 곤두세우는 걸 보면 역시 동기 중에서 너를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단 뜻이지."
"그런 천성적인 엘리트에게 원한을 살 만한 기억은 없다구!" - P170

네 성격이 나쁜 것도 말이야, 이 말은 속으로만 덧붙인다.
"거기에서 뭘 어떻게 하면 나랑 사귀자는 말이 나오는 건데?"
"음. 그건 미움이 어느새 사랑으로……."
"진심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두뇌파의 간판 내려버릴까?"
"남의 연애사정을 내가 어떻게 알아." - P171

"그보다 사귄다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거야?"
그 물음은 완전히 이쿠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아니, 진심으로 사귀고 싶다는 말이라면 검토할 여지는 있잖아? 머리가 굳었다면 사귈 때에도 성실할 테고, 외모도 근사하고 키도 너보다 크잖아. 사귀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르는데." - P172

 연애에 익숙하지 않은만큼 자신이 여러 가지로 환상에 젖어 있다는 점은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3 때에 만났던 도서대원을 하필이면 도조 앞에서 왕자님이라고 불러버릴 리가 없었다.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질문도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 P173

연수 과정은 서고 업무를 마치고 열람실 업무로 바뀌어 있었다.
업무부의 조례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반내 조례 때, 이쿠 쪽은 테즈카와 얼굴을 마주치는 바람에 상당히 어색해했지만 테즈카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제 사귀자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의심스러워질 만큼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다. - P174

"죄송합니다. 단말기 조작을 좀 봐주셨으면 하는데요."
(중략).
장서를 분류하고 있던 도조는 손놀림을 멈추고 이쿠가 쓰고있던 단말기까지 와주었다.
"(중략).
"그게, 실수해서 타관에 요청서를 보내서요."
아아, 대답한 도조는 도중에 고개를 기울였다. - P175

"한 번 듣고 익히지 못하면 테즈카에게 물어보라고 했잖아"
어, 하고 몸을 사리는 기척이 느껴졌는지 도조가 얼굴을 찌푸렸다. 또 싸웠냐, 너희들, 하고 질린 듯이 중얼거리더니 테즈카를 불렀다.
"아니, 잠깐...!"
엉겁결에 이쿠는 도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도조가 놀란 듯이 돌아본다. - P176

"사귀자고 그랬대요."
서고에 내려가던 도중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계단 위에는 시바사키가 있었다. 안쪽 난간에 팔꿈치를 걸치고 몸을 내민 채 생긋 웃으며 도조를 내려다보고 있다.
"테즈카가 카사하라에게." - P177

문득 도조는 이쿠에게 붙잡혔던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긴소매와이셔츠에는 세게 붙잡힌 흔적이 주름으로 남아 있다. 의자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그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떠올리자, 매달리려 하는 손을 뿌리쳐버린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문득 솟아올랐다. 평소처럼 싸웠으리라고 생각했기에 적당히 좀 하라는 의미도 포함해 테즈카에게 넘겼지만 만일 알고 있었더라면-. - P178

휠체어에 앉은 신사는 남자의 부하에게 빙긋 웃었다.
"옛날에 다리를 한쪽 잃었다오. 걷는 게 좀 불편해서 그러니 이해해주시오."
부하는 이 남자가 다리를 잃은 경위를 직접적으로는 모르는 세대였다.
칸토 도서기지사령관, 이나미네 카즈이치는 소파 다리가 하나 빠져 있는-아니, 빼놓은 공간에 특별주문한 듯한 자동식 휠체어를 넣어두었다. - P180

이나미네의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고 남자도 고개를끄덕였다.
"이미 아실 테지만, 예의 연쇄 무차별살인사건 수사본부에서왔습니다." - P181

"소년은 체포된 뒤 계속해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소재가 필요합니다. 소년은 도서관을 곧잘이용했던 듯하니 독서 경향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범행에는 전문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종류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전문서를 소년이 혹시 빌렸더라면 검찰 측의 판단근거로・・・ " - P182

"쇼와의 무차별생화학 테러 때에는 국립국회도서관에서 이용자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던데요."
그것은 쇼와 마지막 해였던 그 해에 마치 장례식에 맞추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으로 어느 광신적인 단체가 국제조약으로 금지되어 있는 신경가스를 사용해 테러를 일으켰던 사건이었다. - P183

"도서관법 제32조에는 그 반성도 담겨 있습니다."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당시에는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이라는 일본도서관협회에서 채택된 선언의 제3항이었다. 이 장제가 입법화되어 도서관법 제32조가 되었다. - P183

"하지만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용의자는 미성년자라고는 해도 중대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고, 국민의 분노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도서관의 협력은 높이 평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러한 잔인한 사건에서 범인이 미성년자이니까 죄가 줄어든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한 시민으로서 제가 협력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수사에도 협력할 테지요. 그러나 동시에, 도서관이 스스로 세운 법을 굽히면서까지 수사에 협력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 P184

"하지만 용의자는 사람을 셋이나 죽였어요. 인도적으로도 협력은 타당한...."
"범죄자를 두고 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는겁니까?"
핵심을 찌른 이나미네가 살짝 웃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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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세 살 터울의 동생은 생쥐를 닮았다. 키는 150센티미터가 겨우 넘지만 지치는 법이 없고, 까맣고 동그란 눈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다양한 각도에서 반짝인다. - P11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나와 동생이 가족이라는 사실을놀라워했다. 나는 180센티미터가 넘고, 대체로 생각에 잠겨 있고, 사람을 대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상대의 용건을파악한 다음 머릿속의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게 고작이다. - P12

. 나는 개인 사무소를 갖춘 인공지능 설계사고, 동생은 가끔 내 집에 들러서 생쥐 우리를 살핀다. (중략). 우리는 잘 지낸다.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은 그것뿐이다. - P13

01



(전략).
시영은 화분에 설치된 인공지능의 설정을 바꾸기 위해 내 사무소에 들렀다. 화분에게 짜증을 자주 냈는데, 그래서인지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거였다. - P17

상담이 계속되면서 나는 화분의 설계보다도 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 P18

나는 캐묻지도 않았고 훈계를 읊지도 않았다. 서글픈 느낌을 담아 웃기만 하면 사람은 거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시영은 내가 아주 사려 깊다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에 안달 난 사람들과는 완전히다르다고 말했다. - P19

"혹시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사생활에 간섭해서? 하지만・・・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미 있는 선물이잖아요."
시영이 수백 가지의 질문이 얽힌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네, 좋았죠. 좋았어요. 완벽했어요. 하지만 이럴 거면 왜 오신 건가요? 지금까지 식사약속은 모두 거절하셨잖아요."
"내일이면 떠나시니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려 했어요. 사람 사이의 예의니까요." - P21

"됐어요. 더 듣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은 저랑 완전히 달라요."
시영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또다시 실수했다는생각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중략). 하지만 완벽한 성공이 완벽한 실패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 P22

내 마음속에는 끝나지 않는 채점표가 있다. 도덕적이었는지, 부도덕했는지. 이타적이었는지, 이기적이었는지. 온화했는지, 성급했는지, 공손했는지, 무례했는지. 상대를 만족시켰는지, 실망시켰는지…………. 총점을 최대한 높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나를 그럭저럭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고, 남을 해치지 않는 데에 도움을 준다. - P22

인간들은 자연을 아끼는 척하면서도 사나운 구석은 악착같이 정복하려 들거나 다만 외면해버린다. 그러고는 자연의 목록에 보기 좋고 예쁜 것만을 남긴다. 건물을 휩쓰는해일은 재해고, 무더위는 이상기후고, 고요하게 반짝거리는 바다만 자연이 되는 식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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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BIT의 등장

우리는 모두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본능과 공통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우리의 특성, 동기, 문화는 여러 의미에서 곧 인류의 역사다. 인간에게 이러한 사회적 특성이 없었다면 사회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4

21세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y 혹은 집단에 속할 수 있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수단도 가지게 되었다. - P4

그러나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은 우리를 긍정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중략). 이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징후였다. - P5

금융 위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은 선진 서구권에서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단순히 법률이나 역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즉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통적인 경제사상에 입각한 믿음이었다. - P6

행동경제학 분야는 학계에서 이미 크게 인정을 받았지만(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는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1979년 함께 발표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대중의 인식이나 정책 입안자들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출판된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와 캐스선스타인 Cass Sunstein의 책 《넛지Nudge》와 금융 위기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 P7

지난 몇 년간, 세계 각국의 정부는 탈러와 선스타인(그리고이들의 추종자들)의 자문에 귀를 기울여왔으며, 소위 ‘넛지 유닛(Nudge Unit, 더 나은 시민의 선택을 지지함으로써 공공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라 불리는 단체가 속속 등장했다. - P8

2010년 이루어진 BIT의 출범은 두 가지 이유에서 획기적이었다. 첫째, BIT는 사람들의 실제적 사고방식에 대한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더욱 현실적인 개인의 행동 모델을 정계에 소개했다. 둘째, 이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 P8

대공황, 넛지, 그리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행동적 혁명behavioral revolution은 대부분 인간의 인지적 실패, 즉 행동 편향behavioral bias이라 불리는 인간의 뇌가 가진 단점이자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속임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 - P9

행동경제학의 혁명으로 소셜 네트워크의 파급 효과에 대한인식이 재고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또 다른 혁신으로 인해 증폭되었다. - P10

우리의 의사 결정에 사회적 본능과 소셜 네트워크가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면서 기술 기업이나 정치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를 이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 P10

(전략).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사실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안전과 존중, 행복을 제공하는 사회적 집단의 힘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 P12

이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에 속한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 더 나아가 ‘우리‘라는 분류에 속한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 P13

이 질문에 관해서는 책의 두 번째 파트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또한,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저서 《넛지》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선택 설계social choice architecture에 관해 소개할 것이다. - P14

 우리는 집단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행동을 규범으로 이해하지만, 이 규범에 대해 종종 잘못된 인식을 지니기도 한다. 때문에, 긍정적인 규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부정적인 규범에 대한 정보를 줄임으로써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 P15

(전략). 넛지의 한계는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집단과 구성원 간의 관계가 약화되었다면, 사회적넛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 P16

책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사회적 자본에 영향을 미치는 세가지 유형의 개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P16

이 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소속감과 신뢰를 고양하고, 차별과 복종은 줄어드는 사회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다. - P17

사회적 본능은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나쁜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환경에 가해지는 작은 변화조차도 이러한 방향성에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 P17

2부

사회를 조종하는
넛지의 힘


모든 것에 꼬리표를 붙일 수는 있으나,
모두에게 꼬리표를 붙일 수는 없다.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The Age of Innocence, Edith Wharton)

4장 스스로를 포장하는 사람들

(전략).
이는 사람들을 더 힘 있고 대의적인 민주주의라는 강력한가치로 유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유 정체성shared identity의 한 예이다.
실제로, 사회적 정체성 이론가들은 공동의 사회적 집단이라는 인식이 사회적 영향력과 조직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집단 소속감을 공유한다고 인식할 때, 사람들은 공유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그 사람과 의견이 일치하기를 기대한다 - P100

집단 동일화group identification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스스로를 특정 집단으로 분류한다.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identity theory에서는 이러한 분류가 합의된 것이기를 요구한다. (후략).

2. 스스로를 이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으며, 공통점도 많아지고 있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3. 우리는 우리의 집단을 다른 집단에 비해 특별하게, 더 좋게,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들을 강조함으로써 속해 있는 집단을 ‘긍정적으로 차별화하고자 한다. (후략). - P101

이상적인 구성원 되기

흔히 한 개인의 사회적 집단이 쉽게 정해진다고 생각할 수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성별, 인종, 국적, 섹슈얼리티, 나이와같은 명백한 특징에 근거하여 사회적 집단에 가입한다. - P102

이러한 예는 ‘정체성 부각identity salience‘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어떤 정체성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를 의미한다. - P104

이러한 과정들의 밑바탕에는 집단의 ‘이상적인 구성원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와 절충이 있다. 집단의 이상적인 모습은 구성원들에게 모범이 되는 특성이나 행동의 집합체이다. 즉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우리를 차별화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 P105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은 우리의 행동에 단순한 대화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비록 이 분야의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특정 행동이 그들의 확립된 사회적 집단 또는 그들이 속하고싶은 집단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았다. - P108

•소속감과 차별성 사이의 줄다리기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머릿속을 떠다니는 많은 집단 정체성group identity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특정 집단과 동일시하는 정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중략).
초기의 연구에서 집단 동일화의 강도는 주로 자존감과 연관된다고 제시했다. 즉 자신에 대해 더 좋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집단과 더 많이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 P110

사실 우리가 정말 추구하는 것은 ‘최적 차별성optimal distinctiveness‘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인간이 특정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동일시하는 정도는 그 집단이 소속감과 타당성에 대한 욕구와 차별성과 개성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잘 맞추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P111

무엇이 우리를 특정한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또 다른 힌트는 BIT와 킹스칼리지 런던 King‘s College London이 함께한 연구에 있다. 해당 연구는 킹스칼리지 신입생들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중략).
한편, 이 설문 조사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이 킹스칼리지 런던의 모든 것‘을 최우선으로 동일시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저소득층 학생들은 대학의 상징적 가치와 학창 시절 친구들에 비교해 최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더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이 학과 과정 동료들과 강한 대인 관계를 맺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이에 대해 11장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 P113

직장은 일련의 단계적인 정체성 집단을제공하여 ‘전형적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다른 집단과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사람들은 조직 전체, 지점이나 현장, 업무 집단, 규율이나 지위와 관련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일하는 동안 서로 중첩되고 상호작용한다. 이것이 공동의 목적(또는 조직 내의 다른 영업 부서나 스포츠의 상대 팀과 같은 공동의 라이벌)이 조직의 단결을 위해 중요한 이유이다. - P115

사회 정체성 이론: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지난 1장에서 증가하는 정치적 정체성political identity의 일치를 살펴보았다. (중략).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비슷하거나 심지어 겹치는것으로 여기는 응답자들은 집단의 규범을 위반한 다른 사람들을 처벌하고 다른 집단을 차별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 P115

하지만 점차 분열되는 사회, 혹은 집단에 대해 무엇을 할 수있을까? 집단이 서로 충돌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사회 정체성 이론이 집단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을까?
집단 간의 갈등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만큼 피할 수 없는 인간사회의 특징으로 여겨졌지만, 사회 정체성 이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이다. - P116

또한, 만약 우리가 타인에게서 편협한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그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그들이 우리의 사회적 집단에 속해 있다면 말이다. - P117

다른 집단 구성원들과 교류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사람들은 어느 집단과의 관계가 깊고 조화로워질 때까지는 그 집단 사람들과 더 교류하고자 하며, 다른 집단 사람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 P118

(전략).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페이스북 거품 Facebook bubble‘ 안으로 넣어두고 자신과 반대되는 사회적 집단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절대 마주치지 않을 수있다. - P119

특정한 심리 활동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 밖의 사람들 간에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줄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 P119

상대방의 관점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조망수용 Perspective-taking‘ 역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줄이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 P121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고정 관념은 우리가 속한 사회적 집단 내에 떠다니는 정보에 의해 형성된다. (중략). 앞서 이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집단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집단과 차별화하고, 그들보다 더 정정당당하거나 의욕적이라고 느끼기를 원한다. - P122

이 장에서 우리는 사회적 집단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집단 구성원들은 ‘이상적인 구성원의 기준을 수정하며 지속적으로 집단에 참여하고, 구성원들이 이러한 정형화된 모습과 닮기를 기대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정보나 기대가 집단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 중 가장 좋은 면을 끌어내려면 팀이나 직장, 정책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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