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사키 군, 교육위원회에서 지정했던 ‘바람직하지 않은 도서‘를 관장실에 가져다주지 않겠나. 대출 중이 아닌 책은 예비본까지 모두."
부관장이 시바사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그날의 폐관시각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 P148

아직 40세 남짓인 관장대리보다 열 살 이상은 젊을 텐데, 그 말투는 어리석은 부하를 대하는 것 같았다.
"헤에, 이런 시간에 행정관계자가 오다니 드문 일이네요."
각종 행정위원회가 도서관을 방문하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방문 시간은 대체로 오후다. 폐관시각인 19시에 가까운 늦은시간에 방문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 P149

지정된 도서를 관장실로 가져다주고 폐관시각을 맞았을 때였다. 관내에 비상벨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급박한 관내방송이울렸다.
「경계 중인 경비로부터 연락, 양화특무기관이 당관을 포위중! 전원 신속히 경계태세로 들어가도록! 관내에 남아 있는 이용자는 즉시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시바사키가 실무를 맡게 된 뒤로 처음 있는 양화특무기관의습격이었다. - P149

"서고 봉쇄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외치며 지하 서고로 뛰어갔다. - P150

피난할 곳은 2층의 방호실이었다. 교전 규정에서 방호실은 공격하지 않기로 정해져 있다.
이미 현관과 뒷문에서 각자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총격 소리가 안팎에서 울린다. 그 때문에 전관에 방탄유리를 사용했지만 그래도 관내를 이동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 P151

비상벨에 다다른 시바사키는 인터폰을 들었다. 관내방송으로 회선을 잇는다.
"업무부로부터, 적의 목표는 관장실입니다!"
그 말만 외치자마자 인터폰을 끊고 시바사키는 이번에야말로 방호실로 피난했다. - P152

비상소집으로 달려가고 있던 이쿠는 흠칫하며 관내방송 스피커를 올려다보았다. 시바사키의 목소리다. 무슨 소리인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이 움직였다. - P152

"시바사키가 관장실이라고 했어!"
"무슨 바보 같은.. 도서관원인 일사와 도조 이정의 지시 중 어느 쪽이 우선이야!"
"이 경우는 시바사키야! 그 녀석은 이럴 때에 의미 없는 말을하지 않는다고, 절대로!"
"근거가 없잖아!"
"나는 시바사키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어, 그게 근거야!" - P153

양화대원 가운데 등짐을 짊어진 한 사람이 위로 도망쳤다. 도망친 한 사람을 쫓아야 할까, 남은 양화대원의 뒤를 쳐야 할까.
『테즈카, 카사하라! 거기에 있나!』 - P154

날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철책에서 지면을 내려다보자 등짐은거의 바로 아래쪽 뒤뜰, 수풀 속에 떨어진 듯했다. 테즈카가 무선으로 도조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회수를 요청했다.
그때 난간에 총탄이 튀었다. 지상에서 날아온 공격이었다. 황급히 엎드려 살피자 충격이 그치고, 지상에 배치되어 있던 양화부대가 등짐을 회수하러 오는 기척이 났다. 도조가 회수하기엔 시간이 맞지 않았다. - P155

이쿠가 외치자 테즈카는 흠칫했지만 곧 반박했다.
"너 따위에게 걱정을 들을 이유는 없어, 내가 간다! 여자를 표적으로 삼도록 내버려둘까봐!"
"적당히 좀 해, 뭐든 네가 1등이어야 마음이 풀리겠어?! 적재적소는 궁핍한 군대의 기본이라고!" - P156

관내에서 낯익은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출입구에서방위원이 뒤뜰로 뛰쳐나와 반격이 시작되었다.
격렬한 충격은 단시간에 종식되어, 양화특무기관은 목표달성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 P157

이쿠는 도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도조 교관님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습니다."
"너란 녀석은..!"
"잠깐, 어째서?! 엄청 진지하게 사과했는데?!"
진지한 사죄가 도리어 화를 부르는 바람에 잔소리는 대단히길어졌다. 사후처리를 하는 대원들이 쿡쿡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쿠는 우울해져서 몸을 움츠렸다. - P158

다른 대원이 부르자 자리를 뜨면서 도조는 지시를 남겼다.
"도서를 열람실로 돌려놔. 업무부가 사후처리를 시작했을 거다. 그 김에 시바사키에게 말해줘.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
경고의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 P159

"뭐야, 그 부루퉁한 얼굴은. 아직 뭐 불만 있어?"
옥상에서 윽박질렀던 게 마음에 안 들었나 생각하면서 묻자테즈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제안하겠는데."
(중략).
"너, 나랑 사귀지 않을래?"
"........하?" - P160

3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전략).
『지금 텔레비전 볼 수 있나? 어디든 좋으니까 민영방송 뉴스 봐둬라.』
갑작스런 명령이라 이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영방송이라는 지정도 수수께끼다.
"민영방송요? NHK가 아니라?"
『이 경우에는 떠들기 좋아하는 방송국이 좋아.』 - P162

돌아온 시바사키가 주전자 콘센트를 꽂으며 보온으로 설정했다.
"어쩐 일이야? 돌아오자마자 네가 텔레비전을 켜고."
"왠지 모르겠는데, 도조 교관님이 전화해서 봐두래."
"뭣, 교관님이 전화했어?! 나한테 해주지!"
시바사키는 대체 어디까지 진심인 걸까. - P166

시바사키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과연, 봐두라는 게 이거구나."
고교생 대상의 바람직하지 않은 도서‘로 교육위원회의 목록에 올라 있는 책으로, 전투 뒤의 확인 작업에서 미디어 양화위원회의 검열대상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된 호러 작품이다. 검열사유는 ‘지나친 잔혹묘사‘다. - P164

"미디어 작품이 범죄를 조장한다면 남자는 어리든 늙었든 죄다 성범죄자 예비군이야, AV니 에로책이니 조교물이니 능욕물이니, 성범죄 지망의 온퍼레이드잖아. 미디어를 흉내 내서 범죄가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여자한테 총기 휴대를 허가해야 할걸." - P164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검열을 정당화하는 움직임이 높아지기 때문에 도서관이나 미디어 관계자로서는 골치가 아파진다.
"하지만 이 뉴스가 방송된 날에 교육위원회가 검열을 하러 들이닥치다니 타이밍이 너무 좋은데? 문제도서와 소년의 장서가 일치한다는 점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같고." - P165

아무리 도서관법 제4장에 내부감사규정이 없다고 해도, 양화위원회의 검열에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다면 도서관의 이념과 신용을 뒤흔드는 커다란 문제가 된다. 관장대리의 관여가 입증되면 칸토 도서대의 의사를 걸쳐 인사변경도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모르는 척 묵인하고 넘어갈 듯하다. - P167

"뭐야, 그게... 테즈카가 괴롭히는 새로운 수단이야?"
우와, 개그말고도 다른 해석이 있었다. - P168

확실히 연애 감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쪽이 납득할 만하다. - P169

빈축을 사기 쉬운 입장이란 뭐든 잘 해내서 그런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어머, 몰랐어? 그 녀석 아버지가 도서관협회 회장이야." - P169

"아무튼 그만큼 처신을 잘 하고 딱 부러지는 녀석이 너한테만은 그렇게 털을 곤두세우는 걸 보면 역시 동기 중에서 너를 엄청나게 의식하고 있단 뜻이지."
"그런 천성적인 엘리트에게 원한을 살 만한 기억은 없다구!" - P170

네 성격이 나쁜 것도 말이야, 이 말은 속으로만 덧붙인다.
"거기에서 뭘 어떻게 하면 나랑 사귀자는 말이 나오는 건데?"
"음. 그건 미움이 어느새 사랑으로……."
"진심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두뇌파의 간판 내려버릴까?"
"남의 연애사정을 내가 어떻게 알아." - P171

"그보다 사귄다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거야?"
그 물음은 완전히 이쿠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아니, 진심으로 사귀고 싶다는 말이라면 검토할 여지는 있잖아? 머리가 굳었다면 사귈 때에도 성실할 테고, 외모도 근사하고 키도 너보다 크잖아. 사귀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르는데." - P172

 연애에 익숙하지 않은만큼 자신이 여러 가지로 환상에 젖어 있다는 점은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3 때에 만났던 도서대원을 하필이면 도조 앞에서 왕자님이라고 불러버릴 리가 없었다.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 질문도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 P173

연수 과정은 서고 업무를 마치고 열람실 업무로 바뀌어 있었다.
업무부의 조례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반내 조례 때, 이쿠 쪽은 테즈카와 얼굴을 마주치는 바람에 상당히 어색해했지만 테즈카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제 사귀자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의심스러워질 만큼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다. - P174

"죄송합니다. 단말기 조작을 좀 봐주셨으면 하는데요."
(중략).
장서를 분류하고 있던 도조는 손놀림을 멈추고 이쿠가 쓰고있던 단말기까지 와주었다.
"(중략).
"그게, 실수해서 타관에 요청서를 보내서요."
아아, 대답한 도조는 도중에 고개를 기울였다. - P175

"한 번 듣고 익히지 못하면 테즈카에게 물어보라고 했잖아"
어, 하고 몸을 사리는 기척이 느껴졌는지 도조가 얼굴을 찌푸렸다. 또 싸웠냐, 너희들, 하고 질린 듯이 중얼거리더니 테즈카를 불렀다.
"아니, 잠깐...!"
엉겁결에 이쿠는 도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도조가 놀란 듯이 돌아본다. - P176

"사귀자고 그랬대요."
서고에 내려가던 도중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계단 위에는 시바사키가 있었다. 안쪽 난간에 팔꿈치를 걸치고 몸을 내민 채 생긋 웃으며 도조를 내려다보고 있다.
"테즈카가 카사하라에게." - P177

문득 도조는 이쿠에게 붙잡혔던 소매를 내려다보았다. 긴소매와이셔츠에는 세게 붙잡힌 흔적이 주름으로 남아 있다. 의자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던 그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떠올리자, 매달리려 하는 손을 뿌리쳐버린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문득 솟아올랐다. 평소처럼 싸웠으리라고 생각했기에 적당히 좀 하라는 의미도 포함해 테즈카에게 넘겼지만 만일 알고 있었더라면-. - P178

휠체어에 앉은 신사는 남자의 부하에게 빙긋 웃었다.
"옛날에 다리를 한쪽 잃었다오. 걷는 게 좀 불편해서 그러니 이해해주시오."
부하는 이 남자가 다리를 잃은 경위를 직접적으로는 모르는 세대였다.
칸토 도서기지사령관, 이나미네 카즈이치는 소파 다리가 하나 빠져 있는-아니, 빼놓은 공간에 특별주문한 듯한 자동식 휠체어를 넣어두었다. - P180

이나미네의 물음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고 남자도 고개를끄덕였다.
"이미 아실 테지만, 예의 연쇄 무차별살인사건 수사본부에서왔습니다." - P181

"소년은 체포된 뒤 계속해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소재가 필요합니다. 소년은 도서관을 곧잘이용했던 듯하니 독서 경향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범행에는 전문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종류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전문서를 소년이 혹시 빌렸더라면 검찰 측의 판단근거로・・・ " - P182

"쇼와의 무차별생화학 테러 때에는 국립국회도서관에서 이용자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던데요."
그것은 쇼와 마지막 해였던 그 해에 마치 장례식에 맞추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으로 어느 광신적인 단체가 국제조약으로 금지되어 있는 신경가스를 사용해 테러를 일으켰던 사건이었다. - P183

"도서관법 제32조에는 그 반성도 담겨 있습니다."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당시에는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이라는 일본도서관협회에서 채택된 선언의 제3항이었다. 이 장제가 입법화되어 도서관법 제32조가 되었다. - P183

"하지만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용의자는 미성년자라고는 해도 중대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고, 국민의 분노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도서관의 협력은 높이 평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러한 잔인한 사건에서 범인이 미성년자이니까 죄가 줄어든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한 시민으로서 제가 협력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수사에도 협력할 테지요. 그러나 동시에, 도서관이 스스로 세운 법을 굽히면서까지 수사에 협력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 P184

"하지만 용의자는 사람을 셋이나 죽였어요. 인도적으로도 협력은 타당한...."
"범죄자를 두고 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는겁니까?"
핵심을 찌른 이나미네가 살짝 웃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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