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세 살 터울의 동생은 생쥐를 닮았다. 키는 150센티미터가 겨우 넘지만 지치는 법이 없고, 까맣고 동그란 눈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다양한 각도에서 반짝인다. - P11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나와 동생이 가족이라는 사실을놀라워했다. 나는 180센티미터가 넘고, 대체로 생각에 잠겨 있고, 사람을 대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상대의 용건을파악한 다음 머릿속의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게 고작이다. - P12

. 나는 개인 사무소를 갖춘 인공지능 설계사고, 동생은 가끔 내 집에 들러서 생쥐 우리를 살핀다. (중략). 우리는 잘 지낸다.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은 그것뿐이다. - P13

01



(전략).
시영은 화분에 설치된 인공지능의 설정을 바꾸기 위해 내 사무소에 들렀다. 화분에게 짜증을 자주 냈는데, 그래서인지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거였다. - P17

상담이 계속되면서 나는 화분의 설계보다도 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 P18

나는 캐묻지도 않았고 훈계를 읊지도 않았다. 서글픈 느낌을 담아 웃기만 하면 사람은 거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시영은 내가 아주 사려 깊다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에 안달 난 사람들과는 완전히다르다고 말했다. - P19

"혹시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사생활에 간섭해서? 하지만・・・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미 있는 선물이잖아요."
시영이 수백 가지의 질문이 얽힌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네, 좋았죠. 좋았어요. 완벽했어요. 하지만 이럴 거면 왜 오신 건가요? 지금까지 식사약속은 모두 거절하셨잖아요."
"내일이면 떠나시니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려 했어요. 사람 사이의 예의니까요." - P21

"됐어요. 더 듣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은 저랑 완전히 달라요."
시영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또다시 실수했다는생각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중략). 하지만 완벽한 성공이 완벽한 실패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 P22

내 마음속에는 끝나지 않는 채점표가 있다. 도덕적이었는지, 부도덕했는지. 이타적이었는지, 이기적이었는지. 온화했는지, 성급했는지, 공손했는지, 무례했는지. 상대를 만족시켰는지, 실망시켰는지…………. 총점을 최대한 높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나를 그럭저럭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고, 남을 해치지 않는 데에 도움을 준다. - P22

인간들은 자연을 아끼는 척하면서도 사나운 구석은 악착같이 정복하려 들거나 다만 외면해버린다. 그러고는 자연의 목록에 보기 좋고 예쁜 것만을 남긴다. 건물을 휩쓰는해일은 재해고, 무더위는 이상기후고, 고요하게 반짝거리는 바다만 자연이 되는 식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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