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곧 가게에서 쫓겨나 골목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던 바보(나는 이쪽으로 정했다)는 어째서인지 오늘 아침 우리집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그 모습을 본 시점에서 오늘의 운세는 끝장이다. - P26

우여곡절 끝에 잔뜩 취해서 깊이 잠들어버린 누드남은결국 같은 대학 같은 과 녀석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문제는 거기부터였다. 좀처럼 눈을 뜨지 않는 녀석을 어째서인지 내가 떠맡게 된 것이다.
단순히 비어 있던 자리에 앉아서 술을 따라줬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가 돌봐줘야 할 이유도 없다 - P27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바보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일어나자 타월 이불이 몸에서 흘러내려 또 다시 알몸이 부활했다. 보기 흉한 정도가 아니라 안구테러다. - P28

"야, 닥쳐! 내가 혼난단 말이야!"
놈은 내가 말리는 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녀석, 아직 술이 덜 깼나! 아침부터 아파트에서 큰 소리 내지 마! 바보는 통곡하듯 노래를 계속했다.
몇 번이나 말렸지만 바보는 뿌리치고 결국 끝까지 노래를 완창했다. - P29

"술 취한 요정이 술집으로 날아온 거냐? 홀딱 벗고."
"요정이 옷을 입으면 이상하잖아."
"옷을 입지 않은 요정도 현대 사회에선 충분히 이상하거든."
"날 미친놈 취급하는 거야? 너무하네. 이래 보여도 난아주 평범한 사람이거든."
평범한 사람은 남의 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홀딱 벗고 있지 않는다. - P30

"에이, 뭐야. 알몸으로 밖에 나가라고? 너 착하게 생겨서 성격은 악마 같구나."
귀찮은 녀석이군. 옷을 몰래 숨겨서 갖고 있을 리는 없다. 숨길 곳도 없으니까.
"알았어. 옷은 내 걸 빌려줄게. 내일 학교에서 돌려줘."
내가 왜 이 녀석을 살뜰하게 챙겨줘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눌러앉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 P31

지갑도, 휴대전화도, 통장도 가방에 들어 있다. 도난당하면 곤란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아, 컴퓨터는 곤란하겠군. 하지만 저걸 들고 대학까지 갈 수는 없다. 게다가 같은 대학 학생이라는 신원은 알고 있으니까 만약 훔쳐가더라도 쉽게 수색할 수 있다.
또 곤란한 것은 그동안 소설을 쓴 노트. 읽으면 창피하겠지만 아마 별 관심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 P33

"걱정 마. 난 의리 빼면 시체니까. 아무튼 나는 머리를쓰는 바보거든."
졸리니까 빨리 꺼지라는 것처럼 귀찮은 듯이 말한 후 바보는 타월 이불을 온몸에 돌돌 말았다. 내게 등을 돌리고이야기를 거부했다. 마치 너나 빨리 꺼지라는 것처럼.
"그 뻔뻔함이 어떤 의미로 감탄스럽군." - P34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돌아왔다. …음, 대학에서 너무아무 일 없이, 그저 평범하게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바람에 묘사할 게 없다. 다만 같은 과 여학생 집단이 내게 말을걸기는 했다.
"있지, 있지, 그래서 어떻게 됐니? 무슨 얘기긴, 홀딱벗었다며, 홀딱." - P35

아파트 문을 열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도중, 문을잠그고 나가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 역시 있군."
한숨을 쉬며 집 안을 바라보았다. 바보가 신중한 손놀림으로 두 개의 젓가락을 움직여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고있었다. - P36

"그보다 옷부터 입어라."
왜 아직도 알몸에 타월을 말고 있는 걸까. 저런 녀석과맨정신으로 상대하긴 싫다.
"남의 옷을 맘대로 입긴 미안하잖아?"
"남의 컴퓨터를 맘대로 사용하는 것도 미안한 짓이라는생각은 안 드냐?"
"아, 글쎄 하루에 한 번은." - P37

바닥에 주저앉아서 바보가 열어놓고 간 야동 사이트를바라보았다. 왜 이런 사이트는 금발 누님의 비율이 높은걸까. 뭐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마우스를 손에 들고 적당히 조작하자 야동 사이트 외에도 워드프로그램을 열어봤던흔적이 보였다.
의아한 마음으로 확인해보려던 순간. 끼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 P38

등 뒤로 야동 사이트의 빛을 받으며 웃는 그 모습은 최고로 경솔하고 바보 같았다.
"뭐야, 너 쓸쓸하냐?"
"너야말로 정말 고집쟁이로군."
어째서 바보가 집 안을 둘러보았다. 재미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아-. 옷 고마워." - P39

"뭘 본 거지. 컴퓨터? 노트?"
"둘 다."
그는 여전히 태연한 태도였다. 오히려 이 분위기에 익숙해졌는지 입가에 미소마저 매달려 있었다. - P40

"전혀 미안하지 않은 눈치로군.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람을 자기 집에 재워주는 착해빠진 녀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살펴보는 동안 아주 멋지고 시적인 문장을 발견했지."
"꺼져." - P40

"야, 아직도 화났냐? 뒤끝 쩌네."
"뒤끝이 아니야. 아직 화가 안 풀린 것뿐이야."
다음 날, 대학에서 느닷없이 바보와 만났다. - P42

"나 그런 모험 이야기 되게 좋아해.‘
"...너희 부모님이 남의 물건을 멋대로 뒤져도 된다고 가르치던?"
일주일 전에 읽은 만화의 대사를 흉내 내서 빈정거리며말했다. 바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였다.
"인생의 양식이 된다면 약간의 나쁜 짓은 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셨어." - P43

"왜 나한테 치근대는 거냐."
바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건 왜 묻냐?"는 표정이었다. 뭐야, 이상한가?
"이유 따윈 없어. 굳이 말하자면 그냥, 어쩌다 보니까?" - P44

"수강 신청 끝나고 밥 먹으러 가자."
"난 집에서 먹고 왔어."
"그럼 내가 먹는 걸 얌전히 구경하면 되겠네!"
와하하. 바보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덩달아 하하하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빈정거림이 담긴 웃음이었지만 바보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결국 나는 여러 가지로 포기하고말았다. - P45

(전략).
"뭐 어때, 너는 꿈을 이뤄서 좋고, 나는 인세 절반이 주머니에 들어와서 좋고."
"그 발언에 다각적인 태클을 걸고 싶다만 우선 첫 번째,
왜 네가 절반을 먹는 거냐?"
"프로듀싱비."
나와 세상을 만만하게 보지 마. - P46

"소설가가 되고 싶다며? 될 수 있어. 너라면 아마 될 수있을 거야."
(중략).
"있긴 하지만 얘기해봤자 아마 넌 믿지 않을 거야."
"……그런 건 근거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근데 넌 왜 그렇게 시큰둥한 거냐." - P47

‘카이 쇼코‘야, 아까 그 애."
(중략).
"그거 알아? 구내 매점 문고본 코너에도 그 애 책이 있어." - P49

"설마 너, 아까 그 카이란 애를 라이벌로 의식하는 거야?"
(중략).
"...야, 카이 쇼코는 프로, 난 그냥 지망생이야."
아무 생각 없이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은 공언하고말았지만 바보는 신경 쓰지 않았다. - P50

바보는 팔짱을 끼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지금 내가 해야 할 반응 아닌가?
"빨리 카이에게 잘 보여서 연줄을 만들어. 그래서 작가로 데뷔하는 거야." - P50

"헌팅인 척하고 처음엔 거짓말로 속여서 친해진 다음에
‘사실은 나도‘ 하면서 잘 얘기를 꺼내봐."
바보가 자신의 생각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대체 어떻게 반응하는 게 현명한 길일까?
"그거 참 멋진 작전이군. 멋지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있는데, 그 작전에 뭔가 깊은 의도라도 있어?" - P51

"깊은 의도는 없어. 넌 그냥 헌팅이나 하면 돼."
"그 시점에서 이미 망했거든, 병신아."
오랫동안 쓸데없이 이어지던 작전 회의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바보는 물러서지 않았다. - P52

"너 소설가가 되고 싶다며?"
갑자기 바보의 말투가 돌변했다. 내가 당황하자 바보는앞으로 내밀었던 몸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서 적절한 거리를 취했다. 그리고 샌드위치 봉지와 우유팩을 한꺼번에 힘껏 움켜쥐었다.
"뭐야, 갑자기 진지하게."
"데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아니, 생각해, 위기감을 가져." - P52

"나는 꽤 좋아하는 편이야, 카이 쇼코, ・・・아, 소설 말이야."
그래서 질투심이 들긴 하지만, 주머니에서 쓰레기를 꺼내며 반대의 감상을 늘어놓자 바보는 나를 흘낏 바라보았다. (중략).
"나는 그 애한테 한 방 먹여주고 싶어. 그러니까 너한테기대를 걸고 있는 거야." - P53

"보는 눈이 없구나. 너."
"글쎄, 과연."
마치 미래를 예견하는 현자처럼 잘난 척하며 바보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 P53

솔직히 흥미진진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보라고 등을 떠밀어도 실행에 옮길 리가 없다. 현역 소설가, 게다가 동갑내기. 호기심에 쏟아부을 연료로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었다. - P55

지하층은 사서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설명서에 적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돌아보기로 하고 먼저 중앙 계단을 올라갔다.
(중략). 그 아래에는 소파 몇 개가 놓여 있고 학생들이 그위에 누워서 뒹굴고 있었다. ‘여기에서 잠들지 마세요‘라는주의문 따윈 아무도 지키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거나 잡담을 나누는 사람도 보였다. - P56

가까이 다가가자 망설임은 더욱 커졌다. 나의 평범한 인생을 생각해보면 지금부터 하려는 짓은 지나치게 엉뚱하다. 내 인생에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거대한 만용이다.
도서관 바닥에 깔린 융단을 소리 없이 밟았다. 카이 쇼코는 등 뒤에 있는 나를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 P57

‘데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를 가슴에새기며,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머릿속이 구석부터 새하얗게 물들고 마치 벌거벗은 것 같은 심정으로 카이 쇼코에게 다가갔다. 대학 생활 4년 동안 사용할 용기를 모두 가불해서 그 뒤통수를 향해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걸자 카이 쇼코가 고개를 살짝움직여 나를 돌아보았다. - P59

싫다는 말이 즉각 되돌아오는 바람에 왠지 위축됐지만 카이 쇼코는 그러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말을이었다. 자세도 여전했다.
"당신은 그때 술집에서 홀딱 벗고 돌아갔던 사람." - P60

수직으로 내려다본 카이 쇼코의 얼굴은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대학생에 불과했다. 긴장이 살짝 풀렸다. 카이 쇼코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내 등을 잡아줘서 빚을 지울 셈인가요. 그래서 뭘 어쩌려는 거죠?"
"소설가가 되려고."
"41?"
"아, 아니,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뭐죠?"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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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넌 천재일지도 몰라.
선생님의 그 말이 나의 시작이었다. - P7

그 녀석은 내가 내심 경쟁심을 품고 있는 녀석이었다.
어제도 방과 후에 함께 운동장에서 놀았으면서 대체 언제쓴 걸까. (중략).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바보 같은 이유였다. - P8

아픈 배를 움켜잡고 책상에 팽개쳐뒀던 작문 용지와 마주했다. 몹시 초조했다. 당연하다. 작문 용지의 칸을 세어보자 400칸이나 됐다. (중략).
바보같이.
그로부터 한 시간 가까이 지나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 P9

 만화와 게임과 과자 말고 다른 것을 내 돈으로 산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자신감 과잉과 자만에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첫 창작은 내게 몹시 자극적이었다. - P11

어쩐지 지난주 <소년점프>보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작문용지 다발을 끌어안고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맹렬하게 집필을 시작했다.  - P11

진지하게 무인도에서 싸우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쓴 작문은 배경이 없는 만화 같은 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설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원점은 그것이다.
나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모험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맛을 느꼈다. - P12

아마 담임 선생님은 진심으로 한 말도,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닐 것이다. (중략).
그 말이 나의 10대를 송두리째 옭아매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 P13

그로부터 세는 것도 귀찮으니까 대충 10년쯤 지나 대학교 1학년 아직은 일단 10대인 나는 좌식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차피 내게 천재의 싹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전공으로 선택한 경영학과, 그 경영학과 학생들의 술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동기는 임의와 강제의 중간 정도. - P13

이야기가 움직이는 가운데 그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내가 그려나가는 공상 앞에는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두 개의 손과 키보드가 항상 놓여 있다. 그 손이 타닥타닥문장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 P16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 그녀석이 앉아 있다. 나는 그 녀석을 동경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하며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그 녀석은 눈치 채지 못한다. - P17

「재능이 없으면 꿈은 곧 길을 잃어버린다.」
최근 읽은 소설에 나온 문구가 내 머리를 옥죄었다. - P17

‘그것‘을 표현하는 말은 얼마든지 있다.
‘운명‘이라고 불러도 좋다. ‘연쇄‘라고 불러도 좋다.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 녀석은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와 만났다.
분명 수많은 과정이 쌓이고 쌓여 - P19

내가 아무 이유도 없이 술집 입구를 바라본 직후.
술집 문을 힘껏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중략).
‘그 녀석‘은,
‘내 앞에,
‘전라‘로 왔다.
....팬티도 입지 않았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겠지만 거시기를 다 내놓은 차림.
앞도 뒤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 P20

점원의 저지 따윈 아랑곳없이 맨발로 달려오는 전라의남자, 중기에 평범한 체격의 남자가 멋진 폼으로 팔다리를버둥거리며 좌식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모두가 뒤로 물러났다. 나도 물러나고 싶었다. - P20

누드남은 어째서인지 도통 알 수 없지만 내 옆의 빈자리를 선택해서 털썩 앉았다. 앉자마자 동시에 퍼지는 술 냄새. 아무래도 누드남은 술집에 오기 전부터 꽤나 많은 술을 마신 모양이다. 보아하니 얼굴도 조명을 받은 것처럼새빨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누드남은 울고 있었다. - P21

누드남에게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나오지 않았다. 술집에 온 후로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아니, 그뿐인가 대학에 있는 동안에도 말을 한적이 거의 없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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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지각

어떤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그것의 거리 또는 깊이를 알아야 한다. 대상의깊이를 지각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은 놀랄 만한 성취이다. - P125

두 눈이 협동하여 거리를 추론하는 능력은 두 눈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각 눈이 동일한장면을 약간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오른손 검지를 얼굴 가까이에 세우고, 먼저 왼쪽 눈으로 그것을 보고 이어서 오른쪽 눈으로 그것을 본다. 양안부등 binocular disparity은 각 눈에 보이는 장면의 차이를 가리킨다. - P126

단안단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양안단서의 사용은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대상에 국한된다. 그럼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구름, 시가지 전경, 산맥은 어떻게 할 것인가? - P126

1. 상대적 크기 relative size. (중략).
2. 중첩 interposition. (중략).
3. 상대적 높이 relative height. (중략).
4. 조망 perspective. (중략).
5. 음영과 그림자 shading and shadow. (전략). 그 그림자가 빛을 차단한 동일한 대상의 일부분에 생기면 그것은 자기 그림자(attached shad-ow) 또는 단순히 음영이라 부른다. 만약에 그림자가 그림자를 던지는 대상에 속하지않는 다른 표면에 떨어지면 그것은 투사 그림자(cast shadow)라 부른다. 두 종류의 그림자는 깊이 지각의 중요한 단서로 대상의 모양, 대상 간의 거리, 광원의 위치에 관한정보를 준다(Coren et al., 1999).
6. 운동 motion. (전략). 대상이 움직이는 속도의 차이는 그것과 우리 사이의 거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며, 운동시차(motion parallax)라고 불린다. - P127

운동 지각

앞의 단안단서 중 마지막 단서인 운동은 위치 파악을 포함하는 다음의 주요 주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가 환경 속에서 효과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정지된 대상의 위치뿐만 아니라 운동 중인 대상의 경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 P128

가현운동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운동을 지각하게 하는가? (중략). 그러나 이 대답은 상당히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망막에서 움직임이 없을 때도 우리는 운동을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그림 4.12에 나타나 있는데 1912년에 베르트하이머(Wertheimer)에 의해 발견되었다. (중략).
베르트하이머의 가현운동을 학술적 성과로만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 현상은 오늘날 엄청나게 많은 시각 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해 결정적 중요성을 가진다. - P128

실제운동

물론 우리의 시각체계는 실제운동-공간상의모든 중간점이 연속적인 운동에도 민감하다.
그러나 일상 조건에서 그러한 운동을 분석하는것은 매우 복잡하다. - P128

상대적 운동의 연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현상은 선택적 순응 selective adaptation이다. 이것은 운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때 나타나는 운동에 대한 민감성의 상실이다. 순응은상대적이라서 우리가 보고 있는 운동이나 그와 유사한 운동에 대해서는 민감성이 저하되지만, 방향과 속도가 매우 다른 자극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 P129

뇌는 어떻게 실제운동을 지각하는가? (중략). 그런 세포의 실재를 지지하는 최고의 증거는 동물을 사용한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데, 실험자는 동물에게 여러 가지 패턴의운동을 제시하면서 시각피질세포의 활동을 기록한다. (중략). 심지어는 관찰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를 탐지하는 세포도 있는데, 이것은 생존을 위해 확실히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Regan et al., 1979), - P130

결합 문제: 전주의적 과정과 주의 과정




주의는 수많은 입력 정보 중에서 무엇을 처리하여 의식적으로 지각할 것인가를 선택하는과정이다. 주의는 또한 입력 자극의 여러 특징을 결합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의 좋은 예가 착각결합 illusory conjunction이다. - P132

원시특징과 통합특징을 구분하는 표준적 실험 절차는 시각탐색 과제 visual search task인데, 관찰자는 어떤 혼잡한 배경 속에 표적 대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 P133

특징 사이의 관계

형태의 특징보다는 형태의 기술이 더 중요하다. 특징 사이의 관계가 명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특징들 간의 이러한 관계를 강조하여 ‘전체는 부분의 합과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 P134

자연물의 재인과 하향 처리

우리는 문자와 단어의 재인에 대해 이제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연적인 대상(동물, 식물, 인간, 가구, 의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이 절에서는 그러한대상이 어떻게 재인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 P135

자연물의 특징

자연물의 형태적 특징은 직선이나 곡선보다 복잡하며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에 더 가깝다. 이런 특징은 서로 결합하여 어떤 재인 가능한 대상의 모양을 형성할 수 있다(마치 직선이나 곡선이 결합하여 어떤 문자를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 P136

성분재인(recognition-by-component, RBC)은 어빙 비더먼에 의해 제안된 대상 재인 object recognition 이론이다. 인기가 높지만 논란도 많다. 이 이론에 의하면 대상특징에는 원호, 원통, 원뿔, 블럭, 쐐기 등과 같은 수많은 기하학적 형태가 포함된다(그림 4.18a참조). 이러한 특징을 지온 geon(‘geometric ion‘의 준말)이라 하며 비더먼(Biederman, 1987)에 의해 제안되었다. - P136

한 연구에서는 대상의 모양을 일부 삭제했는데, 삭제에 의해 지온의 복구가 불가능한 경우(그림 4.19의 오른쪽 열)와 그렇지 않은 경우(그림 4.19의 중간 열)를 비교했다. 대상 재인은 지온을 방해하지 않았을 때 더 좋았다. - P137

맥락의 중요성

지각에서 중요한 구분 중 하나로 앞에서 언급했던 것이 상향 과정과 하향 과정의 구분이다. 상향 과정 bottom-up process은 입력-원시적 감각 데이터에 의해 구동되는 반면, 하향 과정 top-down process은 개인의 지식, 경험, 주의, 기대 등에 의해 구동된다. 대상의 형태를 지온에 의해서만 재인하는 것은 상향 과정이다. - P137

물체 지각에서 맥락의 역할에 대한 실험적 증거는 의미점화(semantic priming) 연구에서 나왔다. (중략). 연구 결과는, 자극으로 그림을 사용하던 단어를 사용하건 관계없이 의미적 관계가 있는 점화 자극이 먼저 제시될 때 표적 자극의 파악이 더 빠르고 기억도 더 정확했다(예: Palmer, 1975; Reinitzet al., 1989). - P138

맥락 효과와 하향 처리는 문자와 단어에대해서도 일어나며, 독서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안구를 고정하는 위치와 시간은 내용에 대해 우리가 아는정도, 즉 우리가 가동할 수 있는 하향 처리의 양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내용이 친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하향 처리가 매우적다. - P138

하향 처리가 유용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물체가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를 제한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때 그들의 입술을 볼 수 있으면 말소리를 더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특정한 입술 모양이 특정한 말소리와 연결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예: Sams et al., 1991). - P139

. 하나의 흥미로운 예는 맥거크 효과 McGurk effect 인데, 이는 청각 정보와 시각 정보가 충돌할 때 일어난다(McGurk & MacDonald, 1976). (중략). 즉 관찰자는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통합하여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착각적 결과를 산출한다. - P139

재인의 실패

대상 재인은 자동적이고 너무도 쉬운 일이라서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 과정은 때때로 붕괴될 수 있다. (중략). 사고 또는 뇌졸중으로 인한 뇌 손상자의 경우, 상습적으로 재인에 실패한다. 재인의 붕괴 또는 장애를 실인증 agnosia 이라 한다.
특별히 흥미를 끄는 실인증으로 연합실인증 associative agnosia 이라는 것이 있다. 이 증상을 가진 환자들은 측두엽에 손상이 있는데, 시각적으로 제시된 사물에 대해서만 재인에 어려움이 있다. - P140

연합실인증 환자는 어떤 범주는 재인하지만 다른 범주는 재인하지 못한다. 이러한 범주 의존적 장애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정상적인 재인의 작동 방식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 P141

범주 의존적 손상의 또 다른 유형은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살아 있는 생물을 재인하는능력의 손상이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가정용 도구와 같은 무생물을 재인하지 못하는환자도 있다(Warrington & Shallice, 1984),
범주 의존적 손상에 대한 설명 중 어떤 것은 정상적 재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가설의 하나는 정상적 재인 시스템이 여러 부류의 대상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으며얼굴을 위한 하위 시스템, 단어를 위한 하위 시스템, 동물을 위한 하위 시스템 등-이하위 시스템은 뇌의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중략). (Damasio, 1990; Farah, 1990). - P141

실생활의 대상 지각이 이런 방식으로 도식화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카마이클과 동료들(Carmichael et al., 1932)은 그림 4.23 에 있는 것같이 모호한 자극(가운데 열의 ‘자극 그림‘)을 명칭(label)과 함께 제시했다. 명칭은 관찰자들에게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데 사용되었다. - P142

지각 항등성

극장에 갔을 때 때때로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가운데 좌석이 모두 사람들로 차 있어서 가장자리의 외진 곳에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면 좌석 위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영화의 줄거리, 등장인물, 특수효과에 몰입하게 된다. - P142

항등성의 개념

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의 고유한 물리적 특징과 우리의 지각체계에 주어지는 그 대상에 관한 정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 P143

깊이 단서에 대한 의존

10원짜리 동전의 예는 우리가 대상의 크기를 지각할 때 망막상의 크기 이외에 어떤 것을고려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 어떤 것은 대상의 지각된 거리이다. 1881년에 스위스의 안과학자 엠메르트(Emmert)는 크기 판단이 거리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P145

착각

(전략). 착각 illusion은 물리적 실체와 세계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지각하는 것이다. 가면 착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른 많은 착각의경우처럼 시각체계가 항동성-이 경우에는 가면의 안이 아니라 밖을 보고 있다는 가정-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P146

달의 착시

‘크기-거리 원리‘는 수많은 크기 착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나의 예가 달의 착시이다. 지평선 부근의 달은 중천에 있는 달보다 약 50% 정도 더 크게 보이지만 오히려 망막상은 중천에 있을 때가 약간 더 크다. 왜냐하면 중천의 달이 지평선의 달보다 더 가깝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비행기는 처음에 지평선 위에 나타날 때보다 우리의 머리 바로 위에 있을 때 더 가깝게 보인다. - P146

5장 학습과 기억

학습과 기억이 이 장(章)의 주제이다. 학습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경험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학습 learning은 경험의 결과로 출현하는 행동에서의 비교적 영속적인 변화로 정의된다. 성숙이나 일시적 조건(예:피로나 약물로 유도된 상태)에 의한 행동 변화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학습의 모든 사례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기본 유형의 학습, 즉비연합학습과 연합학습이 존재한다. - P151

연합학습 associative learning은 사건들 사이의 관계 학습을 수반하기 때문에 비연합학습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기에는 고전적 조건형성과 도구적 조건형성이 포함된다. 두 가지조건형성은 모두 연합의 형성, 즉 특정 사건들이 함께 발생한다는 사실의 학습을 수반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두 형태의 학습을 자세하게 논의한다. - P151

학습에 대한 조망

초기 행동주의자들의 초점은 외부 자극과 관찰 가능한 반응에 있었으며, 이것은 심성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근거해서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행동주의자들의 금언에 따른 것이다. 학습에 대한 행동주의 접근은 다른 핵심 가정도 상정했다. 하나는 고전적 조건형성이든 도구적 조건형성이든 단순 연합이 모든 학습의 초석이라는 가정이다. - P152

고전적 조건형성

(전략). 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은 과거에 중성적이었던 자극이 다른 사극과 반복적으로 짝지어짐으로써 그 자극과 연합을 이루게 되는 학습 과정이다. 원래 밥그릇은 중성자극이었다. 즉 침 분비 반응을 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먹이 자체는 개의 입에 들어갈 때 침 분비를 유발한다. 먹이와 밥그릇이 반복적으로 함께 (짝지어져서) 주어진 후에는밥그릇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침 분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개는 두 사건(밥그릇이보이는 것과 입안에 들어 있는 먹이의 맛이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다. - P152

파블로프의 실험

(전략). 이 침 분비는 무조건반응 unconditioned respon-se(UR), 즉 먹이의 맛이 유발하는 비학습반응이다. 동일한 이유로 먹이 자체는 무조건자극 unconditioned stimulus(US), 즉 사전 조건형성 없이 자동적으로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이다. - P153

자발적 회복

개가 일정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불빛만을 제시하면 (사라졌던) 침 흘리기 반응이 다시 출현한다. 그림 5.2의 오른쪽 그림을 보라. 이것을 자발적 회복 spontaneous recovery이라고 부른다. 즉 강화 시행이 필요하지 않으며, CS가 다시 CR을 유발한다. 보는 바와 같이 회복된 CR은 획득단계에서 나타났던 CR보다 약하다. - P154

자극 일반화

파블로프는 특정한 소리에 조건반응을 나타내도록 훈련받은 개들이 음조가 조금 높거나 낮은 다른 소리에도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을 자극 일반화 stimulus generalization라고 부른다. - P155

자극 변별

일반화와 상보적인 과정이 변별이다. 일반화는 유사성에 대한 반작용이고, 자극 변별 stimulus discrimination은 차이에 대한 반작용이다. 조건 변별은 그림 5.4에서 보는것처럼 차별화 조건형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 P156

이차 조건형성

일단 개를 불빛에 대한 반응으로 침을 흘리도록 조건형성을 시켰다면, 또 다른 자극(예:소리)을 애초에 조건자극이었던 불빛과 반복적으로 짝지음으로써 그 소리에 대한 반응으로 침을 흘리도록 조건형성을 시킬 수 있다. 이것을 이차 조건형성 second-order condition-ing이라 한다. - P156

이차 조건형성의 존재는 고전적 조건형성의 범위를 크게 확장한다. 특히 대부분의 조건반응이 이차 조건형성을 통해 형성되는 인간에게 그렇다. 애초의 US는 일반적으로 음식이나 통증 또는 구역질과 같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자극이다. - P157

인지적 요인

파블로프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는 CS와 US가 시간적으로 근접 temporally contiguous하는 것, 즉 CS와 US가 시간상 근접해서 출현하는 것이 조건형성의 충분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러나 앞의 논의를 보면 조건형성은 CS가 US를 예측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US가 CS에 수반적(유관적) contingent 이라고 일컫는다(CS가 나타나지 않을 때보다 나타날때 US가 출현할 가능성이 더 높다). - P157

생물학적 제약

초기 행동주의자들은 학습 법칙이 모든 동물 종에서 동일하다고 가정했다. 이에 덧붙여서 고전적 조건형성에서는 모든 CS를 모든 US와 연합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중략)
즉 생물학적 기능이 유기체로 하여금 적응하고 생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초기 동물행동학자들(예: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트 로렌츠를 비롯한 니콜라스 틴베르헌, 카를 폰프리슈 등)은 인간과 동물의 행동에서 강력한 생물학적 소인을 밝혔다(Tinbergen, 1951). - P158

가르시아와 콜링(Garcia & Koelling, 1966)은 학습에서 생물학적 소인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다. 이러한 실험의 하나가 표 5.1 에 나와 있다.  - P158

 통제조건의 쥐는 두 번째 단계에서 약물에 중독되는 대신에 전기 충격을 받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쥐는 불빛+클럭 소리가 제시될 때만 용액을 회피하며, 향료 맛만을 경험할 때는 회피하지 않는다(Garcia & Koelling, 1966). - P159

(전략). 새는 자연 상태에서 맛보다는 모양에근거하여 먹이를 선택하며, 불빛을 복통에 연합하는 것은 쉽게 학습하지만 맛을 복통에 연합하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Wilcoxin et al., 1971). 이것은 예컨대 복통의 원인과 같이 동일한 것을 서로 다른 수단을 통해 학습하는 상이한 동물 종의 완벽한 사례인 것이다. 요컨대 무엇이 무엇에 조건형성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CS와 US를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 P159

강화 대 처벌

도구적 조건형성에서 행동에 뒤따르는 환경사건은 그 행동 확률의 증가나 감소를 초래한다. 강화 reinforcement는 자극의 제공이 행동의 확률을 증가시키는 과정을 지칭한다. 강화는 만족자극을 제공하거나(정적 강화 positive reinforcement) 혐오자극을 제거함으로써(부적 강화 negative reinforcement)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행동과 강화 간에는 정적 수반성이나 부적 수반성이 존재할 수 있다. - P162

행동조성

도구적 조건형성을 사용하여 개에게 대문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가져오게 하는 묘기를 가르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개가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할 때까지 기다려서 강화한다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원하는 행동이 정말로 새로운 것일 때는 동물 행동의자연적 변형을 이용하여 조건형성시켜야만 한다. (중략). 행동조성 shaping 이라고 부르는 이 기법은 실험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형된 반응만을 강화하는 것이다. - P163

행동조성

(전략). 만일 도구적 조건형성이 일차 강화물과 함께만 일어난다면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차 강화물은 별로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자극은 이차 강화물(secondary reinforcer) 또는 조건강화물 conditioned reinforcer 이 될 수 있다. 조건강화물은 일차 강화물과 일관성 있게 짝지어졌던 자극이다.  - P164

브리어스 등(Briers et al., 2006)은 배고픔이 자선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배고픈 실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서 기부하는 돈의 액수가 적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상상을 하도록 요청함으로써 실험자가 돈에 대한 참가자들의 갈망을 증가시켰을 때 과자를 먹는 양이 증가했다. - P164

일반화와 변별

(전략).
변별 훈련은 반응해야 하는 경우와 반응을 억압해야 하는 경우를 명백하게 구분해 주는 변별자극(또는 일련의 자극)이 있는 한 효과적이다. 위의 어린아이는 부모가 친근함을 신호하는 개의 특성(예: 꼬리 흔들기)을 지적해 주면 어느 개를 다독거려야 하는지를 쉽게 학습하게 된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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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오전의 조용한 PC방 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리는 꽤나 시끄러웠다. - P8

이 스마트폰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어젯밤에 택시를 탔을 때, 이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은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취했던 탓인지 틀림없이 자기 것인 줄 알고 넣었는데, 이제 보니 다른 사람의 동일 기종 스마트폰을 주워온 것이다.
그 와중에도 벨소리는 무언가를 재촉하듯 계속 울려댄다.
과연 이 전화를 받아야 할까? - P8

『그쪽이 들고 있는 전화는 도미타 마코토의 전화 아닌가요?』
도미타 마코토?
그렇군. 이 대기화면에서 히죽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공이 도미타 마코토인가보군. 이런 미인이 여자 친구라니 솔직히좀 질투 난다.
"글쎄요, 이 스마트폰 주인 이름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이나바 아사미 씨라는 건 알겠네요." - P9

"아니, 실례했습니다. 어떻게 당신 이름을 아는가 하면 이 스마트폰의 화면에 그렇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스마트폰을 아까 주워서 말이지요. 파출소에 가져다주는 게 좋을지 좀 생각하던 참이에요."
순간적으로 그런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학교에서도 금방 그만둬 버린 회사에서도, 이 남자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둘러대는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아, 아, 아, 정말 실례했습니다. 도미타의 스마트폰을 주워주신분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좀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이것저것결례되는 말을 해 버려서..』 - P10

"그렇습니까? 혹시 새로운 스마트폰을 다시 구입하실 요량이시라면 이 스마트폰은 제가 알아서 처분하겠습니다. 대신 이스마트폰은 바로 정지해 주세요."
뭐, 멀쩡한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할 사람은 없을 테지만 한 번 슬쩍 떠본다.
스마트폰을 새로 사면 돈도 드는 데다 그랬다간 스마트폰 속 데이터를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역시나 예상한 반응이 되돌아온다.
『아니요, 데이터도 들어 있고, 뭣보다 그렇게 하기엔 돈이 아깝습니다.』 - P11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본인 취향의 괜찮은 여자다. 남자는 전화를 끊을 때 다시 대기화면에 떠오르는 이나바 아사미의 사진을 보며 정말 그렇다고 느꼈다. - P12

그런데 어떻게 해서라도 이 흑발의 미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스마트폰이 요구하는 네 자릿수 비밀번호에 시험 삼아 1234를 입력해 본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비밀번호로 이 번호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덧붙여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1111」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우, 하는 금속음과 함께 진동 기능 때문에 스마트폰이 작게 떨릴 뿐이었다. - P12

그 직후 손에 들고 있던 그 스마트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나바 아사미가 다시 걸어온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화면에는 「영업 3부」라고 표시되어 있다.
「영업 3부」에 속한 이 스마트폰의 주인이 걸어온 것일까?
아니면, 영업 3부에서 일하는 스마트폰 주인의 지인이 이스마트폰 주인에게 걸어온 것일까? - P13

다시 한번 스마트폰의 홈 버튼을 눌러 본다.
10:32라는 시간표시와 함께 아까 그 두 사람이 찍은 사진이화면에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화면을 넘기니 역시 네 자릿수 비밀번호 입력 화면이 뜬다.
보통은 자기 생일,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나 애인의 생일을 설정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가, 혹시 애인 생일이라면..? - P14

(전략).
인터넷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되어 살고 싶다면 그녀처럼 하는 것이 옳다. 남자는 SNS상에서 개인정보를 드러내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고 생각했다. - P15

도미타의 기본정보란을 보니, 도내의 N고교, 그리고 H대학을 졸업하였다. 현재는 도쿄에 거주 중, 혈액형은 B형, 그리고 1985년 12월 4일생인 것을 알아냈다. 왜 사람들은 마이넘버(2016년에 시작된 개인 식별 번호,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하다. 옮긴이) 등정부가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것에는 이상하리만큼 경계심을 나타내면서 정작 자신의 프로필은 이렇게 쉽게 드러내는 것일까?
남자는 시험 삼아 스마트폰 비밀번호에 「1204」를 입력해 본다.
그러자 실로 시원하게 잠금 해제되어 버렸다. - P17

B

아사미는 통화를 끊고 나서, 도미타의 스마트폰을 어떤 주소로 받아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집으로 보내라고 할까, 아니면 회사로 보내라고 할까? 둘 다 대략적인 주소는 알고 있지만 자세한 번지수까지는 모른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주워준 사람이 친절한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 P18

그러고 보니, 아사미는 지금 자신이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아사미나 도미타의 집에는 유선전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사미의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부에는 도미타가 근무하는 회사의 부서 직통번호가 없다. 그렇다면라인LINE(일본에서는 카카오톡 대신 네이버의 라인이 일반화되어 있다-옮긴이)으로 연락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도미타가 스마트폰을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아사미에게 라인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다. - P19

『어느 부서의 도미타입니까?』
당연히 그렇게 물어올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영업 관련 부서인 건 분명합니다만...."
"영업은 1부터 3부까지 있고, 그 외 영업추진부, 영업사업부, 영업기획부, 그리고 전략영업부가 있습니다만." - P20

『죄송합니다. 지금 도미타는 외출 중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습니다.』
교환원이 3분이나 걸려 찾아낸 영업 3부로 전화가 연결되자, 영업부 사원인 듯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렇습니까?"
『급하신 용건인가요?』
"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도미타에게 연락드리라고 할까요?』 - P20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나바 씨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뭐라고 답해야 할까? 엄밀하게 말하자면 친구, 라고 대답해야 옳겠지만 개인적인 전화라는 걸 들키면 도미타에게 뭔가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야마 상사의 이나바라고 전해주세요."
아사미는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읊었다. - P21

다시 벽시계를 보니, 정확히 오후 5시를 가리키는 참이었다.
이 이상 아까 그 스마트폰을 주운 남자에게 전화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사미는 분명히 자신이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말했었고, 연락이 없으면 그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자도 마음이 변해서 어딘가에 스마트폰을 버려버릴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도미타 스스로 자기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어서 그 남성과 이야기를 끝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사미는 책상 위를 정리한 후, 스마트폰을 들고 일어났다. - P22

"여보세요. 이나바입니다만."
『아아, 이나바 씨. 이제야 전화를 걸어주셨네요.』
지금 이 남성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도미타가이 스마트폰을 정지시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보안 측면에서는 괜찮을까?
"죄송합니다. 결국 그 스마트폰 주인이랑 연락이 되지 않아서요...."
『그렇습니까? 그거 참 유감스럽네요.』
"혹시 도미타가 그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나요?" - P23

아사미는 자신이 사는 동네가 어떤 지하철역 노선 근처인지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정도 정보만으로는 아사미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유텐 지역을 들킬 리도 없었다. 또 알려진다고 해도 그 주변에는 어차피 혼자 사는 미혼여성의 원룸 주택이 수없이 많다. - P25

A

남자는 실제로 이나바 아사미를 만날 수 있게 되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스마트폰을 돌려주고 ‘착한 사람‘으로 끝나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남자는 도미타 마코토의 스마트폰 대기화면 속 이나바 아사미의 사진을 보면서, 이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기에는 아무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6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속에는 해제 설정을 해두지 않는 한 그 사진을 촬영한 위치 정보가 자동으로 저장된다. 그것을 모르고 SNS에 사진을 올려서 집 주소를 노출시키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최근에는 SNS 운영자 측에서 위치정보를 삭제하는 경향이 있다. - P27

시부야, 다이칸야마, 나카메구로, 유텐지, 지유가오카... 이나바 아사미가 찍힌 사진은 비교적 도요코선 노선이 많았다. 콕집어 이나바 아사미의 집인 듯한 사진은 없었지만, 아사미가 도요코선 노선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 말은 일단 믿어도 될 것이다.
사진 앱에는 도미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시간 순서대로 남아 있었다. - P27

지금까지도 많은 미인을 알아왔지만, 이 이나바 아사미의 아름다움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들어 이 여자가 자신을 향하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이미 이나바 아사미의 전화번호는 적어두었다. - P28

역시, 그 방법을 써볼까?
남자는 자신의 노트북을 켜고 어떤 프로그램의 아이콘을 클릭한다.
그것은 스마트폰 조정 프로그램이었다. 아이폰은 클라우드 등에 동기화시켜 백업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그런 기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데이터를 백업해야 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스마트폰 내용을 자신의 노트북에 손쉽게 백업할 수 있었다. - P29

그렇다고 해서 이 프로그램이 위법은 아니었다. 아이가 성인용 SNS나 앱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독거 노인이 여차해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그 위치를 찾게 해주는 등 이 원격 조정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다양했다. 참으로 그럴싸한 선전 문구를통해 유료로 판매되고 있었다.
물론 스마트폰의 비밀번호를 복잡하게 설정해두면 이 앱이 저절로 심어질 염려는 없다.  - P30

B

정말로 그 허스키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 가게에 나타날까?
약속시간이 벌써 10분 이상 지났다.
사실 아사미도 본인이 정한 이 커피전문점에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틀림없이 허스키 보이스의 남자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게 안을 둘러봤지만 그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아이스라떼를 주문하고 입구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 P31

"가게에 전화가 걸려 와 있습니다."
(중략).
역시 그 허스키 보이스 남자가 갑자기 못 오게 되어 버린 것일까? - P32

"누가 걸었었나요?"
"글쎄요, 이름은 특별히 밝히지 않았는데요."
무슨 일일까? 아사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략).
"그리고 이 스마트폰을 빨간 스웨터를 입은 이나바 아사미 씨께 전해드리라고 했는데, 당신이 이나바 아사미 씨 맞지요?"
그 남자 점원은 그렇게 말하더니, 아사미에게 익숙한 검은색스마트폰을 건넸다.
스마트폰 시작 버튼을 누르자, 아사미와 만면에 미소를 짓고있는 도미타가 같이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이런 사진을 대기화면으로 쓰고 있었을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 P33

왜 여기에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급한 일이 생긴 데다 아사미가 늦었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카운터 전화기 앞까지 불러내서 확실하게 건네주려고했던 것을 보면 다른 의도가 있는 듯했다. - P33

그때였다. 낯선 벨소리가 아사미의 바로 근처에서 들려왔다.
아사미의 스마트폰 벨소리가 아니라서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도미타의 스마트폰이 벨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발신번호를 보니 『영업 3부』라고 표시되어 있다. - P34

A


남자는 아사미가 지정한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비어 있던 옆자리에 도미타의 스마트폰을 살짝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온척 일어나서 천천히 가게 밖으로 나간다.  - P36

정지사진 속의 아사미는 여러번 봤지만 실제로 걷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빨간 서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극히 심플한 차림이었지만, 그런 스키니진이 잘 어울리는 일본인은 드물다. 다리가 길고 날씬해서 모델이라고 해도 통할 것 같다. - P37

"좀 전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고 전화한 사람인데요, 좀 바빠서 가지러 못 가게 되었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이 가지러 갈테니 건네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가지러 오시는 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긴 흑발에 빨간색 스웨터를 입은 여성입니다. 이름은 이나바 아사미라고 합니다. 혹시 벌써 가게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 P37

도미타 마코토의 스마트폰은 이나바 아사미에게 돌려주고 말았지만, 그 안에 원격조정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다. 남자가 태블릿 PC를 꺼내 전원을 켠다. - P38

그리고 이나바 아사미 본인에게도 뭔가 약점은 없을까?
바로 얼마 전에 도미타가 무슨 이유인지 아사미에게 돗토리에가고 싶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눈 라인 대화를 통해 이나바 아사미의 본가가 돗토리인 것을 알아냈다. 아무래도 그녀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도쿄로 상경했지만, 본가에는 거의 가지 않는 것 같다. - P39

슬슬 됐으려나 싶어 남자는 다시 도미타의 스마트폰 위치정보를 알아본다. 도미타의 스마트폰은 현재 유텐지역 근처에서 멈춰 있었다. 남자는 그동안 사진의 지오태그 등으로 도미타의 집을 도립대학역과 오오카야마역 사이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런데현재의 위치정보가 가리키는 유텐지역 근처와 도미타의 집으로추정되는 곳은 조금 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곳이 바로 이나바 아사미의 집일 것이다. - P40

C


"그래서 사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구였지?"
가나가와 경찰서 형사부의 부스지마 토오루는 한 발 빨리 현장으로 달려온 후배 카가야 마나부에게 그렇게 물었다.
"근처에 사는 70대 여성이 산나물을 뜯으러 왔다가 발견했습니다. 계곡을 따라 숲길을 대략 800미터는 내려온 지점이니까 보통은 누구도 이런 곳까지 내려오지 않습니다. 다만 산나물은이런 곳에 날지도 모르겠네요." - P42

"사체는 땅속에 묻혀 있었다지?"
"네. 30센티미터 정도의 땅을 파고 묻혀 있었답니다. 두개골외에는 전부 거기에 묻혀 있었다네요." - P43

"의복과 유류품 등 신원을 알 만한 건?"
"수색중이지만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체는 알몸으로 묻혀 있었답니다."
"알몸?"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체의 추정 나이는?"
"20~30살. 키는 150센티미터에서 160센티미터 정도 사후 3개월에서 1년이 지났답니다." - P43

"부스지마 선배님? 이건 당연히 살인사건이지요?"
형사과에 배속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가야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부스지마에게 묻는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단순한 사체유기라면 일부러 땅을 파고 알몸으로 만들면서까지 묻지 않을 테니까. 흙이 드러난 땅은 비교적 파기가 쉬울 것 같지만 그래도 나무뿌리나 풀이 있어서 30센티미터 파는 것도 힘들어. 그렇게까지 해서 사체를 버렸으니 역시 그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 - P44

"범인은 여기까지 차를 이용해서 사체를 옮겼겠지요?"
"뭐, 그렇겠지. 숲길에 차를 주차하고 사체를 여기까지 옮겨서 묻었어. 땅도 그때 팠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거야. 교통량이별로 없는 도로야. 1년 정도 전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수상한 차를 봤을지도 몰라. 그 차의 목격자를 찾는 게 우선이야." - P45

부스지마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말하더니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최근에는 어디나 금연이지만 이런 산속에서는 흡연사실이 발각될 리 없었다.
"알몸으로 묻혔다는 게 좀 신경 쓰이는데."
부스지마는 입가를 손으로 막고 바람을 피하면서 라이터로 재빨리 불을 붙인다. - P47

"변태성욕자가 아니라면요?"
"그렇다면 성범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후에 신원을 알 수 없도록 꾸민 계획적인 범행일지도 몰라. 게다가 알몸으로 묻었을 정도니까 이 주변에서 딱히 피해자의 유류품을 남기는 실수는 안 했겠지?"
"네. 역시 현재까지 유류품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꽤 성가신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어." - P48

2장


A

『레이디 가가(미국의 유명가수-옮긴이)의 공연 티켓 어떻게 좀 안 될까?』
『여러 지인한테 물어봤는데 역시 이젠 힘들다. 아사이 아는 사람 중에 누구 티켓 산 사람 없어?』 - P52

도미타의 과거 라인 메시지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봐도 여러 인맥을 동원해 티켓을 손에 넣으려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정말 콘서트에 가고 싶어 하는 쪽은 이나바 아사미인 것 같았다. - P52

남자는 혼자 싱글벙글하더니, 바로 야마다 히로시로 행세할페이지 제작에 돌입했다.
그 사람 행세를 한다는 것이 특별히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아니다. 흔히 하는 것처럼 페이스북에 가입한 뒤, 이름과 메일주소, 그리고 비밀번호만 설정하면 된다. 그러나 남자는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hiro-ktv-yamada라는 문자열이 들어간 메일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새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기입했다. - P53

이 방에 살기 시작한 지 몇 달이나 지났을까?
전자레인지로 카페라떼를 데우는 동안에는 특별히 할 일도없기 때문에 우선 방에 있는 TV 전원을 켰다. 가볍게 기지개를켰을 때 꽃무늬 수납장이 눈에 들어온다. - P54

TV는 정보수집이라는 차원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어제, 가나가와 현 단자와 숲속에서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반백골 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중략). 경찰은 현재 살인사건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야생동물이 그 사체를 파헤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들켰다면 어쩔 수 없다. - P55

아깝지만 니시노 마나미의 가구와 생활용품은 전부 처분한다. 그렇게 하면 이사업체를 고용할 필요도 없다. 보증금을 포기하면 관리인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이곳에서 나갈 수가 있다. - P55

땡, 전자레인지가 다 됐다.
『친구 신청 고마워. 친구가 되자마자 너무 미안하지만, 관동TV가 주최하는 레이디 가가 공연 티켓, 어떻게 좀 안 될까?』
남자가 뜨거운 머그잔을 손에 든 채 컴퓨터 화면을 보자. 도미타가 보낸 「친구 승인」 메시지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남자는 낚시를 해 본 적이 없지만 물고기가 미끼를 문 순간에 낚시꾼이 느끼는 쾌감이 지금 자신의 기분과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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