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이 영혼의 이상적인 언어라고 믿는다.‘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 P152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의 음악은 난해하고 복잡합니다. 슈만은 피아노곡과 리트Lied(피아노 반주와 함께하는 독일 가곡)를 많이 남겼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에게 슈만에대한 공부는 필수입니다. 그는 쇼팽처럼 온화하고 따뜻했던 남자도 아니었고, 리스트처럼 현란한 기교와 훌륭한 언변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슈만은 진중하고 엄숙한 사람이었습니다 - P155
슈만은 장황한 미사구 대신 시적이고 담백한 언어를 사용하는 은유의 미학을 사랑했습니다. 특히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의 시를좋아해서 음악에도 그의 시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슈만은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음악신보》라는 잡지의 발행인이자 비평가이기도했습니다. - P156
슈만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그가 사랑했던 연인 클라라입니다. 슈만은 부인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담아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가 음표로 써내려간 은밀한 사랑의 밀어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만나볼까요? - P156
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은 어린 슈만의 놀이터였습니다. 서점이 하루 장사를 마치고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그곳은 온통 슈만의 독차지였지요. 슈만이 열세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책에 실을 글을 써보라고 했고, 출판될 책을 직접 편집까지 해보게했습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편집장 역할을 경험해본 것이지요. 부모님의 이와 같은 뒷받침 덕분에 슈만은 음악적 재능을 키워가는 동시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 P157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슈만의 세 살 손윗누이 에밀리가 투신자살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후 슈만의 형도 자살했고, 슈만 자신도 자살을 시도한 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 P158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슈만에게 법대 진학을 권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였지요. 슈만은 처음에 고향 근처의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했다가 이후 하이델베르크 법대로 옮깁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인지 결국엔 음악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 P158
자신의 첫 작품에서부터 슈만은 자신의 시그니처인 ‘음악 속 숨은 그림찾기‘를 선보인 것이지요. 슈만의 음악 속에는 이런 식으로 그만의 음악 언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 P159
슈만은 보다 자유롭고 기교 섞인 연주를 위해 약지(넷째손가락)를 독립적으로 움직이려고 연습을 하다 무리를 하여 결국탈이 나고 맙니다. 약지는 다섯 손가락 중 가장 약한 손가락입니다. - P159
이들은 모두 슈만이 임의로 만들어낸 인물인데, 이 인물들은 슈만의 상상 속에 존재했던 가상의 단체인 ‘다비드 동맹‘의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다비드 동맹 무곡, Op.6》은 이들이 등장하는 피아노곡입니다. 이 인물들은 마치 요즘 가상현실 게임 속 캐릭터와 비슷한데요. 예술가들의 상상력에는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대단함이 있습니다. - P160
그 무렵 슈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고 맙니다. 형 율리우스와 친척 로잘리가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가족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남은 사람에게 상처를 납깁니다. 아버지, 누나에 이어서 형과 사촌까지 세상을 떠나자 슈만은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급기야 우울증에 걸려 4층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합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위대한 작곡가도 결국은 연약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니까요. - P161
슈만은 비크 선생으로부터 한창 음악을 배우던 스물네 살 무렵 그의 또다른 제자였던 일곱 살 연하의 에르네스티네 폰 프리켄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전제로 약혼까지 올립니다. 그러나 이후 스승의 딸인 열다섯 살의 클라라를 만난 후 약혼녀를 뒤로한 채 클라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 P162
앞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알파벳기호로 바꾸면 ‘CDEFGABC‘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해서 슈만은 음악에 자신이나 그 음악의 주인공만 알아챌 수 있는 단어를 항상 숨겨놓았습니다. - P163
한동안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감정이 증오와 복수심으로 변했는데,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1837년 슈만은 영국 출신 피아니스트 레이들라브와 사랑에 빠집니다. 지적이고 우아한 레이들라브가 라이프치히로 직접 찾아와 슈만을 만났다고 하니 그들도 보통 사이는 아니었을 겁니다. 슈만은 레이들라브에게 《환상소곡집, Op.12>를 작곡해 헌정하고 급기야 결혼까지 생각하지만, 다시 클라라에게로 돌아갑니다. - P164
당시에는 스물한 살 이하의 미성년 여성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결혼이 가능했으므로 어린 클라라와 결혼하려면 아버지 비크 선생의 허락은 슈만에게 꼭 넘어야 하는 산이었습니다. - P165
드디어 1840년 9월12일, 클라라의 생일 하루 전날 라이프치히 근교 쇠네펠트 교회에서 둘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립니다. 처음 만나서 법정 공방까지 걸친 끝에 6년 만에 결혼에 성공한 겁니다. 라이프치히에는이들 부부가 신혼 때 살았던 슈만하우스가 있습니다. - P167
클라라와의 결혼으로 심리적 안정을 얻은 슈만은 창작력도 샘솟아 이후 여섯 권이나 되는 가곡집을 펴냅니다. 가히 ‘가곡의 해‘라고 불릴만했지요. - P169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은 하이네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곡으로 그중 첫 번째 곡인 <아름다운 오월에>가 가장 유명합니다. 열두 달 중 만물이 소생하는 5월은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차분하면서도 애절한 피아노 선율을 타고 시작되는 바리톤의 중저음 목소리는 정말 감동적이지요. 이 노래를 들으며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클라라가 되기를 꿈꿉니다. - P170
클라라는 슈만의 부인이자 연인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이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의 결혼 전 이름은 클라라 조세핀 비크Clara Josephine Wieck. 그녀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아버지비크와 소프라노 성악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마리안의 둘째로 태어납니다. 클라라는 다섯 살 때부터 일찌감치 천재 소녀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거머됩니다. - P171
그는 베토벤의 아버지가 베토벤에게 그러했듯, 클라라를 집 안에가둬둔 채 오로지 피아노 공부만 하게 했습니다. 클라라는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갔지요. 클라라는 독재자 같았던 아버지의 지나친 사랑으로 늘 답답했고, 그런 아버지가 지긋지긋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와 같은 갑갑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슈만과 결혼했는지도 모릅니다. - P172
슈만과 클라라는 슬하에 총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일찍세상을 떠난 아들 에밀을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슈만 부부는 각자의 초청 연주 스케줄 때문에 둘다 바쁜 일상을 보냈습니다. 슈만은 클라라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클라라의 그늘에 가리워진 자신의 위치에 대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작곡가로서 좋은 음악을 만들어냈지만 내심 무대에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클라라가 부러웠던 것이지요. - P172
슈만이 서른 살 되던해 결혼해서 마흔여섯 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슈만 부부의 결혼생활은 16년간 이어졌습니다. 클라라는 그사이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고, 슈만이 사망한 해에는 배 속에 유복자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슈만보다 아홉 살 연하였으니, 서른일곱의 나이에 일곱 명의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청상 과부가 된 것이지요. - P173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비롯해 자신의 삶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은 클라라 자신이 스스로 택했던 결혼에대한 부정이요, 자신의 힘든 삶을 인정해버린 격이었을 테니까요. - P174
클라라는 실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지만 직접 창작한 곡들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프로 작곡가였습니다. 물론 당대에는 슈만의 작품이 우선적으로 출판되느라 그녀의 작품은 그 뒤에 가려졌지만 최근에는 클라라 슈만이 작곡한 작품들도 자주 연주되는 추세입니다. 그녀가 창작한 곡중 1841년 스물두 살에 작곡한 <스케르초 제2번 C단조 Op.14>를 추천합니다. - P174
사랑하는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그들만의 언어와 세계를 창조합니다. 누가 들을세라 서로를 애칭으로 부르고 암호를 만들어 은밀한 대화를 나눕니다. 슈만과 클라라 역시 그러했습니다. - P175
슈만은 자신이 남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인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의 도입 부분에서 이 클라라 코드를 사용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면 조금 어려운 설명일 수 있겠지만, 그들 사이에 음악적 암호가 있었다는 정도만 이해하셔도 충분합니다. - P175
슈만은 일찍부터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시키고 싶었지만 ‘환상곡‘이라는 제목의 1악장만 발표하고 전 악장을 구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 후 클라라의 격려와 위로에 힘입어 용기를 내서 나머지 2. 3악장을 완성합니다. 즉,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클라라를 위한, 클라라에 의해 탄생한 곡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P176
이 시절 슈만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이듬해부터 점차 몸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귓속에서 계속 노랫소리가 들리는 청력 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 P177
말년에 슈만은 라인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생전(1850년)에 그는 <교향곡 제3번 ‘라인‘ E♭장조, Op.97>을 작곡하여 이 도시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 P178
그는 심신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1854년 2월, 마지막 작품인 <유령변주곡, WoO.24>를 완성하고 라인강에 투신합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낚시꾼에 의해 구조되고 청년 브람스가 그를 도와 슈만은 죽음으로부터 목숨을 건집니다. - P180
생의 많은 기간을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던 그였지만, 슈만의 음악에는 은밀함과 은유로 빚어낸 환상이 가득합니다. 슈만의 음악은 바흐나 베토벤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슈만은 그저 자기 감정이 흐르는 대로 마음껏 솔직하게 음악 안에서 유영했습니다. - P181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는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 하루, 슈만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음미하고 감상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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