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성으로 부르는 노인네 습관은 피하고 이름으로 가유스 군, 기기나 군이라고 부르겠네." 나는 끄덕이기만 했다. 몰딘이 말을 잇는다. 실은 자네들 두 사람에게 내 특별 임무에 따른 에리다나 안내와 신변 경호를 부탁하고 싶어. 지금 이 순간부터." - P111
"최근엔 흑룡 한쪽을 쓰러뜨렸다는 것도 들었고." 기기나의 얼굴에는 명확한 의심이 있었다. "에리다나 안내에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은 이해하겠어." 입술에서는 험악한 느낌을 포함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른 채 끌려왔는데 갑자기 호위를 맡으라니.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데." - P112
"그리고 일부러 우리 같은 외부 공성주식사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기가 말한 대로입니다. 몰딘 추기경장 예하께는 소위 ‘12 익장‘이라 불리는 정예 부대 공성주식사들이 따르고 싶어할 텐데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들의 이름을 대보았다. - P112
"하지만 그 12억장은 누구 하나 이 자리에는 없어." 몰딘이 말을 이었다. "그들을 데려올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나 몰딘 추기경장의 특수 임무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 P113
"그럼 내 ‘관광 안내‘를 명한다."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추기경의 호위들은 내 질문이 담긴 시선에서 눈을 피했다. - P113
12억장이라는 근엄하고 눈에 띄는 인간을 데리고 다니면 관광을 즐길 수 없겠지? 그래서 자네들이 필요한 거야." 추기경장이 일어섰다. "자, 지금부터 에리다나 축제로 들떠 있는 거리에 나가보지." - P113
헤로델을 보았다. 내 악우는 콧수염의 잔상이 남을 정도로 고속으로 얼굴을 피했다. - P113
길거리 공연, 불꽃놀이, 음악, 춤, 연극, 그리고 길과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파도. 가냘픈 아를리안 인, 왜소한 노르그무 인, 거인들만 있는 란도그인, 고양이처럼 온몸이 모피로 덮이고 삼각형 귀가 있는 아냐 인까지 있어서 인류 각 종족의 홍수가 되었다. 그것은 월급날의 창관처럼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에리다나 거리 전체가 노래, 춤으로 흔들리고 있다. - P114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호송범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야. 관광을 하러 온 거다." 가볍게 손을 내젓고 몰딘 추기경장은 걷기 시작했다. 황급히 호위들이 경비망을 이동시킨다. - P115
"확실히 에리다나에서는 법의 차림 신부나 목사 등 수십 명이 걸어 다녀도 눈에 띄지 않지요. - P115
우선은 내가 지각안경으로 음료수 성분을 확인하고 다음으로 입에 대고 혀끝에서 굴려본다.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 추기경장에게 잔을 돌려준다. "과연, 노점이라고는 해도 안심해선 안 된다는 것이로군." - P115
"바렌하이트의 무명시대의 진부한 시가 떠오르는군." "일설에 의하면 원래 노래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바렌하이트가 개작했다고 합니다." - P117
"유스 군은 음악까지 잘 아는 것 같군."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학창시절에 저작에 손을 댔을 것뿐만 아니라 바렌하이트와는 실제로도 만난 적이 있다. 최악의 학자이며 시인이었다. "하지만 기습이 유래라니, 나한테 어울리는 거리야." - P117
예외 없이 고위 주식사가 되기를 원하는 츠에 베른 용황국에서 몰딘은 주식에 관한 재능을 전혀 갖지 못했다. 병약한 팔푼이라 불렸지만 한편으로 지성과 견식이 높아 차기 오제스 선왕에 추천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장남인 쌍둥이형 아스에리오의 미움을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성직자가 되어 교회에 들어가게 된다. - P117
마침내 그는 교황 유리나스 IV세를 퇴위시키고 신수파를 소탕했다. 꼭두각시인 데레크 II세의 즉위를 성공시키고 자신은 추기경장으로 자리 잡았을 때, 사람들은 몰딘이 선량하고 순진무구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던 것이다. - P118
기기나 본인은 타인의 시선조차 무시하고 멈춰 서 있었다. 전사의 시선은 길가의 한 가게에 쏠려 있다. 오래된 의자를 향한 시선은 열을 띠고 있었다. 나는 축제의 열광적인 모습을 보고 있었다. - P118
"정말로 관광을 즐기시는군요. 혹시나 몰딘 예하는 본인이 황국의 중요 인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아니십니까?" "아닐지도 몰라." - P119
수많은 무리가 걸어가는 보도 위와 빌딩 벽면에는 입체 광학 영상, 광고 영상에서 보도 프로그램으로 바뀐다. (중략) 영상 안에서 몰딘 추기경장이 의자에 앉아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얹고서 말하고 있었다. 보도 기관의 요구에 의견을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 P119
화면의 몰딘이 말을 이어가자 눈앞에 있는 진짜 몰딘 추기경장은눈을 피하며 거리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쓴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 P119
몰딘 추기경장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나한테는 죽은 아스에리오 외에 다른 형제는 없어." "그렇다면 어떻게 된…." - P120
"저것을 연기하는 것은 12익장 중 한 사람인 제논 칼 다리우스다. 어떤 인간으로도 변장하여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연극의 천재지." 몰딘이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평소에도 변장하고 있어서 나도, 제논 군 본인도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애인지 노인인지, 맨얼굴조차 잊어버릴 정도야." - P120
들을수록 이 인물의 엉뚱한 사고와 그 이상으로 편집증적인 조심성과 이상한 취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정적이 보낸 암살자나 순교 자객까지 연중행사처럼 끊이지 않으니까. 요즘엔 동방에서 온 암살자까지 나를 노리고 움직이는 모양이야." - P121
설명을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몰딘의 눈에는 기대하는 빛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실제로 보이기로 했다. 손에 들고 있던 빈 종이컵을 던져 허리의 마장검 가드에서 주식을 전개. 포물선의 궤도가 불꽃과 함께 변화, 수평으로 비상하더니다시 궤도가 변화, 휴지통 상공에서 직각으로 굽어지며 수직 낙하했다. - P121
"초산칼륨 75퍼센트, 유황 10퍼센트, 목탄 15퍼센트를 합성하여검은 화약을 생성. 남은건 기초전자 주식으로 순차 발화시켜 궤도를 바꾼다. 저 불꽃도 이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야말로 현대는 주식의 세기로군." - P122
"유감스럽게도 주식은 만능 마법이 아닙니다. 물리적 제약에 지배되는 단순한 기술입니다." 연극에 눈길을 향한 몰딘에게 말을 던졌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수소 원자를 원소 주기표로 바로 옆에 있는헬륨으로 변환시키려면 태양과 같을 정도인 2,500억 기압, 수백만도의 고열로 정(正)의 전하로 반발하는 수소원자를 핵융합시켜야합니다." - P122
그러나 원래 학구파였던 추기경장은 따분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주식사는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을 주장하는데 자네는 낙관하지 않는군." - P123
"비관적으로 낙관한다고나 할까요." "주식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그리고 자네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하는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어떤 위인이나 철학자의 말도 사상누각과 같다고밖에 생각할 수없는 것뿐입니다." - P123
"말장난은 이 정도로 하고 단것이라도 먹지 않겠나?" 추기경장이 가리키는 방향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추기경장을 말리고 이번엔 내가 돈을 내기로 했다. - P123
사는 김에 헤로델과 호위들에게도 나눠주었다. 둘이서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것이 좀 창피했다. 기기나는 거부했다. 한 명정도는 경비에 집중하는 편이 좋겠지. - P124
"어린이가 행복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천진하게 웃을 수 있는한 나는 이 세계를 긍정한다." 몰딘의 말이 번화가를 관통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속이고 배신하고, 피를 흘리고 죽여왔어. 앞으로도 그럴 테지. 부족하다면 그 위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그래도 부족하면 더욱 위의 합리성을." - P124
"그래, 관광 안내책자에 있던 우르크 요리 가게에 가고 싶어. 나는 뜨거운 우르크 요리라면 정신을 못 차리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몰딘이 걸어갔다. 멍하게 서 있던 헤로델과호위들의 비명이 등 뒤에서 쫓아왔다. "각하, 갑자기 예정을 바꾸지 말아주십시오!" - P125
"격식을 갖춘 가게를 전세 내는 게 뭐가 즐겁지? 본토 가게 아무데나 들어가보는 것이 관광이지." - P125
에리다나의 가희 축제는 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차에 흔들리며 나는 에리나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검게 칠한 고급차는 쾌적했다. 옆에는 몰딘 추기경장이 앉아 있다. "오랜만에 즐거웠다." - P128
"티엔룬 합의에 대한 라페토데스 7 도시 동맹 비준에 단호히 반대한다!" "사람이 용, 기괴한 용모와 대화 같은 걸 할 필요는 없다!" "츠에베른 용황국도 조약을 파기하라!" 사람들의 목소리에 몰딘이 쓴웃음을 지었다. "티엔룬 조약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군." - P129
"하지만 라페토데스 7 도시 동맹이 황국에서 독립한 것은 고작해야 백 년 전의 일이야. 수백 년도 더 전인 황력 36년에 맺은 티엔룬조약을 동맹이 비준할 필요는 없었지." 몰딘의 목소리에 진지한 기운이 섞였다. - P129
"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나?" 내 움직임을 저지하듯이 몰딘의 질문이 스며들어왔다. "무지와 빈곤이 결합하면 행진하는 수밖에 없겠죠." "그들의 주장은 어떤 부분은 정당해. ‘기괴한 용모‘와 인간과의사이에 진짜 이해나 융화 같은 건 있을 수 없어. 모두가 사이좋게지내자는 말은 꿈같은 헛소리지." - P131
"적에게 가족이나 지인이 살해당했다면 조약이 허락하기 어려운 타협으로 생각되겠지요." - P131
조수석의 헤로델이 자리 위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여기 머무르는 편이 위험합니다. 걸어서 린츠 호텔로 갑시다." 내가 먼저 밖에 나가서 차폐물 역할을 하면서 몰딘 추기경장을나오게 했다. 기기가 이어서 옆을 호위했다. 앞뒤의 차에서 호위들이 나와 더욱 굳건한 벽을 만든다. - P132
경관대와 시민이 서로에게 경찰과 간판을 휘두르며 격돌하는와중에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아젤이 뛰어다니고 있다. 아젤은 시민을 발로 차는 경찰에게 "어이, 권력의 개 신문에 잘나오게 좀 더 박력 있게 차봐!" 라고 지시하며 촬영했고 경찰차량을 쓰러뜨리는 시민에게는 "분위기에 휩쓸려 난동을 피운 지금 기분은?" 하고 물으며 기록하고 있다. - P132
대리석 기둥 사이에 있는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자 작은 현관이 있었다. 헤로델이 휴대 주신기를 갖다대자 문이 열렸다. "귀빈용 특별 출입구야. 자동승강기도 여기에서 직통으로 가는게 설치되어 있어." - P133
"헤로델, 앞으로의 경비 계획은 어떻게 되어 있지?" "린츠 호텔 13층을 통째로, 그리고 위층과 아래층도 위장으로 빌렸어. 강력한 주식 결계와 경비 장치가 몇십 겹으로 쳐져 있어. 준전략급 공성주식의 직격을 맞아도 버틸 수 있어. 즉 백 퍼센트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지." - P133
"남은 건 호위하는 오제스 왕가의 기사들과." 호위들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나와 기기나를 바라본다. "가스와 기기가 감시해주면 만전을 기하는 것이지." - P133
"내일 아침부터 할 관광까지는 호위도, 안내도 필요 없어." 몰딘의 말에 헤로델이 안색이 변했다. "각하, 호위를 물리시다니!" "백퍼센트 안전하다고 말한 것은 헤로델 군이야." - P133
"게다가 헤로델 군과 유스 군도 오랜만의 재회라서 할 이야기가 많겠지? 오늘 밤은 추억담이라도 나누지 그래. 나는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지 않나?" 몰딘 추기경장이 혼자서 납득한다. - P134
"갑작스럽게 일을 부탁해서 미안해. 여섯 잔째의 제다 술을 정확히 반 정도 마신 헤로델이 입을 열었다. "각하의 변덕 때문에 갑작스런 관광을 하게 되어 아무래도 현지사정에 밝고 신용할 수 있는 공성주식사를 생각했더니 너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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