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 이백 년 전 프로이센에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태어난 두사람이 있었다. 둘은 풍성한 수염을 길렀고 오래도록 남을 선언문을 런던에서 발표했다. 추종자들은 이십여 년 후 파리의일부를 점거하고 혁명을 선포했다. 바리케이드 안쪽 술집에서 한 철도공이 기분에 취해 몇 줄의 가사를 썼다. 혁명정부는 백일이 되기 전 진압당했지만 가사는 남았고 한 가구공이 멜로디를 붙였다. - P111
수십 년 뒤, 미국을 대표하는 두 팝스타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노래를 공동 작곡했다. <We Are The World>. 노래는 전 세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당시에만 천사백만 장가량 팔렸다. 육 년 뒤에 소비에트연방은 해체되었다. 두 명의 스탠퍼드 대학원생이 기숙사에서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을 만들고 있을 때 서울의 한 부부는 외환 위기의 여파 속에서 서로의 무능을 탓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 P112
21세기. 평양에서 두 정상은 악수를 나누었다. 컨츄리꼬꼬가 예능계를 정복하는 동안 다이나믹듀오는 핸들이 고장난 8톤트럭이 되었고 유노윤호는 지상파 무대 위에서 최강창민의 생일을 축하했다. - P113
대개는 내야 할 어떤 돈을 내지 않았다는 안내문이었다. 그날 봉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중략). ‘너도 봉투 받는 애구나.‘ 여자애라거나 남자애라거나, 귀엽다거나 못생겼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못한다거나 이전에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서로를 그렇게 알아봤다. - P114
남자애들은 유행어를 시끄럽게 주고받으며 조르고 밀치고 뛰었다. 그러다 누가 니콜라이를 이렇게 도발하곤 했다. "나 러시아어 할 줄 앎. 쓰바씨바! 앙 니콜라이!" 앙 기모띠, 앙 급식띠, 앙 회오리감자 같은 말을 외치고다녀서 별명이 앙맨인 녀석이었다. 니콜라이가 앙맨에게 "씨바 디졌다 너" 하면서 우당탕 추격전이 시작됐다. - P114
진주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동안 니콜라이는 자격증 대비반에서 쇠를 깎았다. 진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담임교사를 신뢰했다. 애들은 비즈니스 담임이라며 욕했지만, 그녀는 진주의 가정 사정이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했고 국내최고의 대기업이 매년 벌이는 장학 사업에 연결해주었다 - P117
"부모님 밖에서 기다리시겠다. 얼른 가봐." 니콜라이는 기능반에서 전국 대회를 준비할 정도로 재주가 좋진 않았지만 성실히 수업을 들었다. 한 고위 공직자의 자녀문제로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시끄럽던 사이 조용히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었다. 4세대들도 장기 체류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니콜라이의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 P118
현장실습은 어째서인지 냉동 만두 공장이었다. 만두 봉지를 스티로폼 보냉 박스에 넣고 테이핑한 뒤 팰릿에 올리는 게 일이었다. 그걸 사백 번쯤 하면 하루가 갔다. 팰릿을 지게차로 옮기는 형은 기능사 같은 건 자기도 네 개나 있다며 차라리 지게차 면허가 쓸모 있다고 했다. (중략). "그래도 여긴 실습생한테 죽을 일은 안 시켜." - P119
오 년이 지나는 동안 둘은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나 그보다많은 사람과 헤어졌고 몇몇은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되었다. (중략). 대신 버스에서 이런저런 커뮤니티 게시판을 스크롤하며 킥킥거렸다. 검성 고길동이 양아치 둘리를 베어버리는 만화는 진짜 웃겼다. 여윳돈이 없어서암호 화폐를 사지 못했고 ‘떡락‘하는 차트를 본 이병헌이 "으악 안 돼!"라고 외치는 영상을 보며 웃었다. - P119
볼빨간사춘기가 1인 그룹이 되는 사이 맥도날드와 김밥천국으로부터 홍콩반점과 할매순대국으로 혼자 갈 수 있는 음식점이 늘어났다. ‘그 돈이면 뜨끈한 국밥이 삼천 그릇이지‘ 같은 댓글에 추천을 눌렀다. 한 번쯤은 ‘네가 선택했잖아‘라는 말을 들었고 그건 그렇다고 끄덕거렸다. - P120
두 시간 뒤에 니콜라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커다란 눈이 튀어나온 초록색 개구리가 하얀 이가 보이도록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든 이미지. 진주도 아는 개구리였다. 때로 침울한 표정으로 밧줄을 목에 걸고, 때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춤추는 개구리. 진주는 삼 년전에 구입한 펭수 이모티콘을 골라 답장했다. - P121
니콜라이는 냉동만두와 선풍기, 피부과에서 쓴다는 의료기기 부품 공장을 거쳐 자동차 전조등 생산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2차 하청이었지만 굴지의 대기업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일해본 공장 중에서는 가장 나았다. 벨트에서 하우징을 내려 작업대에 고정시킨다. - P122
진주는 대학생활 내내 편의점과 생과일주스 가게와 무한으로 즐기는 돼지갈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하고는 사무실 두 군데에 취업한 적도 있었다. 수당 없는 초과근무와 급여 지연, 갑질과 성희롱. 차라리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깔끔했다. 주 5일 35시간 근무. 최저임금보다 천원 많은 시급을 칼같이 계산해서 정확한 날에 입금해줬다. - P123
"다음에는 내가 삼." <타짜>의 곽철용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묻고 더블로 가!‘라고 외치는 이미지도 함께 날아왔다. 진주는 잔망 루피가 ‘군침이 싹 도노‘라며 짓궂게 웃는 이미지로 답했다. 이 주 뒤 두 사람은 보글보글 끓는 감자탕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일인용 뼈해장국에는 감자를 안 넣어준다는 ‘국룰‘을 함께 규탄하였다. - P124
"우리 무슨 맛집 동아리 같다. 그치?" 두 사람은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페퍼로니 피자와코다리갈비찜과 치즈김치전을 먹으러 다녔다. 한번은 맥주를시켰는데 종업원이 신분증을 요구했다. 진주가 "아직 살아 있네" 하며 헤헤 웃었는데 니콜라이가 거소신고증을 꺼냈다. "나 외국인 노동자인 거 몰랐냐? 헤헤." 이번 공장은 내국인이랑 돈을 똑같이 주고 보험도 다 가입해줘서 좋다고 덧붙였다. - P125
(전략). 물론 영주권을 받는 데도 여러 조건이 있었다. "소득 기준이 있다고?" 니콜라이는 전년도 한국인 평균 이상을 벌어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으며, 그건 연봉 삼천팔백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 P125
수백억을 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한다는 줄거리의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졌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니콜라이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진주에게는 투표권이 있었지만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 P127
(전략). 라면 다섯 봉지와 계란 여섯 알, 조미김 한 팩과 인스턴트건조 미역국을 주문하는 사람. 그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비싼 캐나다산 개 사료를 한 번에 다섯 봉지씩 주문하는 사람. 오만이천원짜리 스페인산 올리브유 아홉 병을 한 번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요리해서 먹는지, 십삼만구천원짜리 이탈리아산 소가죽 벨트를 쏜살배송으로 주문하는 사람의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 P127
정말 여유로운 사람들은 마트에 직접 오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 P126
. 공장에 오래 다닌 아저씨들은 새 정권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손보면 다시 2조 2교대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오년 전만 해도 어지간한 공장은 다 주야 2조 2교대였다고, 그정도는 해야 돈을 번다고 하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니콜라이도 셈을 해봤다. 주당 72시간을 근무한다고 치면 연 삼천팔백만원을 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P129
낙엽이 다 떨어지는 동안 진주와 니콜라이는 서로의 방에몇 번 갔다. 다를 것도 없는 방이었다. 자취생들이 애용한다는 인터넷쇼핑몰에서 낮은 가격 순으로 검색해 고른 가구들. 다이소에서산 생활용품들. 당장이라도 상자 두어 개에 쑤셔넣을 수 있으며 일부는 실제로 상자에 담긴 채 방치된 것들. 집이라기보다는 이사와 이사 사이에 잠시 머무르는 방. - P131
"요즘 애들은 어쩔티비 저쩔티비 그런 말을 한대." 진주도 들어본 말이었다. "뒤에 다른 걸 막 붙이는 거지. 어쩔시크릿쥬쥬리미티드에디션, 어쩔엘지트롬스타일러, 어쩔다이슨V15디텍..... 아씨이건 뭔지도 모르겠다. 어쩔메르세데스벤츠에스클래스내돈내산......" "뒤에 더 비싼 걸 붙이면 이기는 거야?" - P132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료 통지서나 처음 들어보는 병명의 진단서를 덜컥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 P133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빨간 모자를 쓴 해병 병장은 네가 선택한 길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 했고 김정은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추노꾼 장혁이 오열하며 삶은 계란을 씹었고 개구리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안 젖을 수 없는 여기는 아마아마 아마존,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미소를 짓는 옆 나라의 정치인, 인생이란 역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끄덕), 둘리가 답했다. 아이 싯팔 - P134
어느 주말 진주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방에 누워 있다고 답장했을 때, 니콜라이는 ‘이불을 덮은 개구리‘와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고양이‘ 이미지를 고르려다가 그 꼿꼿이 선 소녀를 택했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 P135
두 사람은 경기도 서남부의 한 도시에 함께 도착했고 같이 살아보기로 결정했으며 그것에 대하여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않았다. - P139
진주와 니콜라이가 <인터내셔널가>의 작고 뾰족한 재생 버튼을 눌러본 것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이었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진주와 니콜라이의 검색어를 기억했다. - P137
나흘 뒤 늦은 밤에 귀가했을 때 현관 앞에 묵직한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중략). "피자나라 치킨나라도 아니고, 피자왕자 치킨공주도 아니고, 왜 피자나라 치킨공주인 거야?" - P140
처음으로 함께 산 가구였다. 음식이 오고 있었다. ‘메이드인 차이나‘는 역시 ・・・・・・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대륙의 저편에 있는 금형 공장과 달아오른 기계, 기름때가 묻은 러닝셔츠를입은 중국인 혹은 중국인이 아닌 누군가, 그가 점심으로 건져올리는 이름 모를 하얀 국수가 떠올랐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들을 상상하니 어쩐지 탓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 P141
연애가 망하더라도 사랑은 망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저렴한 각본으로 사랑하느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어차피 첫 단추부터 이상했으니까. 차라리 이것은・・・・・・ 딩동. 음식 도착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우리는 친한 사이야." - P142
세상 모든 바다
당신은 ‘세상 모든 바다‘의 팬입니까. 아무에게나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해도 될까. - P9
나는 그날 잠실에 모인 십삼만 명 중 한 명이었다. 서울에서 유학중이었으므로 잠실 주경기장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철로 삼십 분. 콘서트 티켓은 없었다. 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지만, 나는 공연을 꼭 눈앞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 P10
그리고 공연 며칠 전부터 트위터에서 돌던 소문이 있었다. 첫 투어 종료를 기념하여,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경기장 바깥에서 게릴라 라이브를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 세모바다운 아이디어긴 했다. 그녀들은 늘 모든 팬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닿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면, 나는 그 소문을 믿진 않았다. - P11
잠실에 모인 이들은 인권과 환경에 대하여 세모바가 보여준 꿈을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88올림픽 이후 잠실이 가장 세계적인 순간‘이라고 트윗했던 것이 기억난다. 88올림픽은 군사정권이 꾸며낸 꿈이었지만, 지금의 잠실은 자발적으로 이뤄낸 것이기에 아름답다는 의견이 수만 번 리트윗되기도 했다. - P12
"오 외국인? 일본인이에요?" 그런 질문은 내겐 괜히 까다로웠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재일 교포 3세다. 나는 스물두 살 때 자이니치 4세가 되는 것을포기하고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나로서는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았다. - P13
"Yes. I‘m from Japan." 99솔직히 말해서 한국어로 대답하면 대화가 길어질 듯했다. 영록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투박한 운동화와 어정쩡한핏의 청바지.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가 커다랗게 박혀 있는 땀에 젖은 티셔츠. 바싹 올려 멘 백팩에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 어째서 세계 오타쿠들의 패션은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는거야, 라며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마이 네임 이즈 백영록. 나이스투미츄!" - P14
일본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나는 나가사키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그 옆 동네지만, 정확히 말해도 그가 알 것 같지 않았다. 영록은 "아이 원트 투 잇 나가사키 짬뽕" 같은 소리를 하다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말했다. "아임 프롬 해진. 유노 해진군? 경상북도?" 평범한 외국인이라면 해진군을 모를 것이다. 한국인에게조차 낯선 곳이니까. - P15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영록에게도 티켓이 없다는 사실을알게 됐다. 나 자신도 티켓이 없었으면서 참 이상하지만, 당연히 영록이 콘서트를 보러 온 줄 알았다. 가본 적이 없어 정확히는 몰랐으나 해진은 경상북도의 어디였고, 분명 먼 곳이었다. 수 시간 버스나 열차를 타야 하는, 아마도 번거롭게 환승도 해야 하는 곳. - P17
나만큼이나 인기가 없던 친구를 따라 후쿠오카에서 열린 라이브에 간 적이 있다. 지하 소극장에는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그대로의 일본 오타쿠들이 잔뜩 있었다. - P18
라이브가 끝나고 쉰내 나는 오타쿠들 틈에 섞여 극장을 나올 때, 나는 지나가던 여고생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기모이キモい......"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다. 요새 한국말로는 ‘극혐‘ 정도일 것이다. 나는 그 기이한 오타쿠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 P19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케이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블랙핑크나 트와이스 같은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주로 귀여움을 판매하는 일본의 걸 그룹에 비해 케이팝의 그녀들은 더 유능하고 당당해 보였다. 멋있는 프로페셔널로서 지지할 수 있는 느낌. - P19
"하쿠 상은 좋겠다. 좋아하는 거 다 말할 수 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되묻자 그는 대답했다. "내가 걸 그룹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두 가지로 반응해첫째는 ‘네가 여자가 없으니까 그러지고, 둘째는 ‘네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지‘야." - P21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한국 굴지의 엔터사에서 빠르게 임원이 된 프로듀서는 말했다. 선도적인 문화 콘텐츠로서 케이팝은 이제 ‘공존‘이라는 시대적 화두에 답해야 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왜 그들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어야 하는지, 열한 명 중에 아프리칸은 한 명뿐인데 아시안은 일곱 명이나 되는지를 문제삼았다. - P22
오래전부터 축적된 케이팝의 팬덤 조직 문화는 세모바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빛나는 순간들.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행진하던 성소수자들 속에도, 홍콩 코즈웨이베이의 시위대 속에도 팬들은 있었다. 그들이 세모바의 노래를 제창하는 영상은 천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 P23
트위터에 홍미로운 소문이 있다고. 티켓이 없는 팬들을 위해 경기장 바깥에서 게릴라 라이브를 할지도 모른다고. "왓? 리얼리?" 영록이 그 소문을, 내가 ‘rumor‘라고, ‘maybe‘라고 강조한 그 이야기를 얼마나 믿었는지는 알 수 없다. - P24
나는 그 일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확한 증언은 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집에 돌아온 뒤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날 잠실에 모인 십삼만 명 중에 한 명이었다는 것 역시 완전한 사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 P25
아니, 이런 것이야말로 내 상상일 뿐이다. 팬들이 장대비 속에서 그곳에 있다고 믿은 세상 모든 바다는 진짜가 아니었다. 가발과 의상까지 준비해 세모바인 것처럼 꾸민 열한 명의사람들, 그리고 몇몇 조력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러야 할까. 어떤 매체들은 그렇게 표현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세모바를 카피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적당히 이목을 끌고 나면 모형 총을 꺼내어 서로 쏘고 쓰러진다. - P26
너무 그럴듯한 모형 총을 준비한 게 문제였을까. 목격자들은 누군가 영어로 ‘Gun!‘이라고 외쳤고, 곧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다. 음악에 미리 덧입혀둔 총소리는 조악했다. 사람들은 총소리보다 비명소리에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 P27
영록은 그 속에서 안경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홉 명이 죽고 이백여 명이 다쳤다. 사고 일주일 뒤, 추모를 위해 팬들이 만든 웹 페이지가 공개되었다. (중략). 영록은 ‘경상북도 해진군의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라는 프로필뿐, 어떤 소셜미디어 계정도 없이 중학교 졸업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 P27
영록이 사망자 중 가장 어리며, 해진 주민이었다는 점을 많은 팬이 언급했다. 그가 영어 회화 동아리의 부회장이었다거나, 늘 교실의 분리수거를 담당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녔다. 영록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 혹은 다른 글들에 의하면 선원이거나 만화가였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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