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한반도 SF의 유입과 장르 발전 양상
구한말부터 1990년대까지의 남북한
SF에 대한 소사(小史)

이지용



1. 장르의 역할과 SF의 특징

장르(genre)는 일종의 관습(convention)이 표면화된 상태다.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고 있는 구성상의 관례 내지 규약이고 묵계라는 구조주의 이후의 용어에 대한 정의¹는 이러한 장르의 관습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1) H.M. 아브람스, 최상규 역, 「문학용어사전」, 예림기획, 1997, 146-148쪽 참조. - P152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까지 그 형태들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장르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장르의 요소들은 로맨스(Romance), 추리(推理), 역사허구물(Historicalfiction), SF, 판타지(Fantasy), 무협(武俠), 코미디(Comedy) 등을 들수 있다²

2) 이와 같은 구분은 대중서사장르연구회에서 발간한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시리즈의 권호 구분을 기본으로 하였다. 해당 시리즈는 2007년 ‘멜로드라마‘를 시작으로 ‘역사허구물‘(2009), ‘추리물‘(2011), ‘코미디‘(2013), ‘환상물‘(2016)까지총 5권이 발간되었다. 해당 시리즈의 분류에서는 환상물에 SF와 판타지, 무협을 포괄하여 다루었으나, 해당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역사 및 유입경로의상이함, 그리고 내재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지화된 특성 등의 비중이 각각 다르게나타난다. 게다가 환상물 분류에 속해 있는 장르(SF, 판타지, 무협)들이 남한의 장르문학(문화)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고(특히 무협과 같은 장르는 남한과 중국에서만 특별하게 나타는 장르인데다가, 1970~80년대에 남한에서무협이란 장르가 활발하게 소비될 수 있었던 사회적인 함의까지를 감안해 볼 때 남한의 문화예술 장르를 연구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소비되고 있는 양상 등을 감안하여 각각 따로 분류하였다. - P153

그중에서도 SF는 추리서사와 함께 장르의 유입 시기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 문학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존재해왔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 P153

SF(Science Fiction)는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장르이다. 용어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말에는 "과학으로 인해 드러난 진리들이 본래 시적이고 진실한, 즐거운 이야기와 서로 얽히고 설킨 것"³이라고 SF를 설명했는데, (후략).



3) William Wilson, "A Little Earnest Book Upon A Great Old Subject", Darton andCo., holborn hill(London), 1851, pp. 138-139. ("Now this applies especailly toScience-Fiction, in which the revealed truths of Science may be given,
interwoven with a pleasing story which may itself be poetical and true.") - P154

이후로 SF를 장르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의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초기에는 단순히 과학기술과 그것으로 인해 발전된미래에 대한 담론들을 다루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SF의 관습적 코드들을 단순히 과학기술로한정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나타났고, 그러기 때문에 데이비드 시드(David Seed)는 SF가 한마디로 정의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 다른 장르들이나 서브 장르들이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⁵

5) David Seed, "Science Fic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University Press, 2011, p.1. - P155

(전략). 그러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여 현대 SF의 특징이 되는 요소들을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소재를 통해 세계관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정의하는데, 이것이 바로 외삽(外揷, extrapolation)과 사고실험(思考實驗, thought experiment)인 것이다. - P156

(전략). 그러기 때문에 다르코 수빈(Darko Survin)은 "SF는 낯설게하기와 인지작용이 필요충분조건으로 존재하고, 그것들 간에 상호작용이 있어야하며, 작가의 실증적 경험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이 주요한 형식인 문학장르이다."⁷라고 정의하면서 SF가 단순히 수용자 중심의 콘텐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7) Darko Survin, "The Metamorphoses of Science Fiction: On the Poetics andHistory of a Genr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4, pp. 7-8. ("SF is aliterary genre whose m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are the presence andinteraction of estrangement and cignitoin and whose main formal device is animaginative alternative to the author‘s emopirical exoperience." - P156

특히 남한과 북한을 나누어서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는 것은 남한과북한이 분단 이전에 동일한 유입경로를 가지고 있었던 장르를 분단 이후 장르를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로의 영향을 받았는지와, 당시의 사회구조적인 맥락에 의해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이를 다루기 위한 담론의 집적 자체가 한국에서는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본고는 해당 시기를 다루기 위한 전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 P157

2. 한반도의 SF 유입과 발전 양상

1) 구한말 도입기의 특징들

한반도의 SF는 구한말 근대화로 일컬어지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계몽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도입된 장르였다.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에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⁸

8) 이지용, 「한국 SF의 스토리텔링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5, 45쪽 참조. - P158

하지만 일본의 영향이 계속 이어진 흔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P159

도입기에 소개된 작품들을 보면 1800년대 후반에 발표되었던 쥘베른이나 웰스의 작품들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번안되었고, 닉 카터시리즈나 『R.U.R』과 같은 작품들의 경우엔 당시의 사회적 상황으로감안했을 때 유럽에서 발표된 작품들이 약 5년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동아시아에 소개된 것이었기 때문에 거의 동시대에 해당 텍스트가소비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P160

(전략). 이렇듯 다양한 형태로 한반도에 유입된 SF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기치를 견지하고 있었다. 조국의 근대화,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위한 서양의 과학기술의 계몽이라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 P161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되고, 출판과 한국어 사용에 대한 검열이 점점 더 심해짐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이야기들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당연히 창작자나 식자층의 확보 자체가 어려워진 SF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 P162

2) 남한에서의 공상과학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SF가 명맥을 이어가게된다. 이 시기의 특징들은 번역과 번안 작품들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한낙원의 『금성탐험대』(1967)와 같은 창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163

1950년대 미국에서 전문잡지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뉴웨이브(New Wave)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을 시점이었지만, 남한의 SF는 아직 구한말의 인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분단 이후 남한 SF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창작물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¹⁷ - P163

이러한 문제는 SF를 번역하여 통용하던 ‘공상과학소설(空想科學小說)‘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오역을 통재 전해진 해당 용어가 상당 기간 동안 수정이 되지 않고 통용되었다는 것은 용어가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에 대한 견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1) 공상과학소설은 "일본에서 1960년대 《SF 매거진>이 창간되었는데, 표지에 미국잡지의 명칭을 ‘공상과학소설지(空想科學小說誌)‘라고 병기" 했던 것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생긴 일종의 오역이었다. 일본에서는 이후 이를 ‘fantasy‘와 ‘SF‘를함께 일컫는 용어로 변용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수정과정을 거치지 않고SF의 등가대응어로 상당기간동안 사용해왔다. (박상준, ‘SF문학의 인식과 이해,
「외국문학」 제49호, 열음사, 1996, 23-24쪽.) - P165

이러한 문제점은 1967년 윤성이 『완전사회』를 발표하면서 아동·청소년이 아닌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SF를 발표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문윤성의 작품들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완전한사회라는 젠더에 대한 사고실험을 견지하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이를해석할 만한 기제들이 당시에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P166

그리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SF의 저변 확대를 당시에는제한된 수용자 층으로 인해서 콘텐츠의 비평이나 이론적 담론들의 형성이 미진한 한계를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시에 확보된 아동·청소년 독자들이 1990년대 이후 능동적인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 P168

3) 북한에서의 과학환상


전후(戰後) 북한에서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SF가 나타나지않는다. 이는 대중수용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르의 특성상 전후복구기를 지나면서 이전까지 서구화를 위한 계몽의 도구로 도입되었던 텍스트들이 대중적으로 활발하게 소비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P169

하지만 해당 용어에서 지칭하는 과학과 환상이라는 언표는 러시아의 장르 규정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북한에서는 모든 문화예술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해 사회주의 이상향을 구축하기위한 기제로서 작용해야 하는데, 사실 북한이 견지하고 있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는 환상(fantasy)에 대해 되도록 지양하는 기조를가지고 있다. - P171

북한의 과학환상문학 작품에서는 주로 자연에 대한 극복이나 농업생산성의 증대, 의학기술의 발달 등 국가적으로 당면해 있던과제들에 대한 미래지향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형태의 작품들이 많이등장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지점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활극적인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경우도 많지만, 문학에서는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다. - P172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공산주의리상사회,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실현된 앞날의 우리 조국의 모습, 자주화된 세계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내는"³³ 문학장르여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SF가 외삽이나 사고실험을 통해서 미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지점들이 상당 부분 소거된다.


33) 황정상, 『과학환상문학창작』, 평양예술종합출판사, 1993, 4쪽. - P173

(전략).
대표적으로는 소재적 차용과 모티프는 전통설화로부터 차용했지만, 이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한 이야기의 구조나제작 방법에 있어서 특수촬영(Special Effect Works Production) 기법을 활용한 <불가사리>(1985)와 같은 작품인데, 이는 북한의 문화예술분류에서 과학환상영화로 규정될 수 있는 여지들이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로만 분류하고 있다.³⁴


34) 이지용, ‘북한 과학환상영화의 장르적 의미 연구-북한 문화예술에서 ‘환상‘의의미와 필요성」, 「동아시아문화연구』 제69집,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7, 199쪽 참조 - P173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남한의 SF가1960년대 이후 그러했던것과 같이 아동·청소년을 위한 장르로의 유용이 특징적이다. 물론 수용자의 한정성이 가지는 한계보다 장르에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문제시될 수 있는 부분이다. - P174

한반도의 SF가 둘로 나뉘긴 했지만, 남한과 북한의SF가 각기 다른 영향권 내에서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담론을 한반도 범위로 확장해 판단할 때 흥미로운 부분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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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처럼 즐거운 놀이를 어찌 우리만 즐길 수 있습니까? 그동안 수고가 많은 대신들에게 성총을 베풀어 참석하게 하옵소서."
주왕의 명령 하나로 연못은 술로 가득 채워지고 나뭇가지에는 고기가 달려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자는 누구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모두들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되 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해괴한 영이었다. 아무리 지체 높은 대신들이라도 왕의 영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P50

"폐하, 저자들을 보옵소서."
달기가 주왕에게 속삭였다. 주왕은 달기가 턱짓으로가리키는 곳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연못가에는 아직까지도 주왕의 영을 어기고 있는 늙은 신하 몇이 허리를숙이고 있었다.
"너희들은 왜 여태까지 옷을 벗지 않느냐?"
주왕이 늙은 신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폐하, 이런 짓은 짐승만도 못하옵니다. 멈춰주십시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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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갈색의 건물을 올려다보며 마요는 심호흡을 했다. 지은 지 20년도 더 된 건물에 있는 집이었지만 미나토구 시로카네(金)에 자리한 데다 백 평은 더 되는 평수이니 아마 시세도 2억 엔은 더 되겠지. - P9

 마요는 목례한 뒤 실내로 들어와명함을 내밀었다. "분코 건축사무소 리폼부서 가미오라고 합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성은 명함을 보고 싱긋 웃었다.
"가미오 마요 씨. 젊은 분이시네요. 건축사라고 해서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 오실 줄 알았는데요." - P10

마요는 실내를 한 바퀴 둘러봤다. 사전에 조사해놓은 평면과 같았다. 2LDK* 였는데, 거실과 주방 크기만 해도 다다미 스무장**은 더 될 정도로 널찍했다.
우에마쓰 가즈미는 이 집을 1LDK로 만들어달라고했다. 리폼보다 리노베이션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 거실(Living room), 식당(Dining room), 부엌(Kitchen room)의 약자로, 방두 개에 주방과 거실 구조를 의미한다.
** 일본에서는 다다미 한장(1.53㎡)을 기준으로 방의 크기를 측정한다. - P11

"아직 생각을 안 해봤고, 정해진 것도 없어요. 새로운 집을 보고 정하려고요."
"그럼 현재 사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우에마쓰고객님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을것 같아서요." - P12

(전략). "혹시나 해서 여쭤본 거고요. 그럼 제가 몇 가지 콘셉트를 준비할 테니, 그걸 토대로 상의하는 건 어떠실까요?"
우에마쓰 가즈미는 생긋 웃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일주일쯤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일주일,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 P13

일주일 뒤, 우에마쓰 가즈미에게 연락을 넣었다. 어떤 구조로 할지 대략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기에 확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전에 말씀하신 에비스 자택으로 찾아뵈면 될까요?" - P14

2

(전략).
"영업 준비 중이라는 팻말 못 봤어? 영업 전에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고."
"준비하면 되죠. 우리는 탁자하고 의자만 있으면 된다고요. 그리고 대체 뭘 준비하는데요? 술잔 닦는 것정도잖아요."
"무슨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예를 들면 손님이 칵테일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에 대비해 재료 재고도 살펴봐야 하고, 재고가 남은걸 소진해야 하니까." - P15

"그러지 말고 앞으로도 좀 도와줘요. 오랜만에 들어온 큰 건이라고요. 그리고 의뢰인이 미인이에요. 화장은진한 편이지만, 삼촌도 보면 마음에 들걸. 게다가 부자고."
(중략).
"아마도요 시로카네에 방 두 개짜리 맨션을 사서 리노베이션을 맡기잖아요. 예산은 삼천만 엔 이내라고 했지만, 콘셉트가 마음에 들면 분명 더 낼것도 같았어요." - P16

"부자와 친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제법 좋은 고객을 잡았네." - P17

돌아가신 아버지의 동생인 다케시는 마요의 얼마 없는 혈육이었다. 이곳은 다케시가 운영하는 ‘트랩핸드‘라는 이름의 바다. 카운터석과 안쪽에 탁자가 하나 있는 작은 가게였다. - P18

"어서 오십시오. 제 조카가 신세를 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다케시는 우에마쓰 가즈미의 얼굴을 보고 앗, 하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마요한테 우에마쓰라는 희귀한 성을 듣고 같은 성을가진 지인이 떠오르더군요. 혹시 우에마쓰 고키치 씨사모님 아니십니까?"
우에마쓰 가즈미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남편을 아시나요?" - P19

"지금으로부터 칠팔 년 전이었던가요. 인터넷 체스사이트에서 만났습니다. (중략). 그때 사모님과도 인사를 나눴는데………"
(중략).
"그랬나요.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하네요. 죄송합니다. 남편 손님이 워낙 많았거든요." - P21

우에마쓰 가즈미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삼 년 전에 작고하셨습니다." - P21

"원래는 계속 그 집에 살 생각이었어요.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집이니까요. 하지만 반년쯤 전에 도둑이 든뒤로는 혼자 살기 무서워져서..."
"도둑이요? 큰일을 겪으셨군요."
"제가 집에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혹시라도 마주치기라도 했으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죠."
우에마쓰 가즈미는 두 손으로 팔을 감쌌다. - P22

"진짜 그러지 좀 마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우에마쓰 가즈미를 배웅한 뒤 마요는 카운터 안쪽의다케시에게 투덜거렸다.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갑자기 우에마쓰 씨 부군이 어쩌고 그랬잖아요. 그건 어떻게 알아냈어요?" - P23

"우에마쓰 씨는 팔 년 전에 이 집을 일억 육천만 엔에매수한 모양이야. 대출을 끼지 않고 전액 지불했다더군.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소유자의 전체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해당하는 인물의 정보가 나오더군." - P24

"뭣 때문에? 네 일이 잘 풀리게 하려고 이러는 거 아냐! 주택 리노베이션이라는 큰일을 맡기는데, 생면부지의 상대보다는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사람이 마음놓이지 않겠어? 여기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너희 사무소랑 계약할 것 같던데."
(중략).
"표정이 왜 그래?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 P26

하지만 우에마쓰 가즈미가 선택한 건 정통파 콘셉트였다. 과감한 콘셉트와 심플한 콘셉트에는 눈길조차주지 않았다. - P27

"왠지 가격으로 정한 것 같아서."
(중략).
"아니. 견적은 제일 비싸요. 평범하고 지루한 디자인이라 재료를 고급으로 했어." - P27

"우에마쓰 씨, 아무래도 다른 사무소엔 의뢰 안 했나봐. 보통 이런 일은 잘 없거든요. 대부분의 고객들은 여러 사무소에 의뢰해 콘셉트와 견적을 낸 다음에 그중에서 본인 취향에 맞고 저렴한 콘셉트로 정하려 하는데." - P28

"아마 젊었을 적부터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겠지. 그런 남자들은 거들떠도 안 보고, 자기보다 갑절은 나이 먹은, 게다가 지병이 있는 영감을잘 구슬러 결혼했잖아. 자식이 없으니 남편이 죽으면 전 재산은 자기 거니까. 그리고 계획대로 됐지."
"처음부터 유산을 노리고 결혼했단 소리예요?" - P28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뭐 어때. 말해두지만 비난하려는 게 아냐. 오히려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 고독한 영감님이 그 많은 재산을 저승길 갈 때 싸가면 누가좋겠어. 고작해야 국고나 채워주겠지. 영감님도 노년에 젊은 여자하고 같이 살았으니 좋았을 거야. 그리고영감님이 세상을 떠난 뒤 미망인이 유산을 물 쓰듯 쓰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지. 문제는 그 남아도는 돈이 어떻게 하면 나한테까지 흘러오게 하느냐, 인데." - P29

3

탁자에 펼쳐놓은 도면 위로 마요의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침실 콘센트 위치는 두 군데를 생각해놨어요. 문바로 옆에 하나, 안쪽 벽에 하나. 벽 쪽 콘센트는 텔레비전안테나와 광케이블과 일체화된 겁니다. 최대한 거치적거리지 않는 위치 같아서 여기로 했는데, 나중에 침대배치를 바꿀 걸 생각하면 위치를 변경해도 되고요." - P30

"흑맥주를 싫어하시진 않으시죠?"
"안 싫어해요, 가끔 마시는걸요."
"그럼 이걸 드셔보십시오."
다케시는 잔과 접시를 카운터에 놓더니 맥주 캔을따서 부었다.
(중략).
접시에 담긴 건 크림치즈를 올린 쿠키였다. - P31

맨션 리노베이션은 다행히도 마요의 회사에서 담당하게 됐다. 그 까닭에 자주 미팅을 하게 됐는데, 문제는장소였다. 그래서 오픈 전에 가게를 좀 빌려달라고 다케시에게 정식으로 부탁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승낙해줬다. - P33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말인데요, 마스터에게 부탁이있습니다."
(중략).
"어려운 일은 아니고요. 조만간 이곳에서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도 될까요? 손님이 아니라, 마요 씨와 이렇게 만나는 것처럼 영업시간 전에 만나고 싶은데요." - P33

"오빠라고요? 친오빠입니까?"
(중략).
"그건 아니고요. 오빠와는 벌써 수십 년간 안 본 사이예요. 만나기 싫어서 피했죠. 연락도 전혀 안 하고 살았고요." - P34

"오빠의 볼일이 뭔지 짚이는 데가 있으신가요?"
"오빠는 아버지 일로 할 얘기가 있다고 했어요."
"아버님은 살아계십니까?"
"글쎄요...... 하지만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적은없으니 아직 살아계실지도 모르죠." - P36

"오빠분은 우에마쓰 씨가 지금 사시는 곳 주소를 어떻게 아셨을까요?"
마요는 머릿속 의문을 입 밖으로 냈다.
"그걸 모르겠어요. 전입 신고도 아직 안 했는데." - P38

"하지만 전 이웃 사람들에게도 어디로 이사하는지알리지 않았는데요."
"알아낼 방법은 여러 가지 있죠."
다케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를테면 초소형 GPS 발신기를 택배나 소형 우편물로 야마테초 주소로 보냅니다. 우편물 전송 서비스를신청했으니 저절로 전송되겠죠. 자동적으로 새로운 주소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 P39

"그러고 보니 이주일 전쯤에 모르는 회사에서 건강보조식품 샘플을 보냈어요. 광고지도 들어 있었는데,
그런 회사에서 뭘 산 적이 없어서 이상하다 싶었죠."
(중략).
"네, 성만......"
"그러면 우편함을 보고 집 호수도 알아낼 수 있었겠고요." - P40

4

카운터에 놓인 스마트폰의 시계가 4시 10분 전임을알려줬다. 옆에 있는 우에마쓰 가즈미의 몸이 굳은 것 같았다. - P41

다케시는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을 조작한 뒤 우에마쓰 가즈미 앞에 내려놓았다. 화면을 본 그녀는 앗, 하고작게 외쳤다.
마요도 화면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 세 사람은 집 앞에서 웃고 있었다. 온화한 생김새의 노인을 가운데 두고오른쪽에는 다케시가, 왼쪽에는 우에마쓰 가즈미가 있었다. 그녀는 새빨간 재킷 차림이었고 머리가 짧았다. - P42

두 사람이 사진 데이터를 주고받는 걸 보며 마요는내심 혀를 찼다. 다케시가 우에마쓰 고키치의 체스 친구였다는 건 지어낸 이야기이니, 저 사진이 실제로 존재할 리 없었다. 우에마쓰 가즈미의 옛날 사진을 입수했을 리는 없으니 몰래 찍은 사진을 교묘하게 합성한게 틀림없었다. - P43

다케우치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 뒤 마요와 다케시를 힐끗 보며 말했다.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장소를 제공해주신 분들한테 나가달라고 할 수는없잖아."
"그럼 밖에서 이야기하자."
"왜? 남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라도 하려고?" - P44

그렇게 말하더니 다케시는 선반의 오디오 기기를 조작했다. 실내에 재즈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중략).
계속 쳐다볼 수도 없어서 마요가 고개를 돌리자 다케시가 오른손으로 작고 하얀 뭔가를 내밀었다. 무선 이어폰이었다. 다케시의 왼쪽 귀에도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마요는 받아 든 이어폰을 오른쪽 귀에 꽂았다. 즉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 P45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하지만 법적으로는 아니야.
부모가 이혼하든, 호적에서 나가든 친자관계는 영원히변하지 않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하면, 부양의무 말이야 부모가 가난해서 생활이 힘들면 법적으로 자식이 부양해야 하지. 아버지는 지금 가난해. 생활 보호와 연금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야. (후략).‘ - P46

‘그럼 그쪽이 돌보면 되겠네요. 아들이니까‘
‘그러고 싶어도 못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거든. 딸자식 뒀다 뭐하겠어. 너 돈 많지? 요코하마 그 집으리으리하던데. 어떻게 사는지도 다 알아. 돈 많은 영감을 잡아서 유산으로 한몫 챙겼다면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 P47

‘어기긴 법은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데? 내 생물학적 아버지란 사람은 아내와 이혼한 뒤에 양육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어. 내가 보육원에 들어간 뒤에도 부양의무를 일절 다하지 않았고, 그런 아버지인데 나한테부양의무를 지라고 하겠어?‘
‘법대로 하자 이거야?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정법원을 찾아갈 수밖에‘ - P48

당신, 다케우치가목소리를 낮췄다. 정말 가즈미 맞아?‘
흠칫한 마요는 다시 두 사람을 보았다. 다케우치는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내밀고 있었다. 우에마쓰 가즈미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 P49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아니면 무슨 수작질이야?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는데.
"물론 진심이지. 직접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오래전부터 당신을 관찰했어. 처음에는 가즈미인 줄 알았는데 점점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이렇게 직접 만나보고 확신했어. 당신은 내 동생이 아냐.‘ - P49

‘그래, 잘 알지. 진짜 가즈미는 죽었어‘
다케우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랬군. 언제 어디서 죽었지?‘
(중략).
‘가즈미는 열세 살, 중학교 일 학년 때 죽었어. 네 살많은 오빠에게 살해당했지. 그 후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짜 가즈미야. 당신 말이 맞아. 여기 있는 난 가짜야.‘ - P50

‘그럼 이건 어때? 아까 가미오 씨한테서 받은 사진이야. 이분이 조작이라도 했다는 거야? 무엇 때문에?‘
집 앞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사진 속 여자는 당신하고 비슷하군. 진짜 가즈미인가. 하지만 화질도 안 좋은데 그게 증거가 될까?‘ - P51

‘당신이 가즈미라면 병은 어떻게 됐지?‘
‘병? 무슨 소리야?‘
‘요코하마에 살 때 병원에 다녔잖아.‘
‘.....그걸 어떻게 알지?‘ - P51

두 사람은 한동안 눈싸움을 벌였지만, 이내 다케우치가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일어났다. 홱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마요와 다케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거칠게 문을 열고 가게를 나섰다.
우에마쓰 가즈미가 일어났다. - P52

우에마쓰 가즈미는 난처한 듯 웃으며 마요의 옆에 앉았다. "우리 얘기, 들렸어요?"
"아뇨. 하지만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은 건 느껴졌어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생트집을 잡지 뭐예요. 나더러 우에마쓰 가즈미인 척하는 가짜라나. 황당하죠?" - P53

"저 남자가 에비스 집을 아니까 언제 또 쳐들어올지몰라요. 미행하거나 어디서 기다리고 있으면 싫으니까, 차라리 이사를 갈까 해요. 시로카네 집 공사가 끝날때까지 잠깐 머물 수 있는 집이 없을까요?"
"아마 있을 거예요. 하지만 새로 집을 구하실 때까지는 어쩌시려고요?" - P54

 우에마쓰 가즈미는 가방에서 키홀더를 꺼내더니 거기서 열쇠 하나를 뺐다. "열쇠 먼저 줄게요." - P55

"일단 그것부터 마셔. 안색이 안 좋다."
다케시의 말에 마요는 마른세수를 했다.
"앗, 그런가. 아마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나봐. 삼촌도 놀랐죠?" - P55

"너한테 할 말이 있다. 우에마쓰 가즈미 씨 얘기야."
(중략).
"그 사람은...... 가짜야."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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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빛

레스트레이드가 가져온 정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 P100

<손님께서 기다리던 분이 이제야 오셨군요.> 프런트 직원이 말했소이다. <손님께선 어떤 신사 분이 올 거라며 이틀내내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 나는 물었소.
<스탠거슨 씨는 지금 2층 객실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홉시에 깨워달라고 하셨지요.>
<당장 올라가서 만나봐야겠네. > 나는 말했소. - P102

 그런데 그 순간, 경찰 경력 20년의 내가 보기에도 구역질 나는 뭔가가 눈에 띄었소이다. 방문 밑으로, 빨간 리본 같은 핏줄기가 꾸불꾸불 새어나와 복도 건너편에 자그마한 피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던 거요. 나는 소리를 질렀고, 구두닦이가 깜짝 놀라 돌아섰소. - P102

셜록 홈즈가 대답하기 전부터, 나는 어떤 끔찍한 것을 예감하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피로 쓴 <라헤>」홈즈가 말했다.
「바로 그거요」
레스트레이드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고,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 P103

「그런데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있소」
레스트레이드는 말을 계속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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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가 정말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요? 나한테는 반지가 없는데요」
「아, 여기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는 반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될 겁니다. 거의 비슷하니까요」
「그런데 이 광고를 보고 누가 정말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P75

「그자가 오면 어떻게 하지요?」나는 물었다.
「아, 그 다음 일은 나에게 맡겨두십시오. 그런데 무기는갖고 계신가요?」
「오래된 군용 리볼버 하나와 탄약통이 몇 개 있습니다」 - P76

「권총은 주머니에 넣어두십시오. 그자가 왔을 때 낌새를채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얘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두시고요. 그자를 너무 자세히 쳐다봐서 행여 놀래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 P77

「왓슨 박사님이 여기 사시오?」
또렷하지만 목쉰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문이 닫혔고, 누군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략).
「들어오세요」
나는 소리쳤다.
방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기운찬 사내가아니라 발을 절룩거리는 주름투성이 노파였다. - P78

「이게 따님의 반지가 맞습니까?」
나는 물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노파는 호들갑을 떨었다.
「샐리란 년은 복도 많지. 바로 이게 그 반지라우」 - P79

「하운즈디치 던컨가, 13번지. 여기서는 하품이 나올 만큼멀다우」
「서커스가 벌어지는 곳 어디에서도 하운즈디치로 이어지는길 중에 브릭스턴로는 없습니다」
셜록 홈즈가 날카롭게 말했다.
노파는 고개를 돌리고 눈자위가 불그스레한 작은 눈으로홈즈를 노려보았다. - P80

「저 할멈의 뒤를 쫓아야겠습니다」
홈즈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할멈은 같은 패거리임에 틀림없어요. 뒤를 따라가면 놈을잡을 수 있을 겁니다. 갔다 올 테니 기다려주십시오」일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을 때 홈즈는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노파는 길 건너편을 힘없이 걷고 있었고, 홈즈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 뒤를 쫓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P81

「할머니는 무슨 얼어죽을 할머니!」
셜록 홈즈는 날카롭게 말했다.
「속아 넘어간 할머니는 바로 우리였지요. 그자는 젊은  놈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힘이 좋은 치였어요. 그뿐입니까? 전문 배우 뺨치는 연기력에, 분장은 가히 최고의 솜씨였지요. 그자는 자기가 미행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따돌리기 위해 그런 수를 쓴 게 분명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쫓는자는, 우리 생각과 달리 혼자가 아닌 것이 틀림없어요. 그자에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친구들이 많은 겁니다. 그런데 아주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어서 들어가서 주무십시오」 - P83

토비아스 그렉슨, 능력을 과시하다


다음날 신문에는 <브릭스턴 수수께끼>라고 명명된 사건에관한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어느 신문에나 장문의 사건 기사가 실렸고, 일부 신문에선 그에 관한 사설까지 덧붙였다. - P84

셜록 홈즈와 나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같이 이런 기사들을읽어내렸다. 그는 이 기사들을 상당히 재미있어 하는 듯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일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점수를 따는 쪽은 레스트레이드와 그렉슨이라고요」
「그건 일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P86

바로 그때 아래층 홀에서 어지럽게 들려오는 여러 사람의발자국 소리를 듣고 나는 외쳤다. 여럿이서 우당탕퉁탕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하숙집 주인이 질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이커가 특공대입니다」
(중략).
「차렷!」홈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어린 양아치 여섯 명이 더러운 조각상처럼 일렬로 서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 P87

「저런 어린 거지 하나가 경찰 대여섯 명보다 더 많은 일을할 수 있답니다」홈즈는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제복 입은 사람만 봐도 입을 다뭅니다. 하지만 저런 아이들은 안 가는 데가 없고 못 듣는 얘기가 없습니다. 게다가 눈치 하나는 비상하지요. 저런 아이들을 조직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알아서 굴러갑니다」 - P88

그렉슨은 큰 소리로 외치며 홈즈에게 달려들어 손을 덥석잡았다.
「축하해 주시구려! 내가 모든 것을 깨끗이 밝혀냈소」
(중략).
「가닥을 제대로 잡았느냐고? 아니오, 선생, 우린 범인을체포했소이다」
「범인의 이름은?」
「아서 챠펜티어, 대영제국 해군 중사요」 - P89

그가 외쳤다.
「저 바보 같은 레스트레이드 일이오. 그 친구는 자기가 굉장히 똑똑한 줄 아는데, 지금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소이다. 그 친구는 사건과 아무 상관없는 비서 스탠거슨을 뒤쫓고 있소. 아마 지금쯤은 틀림없이 그를 잡았을 거요」
그렉슨은 생각만 해도 우스운지 숨이 막히도록 웃어댔다. - P90

(전략). <비서인 스탠거슨 씨는 저녁 아홉시 15분 기차와 열한시기차가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아홉시 15분 기차를 타겠다고하더군요.> 
<그러면 그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때였습니까?>  내가 그렇게 질문했을 때 부인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소. 얼굴이 완전히 납빛으로 되더군. 부인은 잠시 뜸들이다가 목이 쉰 듯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예>라는 한마디를 간신히 토해 냈소. - P92

 <형사님, 저는 형사님한테 이런 얘기를 다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엾은 딸이 말해 버렸으니할 수 없군요. 일단 말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다 말씀드리겠어요.>
<현명하십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소. - P93

챠펜티어 부인은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 얼굴을 붉혔소. <저는 그 인간이 여기 온 날부터 당장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부인은 말했소. <하지만 유혹이 너무 컸답니다. 하숙비가 1인당 하루 1파운드씩, 1주일이면 14파운드였지요. 그런데 요즘은 비수기잖아요. 과부의 몸으로 해군에 있는 아들 치다꺼리에 돈이 좀 많이 들어야지요. 그놈의 돈이 원수지요. 저는 꾹 참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딸한테그러는 걸 보고 이제는 끝이다 싶어서 당장 나가달라고 했지요. 드리버 씨가 이 집을 나간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 P94

「정말 재미있는 얘기군요」
셜록 홈즈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지요?」
「챠펜티어 부인이 이야기를 끝냈을 때…………」
형사는 말을 계속했다. - P95

<아드님이 돌아온 건 부인이 잠자리에 든 다음이었나요?<(all.>
<부인이 자러 간 시간이 몇 시쯤이었지요?>
<열한시쯤.>
〈그러면 아드님은 적어도 두 시간은 밖에 나가 있었군요?>
<(a). >
<새벽 네시나 다섯시쯤에 들어왔나요?>
<예>(all.)
<아드님은 그동안 무엇을 했지요?>
<모르겠어요.> 부인은 입술까지 하얗게 질린 채 대답했소이다.. - P96

그것은 정말 레스트레이드였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동안 그는 계단을 올라와서 방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평소의그 경쾌하고 확신에 넘치는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중략).
그렉슨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난 자네가 그런 결론을 내릴 줄 알았네. 그래, 조셉 스탠거슨 비서는 찾았나?」
「조셉 스탠거슨 씨는……………」
레스트레이드는 침통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 여섯시경에 핼리데이 프라이빗 호텔에서 살해당했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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