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한반도 SF의 유입과 장르 발전 양상 구한말부터 1990년대까지의 남북한 SF에 대한 소사(小史)
이지용
1. 장르의 역할과 SF의 특징
장르(genre)는 일종의 관습(convention)이 표면화된 상태다.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고 있는 구성상의 관례 내지 규약이고 묵계라는 구조주의 이후의 용어에 대한 정의¹는 이러한 장르의 관습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1) H.M. 아브람스, 최상규 역, 「문학용어사전」, 예림기획, 1997, 146-148쪽 참조. - P152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재까지 그 형태들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 장르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장르의 요소들은 로맨스(Romance), 추리(推理), 역사허구물(Historicalfiction), SF, 판타지(Fantasy), 무협(武俠), 코미디(Comedy) 등을 들수 있다²
2) 이와 같은 구분은 대중서사장르연구회에서 발간한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시리즈의 권호 구분을 기본으로 하였다. 해당 시리즈는 2007년 ‘멜로드라마‘를 시작으로 ‘역사허구물‘(2009), ‘추리물‘(2011), ‘코미디‘(2013), ‘환상물‘(2016)까지총 5권이 발간되었다. 해당 시리즈의 분류에서는 환상물에 SF와 판타지, 무협을 포괄하여 다루었으나, 해당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역사 및 유입경로의상이함, 그리고 내재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지화된 특성 등의 비중이 각각 다르게나타난다. 게다가 환상물 분류에 속해 있는 장르(SF, 판타지, 무협)들이 남한의 장르문학(문화)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고(특히 무협과 같은 장르는 남한과 중국에서만 특별하게 나타는 장르인데다가, 1970~80년대에 남한에서무협이란 장르가 활발하게 소비될 수 있었던 사회적인 함의까지를 감안해 볼 때 남한의 문화예술 장르를 연구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소비되고 있는 양상 등을 감안하여 각각 따로 분류하였다. - P153
그중에서도 SF는 추리서사와 함께 장르의 유입 시기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한국의 근대 문학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존재해왔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 P153
SF(Science Fiction)는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장르이다. 용어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말에는 "과학으로 인해 드러난 진리들이 본래 시적이고 진실한, 즐거운 이야기와 서로 얽히고 설킨 것"³이라고 SF를 설명했는데, (후략).
3) William Wilson, "A Little Earnest Book Upon A Great Old Subject", Darton andCo., holborn hill(London), 1851, pp. 138-139. ("Now this applies especailly toScience-Fiction, in which the revealed truths of Science may be given, interwoven with a pleasing story which may itself be poetical and true.") - P154
이후로 SF를 장르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의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초기에는 단순히 과학기술과 그것으로 인해 발전된미래에 대한 담론들을 다루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SF의 관습적 코드들을 단순히 과학기술로한정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나타났고, 그러기 때문에 데이비드 시드(David Seed)는 SF가 한마디로 정의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러 다른 장르들이나 서브 장르들이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⁵
5) David Seed, "Science Fic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University Press, 2011, p.1. - P155
(전략). 그러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여 현대 SF의 특징이 되는 요소들을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소재를 통해 세계관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정의하는데, 이것이 바로 외삽(外揷, extrapolation)과 사고실험(思考實驗, thought experiment)인 것이다. - P156
(전략). 그러기 때문에 다르코 수빈(Darko Survin)은 "SF는 낯설게하기와 인지작용이 필요충분조건으로 존재하고, 그것들 간에 상호작용이 있어야하며, 작가의 실증적 경험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이 주요한 형식인 문학장르이다."⁷라고 정의하면서 SF가 단순히 수용자 중심의 콘텐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7) Darko Survin, "The Metamorphoses of Science Fiction: On the Poetics andHistory of a Genr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4, pp. 7-8. ("SF is aliterary genre whose m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are the presence andinteraction of estrangement and cignitoin and whose main formal device is animaginative alternative to the author‘s emopirical exoperience." - P156
특히 남한과 북한을 나누어서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는 것은 남한과북한이 분단 이전에 동일한 유입경로를 가지고 있었던 장르를 분단 이후 장르를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로의 영향을 받았는지와, 당시의 사회구조적인 맥락에 의해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이를 다루기 위한 담론의 집적 자체가 한국에서는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본고는 해당 시기를 다루기 위한 전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 P157
2. 한반도의 SF 유입과 발전 양상
1) 구한말 도입기의 특징들
한반도의 SF는 구한말 근대화로 일컬어지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계몽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도입된 장르였다. 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에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⁸
8) 이지용, 「한국 SF의 스토리텔링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5, 45쪽 참조. - P158
하지만 일본의 영향이 계속 이어진 흔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P159
도입기에 소개된 작품들을 보면 1800년대 후반에 발표되었던 쥘베른이나 웰스의 작품들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번안되었고, 닉 카터시리즈나 『R.U.R』과 같은 작품들의 경우엔 당시의 사회적 상황으로감안했을 때 유럽에서 발표된 작품들이 약 5년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동아시아에 소개된 것이었기 때문에 거의 동시대에 해당 텍스트가소비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P160
(전략). 이렇듯 다양한 형태로 한반도에 유입된 SF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기치를 견지하고 있었다. 조국의 근대화,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위한 서양의 과학기술의 계몽이라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 P161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되고, 출판과 한국어 사용에 대한 검열이 점점 더 심해짐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이야기들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당연히 창작자나 식자층의 확보 자체가 어려워진 SF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 P162
2) 남한에서의 공상과학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SF가 명맥을 이어가게된다. 이 시기의 특징들은 번역과 번안 작품들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한낙원의 『금성탐험대』(1967)와 같은 창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163
1950년대 미국에서 전문잡지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뉴웨이브(New Wave)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을 시점이었지만, 남한의 SF는 아직 구한말의 인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분단 이후 남한 SF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창작물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¹⁷ - P163
이러한 문제는 SF를 번역하여 통용하던 ‘공상과학소설(空想科學小說)‘이라는 단어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오역을 통재 전해진 해당 용어가 상당 기간 동안 수정이 되지 않고 통용되었다는 것은 용어가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에 대한 견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1) 공상과학소설은 "일본에서 1960년대 《SF 매거진>이 창간되었는데, 표지에 미국잡지의 명칭을 ‘공상과학소설지(空想科學小說誌)‘라고 병기" 했던 것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생긴 일종의 오역이었다. 일본에서는 이후 이를 ‘fantasy‘와 ‘SF‘를함께 일컫는 용어로 변용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수정과정을 거치지 않고SF의 등가대응어로 상당기간동안 사용해왔다. (박상준, ‘SF문학의 인식과 이해, 「외국문학」 제49호, 열음사, 1996, 23-24쪽.) - P165
이러한 문제점은 1967년 윤성이 『완전사회』를 발표하면서 아동·청소년이 아닌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SF를 발표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문윤성의 작품들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완전한사회라는 젠더에 대한 사고실험을 견지하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이를해석할 만한 기제들이 당시에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P166
그리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SF의 저변 확대를 당시에는제한된 수용자 층으로 인해서 콘텐츠의 비평이나 이론적 담론들의 형성이 미진한 한계를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시에 확보된 아동·청소년 독자들이 1990년대 이후 능동적인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 P168
3) 북한에서의 과학환상
전후(戰後) 북한에서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SF가 나타나지않는다. 이는 대중수용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르의 특성상 전후복구기를 지나면서 이전까지 서구화를 위한 계몽의 도구로 도입되었던 텍스트들이 대중적으로 활발하게 소비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P169
하지만 해당 용어에서 지칭하는 과학과 환상이라는 언표는 러시아의 장르 규정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북한에서는 모든 문화예술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해 사회주의 이상향을 구축하기위한 기제로서 작용해야 하는데, 사실 북한이 견지하고 있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는 환상(fantasy)에 대해 되도록 지양하는 기조를가지고 있다. - P171
북한의 과학환상문학 작품에서는 주로 자연에 대한 극복이나 농업생산성의 증대, 의학기술의 발달 등 국가적으로 당면해 있던과제들에 대한 미래지향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형태의 작품들이 많이등장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지점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활극적인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경우도 많지만, 문학에서는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다. - P172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공산주의리상사회,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실현된 앞날의 우리 조국의 모습, 자주화된 세계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내는"³³ 문학장르여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SF가 외삽이나 사고실험을 통해서 미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지점들이 상당 부분 소거된다.
33) 황정상, 『과학환상문학창작』, 평양예술종합출판사, 1993, 4쪽. - P173
(전략). 대표적으로는 소재적 차용과 모티프는 전통설화로부터 차용했지만, 이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한 이야기의 구조나제작 방법에 있어서 특수촬영(Special Effect Works Production) 기법을 활용한 <불가사리>(1985)와 같은 작품인데, 이는 북한의 문화예술분류에서 과학환상영화로 규정될 수 있는 여지들이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영화로만 분류하고 있다.³⁴
34) 이지용, ‘북한 과학환상영화의 장르적 의미 연구-북한 문화예술에서 ‘환상‘의의미와 필요성」, 「동아시아문화연구』 제69집,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2017, 199쪽 참조 - P173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과학환상문학은 남한의 SF가1960년대 이후 그러했던것과 같이 아동·청소년을 위한 장르로의 유용이 특징적이다. 물론 수용자의 한정성이 가지는 한계보다 장르에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문제시될 수 있는 부분이다. - P174
한반도의 SF가 둘로 나뉘긴 했지만, 남한과 북한의SF가 각기 다른 영향권 내에서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담론을 한반도 범위로 확장해 판단할 때 흥미로운 부분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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