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하시고 존경하며 흠모하는 영주님,
잘츠부르크 대주교이자 군주이신 볼프강 테오도릭 님께¹
베네 사람² 조반니 보테로 올림



1)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1559~1617). 1587년부터 1612년까지 잘츠부르크의 군주이자 대주교였다. 강력한 권력자였던 알템프스 추기경 마르코 지티히 폰 호헤넴스(바로 아래에서 언급됨)의 조카이자 밀라노 대주교이자 추기경인 페데리코 보로메오의 사촌이다. 그는 1588년 5월 20일 로마로 가서 알템프스 추기경의 궁에 머물렀는데, 당시 보로메오를 수행하여 이미 그곳에 있었던 보테로는 이때 그를 만났던 것 같다.

2) 보테로는 지금의 이탈리아 북서쪽 피에몬테 지방의 베네 바지엔나 출신이다. - P41

 저로서는 이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하는 것도(제가 종종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저술가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더니, 간단히 말해서 마키아벨리는 양심의 부재 위에 국가이성이라는 것을 세워놓았고, 티베리우스 카이사르는 극히 야만적인 반역법으로 자신의 폭정과 잔혹성을 은폐하였으며,³ 또한 세상의 지극히 비천한 여인뿐만 아니라, 비록카이우스 카시우스가 최후의 로마인은 아니었지만,⁴ 로마인조차도 도저히참지 못했을 다른 여러 방식으로 그렇게 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3) 티베리우스는 군주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반역법(lex maiestatis)을 되살려냈다. 하지만 이 고대법은 원래 로마 인민의 주권(maiestas)을 침해하는 행위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를 계승한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이 법을 실시하였다(Tacitus, Annales, I. 72.2~4). 이는 법으로 위장한 불의의 전형적인 경우였다. 이 법이야만적이라는 보테로의 판단은 의심의 여지 없이 수에토니우스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이 법이 가차 없이 적용되었다고 말한다. Suetonius, De Vita Cesarum, Tiberius, 58.

4) 카이우스(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브루투스와 함께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 중 하나이다. 기원전 42년 10월, 안토니우스에게 패하자 그는 적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자살하였다. 브루투스는 "카시우스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면서 그를 최후의 로마인이라 불렀다"(Plutarkos, Vioi Paralleloi, "Broutos," 44, 2). 공화주의자가 아닌 것이 분명한 보테로가자신의 저작 서두에 공화적 대의의 상징인 이 구절을 써놓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P42

분노인지 열의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에 떠밀려 저는 이들이 군주의 통치와 정책에 유입함으로써 신의 교회에서 생겨난 모든 추문 및 그리스도 교계의 모든 불화를 야기한 갖은 부패의 양상에 대해 글을 쓸 마음을 여러 번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제 고명하신 영주님께 드리는 이 책 『국가이성론』에서 적어도 그중 어떤 것을 대략이나마 기술하게 되었습니다.⁵

5) 원래 1589년판, 1590년판, 1596년판에는 "적어도 그중 어떤 것을 대략이나마 기술하게 된것입니다"라는 구절 대신에 다음의 더 긴 구절이 들어 있었으나, 1598년판에서는 대부분 삭제되고 위의 짤막한 구절만 남아 있다. "하지만 만약 제가 먼저, 군주가 위대해지고 인민을잘 다스리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진실하고도 왕자다운 방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부패의 양상에 대한 저의 논고가 아무런 신뢰도 권위도 가지지 못할 것임을 고려하여, 첫 번째생각을 다음으로 미루고 적어도 두 번째 생각을 대략이나마 기술하게 된 것입니다." - P43

당신은 목자의 염려와 군주의 엄중함을 보기 드문 형태로 결합하고있는데, 당신을 향한 신민의 깊은 존경심은 전자 덕분이며, 모두가 경탄하는 당신의 명성은 후자 덕분입니다. 끝으로 당신은 모든 행동에서 군주로서든 성직자로서든 어느 쪽에 더 위엄을 두는지 의아할 정도로 잘 처신하고 계십니다. 저는 제가 이 작은 노고의 결실을 당신께 보내고 바치게 한 이유를 고명하신 영주님께서도 충분히 이해하시고 당신께 어울리는 도량과 예로써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꺼워하리라 감히 자신합니다. 제가 바치는 것이 너무 보잘것없어 다른 사람이라면 그것을 물리칠 수도 있겠으나, 저는 오히려 그 때문에 당신의 은전을 더 확신하면서 그것을 당신께 드리고자 합니다. - P44

1권


[1]
국가이성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인민에 대해 확고한 지배권을 가진 영지이며,¹ 국가이성이란 그러한 영지를 창건하고 보존하며 확장하는 데 적합한 수단에 대한 지식이다. 

1) State un dominio fermo sopra popoli" 이 구절은 1596년부터 나타난다. 본 역서의원문 텍스트를 편집한 로맹 대상드르 보테로가 국가를 지배권 혹은 영지로 축소한 이러한정의를 통해 권력의 행사를 무한정한 조건에서가 아니라 오직 인민에게 한정하려는 것처럼보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정권, 영주권, 혹은 ‘도미나 - "군주가 재산과 인민의 영주(도미누스)가 되어 가부장이 노예를 부리듯이 인민을 통치하는"[Bodin, Les Six Livresde la République(1576), I, p. 570]-의 의미를 보존하고자 하는 법학자의 용어로 국가를 정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stato‘에 대한 보테로의 이러한 정의는 "인민에 대한 통치권을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모든 국가, 모든 영지는 예나 지금이나 공화국이거나 군주국이다"라고 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장 첫머리를 연상하게 한다. 인민(uomini/popoli)에대한 통치권을 가진 영지(dominii/dominio)를 국가(stati/stato)와 동일하게 보고 있는 것이똑같다. 따라서 보테로의 국가이성이 본질적으로 국가 통치를 위한 일종의 법이라는 데상드르의 주장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fermo‘란 형용사는 안정성과 힘이라는 두 가지 함의를 갖는데, 로마공화국을 지칭한 ‘res publica firma‘를 연상하게 한다(Cicero, De Re Publica, II.
1: Sallustius, De Catilinae coniuratione, 52). 16세기 정치 언어에서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popolf‘는 여러 민족이라는 뜻이 아니라 인구의 다수를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용법은 홉스에게서 다시 나타나는데(Thomas Hobbes, De cive, VIII, 1), 그는 왕국을 다수의 사람에대한 지배권"으로 정의한다. - P47

[2]
영지의 구분


영지에는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빈한한 것, 부유한 것, 그리고 이와 유사한 여타의 성격을 지닌 것 등 많은 종류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에좀 더 맞추어서, 영지 중 어떤 것은 우월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며 또어떤 것은 자연적이고 어떤 것은 획득되었다고 하자. 여기서 자연적이라함은, 통치자가 왕의 선출에서와 같이 명시적으로든 권력에 대한 적법한승계처럼 묵시적으로든 신민의 의지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 P49

무력으로 획득하는 경우, 전력(戰)을 사용함으로써 혹은 조약을 맺음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조약은 승자의 재량으로 혹은 협상을 통해 맺을 수 있다. 획득 과정에서의 저항이 클수록 영지의 질은 나빠진다. 더욱이 영지 중에는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으며 또 중간 크기도 있다. 물론 크기는 어디까지나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인접국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 P49

[3]

신민에 대하여



신민 - 이것이 없이는 영지가 존재할 수 없다 - 은 본성상 한결같거나 경박하거나, 혹은 온순하거나 거친데, 상업에 종사하거나 군대에 복무하며, 우리의 신성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분파에 속할 수도 있다. - P50

분파가 진리에서 더 멀어지고 그것에 더 반할수록 그들에 대한 평가는 틀림없이 더 나빠질 것이다. 게다가 모든 신민은 동일하거나 상이한 법과 형태로 복속된 어떤 방식 아래 있는데, 이는 에스파냐의 아라곤인과 카스티야인 및 프랑스의 부르고뉴인과 브르타뉴인에게서 보는 바와 같다. - P51

[4]

국가 멸망의 원인에 대하여


자연의 산물은 두 종류의 원인에 의해 쇠락하는데, 어떤 것은 내적이고 또 어떤 것은 외적이다. 내적 원인이란 기본 성질이 과도하거나 부패한 것을 말하며, 외적 원인이란 칼과 불 그리고 다른 형태의 폭력을 가리킨다. - P51

내적 원인은 군주의 무능으로, 그가 너무 어리거나 기량이 모자라거나 어리석거나 혹은명성을 상실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신민에 대한 잔혹함과 함께, 특히 귀족 및 도량이 큰 사람의명예를 더럽히는 음욕(淫慾) 역시 내적으로 국가를 멸망하게 한다. - P51

반면에 외적 원인은 적의 계략과 힘이다. 그래서 로마인은 마케도니아인을 야만인은 위대한 로마를 멸망시켰다. - P52

[5]

국가를 확장하는 것과 보존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위대한 일인가


의심할 나위 없이 국가를 보존하는 것이 더 위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사란 마치 달이 그렇듯이 거의 자연적으로 영고성쇠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융성할 때 그것을 안정시켜 쇠락지 않게 지탱하는 것은 특출하고도 거의 초인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업적이다. 국가의 획득에는 기회, 적의 무질서,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동 등이 큰 역할을 하겠지만,
획득한 것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어떤 탁월한 덕의 결실이다. - P53

 힘은 다수가 지니고 있지만 지혜는 소수의 몫이다.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는 최악의 인물이 힘을 가지며, 평화와 평온의 시기에는 선한 자질이 필요한 법이다."¹¹

11) Tacitus, Historiae, IV, 1, 3. - P53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런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정치학』에서 입법자의 주요 과업은 도시를 만들고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랫동안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¹⁵


15)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는 이러한 구절을 찾을 수 없으므로 이는 보테로의 자유로운 해석으로 보인다. - P54

[6]

크거나 작거나 중간 크기의 제국¹⁸ 중
어느 것이 더 영속적인가


중간 크기의 제국이 유지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18) 보테로가 사용하는 ‘제국(imperii)‘이라는 말은 위계상 왕보다 상위인 황제의 통치권 혹은그가 다스리는 국가 물론 이는 반드시 근대 ‘국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니라, 타국을 병합하여 식민지로 삼거나 협약을 통해 보호령으로 유지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영토가 혼재된 국가를 의미한다. 앞의 2장 말미에서 보듯이 제노바공화국이나 에스파냐왕국이 제국으로 지칭되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이다. 또한 텍스트 여기저기서 ‘제국‘ 외에도
‘국가‘, ‘왕국‘, ‘영지‘ 등의 말이 그냥 ‘국가‘로 바꾸어도 별 무리가 없는 정도로 쓰이고 있다.
‘제국‘을 ‘국가‘와 유사한 의미로 쓰는 이러한 용법은 고전 고대적 용례에서 유래하는데, 실제로 로마공화국 시절이나 제국 시절이나 로마인은 스스로의 국가를 가리켜 ‘임페리움 로마눔, 즉 로마제국이라 불렀다. 직역하자면 로마의 통치권(역)이라는 뜻이다. - P56

 단순 소박함은 기만에, 선은 악의에 굴복하며, 그리하여 국가가 커짐에 따라 견고함의 기초는 약화하게 된다. 철에 그것을 갉아먹는 녹이 발생하고 익은 과일에 그것을 망가뜨리는 벌레가 나타나듯이 큰 국가일수록 점차, 때로는 단번에, 그것을 무너뜨리는 악습들을 낳는 법이다. 이로써 큰 국가의 경우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다. - P58

[7]

결합된 국가와 분리된 국가 중 어느 것이 더 영속적인가


영토가 나뉘어 있는 국가를 분리된 국가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중간에 적이나 적으로 의심될 만한 강력한 군주가 끼어 있어 상호 지원을 할 수 없거나, 혹은 지원이 가능한 두 경우가 있다. 지원하는 방법에는 돈의 힘으로 하거나(하지만 이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그의 영토를 지나가야 하는 군주와 잘 협의하거나, 또는 제국의 모든 영역이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해군력으로 쉽게 유지될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중략).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멸망의 내적 원인에는더 취약한데, 위대함은 자만을, 자만은 부주의함을, 그리고 부주의함은 명성과 권위에 대한 경멸과 그것의 상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힘은 부를 가져오는데, 이러한 부는 환락의 원천이며 환락은 모든 악습의 원천이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영지가 번영의 절정에서 쇠퇴하는 원인인데, 세력이 증가하면 용맹함은 감소하며 부가 넘치면 덕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 P60

만약 군주가 나태하고 무능하다면, 결합된 국가는 분리된 국가보다 더 쉽게 피폐하고 부패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적에 더 취약해질 것이다. 반면 분리된 국가는 결합된 국가보다 외국인에게 더 취약한데, 이는 물론 분리 상태가 그것을 허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62

(전략). 설사 이런 국가가 본성상 결합된 국가보다 더 취약하다고 해도, 그것은 또한 많은 이점도 갖고 있다. 첫째 그런 국가를 동시에 공격하기란 쉽지 않으며 각 지역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러한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왜냐하면 한 군주가 혼자 그렇게 할 수는 없으며, 여럿이 함께 연합하기도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영지의 한 지역이 공격받으면 그렇지 않은 다른 지역이 언제나 지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P62

[8]

보존의 방법에 대하여


국가의 보존은 신민의 평온과 평화로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소요 및 전쟁이 자신의 신민에 의한 경우와 외세에 의한 경우로 나뉘는 것과 같다. 신민에 의한 경우에는 두 가지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데, 서로 싸움으로써 내전이라 불리거나 혹은 군주에 대항함으로써 반란혹은 모반이라 불리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P64

(전략). 그리하여 이 두 가지가 신민을 복종시키고 평화롭게 만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왕의 선출에 더 큰 힘을 갖는 것은 명성과 사랑중 어느 것인가?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성인데, 인민이 공화국 정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거나 그들의 호의를 얻으려 함이 아니라 공공선과 안녕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P65

마르쿠스 리비우스는 자신이 받은 치욕과 불명예로 인해 오랫동안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경멸과 비난을 겪었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눈밖에 난 지 오래되었으나, 공화국이 필요로 하자(온갖 야심의 기술을 발휘하여 인민의 사랑과 총애를 얻으려 했던 인물을 모두 제치고) 집정관직에 앉아 군지휘관으로 한니발의 동생에 맞섰다. 명성은 루키우스 파울루스를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 마리우스를 킴브리인과의 전쟁에, 폼페이우스를 미트라다티스와의 전쟁에 불러들였다. - P65

 한 인물의 선량함과 완전성이 평범한 것을 넘어서서 어떤 뛰어난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가 자신의 선한 본성으로 얼마나 사랑받든 간에 이러한사랑은 탁월성에 의해 추월되며, 다시 탁월성은 그에게 사람의 사랑보다는 존경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존경이 신앙과 경건함에 토대를 둔다면 그것은 숭경(崇敬)이라 한다. 만약 그것이 정치적, 군사적 기술에 토대를 둔다면 그것은 명성이라 불린다. - P66

정의보다 더 사랑받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 P66

[9]

군주에게 덕의 탁월함은 얼마나 필요한가


모든 국가의 주요한 토대는 상위자에 대한 신민의 복종이며, 이는 군주의 덕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달려 있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와 몸이그 고귀한 본성 때문에 천체의 운동을 거스르지 않고 복종하며 천계 간에도 하위의 것이 상위의 움직임을 따르는 것처럼, 인민 역시 뛰어난 덕이 찬란히 빛나는 군주에게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 - P67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군주의 우월성이 부적절하거나 거의 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가 아니라 기백과 재능을 고양하고 거의 하늘과 신에 필적할 만한 위대함을 드러내도록 하며, 그 인물을 다른 사람보다 진정으로 더 뛰어나고 더 낫게 만드는 그런 일에서 발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P67

[10]

군주가 지녀야 할 덕의 탁월함의 두 종류에 대하여


그런데 이러한 탁월함은 절대적이거나 부분적이다. 절대적이라 함은 모든 혹은 많은 덕에서 범상함의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이며, 부분적이라 함은 통치하는 자에게 적절한 어떤 특정한 덕에서 다른 사람을 앞서는 경우이다. - P68

[11]

어떤 덕이 사랑과 명성을 얻는 데 가장 적절한가


그러나 설사 모든 덕이 그것으로 장식한 사람에게 사랑과 명성을 가져오는 데 적합하다고 해도, 그럼에도 어떤 덕은 명성보다는 사랑에 더 적합하고 또 어떤 덕은 그 반대이다. 첫 번째 범주에는 전적으로 유익함을 주는 덕들이 들어가는데, 이는 인간성, 정중함, 자비 등으로서 모두가 정의와 관용으로 환원 가능한 것들이다. 두 번째 범주에는 대업에 적합한 어떤 위대함이나 강력한 의지 및 뛰어난 재능을 동반하는 덕들이 있는데,
강인함, 군사 및 정치의 기술, 항심(恒心), 굳센 의지, 기민한 재능이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를 분별과 용맹함이란 이름 아래 넣을 수 있다. - P71

[12]

정의에 대하여


그런데 신민을 이롭게 하는 첫 번째 방법은 정의를 통해 자신을 보존하면서 각자에게 그것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며, 평화와 더불어 인민 간의 화합을 굳건히 하는 토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71

고대의 시인은 유피테르 또한 정의의 도움 없이는 사람을 적절히 다스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플라톤은 정치에 관한 자신의 책에 ‘정의에 대하여‘란 제목을 붙였다.⁵⁰
왕에게 법을 세우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은 없다.

50 플라톤의 국가를 가리킨다. - P72

[13]

왕의 정의의 두 측면


왕의 정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 하나는 왕과 신민 간의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신민과 신민 간의 정의이다. - P74

[14]

왕과 신민 간의 정의에 대하여

인민은 군주에게 자신들 사이에 정의를 유지하고 적의 폭력에서 그들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권력을 부여해야만 한다. 또한 군주는 이러한 권력의 한계에 만족하고, 그들의 힘에 부치는 지나칠 정도의 과세로 인민을 괴롭히고 학대해서는 안 되며, 탐욕스러운 장관들이 세금을 통상적이고 적절한 정도를 넘어 부풀리거나 갈취하도록 놔두어서도 안 된다. - P74

(전략). 이와 마찬가지로, 군주는 수입(그의 종신들의 피와 땀과 다르지 않은)을 결코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민에게는 군주의 위대함을 북돋우고 국가를 유지하도록 자신들이 곤경과 고통을 겪으며 준 돈을 그가 아무렇게나 써버리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허영이란 끝도 없고 잴 수도 없는 법이기 때문에, 돈을 헛되이 쓰는 사람은 무질서와 결핍에 빠지게 되어,
결국 사기와 악행을 범하고 무고한 사람을 죽이게 될 것이 틀림없다.  - P75

 즉 군주가 덕에 기뻐하면 덕으로, 그가 허영에 차 있으면 아첨으로, 그가 잘난 체하는 성격이면 화려한 의식으로, 그가 탐욕스러우면 돈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기량에 따라서가 아니라 선호에 따라서 지위와 관직을 주는 것보다 왕에게 더 해로운 일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덕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은 제쳐놓고라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보잘것없는 사람이 더 선호된다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종종 봉사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그 같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인민은 장관에 대한 미움으로 군주 그 자신을 경멸하여 그에게 반란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 P76

[15]

신민과 신민 간의 정의에 대하여


신민 간의 모든 일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군주의 의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과 도시를 폭력과 사기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폭력은 유배자, 도둑, 살인자, 흉악범에 기인한다. 그들은 강력한 조치와 공포로써 반드시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78

 설사 군주가 봉신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해도, 만약 국가의 이익에 대해 염려하지도 그것에 기여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개개인의 부를 소모할 뿐인 고리대금업자의 탐욕에 그들을 희생시키도록 놔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고 그 피해가 어찌 개개인에만 국한될 것인가? 고리대금업은 재정을 고갈시키고 공공수입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 P79

. 그런데 돈이 투여되지 않는다면 상업이 제대로이루어질 수가 없다. 또한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고자 하는 사람은, 무역은 포기하고(왜냐하면 이는 손해 볼 위험을 감수하고 몸과 마음을 소진할 각오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시간을, 또 일부는 돈의 사용을파는 셈인 종잇조각을 통해 이익을 취하고, 빈둥거리면서 다른 사람의 돈으로 자기 자신을 살찌운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 P79

[16]

법관에 대하여


군주 자신이 법령을 관장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므로,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할 유능한 관리들을 충분히 임명해야 한다. 관리를 뽑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P81

장관직을 파는 군주는 큰 비난을 받을 것인데,
이는 법정에다 정의가 아니라 탐욕을 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이다. 네로가 "그 지붕 아래서는 탐욕도 야심도 결코 관용되지 않는다"⁶⁷라고 했을때, 그는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규준을 제시한 것인가! 선물을 받는 법관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신이 말씀하시듯이) 선물은 현자조차도 눈멀게 하기 때문이다.⁶⁸



66) Historia Augusta, 45, 6.
67) Tacitus, Annales, XIII, 4, 2. - P81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쿠르고스의 법을 비판했는데, 왜냐하면 관직(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에 적임자인 사람에게 안배되어야 하는)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필히 유세를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⁷¹


71) Aristoteles, Politica, II, 9, 1271a 10. - P82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 제도는 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적절한 장관 선발 과정을 통해 시행된다. 왜냐하면 현명한 군주라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정의의 집행과 인민의 통치를 위해 승진시키려는 사람의 능력과 성실함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82

삶의 일관성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겸손과 절도(節度)도 필요한데, 침착한 마음에서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행동이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관대함과 자선 역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쉽게 불의를 행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과 명성도 중요한 논거가 되는데,
그것은 거의 속이는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관직에 (덕 이상으로) 명성과 신뢰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P83

고대의 입법자는 부자가 아니면 관직을 가질 수 없도록 했는데,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은 착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별로 중요성이 없는 논점이다. 필요한 것은 내적 선과 양심으로몸과 마음을 제어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다른 좋은 치유책은 없다. 왜냐하면 탐욕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될 때 그것을 끝없이 추구하는 것은 부자가 빈민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왜냐하면 빈민이 부자가 되려 하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자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궁핍으로 인해빈민이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악의 근원인 탐욕은 부자가 훨씬더 큰 악행을 범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84

[17]

장관을 통제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장관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가 일단 임명되면 이후 부패하지 않을지 모든 경계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수많은 비둘기가 까마귀가 되며 양이 늑대가 되기 때문이다. 관직보다 사람의 내면을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없는데,⁷⁹ 그것이 손에 권력을 쥐어 주기 때문이다.


79) 이는 7현인의 하나로 불리는 프리에네 출신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비안테의 금언을 번역한것으로 보인다. 특히 귀차르디니는 이탈리아사를 "왜냐하면 관직이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의 가치를 명료하게 드러나게 해준다는 속담이야말로 진정 사실일 뿐 아니라 최고의 칭송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라는 말로 끝맺음으로써, 그 금언을 되새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Guicciardini, Storia d‘Italia, XX, 2. - P86

 왕은 법관에게 식량, 숙소, 가구 및 각종 용기(用器), 관리인, 하인 등 그들의 편안함과 위엄에 맞는 모든 것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정의를 집행하고 자신들에게 부여된 직분을 수행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생각도 갖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그들은 매우 엄격하고 엄정한 규칙하에 있었기 때문에, 공복 상태가 아니면 법정에 들어갈 수도 심리(審理)를 할 수도 없었다.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음료 한 잔혹은 그와 유사한 것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⁸¹


81) Juan González de Mendoza, Historia de las cosas mas notables, ritos y costumbresdelgran reyno de la China (Roma, 1585), libro III. - P87

정의를 훌륭히 집행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 사항은,
군주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장관에게 결코 최종 판결에 대한 재량과 전권을 부여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판단은 유보하고 반드시 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따라야 할 것은 법이지 이런저런 감정에 휘둘리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 P87

로마인은 스스로가 비난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의해 제어되었다. 왜냐하면 그 도시는 야심 찬 경쟁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 누구도 언제나 자신을 압박하고 깎아내릴 만한 기회만 노리는 정적을 갖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 P88

람프리디우스에 따르면,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는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부패할 여지가 있기에, 아무에게도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신뢰할 만한 인물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행적에 대해 알고 있었다."⁸⁵ 그래서 토스카나 대공 코지모는 비밀 첩자를 이용하였는데, 그들은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이런저런 일에 끼어들어 관리들의 행동에 대해 자신이 들은 모든 사항을 대공에게 알려주었다.⁸⁶



85) Historia Augusta, 23. 2. 아일리우스 람프리디우스(Aelius Lampridius)는 이 책을 쓴 여러저자 중의 하나로 전해오는 인물이다.
86) 코지모 1세는 1537년에서 1569년까지는 피렌체 공작이었다가 1569년에서 1574년까지 토스카나 대공작으로 재위하였다. - P88

궁정의 사정에 정통한 한 신사는 왕이 진실한 사정을 알려고 한다면 수많은 가짜 보고에 기만당하지 않도록 귀머거리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높은 망루 위에서 거울로 모든 일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는 할 수 없기에,
첩자를 쓰고, 때로는 몸소 심의를 진행하고, 변장을 한 채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사안과 무관한 사람에게서 진실이 무엇인지 듣도록 하자.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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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맨은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며 찢긴 바바리를 붙들고 줄행랑을 놓았다. 초아는 그런 바바리맨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고 서 있었다. 건방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검법을 배운 애였구나. 어쩐지 분위기가 살벌하더라니."
- P62

그때였다. 초아가 얼음처럼 차갑게 소리쳤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거니?" - P63

건방이는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제와 굽힐 수도 없었다.
"흥, 누가 할 소릴? 그까짓 검법 좀 쓴다고 내가 무서워할 줄알아?"
‘그까짓‘이라는 말에 초아는 정말로 화난 듯했다.
"감히 내 검법을 모욕해?" - P64

 자칭 권법 천재 건방이였지만 기본기를 마스터하기까지 꼬박 이 년이 걸렸다. 오방도사는 "보통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일 년이면 되었을 것을, 쯧쯧쯧." 한탄하고는 했다.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받아내자 초아의 얼굴색이 살짝 변했다. - P65

6. 대도(大盜) 도꼬마리


"검법을 배운 애가 전학을 왔다고?"
오방도사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한 점 집어 들며물었다.
"네. 기다란 연검을 쓰는데, 완전 포악한 기집애예요." - P66

건방이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오방도사를 바라보았다.
"나도 옛날에 검법을 익힌 소저를 사랑한 적이 있었더랬지.
그녀의 이름은 꽃님, 이름처럼 청초하고 아리따운 소저였지. 하지만 검을 휘두를 때만큼은 한겨울 눈보라처럼 매서웠던 꽃잎소저!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랬느니라...……."
오방도사는 눈을 갸름하게 뜨며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기시작했다. - P67

오방도시는 상추쌈을 볼이 미어터지게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했다.
"간겨그 주디 마"
"간격을 주지 말라면, 바짝 붙어서 싸우라고요?"
웅얼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 오방도사의 말을 건방이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 P68

한참 먹는 데에 집중하던 오방도사가 건방이의 손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손목은 왜 또 그러느냐?"
건방이는 발갛게 부어오른 손목을 힐끗 내려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까 걔가 내리친 검을 막았더니 이래요. 별로 안 아파요." - P69

오방도사가 뭐가 생각났는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열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다만, 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수검술을익힌 줄 알고 깜짝 놀랐었지." - P69

오방도사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쫙 깔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네 녀석은 분명····."
건방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나 무술에 천부적인 자질을타고 났다. 뭐 그런 말을 하려는 걸까?
"이미 금이 가 있었던 벽돌을 깬 게 분명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건방이에게 찬물이 확 끼얹어졌다. - P70

건방이도 지지 않고 말대답을 했다.
"나도 사부처럼 못 가르치는 스승은 처음이거든요? 사부 때문에 내 천재성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거라고요."
"으이구, 그놈의 건방만 하늘을 찔러 가지고는…………. 그래도 가르치기는 그놈이 재미났었는데"
평상시처럼 건방이를 타박하던 오방도사가 문득 묘한 말을했다.
"그놈이요?" - P71

이런 미련하기가 곰 같은 놈, 하는 얼굴로 오방도사가 말을덧붙였다.
"상대를 맨손으로 만들란 말이다."
복잡했던 건방이의 머릿속이 단번에 맑아졌다. 역시 사부는사부였다. - P71

안방에서 오방도사의 시조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이는 미리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캔 식혜를 꺼냈다. 흔들어 보니 사그락사그락 얼음 소리가 들렸다.
"오, 퍼펙트!"
건방이는 대접에 식혜를 담아 안방으로 갔다. - P72

"사부, 식혜"
건방이의 말을 못 들었는지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던 오방도사가 평소와 달리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다이아몬드가 사라진 시각, 전시장에는 백 명이 넘는 어린이 관광객이 몰려 대혼잡을 이루었습니다. 경찰에서는 도꼬마리가 아이로 변장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이 작을 가능성이있다고 발표했습니다. - P73

7. 한밤의 무술 대결


건방이가 학교 강당 뒤편에 있는 공터에 도착한 시각은 밤12시 정각이었다. 초아는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선홍색 무사복을 차려입은 초아는 꼭 영화에 나오는 여검객처럼보였다. - P75

‘상대의 검으로 큰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라. 칼에 맞기 싫으면 그 원에서 멀찍이 떨어져 아니면 원의 정중앙으로 파고들어가든지 모 아니면 도, 둘 중 하나야‘


오방도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래, 모 아니면 도야!‘
건방이 갑자기 초아의 뒤편을 바라보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 선생님!" - P76

뒤늦게야 건방이에게 속은 것을 안 초아가 서둘러 칼을 휘두르려 했지만 건방이가 한발 빨랐다. 건방이는 초아의 오른쪽손목을 꽉 붙드는 동시에 손에 수석술의 기운을 씌웠다.
"이 이거 안 놔?"
초아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용을 썼지만 돌처럼 굳어진 건방이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P77

"야! 내 검 당장 안 내놔?"
초아는 씩씩대며 발을 굴렀다.
"괜히 돌려줬다가 또 칼에 맞으라고?"
건방이는 칼날을 매만지며 초아더러 들으란 듯이 혼잣말을했다.
"오, 제법 값나가 보이는데? 고물상에 팔면 얼마나 주려나?" - P79

건방이는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오르며 킥킥 웃었다.
"우리가 같은 반인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네. 히히, 애간장 좀타게 일주일쯤 갖고 있다가 돌려줘야겠다."
집으로 돌아온 건방이는 연검을 창고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방도사는 깊이 잠들었는지 건방이가나갔다 들어왔는데도 기척이 없었다. - P80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오방도사와 건방이는 모처럼 함께 외출했다. 행선지는 점박이 약재상.
(중략).
오방도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게 인사를 받았다. 먹는것만 밝히는 푼수 도사가 밖에만 나오면 위엄이 철철 넘치는원로 고수로 탈바꿈했다. 건방이는 오방도사의 이런 이중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제자님도 안녕하시고?"
"아, 네. 안녕하세요." - P81

누가 보면 평범한 동네 약재상인 줄 알겠지만, 사실 이건 다 위장이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진짜 품목은 가게 깊숙한 곳에모두 숨겨져 있다. - P81

"이걸 좀 처분하려고요."
건방이는 보자기에 둘둘 말아 온 신통풀 뭉치를 내밀었다. 점박이 아저씨는 반색을 하며 두 손으로 신통풀을 받아 들었다.
"아휴, 요즘은 신통풀을 찾는 사람만 많고 들어오는 물량은그에 반에도 못 미쳐서 큰일입니다. 짝퉁 신통풀까지 나돌아 다닌다니까요." - P82

점박이 아저씨는 돋보기를 꺼내 신통풀을 꼼꼼히 살펴보며대답했다.
"이 동네일이야, 늘 그렇죠 뭐. 도꼬마리 얘기는 아시죠? 들리는 소문에 도꼬마리가 전설의 ‘팔팔동자(八八童子)라는 말이있어요. 워낙에 신출귀몰한 데다 아이처럼 몸집이 작다는 말도있고 하니까요."
"팔팔동자가 뭐예요?"
건방이가 눈을 말똥말똥 뜨며 물었다. 점박이 아저씨는 ‘그것도 모르시오?‘ 하는 얼굴로 조근조근 설명해 주었다. - P83

킁킁거리며 천하장사의 냄새를 맡던 점박이 아저씨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참! 아침에 설화당주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녀갔어요.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설화당주 막내 제자의 검을 훔쳐 갔다고하네요. 누군지 몰라도 그놈은 이제 끝난 거죠."
점박이 아저씨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오방도사도
‘허, 그런 일이?‘라는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맞장구를 쳤다. - P83

"아까 그놈의 인상착의를 그린 초상화를 한 장 두고 갔는데, 그게 어디 있더라?"
점박이 아저씨는 서랍장을 뒤적여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꺼냈다.
"아! 여기 있네요."
건방이는 점박이 아저씨가 건네준 종이를 펴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랐다. 그 종이에는 야구 모자를 꾹 눌러써서 코와 입만 보이는 소년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 P84

오방도사는 할 말을 잃었는지 푹푹 한숨만 쉬었다.
"설화당주가 그렇게 세요?
사부도 못 이길 정도로?"
건방이는 스승의 눈치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P85

"내가 누구냐?권법의 일인자 오방도사가 아니냐? 사실 나도 설화당주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에잇!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걱정 마라 제자야"
건방이는 오방도사의 장담과는 달리 앞으로의 일이 매우 걱정되었다. - P86

8. 오라버니, 아니세요?

(전략).
건방이는 요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초아의 사부가 엄청난 검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건방이는 학교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돌아다녔다. 화장실에 갈 때도 보호색을 띈 나뭇잎 벌레처럼 언제나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다녔다. - P88

건방이는 학교에서 절대로 모자를 쓰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머니맨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황해서 서둘러 모자를 벗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막 교실로 들어오던 초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 P89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건방이는 대문에 웬편지가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편지 겉봉에는 붓글씨로 ‘오방도사 귀하‘라고만 쓰여 있었다.
건방이에게 건네받은 편지를 뜯어 본 오방도사는 끙끙 앓으며 자리에 드러누웠다.
"아이고 내가 제명에 못 살지, 못 살아! 바보 같은 제자 놈때문에......." - P90

내용은 정중했지만 속뜻은 분명했다.
"윽, 한판 뜨자는 거네." - P91

"너무 일찍 왔나?"
건방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설화당주와 초아의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여자랑 만날 때는 원래 십 분 일찍 나오는 게 예의야"
티끌 하나 없는 흰색 명주에 검은 옷깃을 덧댄 학창의를 입은 오방도사는 오늘따라 멀쑥해 보였다. - P91

"이놈아! 지긴 누가 져? 너는 이 스승이 100대 1로 싸워서 이긴 적이 있다는 얘기도 못 들어 봤느냐?"
(중략).
"뻥이라니! 이 스승을 뭘로 보고. 한때는 나도 암흑가를 주름잡고 살던 시절이 있었더니라 돌아가신 스승님의 유언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신통풀이나 캐며 살진 않았을 게다. 싸움박질은 그만하고 수련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라고 하셨지" - P92

"그동안 얼마나 심려가 크셨습니까? 이 몸의 제자가 아둔하여 벌인 일이니 너그러운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방도사는 건방이의 머리도 함께 찍어 누르면서 조그맣게소곤거렸다.
(중략).
"이 녀석아! 안 싸우고 이기는 게 제일 센 거야!" - P93

"호, 혹시..... 꽃님 소저?"
갑자기 오방도사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방도사의 눈은 너울 속에서 드러난 설화당주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설화당주도 오방도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아니..... 방이 오라버니 아니세요?" - P94

"이렇게 살아서... 소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소저는예전 모습 그대로구려."
설화당주가 열아홉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오라버니야말로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건방이와 초아는 하도 기가 막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P94

9. 가면을 쓴 아이들

(전략).
어젯밤, 결국 날밤을 새 버렸다. 이십년 만에 재회한 오방도사와 설화당주는 체육관 근처의 벤치에 앉아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일이 어떻게 된 거였냐면, 설화당주와 오방도사는 서로 죽은 줄 착각하고 이름도 바꾼 채 수련에만 몰두하여 각각 권법과 검법의 고수가 되었고 운명의 재회를 하게 되었다. 뭐 대충 그랬다. - P97

건방이와 초아의 눈이 딱 마주쳤다. 초아가 눈에 쌍심지를켜고 건방이를 노려보았다. 복수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가그게 틀어지자 심사가 단단히 꼬인 것 같았다.
더욱이 설화당주는 전후 사정을 알고 도리어 초아를 꾸짖었다.
"우리 초아가 먼저 시작한 줄도 모르고………… 미안하구나늘그막에 들인 제자라 너무 오냐오냐해서 버릇이 없단다. 건방이라고 했지? 다친 데는 괜찮으나?" - P97

그리고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오방도사가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자야, 그 초아란 애한테 무조건 잘못했다 빌고 화해하거라. 뭐? 이유? 그 애가 꽃님 소저 제자라는데 무슨 이유가 더필요하단 말이냐! 앞으로는 초아한테 잘해! 안 그러면 이번 금강산에 갈 때 떼어 놓고 갈 테다."
건방이는 어쨌거나 초아랑 화해하기로 마음먹었다. - P98

갑자기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뒷문 쪽에앉은 호길이가 건방이를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엥? 왜 저러지?‘
건방이는 당황해서 자신이 호길이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일을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건방이는짐작조차 안 갔다.
하기야 둔해 빠진 건방이는 초아가 전학 온 첫날부터 호길이의 태도가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 P99

"어머, 네가 그렇게 태권도를 잘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호길이 정도는 일 분 안에 이길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걸?"
초아는 말하는 도중 호길이에게 슬쩍 시선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길이의 얼굴이 단숨에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뭐? 내가 언제......"
건방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뒤늦게야 도끼눈을뜨고 있는 호길이를 보고 상황 파악이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내가 저 백여우 함정에 걸려들었구나!‘ - P10

"그럼 나랑 맞짱 한번 뜨든가."
건방이는 좋은 말로 호길이를 진정시키려고 일단 자리에서일어섰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건방이의 웃음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버렸다.
"지금 비웃냐?"
호길이는 일그러진 얼굴로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건방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피했다. 오랜 수련으로 몸에 익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 P101

‘어쩔 수 없겠어. 그냥 맞아주는 수밖에건방이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호길이가 다시 주먹을 날렸다.
"으억"
건방이는 배를 움켜쥐고 최대한 과장하며 나가떨어지는 시늉을 했다. 보기에는 심하게 넘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바닥에 닿는 순간, 낙법을 살짝 응용해서 실제로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 P102

"우아, 책장이 찌그러졌어!"
"건방아, 너 괜찮아? 피 안 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건방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건방이의 의도와는 달리 상황이 점점 더 난처해졌다.
그때 누군가 건방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다행이다. 저게 원래 찌그러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날 뻔했어" - P103

건방이가 자신의 소매를 눈여겨보는 걸 느꼈는지 면상이가 부축했던 손을 휙 떼어 냈다. 그러고는 호길이를 향해 말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을 쓴 건 잘못된 거야 건방이에게 사과해"
면상이의 말에 호길이는 몸을 흠칫 떨더니 건방이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미, 미안하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 - P104

10. 숨겨진 과거


"제자야, 꽃님 저 집에 좀 다녀와야겠다."
"거긴 왜요?"
건방이는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서찰을 전하고 오너라 - P106

오방도사가 그려 준 약도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섰다. 건방이는 설화당주의 집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우아아, 청와대가 따로 없네." - P107

"다시는 제자를 들이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설화당주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전에 오라버니가 제자로 삼은 아이가 있었단다"
"네?"
뜻밖의 말에 건방이는 눈을 크게 떴다. 설화당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 P108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란다. 너보다 한두 살 많은 사내아이였는데 하나를 알려 주면 열을 알 정도로 영민해서 방이 오라버니가 무척 아꼈단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쩌다 변면술(變面術)이라는 잡술(雜術, 사람을 속이는 간사한 술법)에 빠지게 되면서......."
"
"변면술이요?"
"그래. 얼굴 형태를 바꿔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술법이란다. 그 아이는 변면술을 이용해 좀도둑질까지 했어.
방이 오라버니의 노여움은 말도 못할 정도였지. 그만큼 믿고 사랑한 제자였으니까" - P109

"건방아, 너는 어쩌다 방이 오라버니의 제자가 되었느냐?"
건방이는 설화당주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일, 보육원에 가기 전 비밀의 집에서 오방도사를 처음 만난 일, 그리고 수습 제자를 거쳐 오방도사와 함께 살게 된 사연까지 모두 다.
사실 그 얘기는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설화당주 앞에서는 거침없이 술술 나왔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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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이성으로 신을 증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과학과 성서는상충하지 않는다

Thomas Aquinas. 1225-1274 - P90

도미니코회

1206년 성 도미니코가 복음을 전하고이단을 물리치려는 목적으로 세운 교단. 초창기에는 청빈을 중요시하여 탁발 수도사로서 생활했기 때문에 거지수도회, 탁발 수도회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엄격한 생활과 학문 연구.
설교, 교육 등에 힘써왔으며 작은 형제회Order of Friars Minor와 함께 주요한 수도회이다. - P91

무엇도 꺾지 못한 종교에 대한 신념


1244년 19세이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막 설립된 도미니코회의 수도사가 되기로 한다. 나폴리에서 함께 지낸 학우들과 선생님들은 이귀족 청년이 허름한 수도사 의복을 입을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략).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섬기는 기사였던 형제들은 아퀴나스가 마음을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를 납치해서 거의 2년 동안로카세카에 있는 가족 소유 성에 감금했다. - P91

성에 갇혀 있는 동안 철학과 신학 관련 책은 읽을 수 있었던 아퀴나스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쾰른에서 정규교육 과정을 다시 밟았다. 이후에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와 몇몇 교황의 절친한 친구이자 고문이 되었다. 아퀴나스는 저서 『신학대전』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한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91

기독교 인본주의를 탄생시키다

중세는 종종 ‘권력의 시대‘라고 불리지만 대립하는 권력 주체가 여럿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권력의 시대‘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다. 13세기 지적인 면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던 두 주체의 뿌리는 각각 아테네와 예루살렘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92

헤브라이즘

고대 히브리인의 사상 · 문화 및 그 전통으로 보통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을 통틀어 이르는 말.


헬레니즘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에서부터 기원전 30년 로마의 이집트 병합 때까지 그리스와 오리엔트가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긴 현상. - P92

알 파라비와 마이모니데스의 사상을 이어받은 아퀴나스는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과 성서 속 계시를 모두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이란 교과서에서 과학으로 배우는 것은 원칙적으로 성서에서 신앙심으로 배우는 것과 배치되지 않는다. 과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과 상반된다면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 P93

자연적 덕과 초자연적 덕

아퀴나스의 기독교 인본주의가 도덕과 법의 영역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잠시 살펴보자. - P93

아퀴나스는 성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덕목도 추렸다.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이다. 그는 이러한 덕목은 ‘초자연적 덕‘이라 명명했다. 이성만이 아니라 성서 속 계시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 P94

천부적 양심과 성서 율법 간의 관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뿐만 아니라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편찬한 고대 로마법전 역시 11세기에 서유럽에서 재발견되었다. 볼로냐에 세워진 유럽 최초 대학교는 설립 목적 자체가 로마법 연구였다. - P95

 인간은 하느님의 영원법에 직접 가닿을 수 없기에 인간의 양심이라는 자연법과 성경에 담긴 계율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P95

아퀴나스는 인간의 양심은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양심은 특정 판단에서 실수를범할 수도 있고 문화의 영향으로 일부 타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성서 율법은 양심을 견제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법을 보는 우리의 해석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천부적 양심의 견제가 필요하다. - P95

물론 인간사는 매우 복잡해서 양심이나 성서보다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다. 우리의 양심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입법자들이 여러 범죄와 그에 따른 결과를 세부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 P96

아퀴나스는 인간 입법자들은 자연법(양심)의 보편적인 원칙을 인간 법에 들어갈 구체적인 규칙으로 다듬으려면 실용적인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 P97

종교와 과학을 둘러싼 멈추지 않는 질문

(전략).
14세기 단테가 발표한 서사시 신곡은 아퀴나스 사상의 영향을받아 기독교 인본주의를 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 P98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세속적 인본주의와 종교적 원리주의 간 극렬한 갈등을 목격하는 현대인들에게 아퀴나스의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기독교 집단을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은 다윈의 진화 이론이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퀴나스는 하느님이 단 6일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는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읽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 P98

수 세기에 걸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아퀴나스는 여전히 믿음과 이성, 즉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몰이해만 아니면 대립할 일이 없다고 강조한다. 하느님은 자연이라는 교과서에서 하나를 가르친 다음 이를 성서에서 부정하지 않는다. - P99

18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


어떤 다수 집단도소수 집단을 억압할 수 없다

James Madison, Jr. 1751-1836 - P214

정치인과 철학자의 장점을 두루 겸비하다


미국 독립혁명 이후 독립을 맞이한 13개 식민지는 1781년 맺은 연합규약을 바탕으로 견고한 틀 없이 연합되어 있었다. (중략). 이에 각 주지도자들은 틀을 갖춘 더욱 강력한 정부를 새로 수립하기로 뜻을 모았고 이 결정에 따라 1787년 헌법 제정 회의가 소집되었다. - P215

버지니아주 대표였던 제임스 매디슨은 이 회의에 대비해 연방제(국가의 권력이 중앙 정부와 주에 동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정치 형태)와 공화제(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 형태. 일반적으로는 간접 민주제를 의미한다)를 성심성의껏 조사하고 공부했다. - P215

 그러나 매디슨은 다수의 위대한 정치사상가와는 달리 책을 통한 막대한 깨달음과 정치인으로서 쌓은 폭넓은 경험을 결합한 결과 정치인 중의 철학자, 철학자 중의 정치인이 될 수 있었다. - P215

 헌법을 자주바꾸는 일은 경기 중에 규칙을 바꾸는 것과 같기에 권력을 향한 민주적 경쟁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헌법안을 설명하고 지지하는 논문을 한데 엮은 『연방주의자』는 매디슨의 설득력 있는 글 덕분에 정치사상 역사에 미국이 남긴 가장 위대한 공헌이 되었다. - P216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는 필요치 않다

매디슨은 뉴저지대학교(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칼뱅파 기독교인 존 위더스푼John Witherspoon, 1723~1794을 사사하며 인간 본성을 향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관적 관점을 받아들였다. - P216

 매디슨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에 동조하며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독단적인 권력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 매디슨이 고안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칸트는 잘 구성된 헌법은 악마종족에게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P217

민주정치를 개인의 자유와 결합하기 위하여


영국 왕실과 의회의 압제를 비난한 매디슨은 미국인들이 서로를 폭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까 우려했다. 이미 남부연합에서는 다수의 채무자가 소수 채권자의 재물을 도용하고 있었다. - P217

매디슨은 민주정치보다는 공화정치를 선호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매디슨이 선호한 체제는 민주공화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사안에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는 고대 직접민주주의인 ‘순수한‘ 민주주의를 비판했다. - P218

종교적 다원주의를 주장하다

정치사상가로서의 매디슨 사상의 진수는 전통적인 정치사상을 뒤집은 방식에서 확실히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 정치를 관통하는 기본 공리는 공동체는 종교적으로 화합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화합할 수 없다는 관념이었다. - P218

거대 공화국의 다양성을 옹호하다

전통적인 정치 이론의 두 번째 기본 공리는 민주적인 정치체는규모가 작고 동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대 민주국가들은 아주 작은 도시국가였고, 로마 공화국이 다양한 민족이 뒤섞인 거대 제국이 되면서 로마 국민은 정치적 자유를 잃었다. - P219

인간의 기질과 환경의 다양성을 생각하면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절대 자연스러운 만장일치에 도달할 수 없고 파벌 싸움과 분열도 다스릴 수 없다. - P220

주권은 모든 곳에 있고 어느 곳에도 없다


전통적인 정치사상의 세 번째 기본 공리는 모든 정부에 주권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 P220

매디슨의 헌법 구상의 진수는 주권은 모든 곳에 있고 또 어느 곳에도 없다는 점이다. 우선 그는 중앙 정부와 여러 주정부를 구분했다. 주권은 중앙 정부에 있을까, 주 정부에 있을까? 답은 ‘둘 다‘이다. 중앙 정부와 주 정부는 내부적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나뉘고, 각 기관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유지할 권력을 지닌다. - P221

만약 앞서 말한 정부의 세 기관 중 두 개 이상이 주권을 빼앗고자 결탁하면 어떻게 될까? 매디슨은 단순한 헌법 조항으로는 야욕있는 정치인들이 법적인 세부 사항을 무시하는 일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P221

(전략). 즉, 널리 알려진 말대로 ‘어떤 정책을 지지할지는 현재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매디슨은 정치인들이 헌법을 수호하도록 촉구하기보다는 상충하는 이들의 야심이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도록 하는 방식에 기댄다. - P222

미국 헌법의 특징

헌법 설계 과정에서 매디슨이 추구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특히 다수 집단에 의한 폭압의 위험성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의 신조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분산 통치‘하는 것이었다. - P222

매디슨의 헌법은 ‘정당‘과 관련한 조항을 포함하지 않은 유일한 근대 헌법이다. 그러나 정당 없이는 정부 기관들이 안정적으로 협력하지 못해 통치 역량을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정당은 기관들이 서로 견제하려는 경향을 약화할 수 있다. - P223

매디슨 철학의 업적과 한계


매디슨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에서 보여준 지도력을 이유로 흔히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세계 역사상 기본 자유를 다룬 가장 영향력 있는 선언으로 평가되는 ‘권리장전United StatesBill of Rights‘이라고 불리는 미국 수정 헌법 10개 조항 구상을 직접적으로 담당했다. 그가 남긴 최고의 정치적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223

한편 매디슨은 노예를 소유하는 동시에 인권을 옹호하는 일이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P223

매디슨 이후로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복잡하면서 교묘한 제도적 장려책과 제약을 고안해왔다. 가령 오늘날 장기를 기증하겠다거나 노후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결정 과정을 구조화하여 ‘도덕적인‘ 결정을 기본 선택지로 놓는다. - P224

한편 매디슨 시절과는 다르게 도덕적 품성과 시민 덕성이라는 말은 거의 포기 상태다. 공직을 이용해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행위는 한때 부패 행위로 크게 책망받았으나 이제는 거의 보편적으로 용인된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된 헌법 제도라도 근본적인 시민덕성이 부족한 정치인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현대 정치판에서도 익히 보고 있다. - P224

21

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혁명가 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는 필연코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Karl Marx. 1818-1883 - P246

대영박물관에서 완성한 혁명 이론


(전략).
당시 마르크스는 급진적 사상 때문에 유럽 관계당국의 추적을 받는 신세였다.
무일푼의 마르크스는 런던에 정착한 후로 거의 런던을 떠나지 않았고, 산업자본주의의 분석가이자 노동계급 이익의 옹호자,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주창자였음에도 영국내 공장조차 방문한 적도 없다. 마르크스가 쌓은 노동자의 처지, 법,
자본주의의 양상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부 정부 보고서 같은 문서에서 나왔다. - P248

초기 자본주의 분석

마르크스가 연구한 자본주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초기 산업자본주의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던 시절이었다. 20세기 복지국가가 나타나 초기의 과도함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각종노동법과 규제를 제정하기 전이었던 당시의 자본주의는 매우 날것이자 야만적인 대량생산 체제였다. - P248

마르크스는 산업 발전의 흥망 주기가 극단적인 데다가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빈곤층의 삶은 시간이 갈수록 처참해지므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자멸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여러 책, 보고서, 신문을 통해 자본주의 내부 기제를 신중하게 그리고 선별적으로 분석했고자본주의 체제는 내재적 모순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정해질 것이분명하니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할 운명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믿었다. - P249

왜 자본주의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가

(중략).
마르크스는 자본가는 겉으로는 경쟁을 지지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경쟁을 막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쟁은 가격을 낮추어 이윤을 좀먹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업사회의 숭배자이자 수호자였던 고전주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조차 사업가들은 모일 때마다 독점과 담합을 공모하고 작은 기업을 무자비하게 쫓아낼 궁리를 한다고 지적했다. - P250

기필코 일어날 혁명을 기다리며


(전략). 런던은 공산주의자동맹의 회원 같은 급진주의자와 선동가에게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던 도시였다. 공산주의자 동맹은 당시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집필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최초의 강령으로 선포했다. - P251

공산주의자동맹

1847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런던에서 창립한 국제적인 비밀 노동자 혁명운동 조직, 프랑스에 망명한 독일 공화파 혁명가들이 결성한 의인 동맹義人同盟을 모체로 한 조직이다. - P251

국제노동자협회


1864년 9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제적인 노동운동 조직.
186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차 대회가 열렸으며, 다양한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했다.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 선언문과 규약을 작성하는 등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을 적극 지도했으며 1870년에는 마르크스파가 제1인터내셔널의 지도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871년 프랑스에서 수립된 파리 코뮌이 붕괴된 이후 제1인터내셔널은 쇠퇴하게되었고 결국 1876년에 해체되고 만다. - P252

대중을 위한 국가는 없다

아우구스투스와 홉스가 그랬듯 마르크스도 국가를 오롯이 부정적인 체제라 평가했다. 그는 정부란 통치 계급이 나머지 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정치권력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려는 조직적 권력에 불과했다. - P252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우리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중략). 이런 심리 조작이 필요한 것은 대다수의삶과 노동의 조건이 너무나 압제적이고 착취적이어서 만약 누군가그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즉시 체제 전복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같아 우리의 현실인식을 거꾸로 뒤집어 착취당하는 상황이 적절하다고 인정하게 만든다. - P253

공산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의 해체라는 과업이 완성되면 더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 갈등은 사라진다.
그는 경쟁, 이기심, 폭력, 사기는 모든 계급 기반 사회의 필연적 특징이나 우리 본성에 내재한 특질은 아니라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악덕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사라질 것이고 우리 본연의 협동적인 본성이 마침내 드러나 강제적 통치를 하는국가는 이제 필요 없어질 것이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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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most Suppliers‘ Interests

공급사와의 지속가능한 협력




가격 경쟁력이 아닌상품 경쟁력의 시대

모든 합리적 경제 주체 Homo economicus 는 자기 이익self-interest을 추구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발점이다. - P91

유통의 세 주체는 공급사 · 소비자·플랫폼(유통)이다. 이 세 주체의이윤 동기는 제각각 다르다. 공급사는 되도록 높은 가격을 받고 싶어하고, 소비자는 되도록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고 싶어 한다. - P91

기존 유통업의 방점은 ‘플랫폼‘에 찍혀 있었다. 오프라인 유통은 부동산이라는 플랫폼에 상품을 채워 넣는 비즈니스이고, 온라인 유통은 온라인 플랫폼에 상품을 채워 넣는 비즈니스다. - P92

유통사 역시 엄연한 기업이므로 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비난할 이유가 전혀 없다. - P92

지금껏 유통사들이 소비자와 공급사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하는 핵심 변수는 ‘가격‘이었다. 고객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하려하고 공급사에 대해서도 제 가격을 보장해주려고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마켓컬리가 이 두 주체 간의 균형을 모색하는 변수는 달랐다. - P92

설립 초기부터 마켓컬리는 기존의 유통 시스템을 보며 ‘과연 이러한상황에서 좋은 상품이 설 자리가 있는가?‘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식자재 유통 시장에서는 생산 농가가 충분한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는 데다가 재고 부담까지 떠안는 일이 잦았다. - P93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마켓컬리는 상품의 가격을 정하는 방법부터 달리했다. 일반적인 유통에서는 유통사의 마진을 기준으로 공급가가 정해진다. 그렇게 정해진 공급가에 생산자는 단가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이렇듯 생산자가 단가를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는 품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P93

 하지만 마켓컬리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2015년5월 21일,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처음으로 10구짜리 달걀 36판을 발주했다. 그때 달걀 36판 때문에 실제로 물류 차를 보내온 것을 보면서 생산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달걀 36판이라고 해봤자 원가가 15만 원인데 담양에서 서울까지의 물류비는 대략 30만원이었다.
이윤보다 좋은 상품을 추구했던 마켓컬리의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미담이 아니라 유통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 P94

‘좋은 상품‘을 강조한 마켓컬리의 전략은 논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소비 트렌드 측면에서도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평가된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온라인·모바일 소비자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던 2016년 이후로 ‘성능 대비 가격‘을 중시하는 이른바 ‘가성비‘
트렌드가 빠르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 P95

가성비 열풍이 시작된 이후 시장의 관심사 역시 ‘그렇다면 앞으로 프리미엄 시장은 어떻게 될까?‘로 변해갔다. 가격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면서 프리미엄 제품이 설 자리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후 시장은 가성비와 프리미엄이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른바 ‘양극화된 소비‘가 등장한 것이다. - P96

마켓컬리의 공급사 관리란 단지 효율적인 공급망Supply chain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품을 들여놓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여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 전국 산지나 유명공급사를 돌며 좋은 공급사 찾아내기, 둘째, 유명 공급사 입점시키기,
셋째, 공급사와 함께 상품 개선하기, 넷째, PB 상품 만들기다. 지금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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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세 가닥의 실


셜록 홈즈는 마음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뛰어난 능력을가지고 있었다. - P75

「이건 내가 아는 그 존슨임에 틀림없군」
홈즈가 접수계에게 말했다.
「이 사람, 회색 머리에 발을 저는 변호사 아닌가?」
「아닙니다, 선생님. 이분은 탄광주이신 존슨 씨입니다.
아주 쾌활한 신사 분이시지요, 연배는 선생님과 비슷할 겁니다」
「이분이 탄광주가 분명한가?」
「물론입니다, 선생님! 이분은 저희 호텔의 오래된 단골이십니다. 그래서 잘 알고 있지요」 - P76

「고맙네, 내가 아는 분은 아닌 것 같군. 왓슨,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네」
홈즈는 2층 계단을 오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친구한테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가진 자들이 이 호텔에 투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우리가 벌써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헨리 경을 놓칠까봐 안달하면서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해.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일세」 - P77

「이놈의 호텔에서는 나를 완전히 바보 멍청이로 아는 모양입니다」
헨리 경은 펄펄 뛰었다.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인데 자꾸 이러면 쓴맛을 보여줄 테요. 그리고 그 아이 녀석도 내 신발 한 짝을 찾아놓지 않으면 큰코다칠 거요. 홈즈 선생님, 나는 기분 좋을 땐 장난도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치들은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군요」 - P78

「뭐라고요! 그럼 또다른 신발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내가 가진 구두라곤갈색 새 구두와 헌 검정 구두, 그리고 지금 신고 있는 에나멜 가죽 구두를 합쳐 세 켤레뿐이었어요. 그런데 어젯밤에는 갈색 구두 한 짝을 집어가더니만 오늘은 검정 구두 한 짝을훔쳐갔습니다. 이봐, 내 신발 찾았나? 멀뚱멀뚱 쳐다보고 섰지만 말고 어서 말해, 이 친구야!」
독일인 급사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 - P78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도둑놈의 소굴에서 더 이상 참고 있지 않을 테니까. 아이고, 홈즈 선생님, 이렇게 사소한 일로 시끄럽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
「화가 날 만한 일입니다」
「허허, 이 일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나 보군요」
「경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괴한 일은 내 평생 처음입니다」 - P79

「나는 바스커빌관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언제 말입니까?」 
「이번 주말에」
「현명한 결정을 하셨군요」
홈즈는 말했다. - P80

「없습니다. 아니, 잠깐만...... 아, 있습니다. 찰스 경의집사 배리모어입니다. 검은 턱수염을 잔뜩 기르고 있지요」
「허! 배리모어는 어디에 살지요?」
「그가 바스커빌관을 관리합니다」
「집사가 진짜로 그곳에 있는지, 아니면 혹시 런던에 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게 좋겠군요」 - P80

「그런데 모티머 선생, 이 배리모어란 어떤 인물이지요?」
「배리모어 집사는 이미 고인이 된 관리인의 아들입니다.
지금 4대째 바스커빌관의 관리자로 일하고 있지요. 그런데그곳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배리모어 부부도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던데요」
「하지만 바스커빌관에 주인 일가가 살지 않는다면 그 부부는 고대 광실에 살면서 놀고 먹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P81

「아하, 그렇군요! 유산을 받은 사람이 더 있습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조금씩 받았고, 또 공공 자선 단체에선막대한 금액을 기부받았지요. 그 나머지가 헨리 경에게 돌아갑니다」
「헨리 경의 몫이 얼마나 됩니까?」
「74만 파운드입니다」
홈즈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액수가 그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군요」 - P82

「찰스 경의 막내 동생 로저 바스커빌이 독신으로 사망했기때문에, 영지는 먼 사촌뻘 되는 데스먼드 씨에게 돌아갈 겁니다. 제임스 데스먼드 씨는 웨스트모어랜드에 사시는 연세지긋한 목사님이십니다」 - P82

「그러면 그 소박한 생활을 하시는 분이 찰스 경의 유가 증권을 상속받게 되는 것이로군요」
「그분은 유언에 따라 영지를 상속받게 될 겁니다. 또 현재의 소유주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현금 재산도 전부 상속받게되지요」 - P83

「모티머 선생과 같이 갈 겁니다」
「하지만 모티머 선생은 할일이 있고, 또 집도 바스커빌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굴뚝같아도 경을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헨리 경에게는 항상 옆을 지켜줄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홈즈 선생께서 동행해 주시면 안 될까요?」 - P8

「그러면 누구와 같이 가는 게 좋을까요?」
홈즈는 내 팔을 잡았다.
「내 친구가 수락하기만 한다면, 곤경에 처했을 때 경의 곁에 잡아둘 만한 사람으로 이 이상 가는 인물이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 P84

언제나 그렇듯 모험에 대한 기대는 나를 들뜨게 했다. 게다가 홈즈에게 칭찬의 말까지 듣고 나서 준남작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기꺼이 동행하기로 하지요」
나는 말했다.
「이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네는 내게 자세하게 보고해 주어야 하네」 - P85

「점심 식사 전에 나는 분명히 이 방을 다 찾아보았거든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방을 샅샅이 뒤졌지요」
헨리 바스커빌이 말했다.
「그때는 분명히 여기에 신발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우리가 점심 먹는 사이에 급사가 이밑에 신발을 넣어놓은 게로군요」 - P86

저녁 식사 직전에 전보 두 통이 도착했다. 첫번째 전보는다음과 같았다.


배리모어가 저택에 있다는 소식을 방금 들었음.
-바스터빌

두번째 전보는 이랬다.

 지시대로 호텔 스물세 곳을 찾아다녔지만 오려진 <타임스>를 찾는 데 실패했음.
-카트라이트


「왓슨, 두 가닥의 실이 끊어졌군.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불리하게만 돌아가는 사건보다 더 자극적인 것은 세상에 없지.
우리는 제3의 단서를 찾아야 하네 - P87

그러나 밖에 온 사람은 단순히 회신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나이가 들어섰는데 그는 문제의 마차를 몰던 마부임에 틀림없었다.
「사무실에서 연락받고 오는 길입지요. 이 주소에 살고 계신 신사 분이 2704번 마차에 대해 묻고 있다고 해서」 - P87

「그런데 알고 싶으신 게 무엇인지?」
「다음에 또 연락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우선 이름과 주소를 적어두세」
「존 클레이턴, 서더크 자치구, 터피 3가. 마차는 워털루역 근처 시플리 마차장에 둡니다요」
셜록 홈즈가 받아적었다.
「자, 클레이턴, 오늘 자네가 마차에 태운 손님은 오전 열시에 이 앞에 와서 이 집을 감시하다가 나중에 두 신사 분의뒤를 쫓아 리젠트가까지 미행했네. 그 손님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해 주게」 - P88

「다른 말은 더 안했나?」
「성함을 말씀해 주셨습지요」
홈즈는 내게 득의양양한 눈길을 던졌다.
「허, 자기 이름을 말해 주었다고? 그것 참 경솔한 짓이었군. 그래, 이름이 뭐라고 하던가?」
「셜록 홈즈라고 하던뎁쇼」
마부가 말했다.
내 친구는 마부의 대답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순간적으로그는 눈만 깜빡거리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 P89

「그런데 리젠트가를 4분의 3정도 내려갔는데 손님께서 갑자기 마차 뚜껑을 벌컥 여시고는 워털루 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라고 소리 지르셨습지요. 저는 말을 채찍질해서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역에 도착했습니다요. 그러자 신사 분은 흔쾌히 2기니를 치르셨습지요. 그리고 역을 향해 가려다말고 돌아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 <자네가 궁금해할것 같아서 말해 주네만 오늘 자네가 태우고 다닌 이 사람은 셜록 홈즈라네.> 저는 이렇게 해서 그 신사 분의 성함을 알게 되었습니다요」
「알겠네. 그 다음에는 그자를 본 적이 없었고?」 - P91

「참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얼굴이었는데, 에, 나이는 대략 마흔 살쯤 되어보였고 중키였습니다요. 선생님보다 5, 6센티미터쯤 작아 보였습죠. 그리고 상류층의 멋쟁이처럼 차려입었고, 끝을 각지게 다듬은 검은 턱수염에 핏기 없이 창백한얼굴이었습지요. 그 이상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뎁쇼」 - P91

「교활한 작자 같으니라고! 놈은 우리집 주소를 알게 됐고 헨리 바스커빌 경이 우리에게 자문을 구하러 왔다는 것도 알아냈네. 그리고 리젠트가에서 나를 알아보았고, 또 내가 마차 번호를 기억해 뒀다가 마부를 찾을 거라는 것도 용케 알아맞혔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대담한 메시지를 보내온 거지. 왓슨, 이번에 우리는 호적수를 만난 걸세. 나는 런던에서 놈에게 보기 좋게 당한 거야. 자네가 데번에 가게 되면 좀더 운이 좋기를 바랄 수밖에. 하지만 나는 아직도 불안하이」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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