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잉여도 문제이지만 자본의 잉여도 문제다. 금융가들이 잉여자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들이 담배를 문 채 햇볕을 쬐며 한가로이 책장을 뒤적이는 평온한 나라로 흘러들어가 그곳에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짓고 노동이라는 저주를 불러들인다. - P25
그런가 하면 악성부채를 받아내는 추심원의 사명을 띤 프랑스의 군대가 파견된 멕시코에서처럼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¹² - P25
12 클레망소가 운영하는 신문인 <라 쥐스티스(La Justice)>의 1880년 4월 6일자 경제면에 다음과같은 기사가 실렸다. "프러시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에서 입은손실과 비슷한 규모의 손실, 즉 수십억 프랑의 손실을 보았으리라는 견해를 들었다. 외국정부의 예산적자 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차관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바다." 영국이 남미의 여러 공화국에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해 입은 손실은 50억 프랑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이미 비스마르크에게 지불된 50억 프랑을 만들어내야 했을 뿐 아니라 올리비에, 지라르댕, 바젠 등 전쟁을 일으켜 패전의 주역이 된 어음발행인들이 지불해야 하는 전쟁배상금의 이자를 계속해서 물어줘야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노동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렇게 수십억프랑을 부담하면 최소한 보복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 P25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의 자연적 본능으로 돌아가 부르주아 혁명의 형이상학적 법률가들이지어낸 무기력한 ‘인간의 권리‘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으를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 P26
(전략) 즉 현명하게 규제되고 하루에 최대 3시간이라는제약이 가해져야만 노동이 인간이라는 유기체에 이로운 몸놀림이 되고 사회라는 유기체에도 유익한 열정의 표출이 되리라는 사실을 프롤레타리아에게 확신시키는 일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힘든 작업이다. - P26
키케로와 같은 시대의 그리스 시인인 안티파트로스는 여성노예를 해방시키고 ‘황금시대‘를 되살릴 물레방아가 발명된 것에 대해 다음과같이 노래했다. "오, 일꾼들이여, 방아를 돌리던 일손을 놓고 편안하게 잠을 자라. 날이 밝았다고 쓸데없이 울어대는 수닭은 그대로 내버려두자. - P27
뜨개질에 능숙한 여성노동자는 1분에 다섯 코밖에 뜨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기계는 1분에 3만 코나 뜬다. 따라서 기계가 작동하는 1분은 여성노동자가 작업하는 100시간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기계가 1분만 작동하면 여성노동자는 10일 동안 쉴 수 있다. - P27
인간과 기계의 경쟁이 무한정 계속되면서 마침내 프롤레타리아는 옛날에 길드 장인들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던 현명한 법을 폐지시키고 공휴일을 없앴다.¹³ - P28
13 과거의 체제에서는 교회법이 일요일 52일과 공휴일 38 일을 더해 모두 90일의 휴식일을 노동자에게 보장했고, 휴식일에는 노동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이는 가톨릭이 저지른 최악의 ‘법죄‘이자 상공업 부르주아지 사이에 무신앙을 초래한 주된 원인이었다. - P28
공휴일에 대한 혐오는 15~16세기에 근대적 상공업 부르주아지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앙리 4세가 교황에게 공휴일을 줄여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 교황은 "오늘날의 이단 가운데 하나는 축제일에 관한 이단"이라면서 거부했다(도사추기경의 서신). - P28
요르단스를 비롯한 플랑드르 화파의 화가들은 그러한 축제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 시절에 과시되던 엄청난 식욕들은다 어디로 갔는가? 인간의 모든 사상을 다 아우르던 숭고한 정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P29
노동자계급이 순진하게도 노동의 교리를 믿었기에, 성급하게도스스로 노동과 금욕에 맹목적으로 빠졌기에 자본가계급은 게을러져야 했교, 억지로 놀아야 했고, 생산하지 말아야 했고, 과소비를 즐겨야했다. - P29
생산계급인 노동자들이 금욕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맹렬하게 쏟아내는 제품을 과소비하는 일에 전념하지않을 수 없게 됐다. 자본주의 생산의 초창기인 1~2세기 전의 자본가는 합리적이고 평온한 습관을 가진 차분한 사람이었다. - P30
그러나 오늘날 신흥부자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노동자들이 수은광산에서 일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은이 특효약으로 쓰이는 질병을퍼뜨리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자본가들은 하나같이 라플레슈 지방에서 순종닭을 기르는 축산농가와 보르도 지방의 포도농가가 분발할 수있도록 버섯을 잔뜩 넣은 닭요리를 최고급 포도주와 함께 뱃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 P30
상류사회의 여성들은 여자 재봉사들이 죽어가면서 만든 눈부시게 아름다운 옷을 보란 듯이 걸치고 다님으로써 순교자를 만들어내는 삶을 산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베틀의 북처럼 이 옷 저옷으로 갈아입는다. - P31
자본가들은 비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이중의 사회적 역할을수행하고자 자신들의 소박했던 취향을 저버리고, 2세기 전만 해도 지니고 있었던 부지런한 습관을 잃어버리고, 무절제한 사치는 물론이고소화력이 뒷받침해주지도 못하는 식도락과 매독을 유발하는 방탕에몸을 내맡겨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생산적인 노동에서 철수시켜 시종으로 삼았다. - P31
생산력의 낭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1861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그 해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구는 2006만6244명이었고, 그 가운데 남성이 977만 6259명, 여성이 1028만 9965명이었다. - P31
"섬유산업 노동자와 광부를 더하면 120만 8442명이다. 섬유산업노동자와 금속산업 노동자를 더하면 총 103만9605명이다. 두 경우 모두 집 안에서 일하는 현대판 노예인 하인보다 수가 적다. 기계를 이용한 자본주의적 착취가 낳은 이 대단한 결과를 보라."¹⁵ - P32
바로 이 시점에 프롤레타리아는 자본가계급이 부도덕이라는 ‘사회적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했음을 간과하고 그들에게 노동을 부과하려고 했다. 아울러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에 대해 경제학자와 도덕가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순진하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태세를 단단히 갖추고는 자본가들에게 그 이론의 실현을 강요하려고 했다. - P33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즐거움과 게으름을 파괴하는 야만적 분노의 폭발을 잔인하게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혁명적 분출은 억누를 수 있었지만 자기들처럼 게으르고 존경할 만한 계급에게도 노동을 강제하고자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거대한 학살의 피바다 속에 묻어버리지는 못했음을 알고 있다. - P34
그들은 자본가들을 10시간 동안 석탄을 캐거나 실을 잣는 일을 해야 하는 처지로 만들 수 있는 대중의 분노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 - P34
노동자들이 과잉생산에 매달려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중의 바보짓을 함에 따라 이제는 생산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를 확보하고 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찾아내고,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하고, 소비자가 헛된 욕구를 갖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과제가 됐다. - P35
유럽은 매년 수십억 달러어치에 이르는 상품을 세계 도처에, 심지어는 그러한 상품이전혀 필요 없는 나라에도 수출한다.¹⁷ - P35
17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인도의 농민들은 주기적인 기근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해져도 쌀이나 밀보다는 아편을 재배하기를 고집했고,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중국과 유혈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중국에 인도산 아편이 자유롭게 유입될 수 있게 하도록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위해서였다. 폴리네시아의 원주민들은 영국식 옷을 입고 영국산 술을 마셔야 했다. 그로 인해 사망률이 상승했음에도 스코틀랜드의 양조장과 맨체스터의 직물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소비돼야 했기에 그들은 계속 그렇게 해야 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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