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는 형광등이 아니라 전구가 달려 있었는데 그나마도 밝은 흰색이 아니라 다소 옅은 노란색이었다. 우리 집만 그런가 하여 창문 너머 다른 집들을 둘러보니,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불을 밝힌 집이 거의 없었다. - P13

 식사할 때는 천장에 달린 등만 켜고, 책상에서 일할 때는 스탠드만 켜고, 침대에 앉아 책을 볼 때는 작은 침대 등만켜게 되었다. 그렇게 어둠이 빛의 영역을 잠식해갔다. - P14

 하지만 어둠이 늘어나자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P14

우주는 어둠으로 충만하다. 빛은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지나서야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다. 빅뱅이 있은 직후, 초기 우주는 너무 뜨거워서 우리가 오늘날 물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 P14

어둠에도 색이 있다. 빛이 거의 도달하지 않는 맞은편 벽의 어둠은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동굴의 색과 같고, 침대 밑의 어둠은부족한 빛마저 모두 빼앗겨 블랙홀이나 가질 법한 검은색을 띠며,
내 몸 가까이 착 들러붙은 어둠 아닌 어둠은 몸의 일부가 된 듯 내자신의 색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 P14

 이때 탄생한 빛은지금까지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라 하며,
그 발견에 노벨물리학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우주는 38만 살 되던해, 자신의 모습을 빛에 남겨 놓은 것이다. - P16

빛은 직진한다. 물체를 떠난 빛은 일직선으로 진행하여 눈에도달한다. 뇌에서는 빛이 일직선으로 진행해 왔다는 가정하에 물체의 모습을 재구성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착시가 일어난다. - P17

 그 결과, 물체가 커 보이게 된다. 돋보기의 유리 표면에서 빛이 꺾이는 현상을 ‘굴절‘이라고 한다. 존 펜드리 박사는빛의 굴절 현상에 주목했다. - P17

그러면 결과적으로 빛이 아무 변화 없이 물체를 지나간 셈이 된다. 빛이 물체를 만나지 않은 것처럼 지나갔기 때문에마치 물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 P17

뉴턴은 운동법칙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지만, 빛을 제대로 연구한 서양의 첫 과학자이기도 하다. 진동수가 다른 빛은 굴절하는 정도가 다르다. 이것을 ‘분산‘이라고 한다. - P18

그러자 흰빛으로 되돌아왔다. 즉, 흰빛은 여러 색의 빛이 모인 것이다. 빛은 그 자신이 이미 모든 색을 가지고 있다. 물체가 색을 갖는 이유는 특정한 색의 빛 반사시켰기 때문이다. - P18

놀랍게도 빨강색의 바깥쪽, 즉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둔온도계의 온도가 가장 많이 올라갔다. 그곳에 손을 대보니 따뜻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열을 전달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 ‘적외선‘이었다. - P19

거리에 서 있는 가로수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까? 정지한 물체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19

TV나 라디오의 채널은 고유진동수를 가진다. 방송사에서는각 채널에 고유한 진동수의 전파를 내보낸다.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면 라디오 수신기의 고유진동수가 바뀐다. - P20

색을 볼 때, 우리 눈에서도 공명이 일어난다. 사람의 눈은 빨간색, 녹색, 파란색을 볼 수 있다. 눈에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있으며 각 세포들은 세 가지 색에서 각각 공명을 일으킨다. - P20

이렇게 주파수에 따른 빛의 흡수 정도를 나타낸 것을 ‘흡수스펙트럼‘ 이라 부른다. - P21

즉,
태양이 수소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1868년 피에르 장센은 태양광의 스펙트럼에서 지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명을 발견했다. - P21

1676년 올레 뢰머는 최초로 빛의 속도를 제대로 측정했다. 빛이 워낙 빠르다 보니 지구상에서 재는 것은 힘들었다. 그래서 뢰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목성의 위성 이오가 목성의 그림자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 P22

이 거리는 지구 크기의 200배 정도 된다. 뢰머가 얻은 결과는 20만km/s로 실제 값인 30만 km/s와 비슷하다. - P22

빛이 야기한 혁명이 종료되었을 때, 우리 앞에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놓여 있었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빛은 언제나 빛나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당신이 읽은 이 글도 당신 눈에 들어간 빛에 불과하다. - P23

138억 년 전, 빛이 처음 생겨난 이후 우주는 팽창을 거듭했다. 빛은 점차 묽어지고 우주를 압도한 건 어둠이다. 어둠은 우주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으며, 어둠이 없는 비좁은 간극으로 가녀린 별 빛이 달린다. - P23

지금은 밤조차 밝아서 별을 많이 볼 수 없다. 하지만 밤이 밤다웠던 시절, 사람들은 책이나 TV보다 별을 더 많이 보았을 것이다. - P24

물리는 말 그대로 사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리‘는법칙이라 생각해도 되겠지만, ‘물‘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 P25

이런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물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없는 걸까?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도 여기에는 여전히 무엇인가있고, 또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 - P26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정말 흐르고 있나? 시간은 연속인가? 시간은 우주의 본질적인 것인가, 아니면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의 부산물인가?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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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잉여도 문제이지만 자본의 잉여도 문제다. 금융가들이 잉여자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들이 담배를 문 채 햇볕을 쬐며 한가로이 책장을 뒤적이는 평온한 나라로 흘러들어가 그곳에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짓고 노동이라는 저주를 불러들인다. - P25

그런가 하면 악성부채를 받아내는 추심원의 사명을 띤 프랑스의 군대가 파견된 멕시코에서처럼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¹² - P25

12 클레망소가 운영하는 신문인 <라 쥐스티스(La Justice)>의 1880년 4월 6일자 경제면에 다음과같은 기사가 실렸다. "프러시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에서 입은손실과 비슷한 규모의 손실, 즉 수십억 프랑의 손실을 보았으리라는 견해를 들었다. 외국정부의 예산적자 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차관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바다." 영국이 남미의 여러 공화국에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해 입은 손실은 50억 프랑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이미 비스마르크에게 지불된 50억 프랑을 만들어내야 했을 뿐 아니라 올리비에, 지라르댕, 바젠 등 전쟁을 일으켜 패전의 주역이 된 어음발행인들이 지불해야 하는 전쟁배상금의 이자를 계속해서 물어줘야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노동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렇게 수십억프랑을 부담하면 최소한 보복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 P25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의 자연적 본능으로 돌아가 부르주아 혁명의 형이상학적 법률가들이지어낸 무기력한 ‘인간의 권리‘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성스러운
‘게으를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하루에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오락을 즐기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 P26

(전략)
즉 현명하게 규제되고 하루에 최대 3시간이라는제약이 가해져야만 노동이 인간이라는 유기체에 이로운 몸놀림이 되고 사회라는 유기체에도 유익한 열정의 표출이 되리라는 사실을 프롤레타리아에게 확신시키는 일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힘든 작업이다. - P26

키케로와 같은 시대의 그리스 시인인 안티파트로스는 여성노예를 해방시키고 ‘황금시대‘를 되살릴 물레방아가 발명된 것에 대해 다음과같이 노래했다. "오, 일꾼들이여, 방아를 돌리던 일손을 놓고 편안하게 잠을 자라. 날이 밝았다고 쓸데없이 울어대는 수닭은 그대로 내버려두자. - P27

뜨개질에 능숙한 여성노동자는 1분에 다섯 코밖에 뜨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기계는 1분에 3만 코나 뜬다. 따라서 기계가 작동하는 1분은 여성노동자가 작업하는 100시간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기계가 1분만 작동하면 여성노동자는 10일 동안 쉴 수 있다. - P27

인간과 기계의 경쟁이 무한정 계속되면서 마침내 프롤레타리아는 옛날에 길드 장인들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던 현명한 법을 폐지시키고 공휴일을 없앴다.¹³ - P28

13 과거의 체제에서는 교회법이 일요일 52일과 공휴일 38 일을 더해 모두 90일의 휴식일을 노동자에게 보장했고, 휴식일에는 노동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이는 가톨릭이 저지른 최악의 ‘법죄‘이자 상공업 부르주아지 사이에 무신앙을 초래한 주된 원인이었다. - P28

공휴일에 대한 혐오는 15~16세기에 근대적 상공업 부르주아지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앙리 4세가 교황에게 공휴일을 줄여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 교황은 "오늘날의 이단 가운데 하나는 축제일에 관한 이단"이라면서 거부했다(도사추기경의 서신). - P28

 요르단스를 비롯한 플랑드르 화파의 화가들은 그러한 축제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다. 그 시절에 과시되던 엄청난 식욕들은다 어디로 갔는가? 인간의 모든 사상을 다 아우르던 숭고한 정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 P29

노동자계급이 순진하게도 노동의 교리를 믿었기에, 성급하게도스스로 노동과 금욕에 맹목적으로 빠졌기에 자본가계급은 게을러져야 했교, 억지로 놀아야 했고, 생산하지 말아야 했고, 과소비를 즐겨야했다. - P29

생산계급인 노동자들이 금욕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맹렬하게 쏟아내는 제품을 과소비하는 일에 전념하지않을 수 없게 됐다. 자본주의 생산의 초창기인 1~2세기 전의 자본가는 합리적이고 평온한 습관을 가진 차분한 사람이었다. - P30

그러나 오늘날 신흥부자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노동자들이 수은광산에서 일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은이 특효약으로 쓰이는 질병을퍼뜨리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자본가들은 하나같이 라플레슈 지방에서 순종닭을 기르는 축산농가와 보르도 지방의 포도농가가 분발할 수있도록 버섯을 잔뜩 넣은 닭요리를 최고급 포도주와 함께 뱃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 P30

상류사회의 여성들은 여자 재봉사들이 죽어가면서 만든 눈부시게 아름다운 옷을 보란 듯이 걸치고 다님으로써 순교자를 만들어내는 삶을 산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베틀의 북처럼 이 옷 저옷으로 갈아입는다. - P31

자본가들은 비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이중의 사회적 역할을수행하고자 자신들의 소박했던 취향을 저버리고, 2세기 전만 해도 지니고 있었던 부지런한 습관을 잃어버리고, 무절제한 사치는 물론이고소화력이 뒷받침해주지도 못하는 식도락과 매독을 유발하는 방탕에몸을 내맡겨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생산적인 노동에서 철수시켜 시종으로 삼았다. - P31

생산력의 낭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1861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그 해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인구는 2006만6244명이었고, 그 가운데 남성이 977만 6259명, 여성이 1028만 9965명이었다. - P31

"섬유산업 노동자와 광부를 더하면 120만 8442명이다. 섬유산업노동자와 금속산업 노동자를 더하면 총 103만9605명이다. 두 경우 모두 집 안에서 일하는 현대판 노예인 하인보다 수가 적다. 기계를 이용한 자본주의적 착취가 낳은 이 대단한 결과를 보라."¹⁵ - P32

15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 P32

바로 이 시점에 프롤레타리아는 자본가계급이 부도덕이라는 ‘사회적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했음을 간과하고 그들에게 노동을 부과하려고 했다. 아울러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에 대해 경제학자와 도덕가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순진하게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태세를 단단히 갖추고는 자본가들에게 그 이론의 실현을 강요하려고 했다. - P33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즐거움과 게으름을 파괴하는 야만적 분노의 폭발을 잔인하게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혁명적 분출은 억누를 수 있었지만 자기들처럼 게으르고 존경할 만한 계급에게도 노동을 강제하고자 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거대한 학살의 피바다 속에 묻어버리지는 못했음을 알고 있다. - P34

 그들은 자본가들을 10시간 동안 석탄을 캐거나 실을 잣는 일을 해야 하는 처지로 만들 수 있는 대중의 분노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  - P34

노동자들이 과잉생산에 매달려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중의 바보짓을 함에 따라 이제는 생산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를 확보하고 그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찾아내고,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하고, 소비자가 헛된 욕구를 갖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과제가 됐다.  - P35

유럽은 매년 수십억 달러어치에 이르는 상품을 세계 도처에, 심지어는 그러한 상품이전혀 필요 없는 나라에도 수출한다.¹⁷ - P35

17 두 가지 사례를 들 수 있다. 인도의 농민들은 주기적인 기근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해져도 쌀이나 밀보다는 아편을 재배하기를 고집했고,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중국과 유혈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중국에 인도산 아편이 자유롭게 유입될 수 있게 하도록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위해서였다. 폴리네시아의 원주민들은 영국식 옷을 입고 영국산 술을 마셔야 했다. 그로 인해 사망률이 상승했음에도 스코틀랜드의 양조장과 맨체스터의 직물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소비돼야 했기에 그들은 계속 그렇게 해야 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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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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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러다가, 그러다가 용희가 아니라는 걸 그런 걸 알게 되면.…………. 무슨 방법을 써서든지 만약에 알게 되면……...
"실자야."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그러면 우리 용희는・・・・.… 우리**용회는ㆍㆍㆍㆍㆍ…. - P141

천주라고 불린 여자의 말대로 종교의 자유는 법으로 허락되어 있다.
"마지막인데 말이야. 혹시 옷 좀 걷어 봐도 될까?"
보이지 않는 곳에 폭행의 흔적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였다. 아이는 어리둥절해했다.  - P142

"이야기 끝났으면 들어가도되죠?"
최두연이 신미현을 보았다. 신미현이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문제를 만들지 말자는 제스처였다. 아이가 있는 것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 P142

최두연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이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제목덜미를 만졌다.
헐렁한 티셔츠 안쪽으로 어깨에 있는 커다란 점이 보였다. - P143

선준은 룸미러를 흘끗 쳐다보았다. 작은 거울 안에 뒷자리에 앉은 예원과 로운이 비쳐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원은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로운은 그런 예원을 연신 흘깃거렸다. - P144

그러나 아이를 데려온 이상 식사를 거를 수는 없었다. 내 아이를 찾아야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데려온 아이다. 최소한, 아이를 보살피는 데에 있어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44

 예원은 로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배고팠지? 미안"
로운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어렴풋한 미소를 지었다.
선준은 휴게소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시켰다. 예원과 로운이 내릴 동안 조수석에 벗어둔 점퍼를 집어 들었다.  - P145

차에서 내린 선준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세 장을 꺼냈다. 자신이 출금하는 동안 먼저 들어가 주문하라고 할 생각이었다. 예원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휴게소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 P145

그곳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휴게소에서 나오는 어떤 여자가 있었다. 평범한 아이 엄마의 모습에 로운은 시선을 빼앗긴 것 같았다. 그런 로운이 곧 예원을 올려다보았다. 예원은 로운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 P145

선준은 지갑에서 꺼낸 3만 원을 예원에게 내밀었다.
"먼저 들어가서 주문해놓고 있어. 현금 좀 찾아서 들어갈 테니까."
"그래"
예원이 돈을 받아 휴게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로운은 예원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 P146

아이가 거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아이가 저렇게 된 것은 아이를 방치한 엄마의 탓이다. 억지로 데려온 것도 아니다. 그러니 법으로야 어떻든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 P146

‘가는 데까지는 가보자‘
목적지는 확실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실제로 존재하는 게 맞는지까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다. 요즘은 포털사이트에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것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 P147

현금지급기로 향하던 선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다시 확인하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공중전화 부스 한 대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도 공중전화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멈춰 선 것은 아니었다. - P147

 심장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럴 때쯤 그 전화가 걸려 왔다.
031-582-####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031이면 경기도 어디쯤이라고 본능적으로 감지할 뿐이었다. - P148

"공중전합니다."
형사 하나가 외쳤다. 전화번호로 곧장 위치를 확인했다. 거실에서 진두지휘를 하던 양 형사의 얼굴이 상기됐다. 곧장 발신지로 인근 지역의 형사가 급파됐다. 하지만 형사들이 도착했을 때 공중전화는 비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CCTV가 없는 지역이었다. - P148

선준은 그때 전화가 걸려 온 공중전화기 위치가 어디였는지를기억해내려 애썼다. 들었다면 잊었을 리가 없다. 경기도 어딘가의 시골이라고만 전해들었다. 전화가 걸려 왔을 때는 형사들에게 일일이 물었다가 추적이 지연되기라도 할까 봐, 후에는 선우와 관련성이 없다는 결과를 들어서 실망했기에 자세히 묻지 않았다. - P149

선준은 단축 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양 형사의 전화번호가 뜨면서 발신 중이라는 글씨가 화면에 떴다. 선우를 잃어버린 후 두사람의 단축 번호 1번은 양 형사였다. - P149

 신호가 끊어지기 직전 양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별로 반가운 기색은 아니었다.
"이선준입니다."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러니 할말이나 하고 빨리 끊어라. 침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P150

"전화가 걸려 왔던 공중전화 위치가 어딘지 정확히 좀 알수없을까요?"
-지금 어디십니까?
그 말은 ‘지금 뭘 하고 있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 P150

"경찰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제 심정도 이해해주시겠죠. 지난 시간 동안 우리는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곳을 안 가볼 이유가 없죠. 저희한테는이게 마지막 기회입니다."
-마지막이요?
양 형사의 목소리에 불안이 담겨 있었다. - P151

"네. 꼭 부탁합니다."
선준은 전화를 끊었다. 그들에게는 길고 긴, 물 한 모금 없고 희망한 자락 없는, 지옥의 사막 같던 3년의 시간이 그에게는 3년밖에 안 된 일이었다. - P151

"먼저 먹어도 돼요?"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쉴 새 없이 음식이 나오는 대로 순번을호출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에 소리가 부딪혀 웅웅대는 소음이 청각을 더 둔화시켰다. - P152

"아줌마."
용기 낸 두 번의 부름이 우동 위의 김처럼 공기 중에서 사그라졌다. 동시에 로운의 눈에 묘한 빛이 스쳤다. 로운은 우동그릇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손으로 당겼다. 우동 그릇이 로운의 허벅지 위로 엎어졌다. - P152

"여보!"
고함이 들린 걸까. 유리창 너머에서 선준이 이쪽을 돌아다 보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튕겨지듯 그가 출입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작은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가는 로운의 몸을 끌어안은 예원의 무릎 밑에도 뜨거운 우동국물이 흥건했다. 예원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P153

 안내한 사람 중 남자 직원이 급히 벽에 설치된 장식장의 문을 열더니 구급상자를 들고 왔다.
"119에 신고해드릴까요?"
선준은 남자 직원의 얼굴과 로운의 젖은 허벅지를 번갈아 보았다. 조심스럽게 운이 입은 바지를 벗겼다. 다행히 살갗이 바지에 붙지는 않았다. - P153

구급상자에서 화상 연고를 꺼내 우동이 쏟아진 부위에 넓게펴 발랐다. 이따금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쓰라리지는 않은지 인상을 쓰지는 않았다. - P154

선준이 연고를 다 바르고 나자 무서운 얼굴로 아이를 다그쳤다.
"일부러 그랬지?"
선준은 귀를 의심했다. 직원들이 의아한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예원은 그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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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러 가고 싶다.

낭만주의
최초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반역자였다.
그는 정부나 종교, 교육식 권위를 통렬히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제도와 인간을 ‘생각하는 기계‘로 환원시키는 계몽주의도 비난했다. 블레이크는 인간성의 신비롭고 설명 불가능하며 영적인 면에 다시 초점을 맞추려했다. - P545

 합리성은 확실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초기 그리스에서처럼 자리를 옮겨 산문 속으로 샛길을 냈다. 시인은 인간성의 덜 합리적이고 더 정서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측면을 대변했다. 현대의 시인들도 이를 끊임없이 채워 넣는 역할을 맡고 있다. - P546

1798년 『서정 담시집』을 출간한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블레이크라는 ‘종교적인‘ 본류보다는 덜한 신비주의를 제시했다. 비인격적인 신성한 힘,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간 영혼 양쪽 모두에 거주하는 숭고함이 그것이다. 블레이크림 위즈위스와 콜리시는 논리와 질서, 위계에 저항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성의 다양한 불꽃을 품고 있는데 사회가 있는 힘을 다해서 그것을 평평하게 균질화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교육에 반대했다. - P547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많은 낭만주의자들은 자기 인생을 고루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바이런 경은 여기서 예외이긴 하다.) 위즈워스는 심지어 자기 고향을 위해 관세 담당자가 되었다. - P548

낭만주의자들은 자연과 인간의 영혼을 신성이 가장 잘 깃든 곳으로 보았다. 낭만주의 시들은 자연 풍경이나 정서에서 시작해 이들을 세심하게 묘사한 다음 장면이나 정서를 좀 더 폭넓은 우주적 관념과 연결시켰다. 그들은 또한 화자의 심리에 주된 초점을 맞추는 극적인 시, 1인칭 화자의 독백을 주로 사용했다. - P548

내 다정한 기운이 쇠퇴하네.
내 기운이 질식할 듯한 가슴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낙심 : 송가」 중에서 - P549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이른바 미국식 르네상스에서 미국 시인들은 낭만주의의 착상들, 즉 자연에 존재하는 신성과 상상적인 것의 우위,
시에서 화자인 ‘나‘, 논증과 이성보다는 분위기와 경험에 맞추어진 초점을 구체화하면서도 미국적인 맥락에서 시도하려고 애썼다. - P549

 자서전이 가장 지배적인 주제가 된 것이다. 휘트먼의 『풀잎』과 디킨슨의 시편들은 평범한 미국인 남성이나 여성의 정체성을 담구해 들어간다. ‘미국 르네상스의 시들은 영국 낭만주의의 함의와 씨름한다. - P550

미국 르네상스 시의 형식은 시 쓰는 언어의 능력에 대한 다양한 신뢰를 보여 준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확신한 월트 휘트먼은 종종합운도 운율도 없이 자유롭게 흐르는 대로 운문을 쓴다.


이곳은 내가 속해 있는 도시다.
다른 사람의 관심사가 무엇이든 내 관심사는
정치와 전쟁, 시장, 신문, 학교,
시장과 의회, 은행과 요금,
중기선과 공장, 주식과 가게,
부동산과 사유 재산이다.

- 「나 자신의 노래」 중에서 - P550

모더니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시에 아이러니가 눈에 띄게 출현한다.
(중략)
모더니즘 시들은 여전히 자전적이어서 세계 내에서 자아와 자아의 자리를 탐색하지만, 미국식 르네상스의 불안이라는 주제는 광범위한 근심을 안착시켰다. - P551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대신에 사물의 물리적이고 독특한 존재, 즉 ‘고유함‘ 내에서 의미를 찾기로 했다. 윌리엄스는 "사물 속에만 관념이 있다."고 말했고, 손수레, 서양 자두 같은 사물의 고유함을 영속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 P552

파운드와 윌리엄스 그리고 다른 모더니스트들은 엄격한 음절 구조(전체가 3행이며 첫째 행은 다섯 음절, 둘째행은 일곱음절, 셋째 행은 다첫 음절이다.)를 취하고, 이것을 탄탄한 주제 전략으로 결합시키는 일본의 하이쿠(俳句)의 영향을 받았다. - P552

1912년 이후 이미지주의자라고 알려진 파운드와 다른 시인들은 하이쿠의 엄격한 음절 법칙에 매달리지 않고 시를 정확한 시각적 그림 속에 주의깊게 정착시키는 방법에중점을 두었다. 종종 우주적 차원으로 이어지는 전환 없이 그림 자체가 나머지 시를 대변했다. - P553

‘모더니즘‘은 자신들을 독자적이라고 여기며, 종종은 최선을 다해서로를 모더니스트라는 우리 바깥으로 차 버리려 했던 일군의 시인들에게 광범위하게 붙여진 이름표다. (1929년 T.S. 엘리엇은 ‘모더니즘‘을 ‘정신의 고사병‘이라고 불평했다.) - P553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중 "시는 혼란을 버티는 순간의 머무름이다."라는 구절처럼 시가 흘러내리는 모래밭에 단단한 지점, 즉 서 있을지반"이라는 생각은 언어 자체가 고칠 수 없이 왜곡되고 굴절되었다는 모더니스트들의 확신이 굳어 감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렸다. - P554

모더니즘의 유산은 20세기 후반 시인들의 강렬할 정도로 내향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시인은 광인처럼 유파를 따르지 않는 고독한 인물이었다. - P556

시인 버넌스캐널은 "대다수 현대시는 대학에서 주석을 다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해체‘ 기교를연습하려고 쓴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뉴욕 타임스》에서 30년 동안 기명 논평을 맡은 노련한 언론인 러셀 베이커는 이렇게 언급했다.
"새로운 시라면 30년 전, 적대적인 세계에 사는 외로운 외계인들사이에서 오가는 암호화된 전언같이 읽히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글렀다고 단념했다." - P557

필립 라킨은 말한다.
"다음 상황은 도저히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시인은 행복한 지위를 얻었다. 거기서 자기 자신의 시를 매체에서 칭찬할 수 있고 교실에서설명할 수 있어서, 독자가 ‘이건 마음에 안 드니까 뭔가 다른 걸 보여 줘‘
라는 소비자의 권력을 포기하도록 거만하게 구는 그런 자리 말이다."¹⁵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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