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러 가고 싶다.

낭만주의
최초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반역자였다.
그는 정부나 종교, 교육식 권위를 통렬히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제도와 인간을 ‘생각하는 기계‘로 환원시키는 계몽주의도 비난했다. 블레이크는 인간성의 신비롭고 설명 불가능하며 영적인 면에 다시 초점을 맞추려했다. - P545

 합리성은 확실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초기 그리스에서처럼 자리를 옮겨 산문 속으로 샛길을 냈다. 시인은 인간성의 덜 합리적이고 더 정서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측면을 대변했다. 현대의 시인들도 이를 끊임없이 채워 넣는 역할을 맡고 있다. - P546

1798년 『서정 담시집』을 출간한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블레이크라는 ‘종교적인‘ 본류보다는 덜한 신비주의를 제시했다. 비인격적인 신성한 힘,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간 영혼 양쪽 모두에 거주하는 숭고함이 그것이다. 블레이크림 위즈위스와 콜리시는 논리와 질서, 위계에 저항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신성의 다양한 불꽃을 품고 있는데 사회가 있는 힘을 다해서 그것을 평평하게 균질화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었고 그래서 교육에 반대했다. - P547

아이러니컬하게도 수많은 낭만주의자들은 자기 인생을 고루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바이런 경은 여기서 예외이긴 하다.) 위즈워스는 심지어 자기 고향을 위해 관세 담당자가 되었다. - P548

낭만주의자들은 자연과 인간의 영혼을 신성이 가장 잘 깃든 곳으로 보았다. 낭만주의 시들은 자연 풍경이나 정서에서 시작해 이들을 세심하게 묘사한 다음 장면이나 정서를 좀 더 폭넓은 우주적 관념과 연결시켰다. 그들은 또한 화자의 심리에 주된 초점을 맞추는 극적인 시, 1인칭 화자의 독백을 주로 사용했다. - P548

내 다정한 기운이 쇠퇴하네.
내 기운이 질식할 듯한 가슴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낙심 : 송가」 중에서 - P549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이른바 미국식 르네상스에서 미국 시인들은 낭만주의의 착상들, 즉 자연에 존재하는 신성과 상상적인 것의 우위,
시에서 화자인 ‘나‘, 논증과 이성보다는 분위기와 경험에 맞추어진 초점을 구체화하면서도 미국적인 맥락에서 시도하려고 애썼다. - P549

 자서전이 가장 지배적인 주제가 된 것이다. 휘트먼의 『풀잎』과 디킨슨의 시편들은 평범한 미국인 남성이나 여성의 정체성을 담구해 들어간다. ‘미국 르네상스의 시들은 영국 낭만주의의 함의와 씨름한다. - P550

미국 르네상스 시의 형식은 시 쓰는 언어의 능력에 대한 다양한 신뢰를 보여 준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확신한 월트 휘트먼은 종종합운도 운율도 없이 자유롭게 흐르는 대로 운문을 쓴다.


이곳은 내가 속해 있는 도시다.
다른 사람의 관심사가 무엇이든 내 관심사는
정치와 전쟁, 시장, 신문, 학교,
시장과 의회, 은행과 요금,
중기선과 공장, 주식과 가게,
부동산과 사유 재산이다.

- 「나 자신의 노래」 중에서 - P550

모더니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시에 아이러니가 눈에 띄게 출현한다.
(중략)
모더니즘 시들은 여전히 자전적이어서 세계 내에서 자아와 자아의 자리를 탐색하지만, 미국식 르네상스의 불안이라는 주제는 광범위한 근심을 안착시켰다. - P551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대신에 사물의 물리적이고 독특한 존재, 즉 ‘고유함‘ 내에서 의미를 찾기로 했다. 윌리엄스는 "사물 속에만 관념이 있다."고 말했고, 손수레, 서양 자두 같은 사물의 고유함을 영속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 P552

파운드와 윌리엄스 그리고 다른 모더니스트들은 엄격한 음절 구조(전체가 3행이며 첫째 행은 다섯 음절, 둘째행은 일곱음절, 셋째 행은 다첫 음절이다.)를 취하고, 이것을 탄탄한 주제 전략으로 결합시키는 일본의 하이쿠(俳句)의 영향을 받았다. - P552

1912년 이후 이미지주의자라고 알려진 파운드와 다른 시인들은 하이쿠의 엄격한 음절 법칙에 매달리지 않고 시를 정확한 시각적 그림 속에 주의깊게 정착시키는 방법에중점을 두었다. 종종 우주적 차원으로 이어지는 전환 없이 그림 자체가 나머지 시를 대변했다. - P553

‘모더니즘‘은 자신들을 독자적이라고 여기며, 종종은 최선을 다해서로를 모더니스트라는 우리 바깥으로 차 버리려 했던 일군의 시인들에게 광범위하게 붙여진 이름표다. (1929년 T.S. 엘리엇은 ‘모더니즘‘을 ‘정신의 고사병‘이라고 불평했다.) - P553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중 "시는 혼란을 버티는 순간의 머무름이다."라는 구절처럼 시가 흘러내리는 모래밭에 단단한 지점, 즉 서 있을지반"이라는 생각은 언어 자체가 고칠 수 없이 왜곡되고 굴절되었다는 모더니스트들의 확신이 굳어 감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렸다. - P554

모더니즘의 유산은 20세기 후반 시인들의 강렬할 정도로 내향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시인은 광인처럼 유파를 따르지 않는 고독한 인물이었다. - P556

시인 버넌스캐널은 "대다수 현대시는 대학에서 주석을 다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해체‘ 기교를연습하려고 쓴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뉴욕 타임스》에서 30년 동안 기명 논평을 맡은 노련한 언론인 러셀 베이커는 이렇게 언급했다.
"새로운 시라면 30년 전, 적대적인 세계에 사는 외로운 외계인들사이에서 오가는 암호화된 전언같이 읽히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글렀다고 단념했다." - P557

필립 라킨은 말한다.
"다음 상황은 도저히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시인은 행복한 지위를 얻었다. 거기서 자기 자신의 시를 매체에서 칭찬할 수 있고 교실에서설명할 수 있어서, 독자가 ‘이건 마음에 안 드니까 뭔가 다른 걸 보여 줘‘
라는 소비자의 권력을 포기하도록 거만하게 구는 그런 자리 말이다."¹⁵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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