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며칠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들은 한 말기 암환자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킨이 병실에 들어섰을 때 죽음을 목전에 둔 그 환자가 입을 열었다. "곧 죽을 나를 용케찾았군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그동안 죽음에 관해 썼던 모든 내용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 어떻게 죽고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보여줄 기회를 잡은 셈입니다." - P4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은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EmestBecker 였다. 베커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아주 오래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종교학, 문학,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얻은 통찰을 종합하여책으로 소통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 P5
어니스트 베커는 1974년 3월 6일, 마흔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두 달 후 《죽음의 부정》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P5
몇 년 후 1970년대 말에 우리 세 명의 저자는 캔자스대학 실험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에 등록하면서 서로 만나게 됐다. 금세 우리는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후 우리는 연구와 토론을 거쳐인간이 지닌 두 가지 기본 성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인간은 자신의 자존감을 보호하고자 한다. 둘째,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 P6
젊은 혈기로 가득했던 우리는 1984년도 실험사회심리학회 회의에서 베커의 주장을 동료 사회심리학자들과 나누려는 생각에 들떴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얻고자 노력한다는 베커의 주장을 기반으로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IMT‘ 이라고 명명한 학설을 소개했다. 그런데 공포관리 이론이 사회학, 인류학, 실존철학,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자 청중들은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뒤이어 마르크스, 키에르케고르, 프로이트, 그리고 베커의 사상을 이야기하자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하나둘 일어나 회의장 문을 빠져나갔다. - P7
우리는 어리벙벙했지만 의연하게 미국 심리학회 American PsychologicalAssociation의 대표 학회지인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American Psychologisty에 논문을 기고했다. 몇 달 후 답장이 왔다. "그 어떤 심리학자도 이논문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라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한 줄짜리 논평이 실려 있었다. 우리는 제출한 논문이 왜 그토록 형편없는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와 접촉했던 첫 번째 편집장은 재임기간이 끝나도록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좀 더 인정스러운(혹은 더 끈질기게 괴롭힘을 받은 두 번째 편집장이 응답을 보내왔다.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데, 누가 진지하게 듣겠습니까?" - P7
우리는 이 답변을 받고 지난 25년 동안 죽음의 공포가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우리 이론이 관심을 끌면서 세계 도처에서 동료들이 합류했다. 지금은 심리학자는 물론 다른 학문분야의 학자들도 공포 관리 이론을 연구하고 있으며 베커가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많은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 P8
한 세기 전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시사한 바와 같이 죽음은진실로 인간 조건의 핵심에 존재하는 크나큰 고뇌이다. ‘언젠가 죽는다‘는 인식은 우리가 의식하든 아니든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생각감정, 행동에 심오하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다. - P8
한마디로, 죽음의 공포는 인간 행동의 기저에 있는 주된 원동력이다. 이 책은 죽음의 공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실제로 ‘인간행동의 원인‘ 을 논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을 거론하지 않는다면 인간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 P9
1부에서는 공포 관리 이론의 기본 원리와 공포 관리의 양대 기둥인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우리 선조에게 죽음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는가‘와 ‘그들은 죽음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고대사를 탐구한다. 3부는 언젠가 죽는다는 암시가 개인 및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아울러 현대 세계를 이해하고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처할 때 우리 연구가 함축하는 바를 생각해본다. - P9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어떻게 가장 고귀한 인간 행동이나 가장 비도덕적인 인간 행동 양쪽 모두의 기저를 이루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통찰이 어떻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 P9
줄리안은 11일 동안 카이만(악어의 일종-옮긴이), 타란툴라(독거미의 일종 옮긴이), 독개구리, 전기뱀장어, 민물 노랑가오리 (꼬리에 맹독을 지닌 가시가 있다옮긴이)가 우글거리는 아마존 정글 속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녀는 맹렬한 폭우, 질척이는 진창, 혹독한 더위, 떼지어 몰려들며 끊임없이 쏘아대는 벌레들의 맹공을 견뎠다. - P16
쇼크 상태가 줄리안을 구했다. 그녀는 별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솜에 감싸인‘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물고 쏘는 벌레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녀를 괴롭혔다.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잠자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몸에 난 상처에는 구더기가자리를 잡았다. 벌레에 물린 자리는 심하게 덧났다. 강을 떠내려오는 동안 줄리안은 햇볕에 너무 심하게 탄 나머지 피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감각이 마비된 채 계속 나아갔다. - P17
줄리안은 그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 P17
이들 이야기는 모든 생물이 자기 보호를 위한생체 시스템을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수십억 년에 걸쳐다양하고 복잡한 생물 형태가 진화해 왔고, 그 각각의 생물은 번식하여 유전자를 미래 세대에 전달하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살도록 특수하게 적응해 왔다. 예컨대, 물고기에는 아가미가 있고 장미 덤불에는 가시가 있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묻었다가 몇 달 후에 이를 다시찾아간다. 흰개미는 나무를 먹는다. 생명체가 ‘살아남기‘라는 기본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놀랍도록 무궁무진하다. - P18
박쥐나 지렁이와 달리 인간은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머지않아 죽음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는 대단히 불안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 P18
어쩌다가 인간은 이런 곤경에 빠지게 됐을까? 인간도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의무를 지고 있지만몇 가지 측면에서 여타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이 있다. - P19
대신 우리의 조상인 소규모 아프리카 원시 인류 무리는 대단히사회적인 동물이었고 그 자손들의 대뇌 피질이 진화한 덕분에 인류는 마침내 비상한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발달은 협동과 분업을 촉진했고 궁극적으로 도구, 농경, 요리, 가옥을 비롯한 수많은 발명과 발견을 낳았다. 그들의 자손인 우리는 개체수를 늘리며번창했고 인류 문명은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 P19
이렇게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고도의 행동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간보다 단순한 생물들은 주변 환경에 즉각적이고 늘 똑같이 반응한다. 예컨대, 나방은 언제나 빛을 향해 날아간다. 이런 나방의 행동은 길을 찾고 포식자를 피할 때는 유용하지만 빛을 발하는 근원이 촛불이나 모닥불일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나방과 달리 인간은 지금 겪고 있는 감각적 체험의 흐름에서 주의를 전환할 수 있다. 우리는 본능에 따라움직이기도 하지만 학습 및 사고 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햄동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상황과 그 상황이 초래할 잠재적인결과를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심사숙고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 P20
자기인식은 대개 우리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 - P20
게다가 자기인식은 기분 좋은 느낌을 선사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 오토 랭크Otto Rank 의 말을 빌리면, 우리 각사는 ‘광대한 원시적 힘을 잠시 동안 상징하는 대리인‘이다. - P20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안다. 죽음은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고 우리는 이를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나는 사실은 확실히 딜갑지 않은 소식이다. 운 좋게 독충이나 맹수, 흉기, 총알, 비행기 추락, 자동차 사고, 암, 지진의 공격을 피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영원히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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