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 읽을 월터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과 이후의변화를 다룹니다. 독서인인 우리의 기원이 이 책에 담겨 있지요. - P113
인간의 정신은 인간이 사유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하는 것이자 사유활동의 결과물입니다. 인간은 홀로 살지 않으니 각자의 정신을 서로 교환하는데요, 그럴 때 감각기관을 사용합니다. 각자의 감각기관은 상대방의 정신을 수용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 P114
인간의 정신은 언어 language로 표현되는데, 언어는 말speech과 글words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발화자는 입으로 말하고 수신자는 말을 청각으로 지각합니다. 글을 읽을 때는 시각이 동원됩니다. 청각기관과 시각기관이 모두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개입하는 것이죠. - P114
여러분은 외국어를 배울 때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혹시 여러분도 저처럼 외국어의 읽기와 말하기 능력 간에 심한 불균형이 있으신가요? - P115
지구상에는 약 3천 개의 언어가 있는데, 문학을 가진 언어는78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구술문화와 문자문화》, 36쪽), 글 없이 말로만 존재하는 언어가 더 많은 것이죠. - P115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수십만 년이지만 "최초의 기록물이 나타난 것은 고작해야 6천 년 전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30쪽)에 불과합니다. 기록된 문헌에 기초하면 인류의 역사 서술에는 비어 있는 부분의 시간이 기록된 시간보다 길기만합니다. - P116
말은 청각적 세계에 속하고 글은 시각적 세계에 속합니다. 서양 문명을 말과 글의 관계, 즉 청각적 세계와 시각적 세계의 중심성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헬레니즘과 기독교는 시각적 세계에 헤브라이즘과 유대교는 청각적 세계에 가깝습니다. - P116
헬라스인에게 시각은 가장 명중하고 정확한 감각기관이었습니다. 헬라스적 사유에서 모든 것은 시각성에 의존합니다. 헬라스 문화에서 벌거벗은 조각상을 가장 고귀한 예술적 이념으로 설정했던 것은 나체상이 시각적 투명함을 구현한 것이라여겼기 때문입니다. - P117
성경 중에서도 유대교에서 ‘토라‘라 부르는 모세 오경에는 청각적 은유가 많이 등장합니다. 구약의 세계는 말과 글의 관계에서 보자면 언어가 오로지 말로만 존재하던 세계를 의미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 (창세기 12:1 이하 성경인용은 <공동번역 성서>)하셨습니다. - P117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인간의 정신을 언어로 표현할 때 그 언어가 청각적 세계에서 펼쳐지는 구술문화와, 말이 문자로 옮겨져 시각적인 세계로 전이되는 문자문화를 비교하는 책입니다. 책의 절반은 문자문화가 형성되기 이전, 즉 인간의언어가 말로만 존재하던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나머지 절반은문자문화로 인해 변화된 인간의 의식을 분석하는 데 할애됩니다. - P118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구술적 상황을 옹은 ‘1차 구술성‘이라 부릅니다. 1차 구술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직접 그 세계를 우리에게 문자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 P118
방법론적 난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옹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찾아냅니다. 이렇게 《일리아스》가 또 등장하는군요. - P119
밀먼 패리 이전 호메로스를 해석하는 주류 방법은 이른바 분석주의였습니다. 분석주의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잘 조립되어 있는 텍스트이며 인물도 일관성 있게 성격화되어 있기에 한 명의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품이라고해석하는 입장입니다. - P119
밀먼 패리는 이 해석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리아스》에서 다뤘던 것처럼 호메로스의 실체는 오래된 논쟁이었지만, 호메로스가 한 명의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문제 제기는 의혹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P119
밀먼 패리는 자신의 방법으로 호메로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거를 확보해나갑니다. 그는 "호메로스의 시에 드러나는 모든 특징들은 구술적 창작 방식에 필연적인 유기적 체계"(구술문화와 문자문화》, 56쪽)에 기인한다는 발견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 P120
기원전 800년경헬라스 알파벳으로 기록되기 이전 서사시가누구에 의해 어떻게 전수되었는가를 상상하는 데 작곡가 버르토크 벨러Bartók Béla의 민속음악 연구를 참조할 만합니다. 버르토크는 음악학자이기도 했어요. - P120
《일리아스》에는 정형구 formula가 수시로 등장합니다. 정형구는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이야기의 체계를 위협하는 요소임에도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 P121
쓰기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서 정형구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호메로스 시대에는 값지게평가되었는데요. "단지 시인뿐만 아니라, 구술문화에 속하는 인식 내지 사고 전체가 그러한 정형적인 사고의 조립에 의지했고 "구술문화에서는 일단 획득된 지식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복"(<구술문화와 문자문화>, 60쪽)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 P121
구술문화는 또한 글보다는 말을 신뢰합니다. 입으로 말하고귀로 들으며 의사소통을 했던 구술문화는 위조될 수 있는 문자보다는 육체의 현존을 전제로 한 사람의 말이 진실되다고 판단했습니다. - P122
쐐기문자는 기록하는 방식이나 용도에 있어서도 우리의 문자 문화와 많은 점에서 다릅니다. - P122
쐐기문자는 "대부분이 도시사회에서 그날그날의 경제활동 및 행정활동을 기록(<구술문화와 문자문화》, 149쪽)하는 데 쓰였습니다. 쐐기문자의 유용성을 제일 먼저 깨달은 집단은 거래 내역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상인입니다. - P123
문자 쓰기로 인한 의식의 재구조화와 관련해 옹은 표음문자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알파벳과 우리의 한글은 이런 맥락에서 옹의 주요 관심 문자이지요. 원형 알파벳은 페니키아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 만들어졌지만 모음이 없어서 소리를 그대로 기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 P123
개량알파벳의 등장과 호메로스의 서사시 기록 연대는 묘하게 일치하지요? 알파벳이 등장하면서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말을 그 자체로, 즉 소리로 기록할 수 있게 되면 표의문자와달리 몇 개 안 되는 문자로 말을 기록할 수 있게 됩니다. - P123
문자의 구술성 대체 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자문화 속으로 편입되는지에의해 결정될 텐데요, 표의문자 시스템보다는 표음문자 시스템이 도입된 사회에서 그 전환이 당연히 빠를 것입니다. 페니키아 알파벳을 도입하여 모음을 추가해 개량한 헬라스어 알파벳의 장점을 옹은 이렇게 설명하는데, 한글의 장점을 설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 P124
문자문화의 확산과 관련하여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야스퍼스Jaspers가 사용한 축의 시대Achsenzeit 라는 개념은 흥미롭습니다. - P124
축의 시대를 연 인물의 사상은 제자문학 시대를 통과하며 글로 기록되었고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들이글로 스승의 생각을 기록하는 시대를 제자문학 시대라고 합니다. 여기서 문학은 영어로 ‘리터러처literature‘인데, 이때 리터러처는 좁은 의미로 시와 소설이라는 뜻이 아니라 글로 쓰인 것의 총체라는 뜻입니다. - P125
공자의 언행은 제자들에 의해《논어》로 기록되었고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제자 플라톤이《파이드로스》로 썼고 석가모니가 전하는 말씀도 《금강경》에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문학의 사례중옹은 플라톤에 주목합니다. 플라톤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행 과도기 양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 P125
아이러니하게도 플라톤은 쓰기가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쓰기로 남겼습니다. - P126
과도기적인 양상에서 플라톤은 쓰기를 거부하는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한편으로 옹호하면서도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파이드로스》를 대화체로 만들었습니다. 구술적 상황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대화 형식으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을 글로 적는 것은 모순입니다. - P126
문자는 인간의 기억력을 감퇴시키기에 해롭다는 내용이 문자로 기록되었으니 내용적으로도 모순이지요. 결국, 스승이 쓰지 말라고 했는데 플라톤은 썼으니, 플라톤은 충실한 제자이면서 동시에 스승의 뜻을 어긴 제자라는 모순적 존재입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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