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행동의
기원

이 세상 어딘가에 자연과 인간이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 있고, 우리 역시 타락한 서구문화의 폐해만 없다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우린 아직까지 떨쳐 버리지 못했다.
멜빈 코너, 『왜 무모한 자들이 살아남는가』 - P17

하지만 인간의 짝짓기는 이해하기 힘든점투성이다. 남녀는 때때로 자기 자신을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상대를 배우자로 택하기도 한다. 이성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은 종종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불거져 나와 서로 비난하고 상처받는 악순환으로 치닫는다. - P17

아픔, 배신, 그리고 상실감은 흔히 사랑에 대해 품는 낭만과 크게 배치된다.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믿으라고, ‘오직 한 사람‘을 꼭 찾으라고 교육받았다. - P18

배우자 사이에 벌어지는 반목과 불화는 흔히 그 결혼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진다. 이러한 갈등은 결혼 생활의 참모습을 망가뜨리거나 훼손하는 행태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개인적인 무능함이나 미숙함, 신경증, 의지박약 등등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배우자를 잘못 선택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 P18

통념과는 달리 사랑은 서구의 유한계급이 극히 최근에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랑을 체험하며 사랑을 뜻하는 단어를 각자 가지고 있다.¹ - P19

인간의 짝짓기가 지닌 모순적인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손실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못 크다. 학문적으로는 왜 사람들은 사랑을 얻고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인생의 상당 기간을 기꺼이 희생하는가와 같이 삶의 가장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빈칸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 P19

진화적 근거

1세기 훨씬 전에 찰스 다윈이 짝짓기의 미스터리에 대한 혁신적인 설명을 제시했다.³ 그는 동물들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릴 것 같은 형질들을 종종 발달시킨다는 사실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 P20

생존상의 이득이 아니라 번식상의 이득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어떤 형질이 선택되어 진화하는 현상을 다윈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 이름 붙였다.
다윈에 따르면 성선택은 두 가지 형태를 띤다. 우선 동성의 개체들이 이성 배우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놓고 경쟁을 벌여서 경쟁에서 이긴 개체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 형태가 있다. 두 마리 산양이 서로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모습은 이러한 성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이다. - P20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 핵심 과정인 배우자에 대한 선호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을 밝혀 줌으로써 짝짓기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성선택 이론은 1세기 이상 남성 과학자들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 P21

성선택 이론은 주류 사회과학자들로부터도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이론이 인간의 본성은 주로 본능적인 행동에 따라 결정되며 인간의 특별함과 유연성은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와 의식 덕분에 우리 인간은 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은 계속 유지되었다.  - P21

내가 처음 인간의 짝짓기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인간의 실제 짝짓기 행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여러 인간 사회에서 다양하게 행해지는 짝짓기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조차 턱없이 부족했으니, 진화의 관점에서 거대한 이론을 세우는 데 필요한 문헌이나 증거는사실상 전무했다. - P22

만약 짝짓기에 대한 욕망을 비롯해 인간 심리의 다른 특성들이 우리의 진화 역사의 산물이라면, 그들은 미국 안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떤 기준에 의해배우자가 선택되는지 알아보고자 독일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몇몇 유럽국가들을 시작으로 국제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 P23

 학력이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을 모두 대상으로 했으며, 14세에서 70세에 이르는 모든연령의 사람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까지 모든정치 체제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모든주요한 인종 집단, 종교 집단, 그리고 소수 민족 집단들이 포함되었다.
모두 합해 우리는 전 세계 1만 47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하였다. - P23

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50가지 새로운 연구를 출범시켰다.
독신자 술집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이성을 물색하는 남녀, 결혼하기 전의 여러 단계에 있는 데이트 커플, 결혼한 지 채 5년이 안 된 신혼 부부, 이혼한 부부 등이 연구 대상이었다.
이러한 모든 연구들로부터 얻어진 발견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사고를 깨뜨리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학계에 논쟁과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남성과 여성의 성 심리에 대한 표준적인 관점을 과감히 벗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 P24

성 전략

 그러나 우리는 결코 무작위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끌리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의 경쟁자를 그저 심심해서 헐뜯지않는다. - P25

즉 우리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특질들을 갖추지 못한 조상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성 전략(sexual strategy)은 짝짓기 문제를 풀기 위한 진화적 해결책이다. 진화 역사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짝짓기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 P26

 각 전략에는 특정한 배우자에 대한 선호, 사랑의 감정, 섹스에 대한 욕망, 질투 등의 심리 기제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이 심리 기제들은 신체적 특질, 성적 관심의 표시, 배우자의 부정(不貞)에 대한 낌새 등 외부 세계로부터 받는 정보나 단서에 따라 민감하게 작동한다. - P26

성 전략이라는 용어가 짝짓기 문제를 푸는 해결책들을 생각해 보기 위한 쓸모 있는 은유이긴 하지만, 모든 성 전략이 의식적으로 의도된 행위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도 있다. 성 전략은 의식적인 계획이나 지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 P27

배우자 선택하기

모든 이성을 자로 잰 듯이 똑같은 정도로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서나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로 선호되고, 어떤 사람들은 기피다. 우리의 성적 욕망은 다른 것들에 대한 욕망이 생겨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겨났다.

음식에 대한 우리의 선호는 이러한 진화 과정을 잘 입증해 준다.
우리는 지방, 당분, 단백질, 염분 등이 풍부한 물질을 대단히 좋아하는반면 쓰거나 시고 유독한 물질에는 고개를 젓는다.⁵ (중략)
배우자에 대한 우리의 욕망도 이와 유사한 적응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지만, 그 기능이 꼭 생존을 위해서라고는 할 수 없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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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학자 론다 쉬빈저 Londa Schicbinger의 『두뇌는 평등하다』라는책이었지요. 주변 좀비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제가 책에서 엄청난 문장 하나를 읽었다는 사실을요.

"18세기 초기에 가장 놀라웠던 면은 여성들의 수학 공부가 적극 권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저는 침을 꼴깍 삼키고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여성‘들에게 ‘수학‘ 공부가 ‘적극‘ 권장되었다. - P22

여성도 수학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줘서 담임선생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먹이겠다는 생각으로 똘똘뭉쳤죠. 끝내는 이공계 쪽으로 직업을 얻을 생각이 없었는데도 물리학과로 진학하는 괴상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게 마감용 좀비로 가득한 과학잡지 편집실에 온 배경입니다. - P24

 2016년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학에 대해 낮은 자신감을 보이는데, 그격차가 실제 성적과 흥미의 격차보다 컸다는 연구가 발표됐습니다.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여성이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은 개개인의 삶에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편견이 생겨난 지가 300년이 채 안 되었다고 론다 쉬빈저는 말합니다. - P24

◆◆ 영국의 첫 여성지는 수학 잡지가 되었다

18세기 여성에게 수학이 얼마나 권장됐고 여성이 수학을 얼마나 즐겼는지는 ≪숙녀들의 수첩 혹은 여성들의 책력 Ladies‘ Diary and Women‘s Almanack》(이하 <숙녀들의 수첩>>에서 잘 드러납니다.  - P25

 스테이셔너스는 표지를 포함해 분량은 40쪽, 크기는 가로 16센티미터, 세로10센티미터로 손에 쏙 들어오는 ≪숙녀들의 수첩≫을 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숙녀들의 수첩≫에 처음부터 수학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 P25

 1705년 호에는 더 대담하게 남성보다 여성이 고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이 광물과 식물, 동물, 남성을 차례로 만들고나서야 마지막으로 여성을 만들었다"며, "신은 덜 고귀한 것에서 더 고귀한 것의 순서로 만들었다"고 썼습니다. - P26

단 6년 만에 이런 종류의 콘텐츠는 싹 사라집니다. 계기는 티퍼가 잡지 마지막에 슬쩍 끼워 넣은 수수께끼 문제에서 왔습니다. 독자의 반응은 티퍼의 예상을 뛰어넘어 자신이 답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편지는 물론이고 내년 호에 실어달라며 독자가 만든 새로운 문제도 편집부에 도착했습니다. 그중에는 간단한 산수 문제도 있었습니다. 독자의 반응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있던 존 티퍼는 마침내 1709년 호에서이렇게 선언합니다.

"왕국 곳곳에서 온 편지를 살펴보면서 수수께끼와 수학 문제가 여성들에게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리법 같은 내용을 소개하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앞으로는 수수께끼와 수학 퍼즐만 싣도록 하겠습니다." - P26

◆◆ 야, 너도 수학 공부할 수 있어!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한편, 육지에서도 수학을 공부할 이유가 여럿 생겼습니다. 신항로개척으로 교역이 활발해지자 교역품을 사고팔기 위한 상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국가가 금융기관을 설립하면서 금융업도 성장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도 한창이었습니다. 울타리를 세워 ‘내 땅‘이라고 표시한 사유지가 1700년에는 농경지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 P38

이처럼 수학은 점점 실용적으로 중요해졌습니다. 선원과 상인을 위해 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생겼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영국이 1597년에 세운 그레샴 칼리지는 당시 전통적인 교육 제도가 낮게 평가하던 실용 수학을 담당했습니다. - P39

 18세기는 자연철학이 유례없는 대중적 인기를 끌던 때입니다. 1687년 뉴턴이 ‘프린키피아‘라고도 불리는 『자연철학의 수학적원리 Philosophi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출간해 지구와 달이 궤도를 도는 이유로 중력을 꼽고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을 전후해 자연철학은 다양한 사상 경쟁 속에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 P39

이런 주장에 힘입어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학자를 집으로 초대해 ‘살롱‘이라는 사교모임을 열었습니다. 살롱은 학자들이 최신 자연철학을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사적 장소로 기능하며, 당시에는 대학이나 학회만큼이나 중요한 학문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 P39

 쉬빈저는 『두뇌는 평등하다』에서 "수학 공부에는 실험실이나 커다란 도서관이 필요 없기 때문에 여성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썼습니다. 닐슨 보어가 화학을 연구할 때는 실험실과 실험 도구가 필요했고, 찰스 다윈이 진화생물학을 연구할 때는 여행 자금과 여행 허가가 필요했던 반면, 아녜시가 수학을 연구할 때는 종이와 펜과 책만 있으면 됐습니다. - P40

현재 대부분의 수학과 물리 문제는 남성에게 주로 권장되는 취향을 다루고 있습니다. 순열과 조합은 스포츠 경기의 토너먼트와 리그전으로, 함수는 자동차로, 미분적분학은 로켓과 미사일로, 힘과 에너지는 야구와축구, 총으로 설명합니다. 여성에게 주로 권장되는 취향인 연애와 그림, 인형, 아이돌 문화 등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 P42

초기 ≪숙녀들의 수첩≫에 등장한 문제들이 그랬습니다. 위 문제처럼 연애와 결혼을 사례로 든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1707년부터 1724년까지 발간된 수학 문제 총 110개 중 7개를 차지했습니다. - P43

물론 연애와 결혼보다 더 인기 있는 주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돈‘
입니다. 25개 문제가 상속 재산과 빌린 돈의 이자, 집의 가격, 결혼지참금 등을 다뤘습니다. 땅을 개조하고 분배하는 사례도 17개 문제에서 나와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 P44

토막 지식
영국 출판업자들의 길드, 스테이셔너스

18세기 영국에서 책력을 발간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스테이셔너스뿐이었습니다. 출판업과 관련한 기술들이 1403년에 설립한 길드인 스테이셔너스는 오랫동안 모든 출판물에 대한 독점권을 누렸고, 1695년 새로운 인쇄법으로 독점권이 축소된 후에도 18세기 후반까지 책력과 같은 몇몇 출판물을 독점적으로 발행했습니다. - P45

대표적으로 공부는 여성이 스스로 억압받고있음을 깨닫고 집을 뛰쳐나갈 용기를 주는 해방의 도구였으니, 따라서금단의 영역이 됐습니다.
이런 생각의 뿌리는 적어도 3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1727년마리아 아녜시가 쓴 라틴어 연설문에도 나타납니다. 연설문에는 박막례 씨의 ‘아부지‘가 한 말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남성들‘의 주장이 소개됩니다. - P56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여성의 교육권을 옹호하는 주장 또한 그에 못지않게 지구력이 강합니다. 여성의 교육권에 대한 목소리는 상류충 여성조차 학교에 갈 수 없던 18세기를 대학에서도 여성의 얼굴을볼 수 있는 21세기로 바꾸어놓았습니다. 18세기 유럽은 여성의 교육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던 때입니다. - P57

◆◆ 18세기에 일어난 여성 교육권 논쟁

아녜시는 여성의 교육권을 지지하는 라틴어 연설문을 매우 어린 나이에 썼습니다. 태어난 지 고작 9년 2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연설문을 읽은 장소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 P58

 아녜시의 라틴어 실력이 충분히 성장했다고 생각한 교사가 아네시에게 연설문을 쓴 뒤 이를 라틴어로 번역해 좌담회에서 발표하도록 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어른들이연설문을 써주고 아녜시가 번역만 했을 거란 주장도 있지만, 아녜시의 연설문을 연구한 파울라 핀들렌은 "아네시의 공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참고할 문헌을 알려주고 아녜시가 연설의 구성을 마무리하도록 했을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 P58

참고했을 만한 책도 아녜시의 집에서 발견됐습니다. 바로 이탈리아 여성 철학자 주세파 바르바비콜라가 번역해 1722년에 출판한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철학 원리Principia philosophiae』입니다. - P59

데카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인류가 동등한 이성을 타고 났다고 강조했던 철학자입니다. 바르바비콜라는 이런 서문을 쓰며여성들이 바느질과 패션, 예의범절 등의 관습적인 교육에만 머무르지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 P59

이는 아녜시의 연설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녜시는 "(지식을 얻기 위한) 어떤 서툰 노력도 사적인 삶의 조화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고,
"아내는 교양 있는 대화를 하다 똑똑한 척 으스대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 P60

이들은 여성이 배운다고 해서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려 했던 ‘우아한 여성들이었습니다. 우아한 만큼 저항은 소극적이었습니다. 1715년에 태규가 쓴 글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나는 두 성별의 평등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나는 신과 자연이 우리를 하위 계급에 두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체의더 낮은 부분에 속하며, 보다 뛰어난 성별에 복종하고 굴복할 의무가 있다."

보수적인 관념에 부합하는 태도 덕에 블루스타킹은 ‘영국의 뮤즈‘
라 불릴 정도로 인기와 신뢰를 얻었으나, 한 세대가 지나자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여성이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바로 오늘날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입니다. - P60

의외로 『여성의 권리 옹호』는 영국에서 큰 문제없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18세기 초엽 여성들의 소극적인 저항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입니다. 영국 사회에서 큰 인기와 신뢰를 얻었던 블루스타킹이 여성의 교육권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를 얻은 것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 P61

◆◆ 독자들은 수학응 어떻게 공부했을까

학교는 라틴어 문법을 주로 가르칠 뿐 수학은 정규 과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였던 존 뉴턴John Newton은 1677년에 "수학을 배울 수있는 어떤 문법학교도 영국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고 썼습니다. - P72

그렇다면 숙녀들의 수첩≫ 독자들은 어디에서 수학을 공부한 걸까요? 아녜시처럼 부유하게 태어난 사람은 가정교사를 고용할 수 있었습니다. 혹은 플랩스티드처럼 수학적 능력을 지닌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요. 이도저도 아니라면 부유층 집안에 하인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 P72

라이트 자매는 수학에 무척 뛰어나서 1709년 호의 수학 문제를 모두 풀어낸 11명 중 2명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상품이 걸린 문제를 풀어서 ≪숙녀들의 수첩≫ 구독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이들 자매는 아버지 매튜 라이트 덕에 수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매튜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기술학 학위를 받았으며, 일식을 관측한 결과를 ≪숙녀들의 수첩≫에 제공할 정도로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깊었습니다.  - P74

◆◆ 얼마나 많은 여성이 수학 문제를 풀었을까

. 이는 잡지 부록에 기록된 이름이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를 따져서 나온 통계입니다. ≪숙녀들의 수첩≫은처음 수십 년간 편지를 보낸 독자들의 이름을 부록에 실었는데, 코스타에 따르면 1704년부터 1725년까지 부록에 실린 독자 중 68.7퍼센트가 남성적인 이름이었습니다. 그중 단 7퍼센트만이 필명을 사용했으니, 남성이 여성잡지인 ≪숙녀들의 수첩≫을 보는 것을 그리 부끄러워하지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 숫자만으로 여성의 참여가 남성에 비해 저조했다고 쉽사리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 P75

초대 편집장 존 티퍼는 1709년 호에서 "독자가 자신의 이름이 인쇄되기를 원하고 이를 알려준다면,
부록에 올리도록 하겠다"고 안내했습니다. 소위 ‘숙녀‘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를 꺼리는 게 당연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P76

 바이튼은 1718년 호에서 영국 여성들의 능력에 자부심을 느끼며 "내가 많은 여성들로부터 기하학, 산수, 대수, 천문학, 철학적인 답안을 담은 편지를 400~500개 이상 받는다는 것을 알면 외국인들은 정말 놀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수학 문제가 1707년에 처음나왔으니, 여성 독자들이 약 10년간 매년 40~50개 정도의 편지를 보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리 과장된 숫자는 아닙니다. 코스타는 이런단서를 토대로 "1707년부터 1724년까지 편지를 보낸 여성 독자 중 약 75~90퍼센트가 잡지에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 P76

반면 메리 라이트는 1712년부터, 안나 라이트는 1713년부터 잡지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잡지에 나온 모든 수학 문제를 풀어대며 열성적으로 잡지를 읽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아한 일입니다. 원인은 결혼으로 추정됩니다.  - P77

물론 ‘덕후‘에 가까울 정도로 문제를 풀어댔던 라이트 자매는 그리쉽게 취미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1713년부터는 ‘메리 넬슨‘이라는이름이, 1716년부터는 ‘안나 필로매세스‘라는 필명이 잡지에 등장해 매년 한두 문제를 푸는데, 이 둘은 각각 메리 라이트와 안나 라이트와 동일 인물로 보입니다. 메리 라이트가 ‘넬슨‘이라는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한 점과 비슷한 이름, 결혼 시기, 등장 시기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해석이지요. - P77

이런 이유로 과학사학자 테리 펠은 18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의 얼굴을 했던 수학이 시간이 갈수록 남성의 얼굴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설명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수학 교육 격차가 증가했던 것은 수학이 여성스럽지 않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수학 자체가 발전하며 유용한 도구로서 영국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이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만 머무는 한, 학문과 직업의 세계인공적 공간에서 중요한 대접을 받는 분야는 종국엔 모두 남성의 얼굴을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직종을 모두 남성이 차지할 테니까요. - P78

토막 지식
아녜시의 마녀

마리아 아녜시는 ‘아녜시의 마녀‘라는 곡선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 곡선은 마리아 아녜시의 책 이탈리아 청년들을 위한 미적분학 두 권 중 1권 381쪽에 등장합니다.
(중략)
그럼에도 마리아 아녜시의 이름이 붙은 것은 영어 번역자의 실수 탓입니다. 마리아 아녜시는 그랜디가 라틴어 ‘vertere(돛을 돌리는 밧줄 혹은 삼각함수의 한 종류)‘에서 따와서 지은 이탈리아어 ‘versiera‘을 그대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마녀‘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존 콜슨은 책 번역을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헷갈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P79

암흑물질 춘추전국시대의
문을 열다

베라 루빈
✦ Vera Rubin
✦ 1928~2016
✦ 천문학자 - P89

‘암흑물질‘은 질량은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내지도반사하지도 않는 투명망토 같은 물질이다.
투명망토 같은 물질이라니, 터무니없다고 느낀 건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여서 1933년 천문학자 프리츠 츠위키Fritz Zwicky가 그 존재를 제안했을 때 학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루빈의 연구는 암흑물질의 첫 번째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됐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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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위스키란
무엇인가?


버번 위스키 지식이 풍부한 분이라면이 잠은 건너뛰어도 된다.
다만 그렇지 않은 분은 정독하시길 권한다.
버번의 개념과 제조법만 알면다음 장부터 이어지는 개별 증류소에 대한 설명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3

미국 위스키 = 버번?

 이 책, 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버번의 정의를 설명하는 첫 장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있었다.

"모든 버번 위스키다. 하지만 모든 위스키가 버번은 아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모든 버번은 미국(아메리칸) 위스키다. 하지만 모든 미국(아메리칸) 위스키가 버번은 아니다." - P14

그럼 버번이 아닌 미국 위스키로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 ‘미국 위스키=버번‘이라는 인식이 워낙 확고해서 그렇지, 버번이 아닌 미국위스키는 정말 많다. 호밀을 주재료로 하는 라이 위스키 Rye Whiskey 라든가 옥수수를 80퍼센트 이상 쓰는 콘 위스키 Corn Whiskey가 대표적이다. 또 버번과 비슷하지만 법적 분류는 완전히 다른 테네시 위스키Tennessee Whiskcy도 있다. - P15

까다롭고 엄격한 규정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버번 위스키의 개념과 정의를 살펴보자. 흔히 버번 위스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규제를 받는 생산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규정이 엄격하고 까다롭다. 전 세계 증류주 중에서 이토록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제조 방식을 정해놓은 건 없다. - P16

다음은 증류할 때의 알코올 도수다. 버번은 최종 증류 알코올 도수가 80퍼센트(160프루프 proof는 증류주의 알코올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를 넘어선 안 된다. 반드시 80도 아래로 증류를 마쳐야 한다. 이렇게 규제하는 이유는 80도를 넘어가면 곡물의 특성이 거의 사라져 보드카와 큰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 P16

이런 위스키 원액(증류액)을 흔히 화이트 도그white dog라고한다. 일종의 ‘미숙성 곡물 증류주‘에해당하는 화이트 도그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위스키로 거듭나게 된다. - P17

미연방 정부 규정에 따라, 버번 위스키를 병입할때 알코올 도수는 40퍼센트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다시 말해 39도짜리 버번 위스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버번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면 예외 없이 알코올 도수가 40퍼센트(80프루프) 이상이다. - P17

숙성할 때 쓰는 오크통에 관한 규정도 있다. 버번 위스키를 숙성할때는 반드시 속을 까맣게 태운 새 오크통을 써야만 한다. 이미 사용한 오크통은 재활용하지 않는다. 이런 규정 때문에 버번 숙성을 마친 오크통은 스코틀랜드 증류소에 팔거나 아니면 음식물 저장용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한다. - P17

스트레이트 버번

버번 위스키는 최소 숙성 기한이 없다. 증류를 마친 원액 (화이트 도그)을 오크통에 얼마 동안 넣어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하루를 숙성해도 상관없고 심지어 10분만 숙성해도 된다. - P19

물론 실제로 이렇게 버번을 만드는 사람은 없다. 일반적으로는 2년이상 오크통에 넣어 숙성을 시킨다. (일부 버번은 3~6개월만 숙성해 판매하기도 한다.)앞서 언급한 버번 위스키 규정을 모두 지키면서 최소 2년 이상 숙성했다면, 그런 위스키에는 ‘스트레이트straight‘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따라서 버번 위스키 병에 스트레이트라고 적혀 있으면 숙성고에서 최소 2년 이상을 묵었다는 의미다. - P19

버번 위스키 숙성 기간이 2년 혹은 3년이라면 라벨에는 스트레이트라는 말을적을 수 있으며, 숙성 연수(2년 혹은 3년 숙성)도 ‘반드시‘ 적어야 한다. 그런데 숙성 기간이 만약 4년 혹은 그 이상이라면 스트레이트라는말만 적고, 얼마나 숙성했는지는 적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숙성 기간을 라벨에 표기하지 않는 걸 NAS, No Age Statement (숙성 연수 미표기)라고 한다. - P20

아울러 숙성 기간이 서로 다른 여러 위스키를 꺼내서 섞었다면 그중에 기간이 가장 짧은 것으로 적어야 한다. 그러니까 ‘2년 숙성+4년숙성‘이라면 라벨에는 ‘2년 숙성‘으로 적어야 한다. 또 그냥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켄터키 스트레이트 Kentucky Straight Bourbon Whiskey‘라고 적으려면 반드시 증류를 켄터키주에서 해야 한다. - P20

버번 위스키는 어떻게 만드나?

"알코올은 효모가 당분을 먹어 치우면서 생긴다"는 건 결국 당분이있어야 알코올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효모의 먹잇감이 될 당분은 어떻게 만들까? 위스키의 경우에는 곡물에 있는 전분(녹말starch)을 당분(단당simple sugar)으로 바꾸면 된다. 이처럼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걸 ‘당화‘라고 한다. - P22

대다수 켄터키 증류소에서는 당화 공정을 진행할 때 사워 매시(셋백setback 혹은 백셋backset 이라고도 부른다)도 함께 넣는다. 사워 매시는위스키를 증류하고서 남은 찌꺼기 (산성 폐액)를 말한다. 산성인 이 액체를 모아놨다가 당화할 때 넣으면 산도가 올라가면서 당화가 촉진되고 위스키 풍미도 균일하게 유지된다.
당화 공정을 통해 곡물에 있는 전분(녹말)은 발효 가능한 당분(단당)으로 변한다. 효모가 맛있게 먹어치울 먹잇감이 마련된 셈이다. - P24

② 발효 fermentation

당화를 끝내고 나면 발효조(퍼멘터fermenter)로 옮긴 뒤 효모(이스트yeast)를 넣고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온도다. 뜨거운 상태의 당화액(매시mash)을 그냥 발효조로 옮기면 안 된다. 충분히 식혀서 섭씨 25도에서 30도까지 온도를 떨어뜨린 뒤 효모를 발효조에 투입해야 한다. - P24

③ 증류 distillation

발효를 통해 얻은 디스틸러스 비어(곡물 발효액)는 도수가 높지 않다. 그래서 위스키로 만들려면 반드시 증류를 해야 한다. 증류란 쉽게말해 도수가 낮은 술(양조주, 발효주)을 끓여서 도수가 높은 술(증류주)을 얻어내는 것이다. 증류 원리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물의 끓는점(100도)과 알코올의 끓는점 (78.3도)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순도 높은 알코올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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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감별사가 되기 위해 미술품을 열심히 공부하셨어. 장팔이의 범죄가 사회적으로도 심각해지자 그 녀석을 잡으려고가짜에 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하신 거야노력 끝에 장팔이의 수법을 꿰뚫는 눈을 게지게 되신 거지. 그런데 그건 장팔이도 마찬가지였단다. 자신이 만든 물건이 자꾸 가짜인 것으로 들통나기 시작하자 더더욱 감별하기 어려운 모조품을 만들기 시작했어." - P128

"준,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뭔지 알겠니?"
"글쎄요...?"
"비록 적일지라도 경쟁상대 즉, 라이벌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단다." - P128

"물론이지! 할아버지의 결정적 추리로 장팔이를 잡았단다. 하지만 장팔이가 만든 위조품들은 워낙 정교해서 일반인이 구별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어. 녀석이 잡히기 직전에 만든 가짜 작품들은 할아버지께서도 능히 구별하지 못하실 정도였단다. 만약 그때 장팔이가 잡히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 거야. 지금도 장팔이의 가짜 작품을 진짜인 줄 알고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곳곳에 있을 정도니까 말이지." - P129

"아, 세상에・・・ 바토우 경위님 목소리를 들으니 좀 살 것 같네요. 공장의 통신이 A702 때문에 차단되었는데, 어떻게 연결하신 거예요?"
"루시가 공장 근처에 사용하지 않던 보안 네트워크 하나를 되살렸어."
"루시는 제가 경찰국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루시는 가만히 있질 않더군. 명령을 듣고 기다리는 타입이 전혀 아니야. 몰래 공장 주변까지 따라간 모양이었어. 이 통신도 루시 덕분에 연결된셈이니 오히려 다행이지." - P129

"고마워 루시. 그건 그렇고 형사님 때마침 도움이 필요해요."
"응, 말만 하렴."
야?
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AI를 이용해 제 가짜 사진들을 만들어야 해요."
"아... 혹시 가짜 사진을 띄워 A702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는 거
"네, 경위님. 제 생각을 읽으셨네요?" - P138

"네, 박사님. 시간이 부족해 자세한 설명은 드리기 어렵고, 예전에 가르쳐주신 가짜 사진을 만드는 알고리즘이 필요해요."
"아, GAN을 쓰려고 하는 거구나."
"맞아요 GAN! 그 이름이 생각이 안났어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바토우 경위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잡혔다. 루카스 박사는 바토우 형사를 위해 말을 이어갔다.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약자로 GAN이지요. 우리말로는 생성적 대립 신경망이라고 해요." - P131

"생성‘이란 말은 가짜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일 테고... 신경망은 딥러닝과 같은 말이라 치고... 진작 박사님께서 이렇게 알려주셨으면 좋았잖아요! 네?" - P132

"역시,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바로 GAN을 쓰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지금의 말투와는 사뭇 다른, 딱딱한 말투의 다타이스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부터는 저의 지시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준의 사진 데이터가 필요해요. 이건 이미 연구소에서 많이 가지고 있죠."
"그렇군. 그럼 얼른 가짜 사진을 만들라고, AI 로봇 친구!"
바토우는 준이 걱정이 되어 다타이스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 P133

"컴퓨터가 인식하는 사진이라는 것은 본래 숫자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즉, 비슷한 가짜 사진의 숫자 덩어리 분포는 원래 진짜 사진이 갖는 그것과 매우 유사해요. 물론, 맨 처음에 만든 가짜 사진은 매우 엉망일 겁니다.
하지만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그럴듯한 사진이 나오게 되죠." - P133

천의 얼굴을 지닌 명탐정

폭주한 A702는 단숨에 뭐든 부숴버릴 기세로 공장의 중앙 홀 안쪽으로뛰어 들어왔다. 만약, 로봇이 분노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A702의 모습을 보고는 그 생각이 분명 바뀔 것이다.
A702의 눈・・・ 정확히 센서에는 100여 대의 가짜 준 얼굴을 달고 있는 안드로이드가 들어 왔다. 이것은 A702가 예상한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만약, A702가 사람이었다면 얼굴 외에 팔다리를 보고 안드로이드인지 금방알아챘겠으나, A702는 얼굴만 학습한 상태라 그런 차이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 P136

그러다 A702가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준과 비슷한 이 물체들을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결국에는 준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A702는 가짜 준의 얼굴을 띄우고 있는 안드로이드를 가까운 순서대로부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미리 예상한 준은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A702에 맞서서 목숨을 건 준의 도박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50,
51, 52… 벌써 절반 이상의 안드로이드가 파괴되었다. - P137

"아니, 이건 충격으로 부서진 게 아니라 폭발한 거야. A702가 사로잡힐경우를 대비해 미리 메모리가 타버리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을 테지.
A702를 조작한 진짜 범인은 꽤 용의주도한 인물이네.."
비록 준은 진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하였지만,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준, 웃고 있네? 뭔가 알아낸 거야?"
루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준을 응시하였다.
"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은 어떤 특정한 사람을 노리고 한게 아니야. 무박위적으로 폭발했지. 그 이유가 뭘까?" - P138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헐값에 이 구역을 전부 사버릴 수도 있겠지. 바로 이 모든 사건을 지시한 사람이야. 결국, 이 사건의 배후에 숨어있는 진짜 범인에게 다가가는 열쇠는 ‘누가 테러를 했냐‘가 아니라 ‘누가 이 구역을 싸게 사들이려 하는가‘야."
루시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A702를 무찔렀고, 앞으로 더 일어날 테러를 막았으니, 진짜 범인의 계획은 제대로 틀어져 버린 셈이야." - P139

악몽 같은 2년 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날

UBBS의 특별 다큐멘터리 총괄 책임자인 한지 PD가 자이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남의 혼잣말하는 걸 엿듣는 고상한 취미가 있으신지는 몰랐군요."
한지 PD가 자이로 회장에게 커피를 건넨다.
"하하. 그냥 들려서 말씀드린 거예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하죠. 방송국에 오랜만에 와보시니 어떠세요?"
"오랜만이라 해도 방송국이 오랜만인 거지 방송에 나오는 게 오랜만은아니라서 생소하진 않소만..."
"아무렴요. 자이로 회장님께서 방송국 방문에 한낱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실 분은 아니시죠." - P144

똑같아도 너무 똑같은 제14구역

준이 저녁을 먹고, TV를 틀자 뉴스가 때마침 흘러나온다.
"사건 사고 소식입니다. 오늘 UBBS 방송국에서 운행하던 AI 드론이 오작동으로 통신이 끊기었다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 발생 장소는 2구역의 자유로와 희망로 중간 지점의 상공이었습니다. 인명피해는없었지만, 시민 4명이 파편에 맞아 가볍게 다쳤으며,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경찰 당국은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음... 스스로 폭발했다고?"
준은 2년 전 자유로 사건을 기억해냈다.
‘뭔가 방식들이 비슷해? - P145

"형사님께서 제게 연락을 하실 때는 주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잖아요.
근데 무슨 일이죠?"
"준, 혹시 어반시티 14구역에 접속해본 적이 있어?"
"14구역이라면... 한 달 전에 개장한 가상의 어반시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어반시티를 가상의 현실에 그대로 옮겨놓은 그곳 말이야!"
"당연하죠. 저뿐 아니라 사람들이 거기 접속해 시간 보내느라 난리인걸요!" - P146

지니어스 II 팁!

디지털 트윈: 컴퓨터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결과를 예측하는기술이야. - P147

사실 준이 거슬리는 문구는 따로 있었다. 바로 프로젝트의 목적 부분이었다.

-어반시티의 치안과 범죄율 관리를 위한데이터 수집 및 처리

‘스마트 AI 시티로 지정되기 전까지 어반시티의 범죄율은 사상 최악이었지. 살기 좋은 어반시티를 만들기 위한다는 말은 누구나 다 동의할 수있어. 하지만 제14구역에서 수집하고자 하는 데이터는 대체 무슨 데이터일까?‘ - P148

냐가 만난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면?

"준, 잘 들어봐. 지금 가상의 제14구역에는 NPC로 추정되는 많은AI가 숨겨져 있다는 제보야. 문제는 이 존재들이 사람인지 AI인지를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야."
몰입기기를 착용하고, 아바타를 통해 게임도 하고, 많은 사람과함께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준이었다.
그중에는 친분을 맺어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기도 하고, 실제 현실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기도 했었는데… - P151

지니어스 IT 팁!

NPC: Non Player Character의 약자로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닌 프로그램된 봇 또는 인공지능이 조작하는 캐릭터를 가리켜. - P151

소피 상식 팁!

아바타: 분신이란 뜻으로 인터넷 가상 세계에서 컴퓨터 사용자가 자기를나타낸 캐릭터를 가리켜.

라이프로깅: 삶을 뜻하는 Life와 접속한다는 Logging의 합성어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텍스트,
영상, 소리 등으로 캡처하고 그 내용을 다른 사용자들과 공유하는 것을 뜻해

"그야.... 어반시티 시민들의 신상정보, 물건 구매를 포함한 가상 경제 활동 내역, 라이프 로깅을 포함한 데이터들이겠지."
"만약 사람인지 AI인지 알 수 없는 NPC들이 시민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들을 아무렇지 않게 수집한다면요?"
"수집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도록 잘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 P151

지니어스 IT 팁!

몰입기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확장현실(XR) 속사용자의 오감을 자극하며 실제와 유사한 공간적, 시간적 체험을 가능하게하는 기기를 말해.

버퍼링: 데이터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그 데이터를 보관, 기억하는 동작을 말해,
많은 데이터를 이동할수록 버퍼링이자주 일어나. - P152

너츠, 이제 너의 능력을 보여줄 차례야

"형사님, 잠시만요... 부탁이 있어요!"
"응?"
"너츠도 14구역에 입장할 수 있나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가능할 거야! 3년 전에동물 보호 단체에서 동물들도 가상현실을 누릴권리가 있다면서 법적 소송을 걸었거든. 아, 여기동물 입장 버튼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너츠도 우리와 같은 몰입 기기를 착용하면 되려나요?" - P153

‘너츠가 맴도는 아바타들에 뭔가 있는 것일까?‘
"형사님, 너츠를 데리고 한 번 더 접속해볼게요!"
준은 또 한 번 너츠와 함께 14구역에 접속했다. 이번에는 너츠를 따라다니며 너츠가 계속 맴도는 아바타를 유심히 관찰해보기로 했다. 한참을 유심히 관찰하던 준은 흠칫 놀랐다.
"아니...?!"
준은 너츠가 맴도는 아바타의 눈에 불 모양의 표시가 있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너츠가 맴도는 다른 아바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가상의 14구역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아바타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급하게판단을 내린 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너츠가 맴도는 아바타들은 거짓말같게도 눈에 불 모양의 표시가 있었다. - P154

"가상의 14구역에는 특이한 사람들 아니 AI NPC들이 있어요. 너츠가 NPC들 주변을 맴도는 바람에 알 수 있었어요. 그 AI NPC들 눈에는 불타는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너츠가 AI NPC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요. 너츠가 우리 말을 할 줄 안다면 질문이라도 하고 싶네요.
제 생각엔 너츠의 발달한 후각과 청각이 몰입기기를 통해 실력 발휘를 한거 같아요." - P155

귀신일까, 사람일까? 뭐냐, 너의 정체는?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면 AI NPC들을 분류해내는 게 우리가 해야 할일이고, 우리가 파악한 유일한 단서는 그들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거예요."
"설마 귀신은 아니겠지?"
바토우 형사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자, 준은 토끼 눈을 하며 바토우 형사를 바라보았다. - P157

"준! 박사 지니어스가 필요했구나.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
지니어스는 준에게서 현재 상황과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전달받았다
"이번에도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 준, 여기 있는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14구역의 AI NPC들과 사람 아바타를 잘 구별할 수 있을 거야." - P158

"준, AI를 이용하면 AI NPC들과 일반 사람 아바타를 쉽게 분류할 수 있는거 알지?"
"당연하지! 지난번 2구역 희망로의 전염병 사건 때, 학습시킨 AI 로봇들로 까마귀를 분류해낸 적이 있잖아."
준은 자신 있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모두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사람이 일일이 구분할 수 없다면 AI를 활용해 보도록 하죠." - P159

"우리에겐 AI NPC들을 일반 사람 아바타와 구별해야 한다는 문제가 놓여있어. 문제가 뭔지 알고 있으니 데이터 수집 단계로 넘어갈 차례인가?"
"맞아, 준! 그렇다면 데이터를 모아볼까?"
"데이터라면... 어떤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걸까?"
"일반 사람 아바타와 다른 AI NPC의 가장 큰 특징이 뭐였었지?"
"아! 눈에 불꽃이 있다는 것이었지!"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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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운론의 뜻

언어는 뜻과 소리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호이다. 언어를 탐구하여 그 본질을 밝히고 인간의 언어 능력을 설명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언어학이라고 하는데, 그 대상이 우리말로 한정되면 한국어학 혹은 국어학이라고 한다. 언어학은 구체적인 연구 영역에 따라 몇 개의 하위분야로 나뉘는데, 그 중 말소리를 대상으로 하는 분야가 음운론(音韻論, phonology)이다. - P1

그런데 말소리 발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일은 이와 관련된 국어 화자의 언어 능력을 밝히는 것과 같다. - P1

요컨대, 국어 음운론은 국어 화자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형태소나 단어, 혹은 이들의 연결체를 올바르게, 그리고 통일된 방식으로 발음하도록 하는 언어 요소와 장치, 다시 말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국어의 말소리 목록과 체계, 말소리의 변동을 관장하는 음운 규칙 등을 밝혀내고자 하는, 국어학의 하위 분야이다. - P2

2. 음운론이 하는 일

음운론이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먼저 음운론은 한 언어에서 쓰이는 말소리의 목록과 체계를 알아내려고 한다. 한 언어에서 뜻을 구별하는 데 사용되는 소리를 음소(phoneine)‘라 하고 말소리의 길이나 높낮이, 세기 등이 뜻을 구별하는 구실을 하면 이를 ‘운소(prosodeme)‘
라 하는데 이들을 함께 말할 때는 줄여서 ‘음운‘이라고 한다. - P2

다음으로, 음운론은 발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말소리의 바뀜을 연구한다. 말소리는 그 놓이는 자리에 따라서 원래의 소릿값을 지키지 못하고다른 소리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러한 말소리의 바뀜을 ‘음운의 변동‘이라고 한다. - P2

즉 음운론은 언어생활과 관련된 각종어문 규범, 예를 들어 표기법이나 표준어, 표준 발음 등을 정하는 데 필요한바탕 이론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등의 어문 규범은 상당 부분 음운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하고 있다. 아울러 이 학문의 연구 결과는 학교 문법의 한 부분으로 초·중등학교 국어과 교육의 교수·학습 내용이 된다. - P3

먼저 ㄷ) 층위, 즉 실제 발화된 상태의 말소리들을 관찰하여 우리말에서 쓰이는 모든 음성을 찾아내고 이들에 대해 음소 분석의 방법을 적용하여 우리말의 음운 목록을 알아낸다. - P4

한편 ㄷ)을 발음형이라고 했는데, 발음을 해 보면 낱낱의 소리 단위로 발음되는 경우보다 두 개나 세 개 정도의 소리가 하나로 뭉쳐진 상태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 P4

한편,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그 모습을 바꾸는 성질을 가지고있다. 언어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경계로 해서 시대 구분을 하고 각 시대별 언어의 모습을 통시적으로 비교하면 언어사가 되는데 그중에서도 말소리 측면의 변화상을 ‘음운사‘라고 부른다. - P5

1. 음성학

(중략), 이 일을 위해서는 음성학(學, phonetics)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발음 기관을 통해 나오는 말소리의 모습과 성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음성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체계를 갖춘 하나의 학문일 뿐 아니라 음운론을 비롯한 언어학 연구의 바탕이 된다. - P7

음성학과 음운론은 둘 다 말소리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지지만 연구 방향과 내용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음운론이 한언어를 이루고 있는 말소리의 구조와 체계를 연구하고 그것이 의미 전달의 과정에 관여하는 양상, 즉 발소리의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음성학은 발음 기관을 통해 말소리가 만들어져 나오는 과정, 화자의 입에서 청자의 귀로 전달될 때의 낱소리의 물리적 성질 등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 P7

음성학은 그 연구 대상과 방향에 따라 다시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먼저 조음 음성학(articulatory phonetics)‘은 말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데, 주로 낱소리가 만들어지는 자리(조음 위치)와 만들어지는 방법(조음 방법), 이 과정에 관여하는 조음 기관의 움직임, 그 움직임에의해 나타나는 소리의 성질 등을 연구한다. 조음 음성학을 ‘생리 음성학(physiological phonetics)‘이라고도 한다. 다음으로 ‘음향 음성학(acoustic phonetics)‘이있는데, 이 분야는 말소리의 음향적 측면을 주로 연구한다. 화자의 입에 소리 자체서 나온 말소리가 청자의 귀에 전달되는 데에는 공기의 진동이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말소리를 실은 공기의 진동에서 여러 가지 음향학적특성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말소리의 성질을 규명하는 분야가 음향 음성학이다. 마지막으로, 말소리 청취의 측면을 연구하는 분야는 청취 음성
"학(auditory phonetics)‘이라고 한다. 청취 음성학은 청자의 소리 듣기 감각과 소리에 대한 인상 등에 관심을 가진다. 음성학의 역사로 보면 조음 음성학이 먼저 발달했으나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음성 분석 장비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음향 음성학 방면의 연구가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 P8

2. 말소리가 나는 과정


말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말소리를내는 데 필요한 최초의 움직임은 숨쉬기이다. 말소리는 숨을 쉬기 위해 들이마시고 내뱉는 공기에 얹혀 나기 때문이다.  - P9

말을 할 때에는 성문의 열림과 닫힘이 빠른 속도로 반복된다. 이때 성문이 가볍게 닫힌 상태에서 공기가 지나가면 마주 보고 있는 목청이 떨게되는데, 이 목청 떨림(성대진동)에 의해서 나는 소리를 유성음(울림소리, voiced)이라고 한다. - P11

한편 대부분의 무성음(voiceless)은 벌어진 목청 사이로 그냥 지나간 공기가 후두 위쪽에 있는 여러 기관의 다양한 작용에 의해 소리가 나게 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무성음은 후두에서는 아직 소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몇 개의 무성음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 P11

성대가 붙지 않을 정도로 작은 틈새를 만들어 공기가 지나가게 하면 그 사이에서 마찰이 일어나게 되는데, 우리말의 ‘ㅎ(b)‘ 소리가 이 소리에 가까워서 이 소리를 일반적으로 성문 마찰음이라고 부른다.⁶

6 그런데 ‘ㅎ‘이 나는 과정을 관찰해 보면 그 마찰이 일어나는 곳이 반드시 한 곳이 아니라 뒤따르는 모음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ㅎ‘이 나는 곳을 성문으로만 제한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 P11

성문을 지난 공기는 울대마개(후두개, epiglottis)를 통과하여 목안(=인두,
pharynx)에 다다랐다가 다시 입이나 코를 지나 밖으로 나오게 된다. 말소리가 구체적인 모습과 성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목청으로부터 소리를 싣고올라온 공기가 후두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목안, 입안의 여러 부위들, 코 등의 기관을 거치면서 필요한 작용을 받아야 한다. 이 작용을 소리다듬기‘라고 하고 이 과정을 ‘조음 과정(articulatory process)‘이라 하며 이 과정에 참여하는 기관을 ‘조음부(articulator)‘라고 한다. - P13

목안까지 다다른 공기가 입을 통해 나가느냐 코를 통해 나가느냐 하는것은 목젖(구개수, uvula)의 움직임에 따른다. (중략). 우리말의 ‘ㄴ, ㅁㅇ‘과 같은 자음은 공기가 코로나가면서 코안을 울려 나는 비음(콧소리)이다. 비음도 그 구체적인 소릿값은 입안 기관의 움직임에 의해 결정되므로, 입이야말로 소릿값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P13

3. 자음

3.1. 자음의 특성

성문을 통과한 공기가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거치는 통로를 공깃길이라 하는데, 이 공깃길의 가운데 부분이 순간적으로 막히거나 매우 좁아져서 공기의 흐름이 방해를 받아 나는 소리를 자음(닿소리, consonant)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공깃길의 모양은 변하지만 공기의 흐름이 전혀 방해를 받지 않고 나는 소리가 모음이다. - P14

3.2. 조음 위치

공깃길이 막히거나 극도로 좁아져서 공기의 흐름이 방해를 받는 자리가 곧 자음의 조음 위치가 되는데, 언어에 따라 이 자리는 매우 다양하다.
이들을 ‘능동부-고정부‘ 식으로 나열해 보면 아랫입술-윗입술(양순음),
아랫입술-윗니끝(순치음), 혀끝-윗니끝(치간음), 혀끝윗니 뒤쪽(음),
혀끝-윗잇몸(치조음), 혀끝-윗잇몸 뒤쪽(후치경음), 혀끝-센입천장(권설음), 혓바닥의 앞부분 센입천장(경구개음), 혓바닥의 뒷부분 여린입천장(연구개음), 혀뿌리인두벽(인두음), 목청(성문음) 등을 들 수 있다. - P15

허웅(1985: 41)에서 ‘ㄷ‘류에 대해 ‘잇소리와 잇몸소리의가운데에서 나는 gingival‘이라고 했거니와, 사실 이 소리들은 윗니 뒤쪽으로부터 잇몸에 이르기까지 넓은 곳에서 나기 때문에 정확하게 ‘윗잇몸‘
한 곳으로 한정하기가 곤란하다. 이에 대해 이호영(1996: 47)에서는 윗잇몸소리 전체를 개인에 따라 치음이나 치조음으로 발음한다고 했고, 이현복(1998: 110)에서는 세대나 성에 따른 발음 경향으로 보아서, 주로 젊은세대나 여성층에서 잇소리로 내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배주채(2013:77~78)에서는 우리말 자음의 조음 위치에 치음을 따로 두고 ‘ㄷ,ㄸ, ㅌ,
ㄴ‘을 이곳에서 나는 자음으로, ‘ㄹ, ㅅ,ㅆ‘은 치조음으로 처리하고 있다.¹⁰ 이 책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학교 문법과의 혼란을피하기 위해 전통적인 관점을 따르기로 한다.

10 배주채(2013)에서는 자음의 조음 위치를 모두 여섯 군데로 잡고 있다. - P16

1. 음절의 뜻

앞의 두 장에서 우리는 말소리의 물리적인 모습과 성질, 우리말의 음성과 음소, 음운 체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장에서 살필 내용은 음소의바로 위 단위인 음절(syllable)이다.
다음 문장을 발음하고 그 발음을 음성 전사 기호로 옮겨 적어 보자.

ㄱ) 윤하가 밥을 먹는다junha-ka pap-il mak-nin-ta
ㄴ) [윤하가 바블 멍는다] [junhaga pabil mayninda]

ㄱ)은 단어나 조사, 어미 등의 원래 형태 혹은 ‘기저형‘ 상태로 전사한것이고 ㄴ)은 이를 실제로 발음한 상태를 옮겨 적은 것이다 - P73

요컨대, 음절은 음성학적으로 ‘하나의 발화체 안에서 단독으로 발음되는 최소의 소리 단위‘ 정도로 정의될 수 있겠다. 음절은 말소리를 구성하는 여러 층위의 단위 중 음소가 결합하여 이루는 첫 상위 단위가 된다.
한글 맞춤법은 음절 단위로 모아쓰기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이때의 음절은 어떤 형태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발음상의 음절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음운론에서 말하는 음절은 ㄴ)과같이 소리 나는 대로 적었을 때의 한 글자와 같다고 보면 된다. - P74

2. 음절의 구성과 유형

2.1. 음절의 구성 방식

음운론에서 음절에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음절이 구성되는 방식, 즉 범언어적으로 어떤 소리들이 하나의 음절로 묶여서 발음되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 P74

이 물음에 대해서는몇몇 이론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에는 울림도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보편적인 음절 구성 방식을 설명하려는 이론도 있었고, 열림도를 바탕으로 하는 개념인 ‘내파음/외파음‘ 혹은 ‘점강음/점약음‘을 가지고 음절 구성 방식을 설명하려는 이론도 있었다.(허웅, 1985: 109-118 참조)먼저 올림도를 가지고 음절을 설명하는 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울림도(공명도, sonority)는 모든 소리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에너지를 말하는데,
다른 조건이 같으면 울림도 도수가 높은 소리일수록 더 잘 들린다고 보면된다. - P75

다음으로, ‘내파음/외파음은 소쉬르(F. de Saussure)의 개념인데 그는 말소리를 조음할 때 공깃길의 크기, 즉 턱이 벌어지는 정도를 열림도(간극도perture)라 하고 그 등급을 가지고 음절 구성과 경계 등의 문제를 설명했다. - P75

모음 사이에 두 개의 자음이 있을 때 앞의자음은 점점 닫히는 중에 있으므로 내파음인 반면, 뒤의 자음은 열리는중에 있으므로 외파음이다. 음절 경계는 내파음과 외파음의 사이에 놓이게 된다. 한편, 그라몽(M. Grammont)은 소쉬르의 ‘내파음/외파음‘을 ‘점강음/점약음‘의 개념으로 바꾸어 비슷한 방법으로 음절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설명했다. 점강음/점약음을 가지고 이들의 음절 이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ㄱ) 한 음절은 첫 점강음에서 다음 점강음 앞의 점약음까지의 소리의 모임이다.
ㄴ) 음절의 경계는 점약음과 점강음 사이에 놓인다.
ㄷ) 음절 구성의 필수 성분인 성절음은 경계 혹은 점강음 다음의 점약음이 된다. - P76

우리말의 음절 구성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성절음이 될 수 있는 것은 모음밖에 없고 하나의 음절은 모음 하나에 자음이 앞뒤에 붙거나 붙지않은 상태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우리말의 음절은 다음과 같은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77

 이것은 어떤 소리 연속체가 우리말에서 하나의 정상적인 음절로 인정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자제약이다. 기저형에서 자음군을 말 자음으로 가진 형태소나 단어가 단독으로 발화되거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형태소와 결합할 때, 자음군 단순화라는 음운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 제약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초성 자리나 종성 자리에 자음이 둘 이상 달린 외국어 단어가 외래어로들어올 때 음절수가 달라지는 것도 위의 음절 구성 제약에 따르기 위한과정이다. - P78

①은 우리말에 ‘ㅇ(ㅁ)‘을 초성으로 하는 음절형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제약으로 인해, 음절의 초성 자리에는 18개의 자음만올 수 있다. ②는 음절말, 즉 종성 자리에 놓인 자음은 입안 공깃길의개방 없이 나는 소리, 즉 불파음‘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음성학적 불파음화가 음절 구성 제약으로 나타난 것이다. - P78

3. 음절의 구조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말의 음절 유형은 ‘중성‘형, ‘초성+중성‘형, ‘중성+종성‘형, ‘초성+중성+종성형의 넷이다. 이 중에서 ‘초성+중성+종성(C-V-C)‘ 형을 기본형으로 잡을 수 있을 텐데, 그 이유는 ‘중성형은 초성자리와 종성 자리가, ‘초성+중성‘형은 종성 자리가, ‘중성+종성형은 초성 자리가 빈 상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문제는 이 음절형이 어떤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하는것이다. - P82

한 언어의 음절 구조는 모국어 화자들이 가진 언어 능력의 내면에 존재하면서 언어 수행의 표층에 다양한 모습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그 언어의음절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말소리의 실현 양상을 포함한 여러 가지언어 현상을 폭넓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중국어는 대표적인 ‘머리몸통‘
구조의 언어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중국 운학의 오랜 전통을 고려한 판단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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