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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태국-미얀마 간 철도건설에서 전쟁 포로로 있었던 외과의사 도리고 에번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전쟁 포로들의 고통과 도리고 에번스의 사랑 이야기이다. 특히 전쟁 포로들의 처절한 상황과 여러 포로들의 이야기는 몰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당시 포로들은 철도 건설에 투입되었는데 일본 군인의 무자비한 통제 아래 어떻게든 철도를 완성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식사도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콜레라 등의 각종 질병으로 인해 포로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더해, 일본 군인들의 구타와 폭행으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과 행동, 생각을 그려나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 포로들 중 한 명인 다키 가디너는 특별히 언급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일을 잘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열심은 오히려 동료 포로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왜냐하면 매일 일본 군인이 포로들에게 할당량을 주는데 시간이 다 되지도 않았는데 다키 가디너가 임무를 완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 군인들은 할당량이 적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일을 지시하게 된다. 결국 다른 이들은 지금 일도 하루에 다 마치기 버거운데 더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다키 가디너의 뛰어남은 결국 질병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보녹스 베이커라는 인물은 콜레라 막사를 돌보는 병사이다. 즉 콜레라 환자와의 접촉으로 인해 전염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병동 일꾼으로 자원하는 것은 일종의 사망선고였다. 도리고 에반스가 이제 그만 이 병동에서 일해도 된다고 했지만 보녹스 베이커는 계속 남아 있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토끼 헨드릭스는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자신들의 부당한 대우와 일본군의 잔인함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다. 비록 본인은 포로 생활 중 죽음을 맞이하게 되나 그 기록은 결국에는 그를 대신해 생존하게 된다.
나카무라는 포로들을 관리하는 일본 간부였다. 그는 무자비하게 부하들을 다루고 포로를 다루는데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군대에서 항상 구타를 당했었고 그 역시 의무적으로 다른 병사들을 때려야 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 끝나고 전범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열심히 도망 다녀 재판을 피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나카무라의 생각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자신은 구타했다는 이유로 일본인 병사가 교수형을 당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은 나름 좋은 장교였다고 회상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몽둥이질을 하지 않고 따귀로 끝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군 병사로 나오는 고아나는 사실 조선인이었다. 그 또한 어떻게 보면 전쟁의 피해자인 셈이다. 그저, 일본 장교가 시키는 대로 구타하라면 구타하고 전쟁 포로들을 관리했을 뿐인데, 결국 그는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도리고 에반스는 외과의사로 장교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를 관리하는 포로 측 대변인이자 환자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그는 철도를 건설할 수 있는 인원을 일본 장교와 매일 협상하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일본 장교가 500명을 요구하면 도리고 에반스는 실제 투입 가능한 인원이 300명 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원 조절을 매일 해야 했다. 도리고 에반스의 로맨스 이야기도 포로 이야기 중간에 계속해서 나오는데 흥미진진한 로맨스지만 여기서는 따로 언급을 안 하도록 하겠다.
이토록,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전쟁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를 가진 인물들, 즉 포로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일본군과 자의든 타의든 가해자에 합류한 조선인까지 다양한 인물을 다루며 전쟁 당시의 그들의 모습뿐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여전히 전쟁 때의 경험이 어떻게 그들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걸작이다. 기회를 만들어 다시 한 번 몰입해서 읽을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