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트 라인 - 보이지 않는 균열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
라구람 G. 라잔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인 라구람 라잔은 국제통화기금 IMF 수석 경제학자를 거쳐 인도준비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그는 모두가 금융 시장의 확장과 증권화 같은 금융 혁신을 찬양할 때, 오히려 '금융 발전이 세계에 더 큰 리스크를 안겨준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한마디로 그는 반항아 혹은 이단아였다. 아니 둘 다였다. 특히, 그는 당시의 인센티브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2009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인센티브는 금융계에 끔찍할 정도의 왜곡 현상을 가져왔다. 인센티브 제도가 금융계 종사자들이 수익을 내는 경우 엄청나게 큰 보상을 해주는 반면, 손실을 낼 때는 가벼운 징계 정도로만 그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왜곡 현상이 초래되었다고 라잔 교수는 주장했다."

 

저자는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가 과거의 금융 위기와 공통점도 있지만 똑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는 가장 완벽하다고 평가받는 금융 제도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저,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으려는 행동들이 모여 세게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고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또다시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오늘날 세계 경제에는 깊은 폴트 라인들이 존재한다. 이 폴트 라인들이 생겨난 이유는 통합된 경제, 통합된 세계 속에서 특정 개인이나 특정 기관이 추구하는 최상의 이익이 체제의 최대 이익과 항상 부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폴트 라인 중에서도 몇 개의 훨씬 더 심각한 폴트라인은 경제 분야가 아닌 정치 분야에서 기인한다."

 

이제 제목인 '폴트 라인'이란 용어가 무엇인지 설명할 순서이다. 폴트 라인은 지진이 일어나는 그 판의 접촉면을 일컫는 지질학 전문 용어인데 저자는 이를 경제학에 차용해서 쓰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지구 경제가 어떤 판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판들이 어떻게 서로 충돌해 폴트 라인을 형성하며, 그 폴트 라인이 어떻게 금융 위기를 촉발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저자는 미국 경제가 아닌 지구 경제, 즉 세계 경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온 세계는 지금 금융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한 나라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이제 다른 나라, 나아가 온 세계의 금융 시스템이 '나비 효과'처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사태,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세 가지 폴트 라인을 이야기한다. 바로, 국내의 정치, 국가들 사이의 무역 불균형, 그리고 이로 인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서로 다른 금융 제도이다.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의 원인도 이 폴트 라인 중 하나인 국내의 정치로 설명한다. 정치권이 소득 불평등 심화 대응책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저소득 가구에 대한 신용 확대 및 주택 보유 확대였다. 결국, 정부와 금융기관이 합작하여 빚으로 소비와 주택 구매를 부추긴 것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 및 끔찍한 결과는 <빚으로 지은 집>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의 합작에 대해 <폴트 라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또는 정치적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정부나 중앙은행이 현재 일부 시장에 개입하고 있거나 미래에 개입할 가능성이 큰 경우, 금융계는 조직적으로 동일한 리스크 감수 행동에 뛰어들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번 위기는 정치적 모럴 해저드가 금융계의 모럴 해저드와 만나서 촉발된 것이다"

 

금융기관은 정부가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오직 인센티브와 수익을 향해 달려갔고 그로 인해 위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정부는 그 믿음대로 위기가 발생하고 바로 개입하였다. 결국,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는 금융기관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가 부추긴 결과였다. 

 

금융기관은 단기성과에만 치중한 무분별한 인센티브 제도, CEO의 야심과 경쟁심, 리스크관리직의 회사 내 지위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이 모든 문제가 위험 감수를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로 나타났고 이것이 곧, 금융 기관의 모럴 해저드였다. 

 

저자는 현재 금융이 경제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따라서, 기존 금융 제도 체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진행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부의 개입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책의 많은 부분을 이 주제에 할애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정부 개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금융기관이 정부의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 또한 '금융 개혁은 처음부터 국민의 결정권을 박탈하는 쪽으로 가기보다는 자신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제대로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계속해서 빚으로 소비를 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빚을 내어 소비하고 집을 살 때, 그저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살 수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규제가 필요 없을 만큼 경제가 호황기에 있을 때 오히려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경기가 불황일 때 강력한 규제에 대한 신념이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대체적인 심리는 실제와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경기 사이클에 맞게 규제를 하려면 지금이 경기 사이클의 어느 지점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잣대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인센티브 제도와 관련해서는 실적에 보수를 연동시키는 성과급 제도를 없애고 보수가 아닌 지위 부여나 승진을 연동시키는 보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성과급의 경우 이연 지급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증권사들은 '성과급 이연지급제'를 적용하고 있다.)

 

저자는 임금 불평등 및 부의 양극화와 관련하여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을 경제가 아닌 교육에서 찾고 있다. 바로 해결책은 '더 나은 인적 자본을 갈고닦을 수 있는 기회와 관련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놀라운 사실은, <폴트 라인>의 저자인 라구람 라잔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라이프 프로젝트> 등에서도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폴트 라인>에서는 구체적으로 수업 일수와 학습 기간을 늘릴 것을 제안한다. 즉, 정규과정 이외의 시간(방학 등)에서 사적으로 공급되는 교육의 질에서 차이가 나는데 이 질의 차이는 곧 부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저자의 해결책은 나름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의 양극화, 부의 재분배와 관련하여 대부분 주장하는 것이 대기업의 착취에서 비롯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폴트 라인>의 저자는 부의 재분배는 교육의 문제이고 결국, 평등한 교육의 제공이 해결책이라고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사회 안전망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구체적으로 실업급여와 의료 보험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실업 급여와 관련해서는 기간을 미리 정하여 제공해야 하고 경제적 상황을 반영한 일정한 공식을 통해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 보험 제도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폴트 라인>에서는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는 직장 의료 보험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을 잃으면 의료 보험 헤택을 거의 받을 수 없거나 개인적으로 몇 배의 의료보험료를 내고 가입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특히 미국의 의료비가 비싼 구조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 간의 무역 불균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칠레, 독일, 일본,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같은 나라들은 수출 지향적 성장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빌려줌으로써 미국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자국 내 수요를 창출하기보다는 외국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안정적인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또한 국가 간 협력을 위해 이제는 톱 다운 방식이 아닌 바텀 업 방식이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각 나라의 정치인들이 만나서 협의하는 것에는 각 나라의 이해관계로 인해 한계가 존재했다는 것이 저자가 IMF 수석 경제학자로 지내면서 내린 결론이다. 따라서 이제는 바텀 업 방식, 즉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국가 간 협력을 추진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금력 탄탄한 국제 금융 기구가 그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

 

세 번째 폴트 라인인 각 나라의 금융 제도와 관련해서는 각국의 통화 정책을 이야기한다. 인위적인 통화 정책은 국내 경제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수출업자를 위한 자국 통화 가치 저평가 정책이 국내 경제를 엄청나게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 때문에 국내 소비가 증가하지 못하고, 노동력이 지극히 풍부한 나라의 산업이 자본 집중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금융 산업이 저개발 상태로 남게 되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