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 3 - 나의 대학총장시절 나남신서 1917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일은 사람이 한다. 큰일은 혼자서는 못하고 반드시 여럿이 힘을 합하여야 된다. 그리고 보다 유능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보다 큰일을 이룩할 수 있다."

 

광복군에 속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이자, 중국을 전공한 사학자이자,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이자, 아세아문제 연구소 소장이었던 김준엽 소장의 자서전 5권 중 세 번째 책이다. 3권에서는 고려대학교 총장 재임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함께 할 때 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는 그의 굳은 신조였다. 그래서 사립대학의 발전 요체는 재단과 학교와 교우의 삼위일체에 있다고 굳게 믿었고 이들과의 관계를 위해 총장 초기부터 노력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뛰어난 강사가 혼자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것보다 10명이 함께 적절한 피드백과 함께 한 주제에 대해서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더 훌륭한 강의가 될 수 있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머리를 맞대면 똑똑한 사람 혼자서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분명 더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다. 이런 원리 또한 김준엽 소장의 신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사람을 중요시한 김준엽 소장은 총장 재임 시절 특히, 학생을 중요시했고 평교수를 중요시했으며 대학 직원들을 중요시하였다. 학생을 중요시하는 것은 대학 총장으로서 마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 직원을 중요시하고 그들을 살펴 본 대목을 통해 그의 뛰어난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김준엽 소장은 직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평가 기준은 우수한 직원의 확보 여부이다. 대학 운영에서의 후방부대는 직원들이다. 인체에서의 중추신경의 역할이나 마찬가지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직원이다. 직원들이 얼마나 유능하고 청렴하고 열성적이며 근면한가에 따라 대학은 그 면모를 달리한다. 특히 대학에서 교수들의 그림자에 가려 직원들의 존재가 희마하게 되기 쉬우나 항상 총장은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그들의 교양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국립대학의 직원들처럼 관료화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대학의 주축은 교수와 학생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는 이 발상을 뛰어넘어 교수+학생+직원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이론이나 말로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봉급을 올리며 대우를 좋게 하였고 교직원의 자녀들이 대학에 가산점을 받는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아들은  특혜 입학이 아닌 실력으로 입학하였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다른 이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날카로운 잣대를 대면서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았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인사에 관한 그의 분명한 철학이다. 그는 인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사의 공정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낙하산식 인사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었고 그는 철저히 낙하산식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사위원회를 통해 교수의 신규채용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정확한 인사를 위해 취임 초 상당한 시간을 직원들을 알아가는데 투자하였다고 말한다. 특히 보직자를 선임할 때 다음과 같이 고민하였다고 책에 서술되어 있다.

 

"고대의 경우도 보직을 벼슬처럼 생각하는 교직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보직자를 선임할 때는 근무 연한, 학문적 업적, 학생에 대한 교육열, 행정능력, 인망 등을 고려하였고, 또 단대별, 출신학교, 도별 등을 숙고하여 골고루 배치하는 데 신경을 썼다. 그래야만 인화를 지킬 수가 있고 인화가 되어야만 대학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대통령이 장관을 비롯해 여러 사람을 주요 보직에 임명하면 빠짐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지역별, 출신학교별로 고루 인재가 등용되었는지이다. 김준엽 소장은 애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균형 잡힌 인재 등용이 되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그의 뛰어난 통찰력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다.

 

김준엽 소장과 어울리는 별명 중 하나는 아마도 '대쪽같은 원칙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정한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도 저항하였다. 그 압력이 청와대로부터 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바로 명예박사학위 수여이다. 그 당시 외국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도록 정부에서 지시하였는데, 김준엽소장은 고대의 기존 방침과 어긋나는 사람을 정부에서 지시하면 거절하였다. 그는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들리는 말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 급에는 서울대에서 주고, 그다음 급에는 고대나 연대에서 주고, 다음 클래스에게는 여타 사립대학에서 주기로 정부에서 방침을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차별을 두는 것조차 불쾌한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고대에서 세운 규준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에게 학위를 줄 수가 없다고 하여 모두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내가 사임할 적까지 한 번도 외국인에게 명예박사를 주라는 지시는 받지 않았다."

 

김준엽 소장은 대학의 자율을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자율이 있어야 대학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 정부의 간섭은 너무 심하여, 심지어 교수의 계약을 연장할 때마다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즉,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가 있으면 정부가 통제해서 승인을 안 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군부독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이는 그 당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군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고 또 정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여서 군대를 가지 않았다고 하여 이런 사고가 절대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주변에 의해 충분히 영향을 받으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이라도 이런 군대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이들이 군대의 본질상 '나'와 '적'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습성에 젖어 있다는 점이다. 전쟁에서 적이면 죽여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보고 이를 말살하려는 식의 사고방식은 정말로 무서운 것이고, 내가 군인은 정치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데 있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각 대학의 총장들은 정부(정치군인과 그 앞잡이 관료들)에서 무슨 지시만 내리면 타당하건 아니건 아무 말없이 매사에 순종만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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