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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 2 - 나의 광복군 시절 - 하 ㅣ 나남신서 1928
김준엽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광복군에 속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이자, 중국을 전공한 사학자이자,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이자, 아세아문제 연구소 소장이었던 김준엽 소장의 자서전 5권 중 두 번째 책이다. 광복군 시절과 학문과 정치의 갈림길에서 학문의 길을 선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 과정과 북한 정권의 핵심 권력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에서 북한 핵심 권력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소련이 제 88특별여단을 조직한 주요 목적은 소련군과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는 경우 조선과 중국의 지리에 밝을 뿐만 아니라 유격전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정찰활동에 이용하기 위하여 훈련을 해두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훈련 내용은 우리가 두곡에서 OSS훈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무전기술, 낙하산 강화, 교량 파괴, 첩보, 지도작성 등의 기술훈련이었다.
명칭은 여단이기는 하나 제88특별여단의 총 인원수는 200여 명이었으며 조선인이 부인들까지 합하여 약 60명, 중국인이 약 100명, 소련군관이 약 40명이었다. 여기에 참가한 조선인이 김일성, 강건, 최용건, 김책, 최현, 안길, 김일, 최용진, 김광협, 서철, 허봉학, 최충국, 등인데, 김일성, 김책, 강건, 최용건 등의 계급은 대위였다.
김일성(33세) 일행이 소련군을 따라 원산에 상륙한 것은 일본이 투항한 지 한 달이 지난 1945년 9월 19일(음력 8월 14일)의 일이다. 그런데 이 소집단이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즉, 소련군이 일본군과의 전투를 목적으로 조선인을 포함한 특별여단을 만들어 군사 훈련을 시켰는데, 여기에 포함된 조선인들이 바로 김일성을 필두로 북한 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타이밍과 배후세력의 중요성이다. 김일성 일행은 일본이 투항하고 한 달 만에 원산에 상륙하였고 그 배후에는 소련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로 말미암아 북한 정권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책에서 서술한 것처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일본의 투항 이후, 최대한 빠르게 서울로 진입하려고 시도했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여전히 잔류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어쨌든, 일본이 투항한 시점에 세계정세가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대결구도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불운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소련과 미국이 각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한반도의 혼란을 이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과 기름처럼 두 국가는 결코 협력할 수 없는 대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에 한반도도 그대로 노출되었고 결국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방을 맞고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에, 김준엽 소장은 개인적으로 큰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는 광복군 활동을 통해 김구, 이승만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게 되고 본인도 마음만 먹으면 정치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본에서 공부하던 것을 이어서 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중국사 중심의 공부를 했었는데 광복군 활동을 통해 중국어를 익혔을 뿐 아니라 중국의 여러 지역을 직접 경험하면서 중국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민의 흐름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곤명에서부터 생각하기 시작한 나의 앞길에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다고 믿었다. 정계에 투신하였다가 벼슬길에 오를 것인가? 아니면 학자의 길을 택할 것인가?
나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분석하였다. 우선 일제의 투항으로 정세가 일변하였다는 점이다. 일제의 식민지하에서는 우리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 지상과제였기에 그를 위하여 나의 목숨까지도 바치려고 하였으나, 이제 독립이 되어 건국사업이 전개되는 마당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 군사에 걸친 제반 건설사업이기 때문에 국민 각자가 적성에 맞는 일에 투신하여 최선을 다해야만 될 것이다(이때만 해도 남북이 분단 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면 나의 적성은 무엇일까? 학문에 대한 나의 정열도 정열이려니와 정치에는 흥미도 없을 뿐더러 권모술수나 머리 숙일 줄 모르는 내 성격은 관료로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게다가 나는 강제징집으로 학업을 중단하였기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내가 게이오 대학에서의 전공과목이 중국사였기 때문에 중국사를 연구하기 위해 일부러라도 중국에 유학와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전쟁터에서 중국어를 배웠고 대륙을 동분서주하는 동안에 중국의 지리나 실정에도 어느 정도 익숙한 장점을 터득한 것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을 살려서 나는 기어코 중국 전문가가 되리라."
여기서 김준엽 전 소장의 의사 결정 과정 및 사고 흐름을 정확하게 알고 배울 수 있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도 좌지우지된다. 전기문이나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그 인물의 위대한 업적을 알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그러한 업적을 남기기까지 어떻게 사고하고 결정했는지를 알고 배우기 위해서이다. <경제 예측 뇌>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좋은 결정을 위한 뇌를 만들라는 것이다. 김준엽 소장은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결정에 앞서 시대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개인적인 상황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시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과 결정을 내리게 된다. 특히 책 곳곳에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자꾸만 성찰하였다. 나는 과연 그 동안 열심히 살았는가? 내 나이 스물여덟인데 이 시대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남아로서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일을 했는가? 한 시간 한 시간이 쌓인 것이 나의 일생이 될 것인데 매시간을 나는 헛되이 보낸 일은 없는가? 나는 다지고 또 다졌다. 나는 일생에 대한 정밀한 설계도를 그려놓고 벽돌 한 장 한 장을 옳게 쌓고 있는가? 나는 지나간 날과 앞으로의 생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각오를 더욱 굳게 하였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인 상황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하고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자아 성찰의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가장 옳은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순히, 방법론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면 안 되고 평소에 견문을 넓혀서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다. 김준엽 소장은 이를 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