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프로젝트 -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헬렌 피어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한다. 특히, 사람과 관련된 일은 더 그렇다.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다시는 그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여 범죄를 예방하려고 한다. 각종 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질환의 원인을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문제는 사람과 관련된 일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과거부터 추적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추적조사해야 하는가? 그리고 조사를 하고 싶어도 과거 기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따라서 추적 조사를 하려고 하면 이미 늦다. 그래서 질환, 범죄 등의 원인을 사회학적으로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사람의 과거에서 어떤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출산 전인 임신 때부터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을 남겨둔 연구가 있으니, 그 연구가 바로 '코호트 연구'이고 이 책 라이프 프로젝트의 주제이다. 따라서, 이 코호트 연구의 자료들과 흔적들만 잘 쫓아가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추적조사한다는 말만 들어도 뭔가 굉장히 어렵고 큰 프로젝트라고 짐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영국에서 이루어진 코호트 연구는 1958년을 시작으로 12년마다 총 5번이 진행되었지만, 진행될 때마다 어려움이 없었던 연구는 없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비용이었다. 보통 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대상이었는데, 그들의 출생을 기록하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 그 가정을 방문해서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고 이것은 다 비용과 연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연구의 결과물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과 연구 기간이 너무너무 길다는 것은 투자나 지원을 받기 힘든 가장 큰 이유였다. 왜냐하면, 지원을 받으려면 프로젝트의 목표가 무엇이고 어떤 성과가 예상되는지를 이야기해야 되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투자를 하면, 단기간에 그로 인한 보상을 기대한다. 그 보상은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명예나 권위, 혹은 학술적 가치 같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 코호트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을 하였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 투자나 지원을 받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 코호트 연구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랐다. 말 그래도 추적 조사이기 때문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조사가 진행되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럼 최소 50-60년은 지속되어야 할 연구 프로젝트인 것이다. 즉, 연구 성과물이 30년 뒤에나 나올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지속적인 인터뷰와 자료 수집, 보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은 계속 지불되어야 할 터였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감히 누가 투자하고 지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호트 연구를 위해 온몸을 바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코호트 연구는 시작되었고 유지될 수 있었다. 물론, 코호트 연구는 긴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각 코호트 연구의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호트 연구가 시작될 때 공헌한 주요 인물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결코 코호트 연구들은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코호트 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이 다음 글에 잘 나와 있다.
 
"하지만 출생 코호트 연구로 인해 밝혀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생의 첫 몇 년이 나머지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가 높고, 좋은 직업을 얻고, 날씬한 몸을 유지하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가능성이 컸다. 반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간단히 말해, 부모의 처지가 자녀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임신 때의 환경, 그리고 태어나고 나서 처음 몇 년이 성인이 될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다 아는 사실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이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이 코호트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부모, 비좁은 집 등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힘겹게 인생을 시작한 아이들은 점차 행동장애, 질병, 부진한 학업 성취도 등에 시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임신 기간 동안 알코올을 피하고 생선을 먹었던 것은, 코호트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사실이 이제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면 좋다는 '상식 역시 마찬가지다."

 

"육체노동자들의 아기들은 전문직 계층의 아기들보다 사망률이 훨씬 더 높았다."

 

"... 하층계급의 아이들이 학교 성적만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부유층 아이들보다 키가 평균 3.3센티미터 더 작고, 언어장애는 6배 더 많았다. 그리고 치과에 가본 적 없는 아이들이 거의 3분의 1이었던 반면, 상류층 아이들은 1퍼센트에 불과했다."

 

"최고 오염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기침이 잦았고, 기관지염과 폐렴 같은 하기도 감염에 걸릴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아파서 학교에 결석할 확률도 높고, 귓병으로 귀에서 고름이 날 확률도 조금 더 높았다. 이번만은 사회계급과 무관했다. 노동계급이든 중간계급이든 오염 지역에 산다면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아무리 잘 살아도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 결과, 강도죄, 폭력 범죄, 성범죄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의 별거나 이혼 같은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운 사건을 겪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처럼, 책에는 코호트 연구의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흡연과 암의 연관성이 지금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상관성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코호트 연구에 있어서 교란 변수를 제거하는 것은 언제나 큰 과제였다. 흡연과 암의 상관성에서도 교란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연구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왜냐하면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사회계급이 더 낮고, 더 가난하며, 더 작고 지저분한 집에서 사는 등 이미 불리한 조건들로 둘러 싸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연구할 때, 두 부모와 한 부모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란 변수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란 변수를 제거하고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도출되어야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거나 문제의 원인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코호트 연구로 문제의 원인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이 연구의 시사점 중 하나는 경제적 차이가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 아이의 인생을 어느 정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을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코호트 연구자들은 이들을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너무 암울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호트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또 다른 지표가 눈에 띄었다. 바로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 중에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성취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연구자 필링은 386명의 불우한 아이들 중 83명이 이 성취자 그룹에 속했다는 것을 알고는 성취 요인을 찾기 위해 연구한다.

 

핵심적인 차이는 바로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 야심 찬 학교, 거주지, 가정환경, 그리고 바로 개인의 의욕(의지) 였다. "성취자들은 비성취자들과 달리 의욕이 넘쳤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 했고,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라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의지는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부모와 학교, 거주지, 가정환경은 개인의 의지와 의사와는 관계없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인이 아무리 의지가 강하더라도 다른 환경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리한 조건을 탈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좀 더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와 학교가 변해야 된다. 

 

책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매일 책을 읽어주고 자녀에게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길러주는 것 등이 다 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밀레니엄 코호트는 '훌륭한' 가정교육의 범위를 더 넓히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대화하면서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규칙적인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정해 주고, 부모의 권위를 지키며 훈육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더 밝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체벌 같은 가혹한 훈육은 나쁜 결과를 낳았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의욕이 그 실행 방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을 격려하고 책을 읽어 주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더 이득이 된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과연 시대가 지날수록 개선되었는지 여부이다. 코호트 연구자들도 세월이 지나며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5개의 코호트 연구를 비교하는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비교 연구조차도 쉽지 않은 연구였다. 왜냐하면 각 시대별로 인터뷰한 질문이 다를 뿐 아니라 자료의 보관 형태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 자료들을 다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질문과 어느 질문이 같은 질문인지를 매칭해야 되는 일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노력 끝에, 연구자들은 시대별 비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계급 별 사회 이동성이 더 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부자가 되거나 성공할 확률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만 봐도, 이 해석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들을 조사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돈 있는 사람이 교육에 투자하여 좋은 대학에 보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듯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고시를 합격해 신분이 상승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가능성조차 희박해지고 있다. 코호트 연구 결과 그대로이다.

 

그럼, 왜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는 것일까? 책에서 그 이유를 단편적으로 찾을 수 있다.

 

저자 중 한 명인 피터 웨지는 영국의 역사가이자 사회주의자인 R.H. 토니가 1913년의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을 인용했다.
"사회악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가 아니다. 잘못된 행위를 끊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악을 근절할 힘을 가진 자들은 의지가 없고, 의지가 있는 자들은 아직 힘이 없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끊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개선할 힘이 있는 자들은 다 부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 자녀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라이프 프로젝트에 나오는 코호트 연구를 통해 밝혀진 여러 상관관계는 분명 정부의 공공정책에 영향을 주어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계급 간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부모의 경제적 상황은 여전히 아이들의 성장과 진로, 그들의 성공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어도, 부모라면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자녀들에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녀들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불리한 조건으로 인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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