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직접적인 증언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다. 일부 사건과 대화는 상상에 의존했지만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3년에 거쳐 랄레와 관계를 맺고 신뢰를 얻은 다음에야 증언을 듣게 된다. 증언을 한 랄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문신가였다. 호송되어 수감된 사람들에게 번호가 부여되는데 그 번호를 새기는 것이 바로 문신가의 역할이었다. 랄레는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사건을 회상하며 6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눈시울을 적시고 손을 떨며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랄레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그 이야기가 기록되길 원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누가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밤에 수요자들이 변을 보러 갔다가 새파랗게 어린 친위대 장교에게 총을 맞고 죽기도 한다. 그냥 기분 나쁘면 수용자들을 죽여도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용자들은 밤에 아무리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눈치를 살펴야 했고 총소리가 나는 날은 갈 수 없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에만 나왔다.


랄레는 처음부터 문신가가 아니었다. 수용되고 어느 날 페판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독일어로 문신기술자란 의미를 지닌 테토비러였다. 페판은 파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지만 수용소에서는 테토비러였다. 그는 랄레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하며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수용소에서 테토비러는 특별 대우를 받았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별문제가 없었다. 테토비러가 없으면 수용소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독일 군인들도 죽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방도 1인실을 사용했고 배급량도 늘어났다. 원하는 만큼 배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수용자들의 문신을 새기는 일은 독일군을 돕는 행위였고 이런 테토비러를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테토비러 생활을 하던 랄레는 수용소에서 가슴이 쿵쾅거리는 일이 생긴다. 바로, 눈을 뗄 수 없는 여인을 만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기타였다. 놀랍게도 친위대 장교인 바레스키를 통하여 쪽지를 보내며 연락을 하게 된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전혀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사랑이 꽃 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된다.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랄레는 초콜릿을 구해 그녀에게 가져다주기도 한다. 수용소 여성들은 이송되어 오는 사람들의 옷과 가방 등을 뒤져 보석 등을 찾아내는 일을 했다. 랄레는 음식이나 초콜릿 등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근처 마을에서 수용소로 들어와 일하는 일꾼들로부터 구해서 여성에게 건네주고 여성들로부터 보석 등을 받아 대가를 지불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결국 랄레의 방에 있는 보석들이 발견되어 랄레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랄레는 수용소 안에서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자비를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베푼 은혜들이 다시 랄레에게 돌아오게 된다. 바로, 랄레가 죽을 고비를 맞이했을 때 고문자가 바로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 고문자는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랄레가 죽지 않고 다시 일반 수용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내가 베푼 도움은 언젠가는 누군가를 통해서 돌아온다. 물론,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움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또다시 랄레는 보석과 음식을 교환하는 일을 하게 된다.


수용소 안에서도 텃세라는 것이 있었다. 먼저 들어온 슬로바키아 여자들은 자신들이 힘겨운 협상을 통해 얻어낸 작은 특권들을 당연한 듯이 함께 누리려 하는 헝가리 여자들에게 분개한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콩 한 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생존 방안을 모색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안에서도 텃세가 있고 이권 다툼이 존재한다. 물론, 반대로 자신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영웅도 존재한다.


책을 읽으며 언어는 많이 배울수록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랄레는 슬로바키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그리고 폴란드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수용소 안에서 러시아 군인을 만나 정보를 얻기도 하는 등 다양한 정보 습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나중에 탈출을 하는데도 통역사 역할을 하며 위험한 순간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또다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배워서 나쁠 것 없지만 언어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하게 된다.


랄레와 기타는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방법으로 수용소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랄레는 탈출 후 슬로바키아 고국에 돌아가게 된다. 집에서 여동생을 만난 랄레는 기타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가 살아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여동생은 어서 찾아보라고 랄레에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랄레는 고향도 모르고 오로지 성과 이름만 알뿐이었다. 그는 브라티슬라바 기차역에서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강제 노동 수용소 생존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물으며 기타 푸르만을 아는지 묻는다. 어느 날 역장은 적십자 단체에서 실종자와 가족을 찾는 생존자 이름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랄레는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시내로 가던 중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바로 중심가 길에서 기타와 랄레가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1945년 결혼한다.


기타는 오랜 세월 랄레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단순히 수용소에서의 짧고 격렬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의 나이가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어 노인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서로 사랑했음을 랄레의 이야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랄레의 자녀는 아버지가 당신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어머니인 기타가 세상을 떠나는 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랄레는 기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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