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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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여성 실학자인 빙허각 이씨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빙허각 이씨는 생활 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썼는데 여기에는 요리, 농사, 육아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은 빙허각의 실제 삶과 그 시대상을 바탕으로 구성한 장편소설이다. 빙허각이라는 이름은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빙허각의 삶을 보며 시대가 어떠하든지 뛰어난 인재는 어떻게든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두각을 나타내고 사회 발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려면 여러 상황이 들어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빙허각도 평양감사인 이창수의 딸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 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빙허각이 서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지 않았더라도 계속해서 공부하며 책을 내는 열매를 맺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빙허각이 자신의 뛰어남을 인지하고 계속 공부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선택한 것은 개인의 역량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는 것은 시대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개인의 역량과 재능은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져야 빛을 발한다.

남편인 서유본의 지지와 격려,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남편 유본은 그 누구보다 빙허각의 뛰어남을 인지하였다. 그래서 평생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함께 공부를 해 나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지는 이처럼 매우 중요하다.

빙허각은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는데 언어에도 탁월하고 수학 실력도 특출났다. 청나라 언어를 배우는데 가르치는 사람도 빙허각의 뛰어난 언어 습득에 감탄한다. 빙허각의 청어를 배우려는 절박함도 한몫했을 것 같긴 하다. 빙허각에 수학을 가르친 유금은 그녀를 '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라고 극찬한다. 또한 활쏘기 실력도 뛰어났는데 남편 유본과의 활쏘기 대결에서도 승리한다.

여자로 집안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요리뿐만 아니라 자동 약탕기도 만들어 보급한다. 동서가 탕약을 끓이다가 태우는 일이 발생하고 나서 고심 끝에 탕약이 다 끓고 나면 풍종이 올리는 장치를 고안해낸 것이다. 이처럼 배운 학문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도구를 만들어내는데도 뛰어났다.

물론, 시어머니인 한산 이씨는 처음에는 이러한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는 며느리를 불러 일을 주며 공부를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도 빙허각은 반항하거나 불순종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 이러한 빙허각의 태도도 본받을 만하다. 뛰어남과 겸손함, 성실함까지 겸비한 것이다. 팔방미인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빙허각은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일과 살림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책인 <규합총서>, 빙허각이 듣고 경험한 이야기나 발명품에 대한 책인 <청규박물지>, 마지막으로 시나 산문을 모은 책인 <빙허각시선집>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쓰게 된다. <규합총서>서는 5편으로 나뉘게 된다. <주사의>는 술 빚는 법 등, <봉임칙>은 물들이기, 길쌈하기, 수놓기 등, <산가락>은 밭일, 꽃, 대나무 심는 일, 소를 치며 닭 기르기 등, <청낭결>은 태교, 아기 기르는 요령 등, <술수락>은 집의 터전 정하는 법 등을 담고 있다.

빙허각의 삶을 읽고 나니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시대를 거스르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삶의 태도뿐만 아니라 남편을 비롯하여 함께 하는 이들, 심지어 하인까지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모습도 큰 도전이 된다. 또한, 평생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학문에 대한 태도도 큰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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