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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ㅣ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2
한국교부학연구회.하성수 지음 / 분도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구절은 '부자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근거로 사용된다. 이 질문은 최근에 대두된 것이 아니다. <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의 저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AD 150년에서 200년 경 살았던 신학자이다. 기독교 초창기부터 부자는 구원받을 것인가에 대한 이슈가 있었던 것 같다. 클레멘스는 먼저 다음과 같이 화두를 던진다.
"부자들이 빈궁한 사람들보다 구원에 이르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기보다 복잡한 것 같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구원자의 권능과 그분 안에서 드러나는 구원을 알게 된 부자들이라고 제한한다. 또한 부자들을 근거 없는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자라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말씀들을 제대로 설명함으로써, 부자들이 계명들을 지키면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가망이 그들에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젊은 부자 청년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팔아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해 클레멘스는 재물을 버리고 소유물을 포기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청년의 영혼에서 재물에 대한 생각과 애착, 욕망, 걱정 등 세속적인 삶의 가시를 떨쳐 버리라는 명령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기초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급급한 것보다는 풍족히 소유하여 돈벌이에 대한 걱정도 없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하냐고 반문한다. 또한 예수님은 부유한 사람들과 세리 집에 머무실 때 부를 포기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부를 공정하게 사용할 것을 요구하셨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웃에게 유익할 수 있는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그분은 부의 올바른 사용을 칭찬하시며, 이 조건으로 부가 공유될 것, 곧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집 없는 이들을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재물은 도구여서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미숙함을 보여준다. 반대로 부를 올바로 사용하면 부는 의로움에 봉사한다. 부는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기에 오로지 사용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저자는 '소유물을 없앨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더 잘 사용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영혼의 열망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소유물이 없거나 가난해도 열망에서 여전히 부유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요한 것은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확히 이야기한다. 궁극적으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물질의 많고 적음 등 외적인 것에 따라 구원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외적인 것들이 많든지 적든지, 작든지 크든지, 화려하든지 초라하든지, 영예롭든지 수치스럽든지, 그것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혼의 덕과 믿음, 희망, 사랑, 형제에, 인식, 온유, 겸손, 진리에 달려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도 모든 부를 거룩하고 신실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물질과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적절히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구원받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계속해서 언급한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도 부르셨다. 물론, 내가 소유물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면 과감히 그것들을 내던져야 한다.
"부자들은 이미 단죄 받은 사람처럼 지레 자기 구원을 무시해서도 안 되며, 재물을 바다에 쏟아 버리거나, 마치 재물이 인생의 역적이나 원수라도 되는 양 판단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이 실례는 가르쳐 줍니다. 부자들은 어떻게 재물을 사용하고 생명을 얻어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유하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파멸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재물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보다 우선하다면 그 사람도 재물의 소유와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 내려지는 재물을 독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소유물들을 오로지 그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소유하고 그것들을 곤궁한 이들을 위한 공익적 사용에 내놓지 않을 경우, 모든 소유물은 본성상 불의하다고 그분께서는 단언하십니다."
물질을 소유한 자들은 적극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나눠주어야 한다. 이것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들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라는 말씀이다.
"실제로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돌아서는 모든 사람에게 문들은 열려 있으며, 매우 기뻐하는 아버지께서는 진실로 참회하는 아들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분은 당신께 돌아서는 이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자는 부자의 구원에 대한 논의를 정리한 다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초대한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자란 죄된 열망들을 한 번에 즉시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느님의 힘, 인간의 간청, 형제들의 도움, 진정한 회오, 끊임없는 실천으로 성공할 수 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모든 것을 선악 이분법적으로 이해하여 돈은 악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 거룩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클레멘스의 <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물질은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의로울 수도 있고 불의할 수도 있다. 단순히 가난하게 살고 물질을 포기한다고 해서 결코 거룩한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사람이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속 열망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있고 물질을 향해 있다면 불의 한 것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부와 소유물에 현혹되지 않기는 쉽지 않고 신앙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물질의 궁극적 목표는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