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10년 넘게 외상외과 의사로 일하며 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 수가 100명이 넘어서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수를 세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2013년에서 2018년 사이의 이야기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인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국종 교수와 그의 팀도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헬리콥터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상황실과 관제탑에서 계속 경고가 들어와 강하하지 못한다. 

"사고 해역 상공 관할은 해양경찰이 맡았고, 다른 헬리콥터들의 진입은 충돌 사고 위험을 높인다며 밖으로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 위에는 우리뿐이었으므로 나는 그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헬리콥터는 관제센터의 안내에 따라 팽목항으로 가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거기에 소방방재청, 경찰청, 보건복지부, 산림청의 헬리콥터들이 전부 다 행하지 않고 거기에 착륙해 있었다는 점이다. 사고 해역 근처에는 한 대도 없고 왜 전부 다 항구 옆 나대지에 모여 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한 상황이다. 저자는 거기서 김승룡 해남소방서장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김승룡 서장은 각 정부 부처마다 정보 공유가 전혀 안 되고 있다고 한숨을 쉬며 답답해한다.  

"나는 그들과 만나 누가 사고 해역 영공의 비행을 금지시켰는지, 수난구조복장을 한 구조대원들이 왜 육상에 있는지, 모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저자는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사고 해역 영공으로 진입한다. 항공유가 바닥이 나서 인근의 해양경찰 기지나 공항에서 급유하려고 하나 '공식적 절차'가 미리 통보되지 않아서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결국 저 멀리까지 가서 기름을 얻게 된다.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이었다.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의 생사 또한 알 수 없는 판국임에도 복잡한 행정 절차만은 견고하게 잘 유지됐다." 

"세월호 침몰을 두고 '드물게' 발생한 국가적 재난이라며 모두가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 드물게 발생한 재난인지, 드물게 발생한 일이라 국가의 대응이 이따위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당분간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세월호 희생자들만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희생자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후 석 달 뒤에는 수색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헬리콥터가 추락해 5명의 대원이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한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대원들이 '자원'해서 수색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다. 

"자원이라.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출처가 궁금했다. 그 단어를 곱씹으며 조직 구성원으로서 '자원'의 의미를 더듬었다. 윗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위험한 업무 투입 명령은 조직 안에서 때로 '자원'의 탈을 썼고,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조차 강요하는 것이었다." 

병원 전산에도 해커가 침입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로 인해 NAS에 수년간 쌓인 파일들이 날아간다. 거기에는 권역외상센터 건립 자료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이 파일들이 목숨과도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백업을 구축하려고 병원에 장비를 요구했으나 반려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는 적절한 선에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중도에 포기하는 용기가 없었고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보통은 이와 반대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과 적절히 타협해서 여러 문제가 터지고 만다. 다수가 이러니 저자와 같은 사람이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이다.  

헬리콥터의 민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협박 전화까지 걸려 온다. 광교 신도시까지 개발되며 유명 브랜드의 아파트들이 밀려오며 입주민들이 외상센터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상욕을 쏟아내는 일이 잦아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중증외상센터는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당연히 중증외상센터 의사들은 병원 내에 숙식이 가능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형평성을 이유로 이런 공간은 마련되지 않는다. 무엇 하나 도와주는 것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더불어 여전히 이국종 교수를 음해하는 말이 떠돈다. 그것도 그가 속한 의사 집단 안에서 나왔다. 

"나에 대한 뒷말과 욕설은 새롭지 않았다. 대부분이 주류 의과대학 사람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들에게 나는 의사가 아니고 동료도 아니며 때로는 사람조차도 아닌 듯했다." 

저자는 의료비가 적절히 투입되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보는 것이 중증외상이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세계 의료계의 정설인데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심지어 헬리콥터에서 병원과 소통하기 위한 무전기도 정부 지원이 없어 개인적으로 마련한다. 2011년부터 소방방재청에 요청했으나 6년째 방치되고 있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북한군 병사로 이국종 교수는 다시 한 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다. 더불어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일어난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은 중증외상센터 사업의 난맥상도 고발한다. 그러나 2011년 석 선장 때와 마찬가지로 그 순간뿐이었으며 "한국에서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침몰하고 있다"라고  저자는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중증외상센터는 고도의 단계적 뒷받침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한국 사회의 투명성 정도로는 의료계나 정부 모두 이런 사업을 감당할 수 없다. 15년간 나는 그 사실만을 확인한 것 같았다." 

"내 동료들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밀어붙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간신히 구축해온 선진국 표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말없이 버티다 쓰러져나갔다. 결국 이 중증외상센터 바닥은 내 동료들의 피로 물들었다." 

"나는 늘 내가 어디까지 해나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답이 없는 물음 끝에 정경원이 서 있었다.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 나는 정경원이 서 있는 한 버텨갈 것이다. '정경원이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이끌고 나가는 때가 오면'이라는 생각을 나는 결국 버리지 못했다. 그때를 위해서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한다. 정경원이 나아갈 수 있는 길까지는 가야 한다... 거기가 나의 종착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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