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보수 기독교인
칼 트루먼 지음, 김재영 옮김 / 지평서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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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저자는 논제를 밝힌다. 바로, "종교적 보수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정치적 보수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가 이 책의 논제이다. 즉, 보수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정치 성향이나 문화에 대해 보수적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보수적 정당 정치와 기독교적 충성을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복음주의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나의 확신 때문입니다." 

특히, 낙태라는 쟁점에 매몰되어 빈곤과 환경, 외교정책, 기근, 갈증, 질병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토론을 배제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또한, 현실에서 공화당을 지지할지, 민주당을 지지할지는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각 논쟁별로 공화당이 맞을 수도 있고 민주당이 맞을 수도 있는데, 한두 가지 쟁점이 공화당과 성향이 맞는다고 하여 공화당에서 말하는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현실은 그만큼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태도는 반기독교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뛰어난 시민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영향을 주는 전체 문제들에 대해 잘 알고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정치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 복잡성을 존중하면서 정치 과정과 쟁점들에 동참하고, 상투적인 말이나 지나친 단순화나 선거운동을 악마화하는 마니교적인 사고방식을 피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파든 좌파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기독교적 입장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우파적 입장을 대변하는 기독교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주로 우파에 속한 종교인에게 관심이 많긴 하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단순히 우파나 좌파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각 쟁점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뛰어난 시민이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되는 기본자세이다. 이런 자세를 취하면, 어떤 논쟁에 대해서는 좌파의 편에 어떤 논쟁에 대해서는 우파의 편에 서는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안타깝게도 환경이나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낙태와 관련해서는 여성의 권리에 반대하고, 동성애자 결혼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수자를 억압하는, 일관성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저자는 좌파는 원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의도로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특정 이해 집단이 좌파를 강탈했다고 표현한다. 좌파는 낙태와 여성의 권리를 대변해야 하는데 실정은 그렇지 않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좌파는 좌파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동성애자 결혼과 여성 낙태 선택권에 대한 지나친 몰입으로 정부가 빈민 구제나 건강보험에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좌파는 미국과 영국의 중산층이 귀중하게 여기거나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거의 반사적으로 유치하게 반응하는 모습으로 전략해 버렸습니다." 

먼저 기독교인들은 현재 우파와 좌파의 이러한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기독교적 입장이 없는 쟁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러진 전쟁, 노동조합의 적절성, 직접세와 간접세율 등이 그런 쟁점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자유방임 시장과 규제 완화, 대규모 국방 예산 등은 기독교인이더라도 방법론적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처럼 각 쟁점에 대한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미국을 이야기하며 미국의 세속성이 종교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며 나타난다고 진단한다. 조엘 오스틴이나 베니 힌 등이 십자가가 아닌 건강, 부, 행복의 길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메가 처치들이 경영 기술, 실용성, 시장 중심,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대형 상점과 같다고 꼬집는다. 교회가 세속적인 야심이나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세속의 개인주의도 교회에 스며들어 권위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하며 불신한다. 나아가, 교회도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소비자인 성도들이 왕이 되어 교회의 권위와 권징은 무너지며 설교나 교회 분위기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교회로 가 버린다. 

이런 세속적 사고방식은 미국을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과 동일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우파는 기독교 국가로서의 미국을 추구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을 '성전'이라고 일컫는 정치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관점은 옳지 않다. 이는 하나님과 기독교를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와 특정 시기에 가두는 행위가 되어 버린다. 

언론기관과 뉴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특정 방송사의 뉴스가 특정 정치 노선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지만, 이들이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호하게 폭스 채널뿐만 아니라 "다른 채널들과 다른 방송들 역시 똑같이 나쁘고 똑같이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각 언론사에 자금을 대는 이들이 원하는 뉴스가 생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훌륭한 시민이 되려면 언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훌륭한 시민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올바른 정보를 기초로 하는 많은 의견들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노암 촘스키도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서 엘리트 집단이 국민을 통제하고 소외시키는 수단으로 언론을 통한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언론, 텔레비전, 학교, 연구기관 등을 동원하여 인간 정신을 지배하고 대중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식 민주적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이 체제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 체제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완성된 체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오로지 '이윤'이라는 한 가지 원칙으로만 움직인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체제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다른 선택 사항이 전혀 없으므로 지금은 한 사람의 자본주의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자본주의를 기독교적 체제로 여기거나 빼도 박도 못 하게끔 개인의 자유와 연결시키는 것은 검증할 수도 없고 무분별하며 점점 더 문제만 일으킬 소지가 큰 주장임을 명심하십시오." 

특히 자본주의는 성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경제적 번영에 집착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불어 부와 하나님의 부를 동일시 하거나 복음의 영향력을 경제적인 번영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한다.  

"번영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말하는 충성됨과 신실함과 하나님의 복은 물질적인 부요와 경제적인 호황과 전혀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논리는 모든 쟁점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노인을 부를 창출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보고 마약과 매춘, 포르노 등에 대해서도 수요 공급의 논리를 적용한다. 도덕적이고 윤리적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는 무능력한 존재로 바라보는 등 가정의 형태도 바꾸어 버린다. 결국, "경제적인 방종으로 시작하겠지만, 결국 도덕적인 방종으로 이어진다"라고 진단하다.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오늘날 정치는 '시각적이며 이야기 중심의 이미지가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즉, 정책을 논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참여할 때 깊이 생각해야 하고 모든 이야기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무엇이 가능하며 불가능한지를 쟁점에 따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와 모든 견해가 맞든 정당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결국 나의 견해를 일부 대표하는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쟁점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회는 사회 정책이나 정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진리를 붙잡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교회는 매주 복음을 선포한다. 정치 정책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씨름해야 하는 것이고 서로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총기 규제에 대해 서로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있다고 말하며 그럴지라도 주일에는 함께 공동의 신앙 고백을 하며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로 함께 주의 만찬을 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비록, 정치적 견해가 치열하게 대립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비로운 하나 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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