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에 대하여 - 가치를 알아보는 눈
필리프 코스타마냐 지음, 김세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미술사학자로 감정사와 학예사를 병행하고 있다. 특히, 감정사의 이야기는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책을 읽으며 저자가 발견한 미술작품이라든지 감정사에 얽힌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감정사는 작품의 진위 여부를 비롯하여 미술 작품의 원작자를 찾아내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안목'이다. 특히, 화가들의 특징을 머릿속에 잘 정리해놓고 미술품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당연히, 유명하고 중요한 화가의 작품을 발견하는 것이 '중대한 발견'이다. 감정사들은 구체적으로 붓 터치 기법, 붓의 종류, 밑그림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원작자를 판별한다. 

"미술사학자의 두뇌에는 그림에 대한 기억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되어 있다." 

때로 감정사는 미술작품의 감정이 잘못된 상태에 있어서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가 발견한 브론치노의 '니스의 그리스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품은 저자가 감정하기 전까지 다른 화가의 작품으로 추정된 상태였다. 

물론, 기존에 감정을 한 감정사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맞다고 고집하기도 한다. 새로운 감정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여기에도 자존심의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좋은 감정사가 되려면 자신의 의견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자신의 감정이 맞는지 다른 감정사들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고 언제라도 자신의 감정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언제든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뭔가에 확신이 서더라도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다. 나는 신부님의 조언을 미술 감정사라는 내 직업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미술 작품을 관찰해서 지식을 얻을 때처럼 감정을 할 때도 새로운 견해를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감정사들은 화가를 직접 발굴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저자는 폰토르모의 지위를 되찾는데 공헌을 한다. 그래서 1930년대에는 인기가 별로 없었는데 감정사들을 통하여 많은 작품들이 발견되고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저자는 폰토르모 연구의 절대 지존으로 떠오르게 된다. 

미술상들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재력은 충분히 뒷받침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미술사학자들에게 작품의 가치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저자는 미술상들과의 교류 덕분에 방대한 자료를 구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감정사의 가장 큰 도전자도 미술상이라고 언급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직감을 의지하며 감정사의 평판에 먹칠을 하기도 한다.  

감정사들은 사진을 보며 기본적으로 지식을 정리하고 쌓아가지만 감정을 하려면 두 눈으로 직접 작품을 봐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붓 터치 등은 사진으로는 확인하기 어렵고 실제 작품을 직접 봐야 보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여 자외선 등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과학의 조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 적은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적외선으로 덧칠 여부를 확인할 때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복구 과정에서 수정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확인할 때는 유용하다. 더불어 적외선으로 화폭 맨 밑바닥 밑그림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감정사들에게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그러나 과학 분석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감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위조품이다. 저자는 일단 위조품은 불편함(discomfort)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흔적이 보여서이다. 오래된 느낌을 주려고 가마에 굽기도 하는데 자연적으로 형성된 금에 비하여 신기할 정도로 균일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위작 미술가라고 해도 미묘하고 미세한 차이까지 재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저자는 회화뿐만 아니라 소묘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를 한다. 소묘 작품은 원작자 화가가 직접 그린 것인지 도제들이 그린 것인지 구분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소묘는 회화보다 관리도 더 까다로워 태양광에 3개월 이상 노출되거나 미술관 조도가 50록스를 초과하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처럼 소묘나 회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취급하는 감정사는 드물다고 한다. 

감정사는 돈에 휘둘리면 안 되고 항상 소신을 가지고 공정하게 감정을 해야 한다. 저자는 미술품 감정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정성이라고 강조한다. 때로는 작품 소장자들이 감정사가 진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소장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감정을 해줄 수 있는 감정사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감정사는 감정서를 내고 경매업체는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지급하게 된다. 

"우리 학계에서 지켜야 할 선은 이렇다. 미술품 감정사로서 판매용 작품을 감정할 때는 미술사학자의 본분을 다하되, 미술사학자는 직업윤리상 미술품 감정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감정 소견서 작성 및 감정 수수료 수령은 전문 감정사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중들이 바라는 미술품 감정사의 상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말한다. 

"열정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획기적인 발견을 완수함과 아울러 직업윤리를 준수하기를 요구한다." 

미술품을 관람하다 보면, 이 모든 작품들이 어떻게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되고 발굴되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안목에 대하여>를 읽으며 이렇게 헌신적인 감정사들이 있는 덕분에 나를 비롯한 대중들이 놀라운 예술 세계를 관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을 필두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감정사는 여전히 대체될 수 없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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