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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흙 - 후쿠시마,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다
신나미 쿄스케 지음, 우상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평점 :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그 땅에서 살아가는 소와 소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와 흙>이다.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는 황무지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여전히 소를 비롯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소를 조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많은 이들이 목장에서 소를 사육하며 고기를 팔았던 지역이 바로 후쿠시마이다. 그래서 원전 사고로 사람들은 삶의 터전과 생계를 다 잃어버렸다. 피폭된 소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일본 정부는 가축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안락사 처분을 진행하게 된다.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이라면 동물 애호의 정신에서라도 살처분은 할 수 없다. 그러나 가축은 산업 동물로 분류되며 경제적 가치가 사라지면 존재 이유도 없어진다."
이런 논리에 따라 소를 비롯한 가축은 안락사 등을 통하여 처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족과 같은 소를 안락사 처분하는데 반대한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 허가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고 나온다.
"방사선 피폭은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아니다. 오염된 소가 돌아다니는 것을 방지할 필요는 있지만, 이는 제대로 관리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계획적 피난 구역에서는 가축의 피난 이동 대책이 계획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반대하는 이들은 관리를 잘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무분별하게 안락사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가축의 구호 이동 대책을 포기하고 안락사 처분이 가장 안이하고 단순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저자는 소에게 있어 행복한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정상적인 소라면 본래 사명대로 도축장에서 고기가 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피폭된 소는 안락사나 아사 말고 어떻게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삶의 의미'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소 사육사끼리 싸움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안락사에 동의한 사육사들은 다른 사육사들이 소를 살려두는 동안 자신들만 손해를 본다는 등 피난민끼리 싸우게 된다.
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키려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흙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409명의 과학자와 학생들 노력으로 제1원전 반경 80킬로미터 범위의 사방 2킬로미터, 100킬로미터 범위의 사방 10킬로미터 간격으로 토양을 채취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각 구간별로 방사성 물질의 농도 측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피폭 연구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피폭된 소의 상태를 계속해서 추적하는 것도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소를 통하여 방사성 물질의 체내 흡수, 축적, 배설 등의 메커니즘을 연구할 수 있다. 소처럼 큰 동물의 내부 피폭 연구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의학, 생물학, 생태학, 방사선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 같은 대규모 생물 피폭 실험은 할 수 없다. 체르노빌에서 할 수 없었던 면밀한 조사를 통해 분석 결과를 공표하는 것은 원전 사고를 일으켜 방사능 오염을 확산시킨 나라의 과학자가 질 책무라고 할 수 있다. 내부 피폭이 진행되고 있는 소를 살처분하고 되돌아보지 않는 것은, 미래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과학적 진실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과 같다."
피폭된 소는 연구 목적 말고도 농지의 황폐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옛날 일소는 농경과 운송을 담당했지만 피폭된 소들은 제초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것의 생명은 시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생명은 곧 시간이다. 하지만 소에게 생명은 단지 시간일 뿐일까. 오히려 소의 생명은 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흙에 가깝고, 대지와 이어져 살고 있다. 왜냐하면 소가 배설한 똥은 곧 흙이 되고 식물을 키우고 그 식물이 다시 소를 낳아 기르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소에게 생명은 자연의 순환 속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소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즉 스스로를 흙으로 돌려준다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의미한다."
소와 흙을 통하여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자연 순환의 일부이다. 생명과 죽음도 자연 순환의 일부이고 소와 흙은 그 순환의 매개체이자 통로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도 순환의 일부이다. 모두가 자연의 일부인데, 마치 인간이 만물의 주인인 것처럼 소의 죽음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소는 흙으로 돌아가고, 흙은 또 소에게 돌아간다.
소 바깥에도 안에도 대지가 있다.
소는 대지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