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의 줌아웃 -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
천관율 지음 / 미지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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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천관율 기자의 글을 묶은 <천관율의 줌아웃>이다. 엄청난 변화를 경험한 최근 5년, 그 순간 어떤 관점으로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때로는 기자의 예측이 맞았고 때로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당시 대통령보다 지킬 것이 많은 새누리당을 공략하는 것이 더 주요하다고 지적했다. 집회의 사이즈가 압박으로 작동할 것으로 보았고 저자의 지적은 날카로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집회가 점점 커지며 실제로 새누리당은 엄청난 압박을 받았고 대한민국 국민은 탄핵을 이루어내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이제 권력은 현상 변경의 압박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모인다고 뭐가 바뀌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입니다. 

이런 예측을 했지만 저자도 탄핵 찬성표가 200표가 넘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큰 압박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광장의 주권자들은 놀라운 방식으로 입법부를 작동시켰고, 입법부는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해 주권자의 명령에 반응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2016년 광장에서 '정치적 시민'이 탄생했다고 평가한다. 이 순간에도 대통령은 탄핵이 되지 않을 거라고 오판하고 있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촛불이 결정타였다"라고 고백한다.  

"2016년 촛불은 이 총력적 정부와 전시 사령관 대통령이라는 한국 보수의 통치 원리를 처음으로 전면 기각했다. 1987년 민주화에서 결정적인 한 발을 더 내디뎠다. 다원적 민주주의 원칙을 복원하라는 명령은, 대결주의 통치 원리를 사실상 '체제 밖'으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사실상 다 한 번도 다수파의 지위를 놓지 않았던 세력이 돌연 오른쪽 끝에서 주변화되었다." 

박근혜의 비선 라인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슈였다. 비선 라인은 단순히 보조가 아니라 공적 라인을 잡아먹을 만큼 강력했고 공고했다. 이제는 모두가 안다. 박근혜 후보 시절 나왔던 비선 라인이 단순히 트집 잡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의 교모한 화술을 지적한다.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체육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언론은 이 발언을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발언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이 결정적 발언으로 대통령은,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에서 '구름 위의 심판자'로 자신을 옮겨놓았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심판자로 둔갑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을 들을 때 내면에 감추어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메르스에 대한 저자의 글도 전체 시스템을 보는 안목을 배울 수 있다. 감염내과 전문의는 위기 상황에 필요하지만 평소에는 돈을 못 벌어준다는 점이다. 인건비만큼 가치 창출이 안된다는 것이다. 매년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는데 한국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는 모두 191명 밖에 안 된다. 또 다른 문제는 가족들은 '다인실-비전문가 간병'조합으로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들 3차 의료기관인 대형 종합병원을 선호하고 이에 따라 응급실 입원이 흔하다는 점도 메르스가 전파의 주원인이었다. 한국 의료 시스템의 총체적 문제들이 메르스 여파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한국 사회가 되풀이해 배우고 또 잊어버리는 교훈이다. 평시에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시스템의 약한 고리를 메르스는 정밀 타격했다. 안전 비용을 얼버무리는 오래된 습관이 또다시 폭로되었다. 이번 일격이 시스템을 재기 불능에 빠트릴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 설명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일종의 상호 군비 감축 협약이었다. 소수당, 야당은 '예산안 연계 투쟁, 의장석 점거 투쟁'을 내려놓고 다수당, 여당은 '직권 상정'을 내려놓는 맞교환이 핵심 뼈대다... 국회선진화법은 본질적으로 다수당에 유능해질 것을 요구하는 제도였다." 

보통 정치인들은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사퇴'를 이야기한다. 이 사퇴라는 말에 담긴 함의를 저자는 분석한다. 정치인의 권력과 지위를 감투로 이해해서 '사퇴=책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그 지위와 권력이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반증이다. 사실, 정치인의 권력과 지위는 주권자에게 위임받은 힘이다.  

일베에 대한 글도 흥미롭다. 일베는 나름 논리 체계와 정의 관념을 갖추고 있다. 그들의 주적은 크게 셋인데 여성, 진보개혁 진영, 호남이다. 이 그룹들의 특징을 '권리와 의무 불일치'로 본다. 다른 말로는 무임승차이다. 따라서 일베는 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무임승차를 혐오하는 것이다. 여기에 당위성이 부여된다.  

일베는 세월호를 바라볼 때도 무임승차를 통한 당위성을 부어해야 했다. 그래서 붙인 딱지가 바로 '과도한 보상'이다. 무임승차에 대한 혐오는 인간의 본능인데 일베는 이를 이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이루는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베의 다른 특징은 바로 개그코드이다. 호응을 얻으려면 새롭고 자극적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어서 한국이 저신뢰 사회라고 말한다. 저신뢰 사회는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기 쉽다고 덧붙인다.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한다. 기업은 당연히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낮은 임금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 특히 숙련도가 쌓여도 큰 의미가 없는 단순 반복 작업일수록 기업은 비정규직으로 채우려고 한다. 따라서 규제 강화를 통하여 비정규직 고용 기간이나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차별 금지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자고 노동계 등 진보 블록은 주장한다. 그럼, 기업은 비정규직을 뽑는 이점이 줄어들고 정규직을 더 뽑아야 한다. 

성비가 무너지면 저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관심이 간다. 신붓감이 부족해지면 아들을 둔 부모는 저축을 늘린다는 논리이다. 성비가 1% 높아지면 범죄율이 5~6%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성비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이 더 희소한 자원이 될수록 남성은 더 많은 혐오를 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더 많은 호의'가 아닌 '더 많은 혐오'를 선택하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남성은 학대를 하여 여성의 자긍심을 손상시킨다는 데이비드 버스 교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자긍심이 손상된 여성은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학대란,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 배우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이다. 마치 중고차를 고르며 이리저리 트집을 잡고 사고 기록을 따져 묻듯, 학대는 배우자 여성의 가치를 줄여 잡아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다. 이 전략은 분명 자기 파괴적이고 위험하지만,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은 어차피 떠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우자보다 뒤쳐진 남성에게는 이판사판으로 해볼 만한 도박이 된다." 

이 논리가 맞든 그렇지 않든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혐오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현상이다. 이 끔찍한 현상 이면에 위에서 설명한 더 끔찍한 본성과 작동원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도덕성과 존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비례 원리는 쉽게 이야기하면 노력한 만큼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 원리는 구조적 차별에 대한 보정을 의미하는데 공공기관이 해당 지역 인재를 30% 이상 뽑는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는 것 등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가지고 가는 것도 '공정'이고 사회구조적 차별에 노출된 집단에 우선권을 주는 것도 '공정'이다. 공정을 판단하는 이 두 잣대가 충돌하는 것이다. 

"어느 잣대를 쓰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놓고도 공정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실업자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공정한가? 대학에서 장학금을 줄 때 봐야 할 것은 학생의 성적인가, 가정 형편인가?" 

저자는 우리 뇌는 공정을 평가할 때 직관적으로 비례 원리에 기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비례 원리만 작동할 경우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지고 빈곤층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고민한 것이 보편 원리의 작동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비례 원리보다 보편 원리가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정리하며, 저자는 연대를 이야기한다. 연대를 하며 신뢰를 구축하여 감시와 처벌이 작동하는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무임승차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 믿어야 한다. 이런 연대를 통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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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9-27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데굴데굴님의 글 읽고 천관율의 줌아웃 주문했는데 다행히 추석전에 받았어요.
데굴데굴님 덕분에 좋은 책과 함께 추석을 잘 보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 소름끼치더라구요. 우리가 서 있었던 역사의 현장을 줌아웃해서 구조적으로 바라본 느낌

데굴데굴 2018-09-28 08:18   좋아요 1 | URL
오 그러셨군요! 괜히 제가 감사하네요^^

저도 책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힘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사건을 바라볼 때 ‘줌인‘도 중요하지만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줌아웃‘도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