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 다시, ‘저녁 없는 삶’에 대한 문제 제기
김영선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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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회사생활하는 직장인이라면 안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물론, 편하게 회사 생활하는 이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장시간 노동은 일단 시간을 박탈한다. SNS를 통한 업무 지시와 요청은 퇴근과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과로로 인한 폐해를 고발한다. 

"과로가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관계적, 사회적 질병들을 '시간마름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보자. 여기에는 건강 문제를 비롯해 관계 단절, 소외 경험, 우울증, 과로자살, 대형사고 등이 포함된다. 이는 오랜 기간 구조적 착취가 반복된 결과의 산물이다."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로로 인한 자살, 사고는 더 이상 개인의 의지나 정신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을 당연히 여기는 기업가들과 상사 들의 정신구조를 바꿔야 하고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연평균 근로시간이 2016년 기준으로 2,069시간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긴 시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독일 보다 넉 달이나 더 많이 일하는 수준이다. 일본도 겨우 1,713시간이다. 헬 조선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야근 횟수는 주당 3.5일이다. 거의 하루 빼고 다 야근한다고 보면 된다. 심리적 여유가 없다. 생각할 여력은 당연히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는 이유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생산성이다. 저자는 매일 야근, 열약한 생산 시스템, 비합리적 업무 관행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생산성을 문제 삼는 것을 비판한다. 반대로, 다음과 같이 저자는 제안한다. 

"(1) 정시 퇴근의 권리가 보장되고 (2) 혁신적인 작업 도구가 갖춰져 있고 (3) 업무 프로세스가 합리적이며 (4) 임금수준이 적정하고 안정적이라면 생산성이 낮을 리 만무하다." 

과로사 발생 빈도 자료는 가히 충격적이다. 과로로 인한 산재 사망자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1,572명인데 대략 하루에 1명꼴이다. 승인받지 못한 사례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죽음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을 밝히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잡아 뗀다. 특히, 연관성에 대한 입증 책임도 유가족에게 있다.  

신자유주의 성과 장치는 노동자를 압박하여 자발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게 만든다. 퇴근을 해도 여전히 실적에 대한 압박은 머릿속을 맴돌며 노동자를 압박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서 자살을 생각할 정도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쉽게 말한다. 한국 사회는 패자 부활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실패하고 떨어지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사회이고 주변 사람들은 낙오자라고 손가락질한다. 결국 도망갈 곳도 없고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특정 작업장에서 죽음이 반복된다면 구조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즉, 과로 자살은 새로운 착취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노동 착취로 악명 높은 업계가 바로 게임 산업이다. 특히,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개발 주기가 3~5년에서 1년 안팎으로 짧아졌다. 결국, 그만큼 개발자들은 더 오랜 시간 일해서 게임을 완성해야 한다. 중소형 개발사들은 게임 전체 이익의 30% 정도가 앱스토어, 구글플레이 같은 플랫폼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게임 산업 매출은 증가하는데 반해, 개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를 사용하여 야근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박탈한다. 아빠들은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더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S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아빠의 전쟁>은 그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족 관계뿐만이 아니다. 이웃을 만날 시간과 기회도 없고 연대할 수도 없다. 

회사는 직원들이 야근을 많이 하면, 신규 직원을 더 뽑아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회사가 별로 없다. 다들 추가 비용 부담 없이 기존 인원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결국 기존 직원들은 야근을 밥 먹듯 하게 된다. 자기 자식들이 이렇게 야근하고 있는데도 똑같이 경영할 것인지 묻고 싶다. 신규 채용보다 기존 직원에게 야근수당을 주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덜 든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조치에 따른 버스업체의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저자는 말한다. 추가 근무수당 주고 기존 운전자의 운행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창업주들의 책을 보면 일주일 쉴 틈 없이 일했고 직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을 시켰다는 내용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그런 노력과 성실함과 근면이 성공의 열쇠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저자는 이를 '근면 신화'라고 말하며 장시간 노동을 합리화하는 기제라고 지적한다. 장시간 노동을 회사에 대한 헌신, 충성과 연결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본급을 낮게 측정하고 초과노동을 통해 소득을 보충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런 임금 체제하에서는 노동자들이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최근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이제 주당 52시간으로 바뀌고 대규고 사업장부터 적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근로시간 특례 제도가 존재해 배제되는 업종이 있고 100만 명이 넘는 특례 업종 노동자들은 과로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저자는 장시간 노동 문제를 이야기할 때 생활문화운동(윤리적 소비, 지속 가능한 소비,  탈소비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비 생활과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어쩔 수없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야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기술은 고용계약 관계를 사업 계약 관계로 바꾸었다. 바로 최근에 등장한 배달 앱을 통한 배달 노동자들이다. 회사는 직접 고용 시, 월급, 보험 등 처리할 일이 많아져서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배달 앱 소속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로 간주되어 사고 발생 시 산재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노동은 법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사적인 문제가 되어버린다. 위험은 개인화된다. 기업 조직이 전통적으로 제공해왔던 보호와 보장의 책임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휴식시간, 부가 급여, 건강 위험에 대처하는 비용까지 노동자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원할 때만 배달을 선택해서 갈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자율적이고 독립적 노동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상은 콜을 캐치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비롯해 한계가 많은 자율성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한, 이들은 연대의 기회도 빼앗겼다. 함께 모이는 공간도 없고 모일 이유도 없다. 

"연대는 기본적으로 장소적 관계에 기초하는 것이고, '함께 존재함'이나 '공유 경험'을 전달하는 정치적 언어였다. 그런데 장소성이 제거된 개별화된 형태의 노동과정은 연대를 생성할 수 있는 여지를 앗아간다. 공통 장소에 기반을 둔 관계 지속성이나 경험의 공유 같은 사회적 연대 조건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요구되는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야근은 암이다' 같은 슬로건을 통해 상징 투쟁을 할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 등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릴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임금 체제도 바꾸어야 한다. 먼저 기본급 수준을 높여야 한다. 포괄임금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없어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다. 통상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는 이렇게 기업에 초과노동 사용에 대한 비용 부담을 높이고, 시간 단축을 선호하도록 유도하는 힘을 갖는다. 장시간 노동을 끊어내는 방법으로 기업의 저비용 전략에 부담을 가하는 방식이 유효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무 방식과 관련해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목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다임러는 휴가 중 업무 메일은 자동 삭제되도록 했다. 노동자가 업무 시간 외에는 업무와 완전히 단절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과로로 인한 폐해를 지켜볼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고 나의 가족 혹은 나의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 그 시간은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관계를 맺고 행복한 저녁을 보내며 이웃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바꾸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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