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의 도시 가이드
제프 마노 지음, 김주양 옮김 / 열림원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도시와 건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같은 건물이라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관점은 바로 '도둑의 관점'이다. 도둑이 건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따라가며 건물의 특징과 구조를 파악한다. 건축가가 건물을 제일 잘 알 것 같지만 도둑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세부적인 사항은 도둑이 더 잘 알 수도 있다. 

1870년대 레슬리라는 유명한 도둑이 있었다. 레슬리는 은행 금고 실물 모형을 만들고 개인 금고 복제품을 사들여 쇼룸을 만들었다. 도둑 연습장을 만든 것이다. 의자, 소파, 캐비닛 등 침입하려고 하는 공간을 똑같이 재현하여 어두워도 부딪히지 않고 움직이도록 훈련했다. 레슬리는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였는데, 맨해튼 저축은행을 털 때는 두 번이나 잠입했다가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나올 정도였다. 

사람들은 보통 도둑이 훔쳐 간 물건에 관심을 가진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도둑이 어떻게 침입하고 움직였느냐는 점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은행이나 신용조합은 범죄의 타깃이 되기 싶다. 왜냐하면 로스앤젤레스는 어느 도시보다도 광범한 고속도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도둑과 강도가 도주하는데 매우 용이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가는 길에 잠깐 들려서 털고 가는 것이다. 

두 달 넘게 터널을 파고 은행을 터는 도둑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과정도 만만치 않지만 사전 조사도 많이 해야 한다. 은행 설계도를 구해야 하고 은행 지반이 터널을 파기에 적절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단단한 기반암 위에 지어진 은행 금고는 터널을 팔 수가 없다.  

어떤 도둑은 소방 규정을 빈집털이 도구로 사용한다. 화재용 비상계단이나 비상구 위치 등은 숨을 곳을 찾을 때 활용한다. 소방시설은 아파트 한 층에 몇 가구가 있고 가구당 면적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알려준다. 대피로 위치에 따라 더 넓은 집을 골라낼 수 있다. 나아가 건물 전체 설계 구조도 유추할 수 있다. 

호텔 방 카드키를 위조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라고 한다. 또한, 호텔이나 아파트 등 건물 내부 깊숙한 곳이 오히려 보안에 취약하다. 즉,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성공하면 된다는 점이다. 특히, 도둑에게 인터넷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닥스윈이라는 도둑은 구글 스트리트 뷰를 적극 활용했다. 창문 높이, 담장 유무, 숨을 수 있는 관목 등을 파악해 침입 동선을 짠다. 

벽을 뚫고 침입하려면 벽 두께를 알아야 한다. 특히, 고층 건무이나 아파트 단지를 어느 건설사가 지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건설사는 기본적으로 도면에 모든 것을 표시한다. 건설사에서 도면을 빼 오는 것은 엄청 쉽다고 한다. 혹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건설사에 연락해서 설계도를 받을 수도 있다. 

집이 막다른 골목의 맨 끝이라면 털릴 가능성이 낮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집을 털고 싶은 도둑은 없다. 길모퉁이에 위치한 집은 타깃이 되기 싶다. 집이 도로에서 떨어져 있고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도 타깃이 되기 싶다.  

같은 구조가 반복되는 대단지 아파트나 빌라도 보안에 취약하다. 도둑이 같은 건물을 반복해서 터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새로운 집에 가면 반드시 잠금장치를 교환해야 한다. 책에 나오는 사례 중 한 도둑은 정원사로 일하며 받은 열쇠로 십 년이 넘게 그 집을 털었다. 놀랍게도 집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잠금장치는 교체되지 않았다. 애완견을 키우는 것도 도둑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영국 경찰은 '포획 주택'으로 도둑을 유인하기도 한다. 도둑이 좋아할 만한 가짜 집을 만들어 도둑을 유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도둑도 특정 형태의 집을 터는 것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빈집털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일반 법칙은 없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도둑도 있다. 휴가라고 인증샷을 올리면 그 집에 아무도 없다는 반증이다. 그럼 도둑은 그 집을 털러 유유히 가는 것이다. 특히 달력에 휴가 날짜를 정확히 표시하면 도둑은 자신에게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어떤 도둑은 맥주도 마시고 샤워도 했다.  

록스포츠(locksport)라는 것이 있다. 록스포츠는 바로 열쇠 따기이다. 한국에도 문이 잠기면 열쇠 수리공에게 전화해서 문을 따거나 잠금장치를 해체하는 것과 유사하다. 열쇠를 따려면 일단 특수장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특수장비를 가지고 다니다 걸리면 괜히 오해를 살 여지도 충분하다.  

물론, 록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절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단순히 조직화된 퍼즐 풀기 모임에 가깝다. 그들은 확실한 허락이 없는 한 절대 자물쇠를 풀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더불어 도둑은 자물쇠를 따고 우아하게 집 안으로 침입하지 않는다. 일단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도둑은 그냥 드릴로 뚫는다. 록스포츠 멤버 중에 경찰도 있었다는 점도 놀랍다. 

은행털이 사건들 중에는 여전히 미제 사건이 많다. 도둑들은 돈을 훔치고 난 다음, 탈출과 도주에도 완벽을 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침입과 탈출, 도주는 주로 붙잡힌 도둑들에게서 나오는 정보이다. 결국, 그들보다 한 수 위인 잡히지 않은 도둑들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적다고 볼 수 있다.  

도둑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굳이 도둑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도시와 건물을 바라볼 때 도둑의 관점으로 보면 매일 보는 내 집과 회사 건물이 새로워 보인다. 일상의 새로움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은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시작이다. 그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도둑의 도시 가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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