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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숙제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뇌경색 진단을 받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알츠하이머를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간병한 것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그는 의식을 잃은 어머니를 간병하며 하루 18시간씩 병상을 지켰다. 대학원에 입학하였지만 학업을 중단한 저자는 어머니 병실을 지키며 그리스어 교재를 가져와 읽기도 했다. 저자는 매일 어머니 곁을 지켰지만 어머니 마지막 모습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한테는 "고통 없이 가셨습니다"라고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한다. 아버지에게 힐책당할 것이 두려워서였다. 저자는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 꿈속에서나마 아버지에게 '어머니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라고 본심을 말한다. 이를 통해 드디어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했다고 고백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누군가한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자식이 더 이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연락하지 않을 때 큰 외로움과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어렵거나 힘든 일을 당해 전화로 하소연하면 겉으로는 다 큰 어른이 왜 그러냐고 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힘이 난다. 무엇보다 자식은 부모가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것을 말로 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식에게 아직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부모는 이상하게도 힘이 난다."
저자는 삶의 가치를 '젊음'에 두면 '늙었다'라는 사실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젊음에 가치를 두는 것은 무리수이다. 왜냐하면 젊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배워야 한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으면 과거의 많은 일을 잊어버린다. 특히, 저자는 아버지와 자신 단둘만 경험하고 기억하는 일을 아버지가 더 이상 기억하시지 못할 때, 저자 자신도 증인을 잃고 과거의 일부를 잃었다고 말한다. 물론 책 뒷부분에는 부모님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부모님은 여전히 마음속에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부모님과의 추억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과거를 잊으셨습니다. 증인을 잃은 저도 과거의 일부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과거를 잊어버린 걸 지켜보는 일이 괴로운 것은, 단지 부모님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세월 속의 자신 또한 지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요."
저자는 굳이 부모님의 말을 정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말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경청할 수 있는 인내심도 필요하고 요령도 있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것은 부모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정신과 의사인 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의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잠시 후 "이 이야기, 전에도 했던가?"하고 물으신답니다. 그러면 제 친구는 "전에도 들었어요. 하지만 할머니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는걸요."라고 대답한다더군요. 이야기 듣는 게 좋아서 정신과 의사가 되었나 봅니다."
간병할 때는 진지해야 하지만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진지하다는 것은 진정성을 가지고 집중하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힘들다고 한숨 쉬거나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특히, 부모와 형제들이 간병의 고단함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간병이 힘든 일이란 걸 다른 이에게 과시하기 시작하면 간병하는 사람은 진지해지기보다는 심각해지고 맙니다."
알츠하이머 간병이 특히 힘든 것은 바로, 물리적 힘듦도 있지만 부모님이 나의 수고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즉, 간병을 하는 나의 수고가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힘들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내게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내가 부모님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만족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부모님에게는 어떠한 감사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도, 부모님이 나를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욕구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스스로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면요."
저자도 항상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싸움을 키우지 않는 지혜가 있었다. 아버지의 잔소리에 호통에 군소리 없이 따르는 지혜이다.
"순간적으로 화가 끓어오르더라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가능한 권력 싸움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지혜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좋은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서로 오해가 생기면 오해는 점점 커지게 되고 이는 미운 감정으로 발전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저자는 부모님이 가족을 하나로 연결하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집안만 해도 예전에는 명절 때마다 할아버지 집에 모였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예전만큼 많이 모이지 않고 점점 결속력이 약해지고 지금은 각자 명절을 보내고 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는 부모를 간병한 저자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경험엔 갈등도 있고 감사와 사랑도 있다. 더불어, 저자 자신도 언젠가는 부모님처럼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인식과 태도도 보인다. 결국, 지금 이 순간 함께 감사하며 즐기며 사랑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