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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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 <도시는 어디서 사는가>를 매우 흥미롭게 읽어서 <어디서 살 것인가>도 망설임 없이 바로 읽게 되었다. 이번 책도 여전히 유익하면서도 흥미롭다.  

건축물은 건물 그 자체, 즉 건축물의 재료와 구조 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시작하며 1994년에 발견한 터키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인 쾨베클리 테페라를 언급한다. 특히 농업혁명(기원전 7천 년경) 이전에 지어진 점이 놀랍다고 말하며 이는 기존의 학설을 반박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는 일반적으로 농업이 시작되며 인류가 정착 생활을 했다고 배웠는데 순서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오랜 시간 건축물을 지으며 생활하기 위해 농업이 시작되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저자는 다음으로 학교와 교도소를 비교한다. 담장, 운동장, 똑같은 옷, 똑같은 교실 등 창문 크기를 빼면 공간 구성상 차이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통찰력이 바로 저자의 책을 읽을 때의 큰 즐거움이다. 전혀 생각 안 해봤는데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12년 동안 똑같은 옷, 교실, 식판 등을 경험하는 학교에서 창의성이 자라기는 쉽지 않고 조금만 달라도 이상하게 취급당한다. 

학교 건물은 보통 4-5층으로 지어져서 야외 접근성이 떨어진다. 학교 건물은 1-2층으로 저층화되고 분절되어야 아이들이 쉬는 시간 10분 동안 나가서 뛰어놀 수 있고 접근성이 좋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에 갇혀 지내는 것에 비해, 다른 아이들과의 접촉점도 훨씬 많아지고 다양한 친구를 사귀는 기회도 된다. 저층형 교실을 만들면 친구가 늘어날 뿐 아니라 사각지대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10분 쉬는 시간에 네 개 층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운동장에서 2,3분 쉬고 다시 뛰어 올라올 아이는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모두 교실에서 지낸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말이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10분 쉬는 시간 동안 잠깐만이라도 바깥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일반론적인 이야기이다. 나는 중학교 때 쉬는 시간 10분을 매우 알차게 보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7-8분 열심히 뛰어다니며 공을 차다 다시 헐레벌떡 교실로 들어와 다음 수업을 들었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선생님이 쟤는 왜 저렇게 땀을 흘릴까라고 생각했을 것 같긴 하다. 요즘에 이렇게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체육 시간 아니면 운동장에 나갈 일이 없다. 

학교 천장 높이도 교육부에서 지정한 2.6미터로 동일하다고 지적한다. 천장이 높을수록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더불어, 학교 건물 변화가 어려운 현실도 언급한다. 수십 년간 해 오던 것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학교 건물과 관련된 규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뿐만이 아니라 사옥도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애플 사옥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사옥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애플 사옥은 동그란 도넛 모양의 순환구조로 중앙에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숲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실내 공간에서 너무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점이다.  

뉴요커들은 좁은 집에 살지만 공원들이 적당한 거리에 있어서 넓은 면적을 영유하며 산다. 공원과 공원을 걸어갈 수 있다. 이처럼 집은 좁지만 집을 나오면 쉬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전혀 심리적으로 답답하지 않다. 반면, 서울은 그렇지 않다. 공원이 일단 멀고 공원과 공원 사이를 걸어갈 수도 없다. 뉴요커는 집에서 7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갔다가 지겨우면 13.7분만 걸으면 다른 공원에 갈 수 있다. 반면 서울 시민은  일단 집에서 30분을 걸어가야 공원이 있고 다른 공원으로 가려면 다시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 즉, 서울은 공원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우리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더 행복해지려면 도시 전체를 내 집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보행자 중심의 네트워크가 완성되고 촘촘하게 분포된 매력적인 '공짜' 공간이 많아지는 것이 건축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도시는 어디서 사는가>에서도 언급하지만 '변화'라는 개념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공간의 변화는 인간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한옥 마당은 매 순간 변하는 공간이라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만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다. 골목도 마찬가지다.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길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저자는 아파트 주거 형태가 많은 현대인들이 외부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골목길 상권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골목길을 유지한 채 재개발하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고대 무거운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중요했다. 고인돌, 피라미드, 스톤헨지, 지구라트, 콜로세움, 만리장성 등은 세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매우 적합했다. 건축물을 보고 상대방은 바로 파악이 된다. 나보다 세력이 더 큰 지 작은 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쓸데없는 전쟁을 피할 수 있다. 물론 과도한 건축물은 노동착취, 궁핍 등으로 연결되어 국가의 존폐와 연결되기도 한다. 

과시하려는 것은 비단, 고대 국가뿐만이 아니다. 한때 세계적으로 최고층 빌딩을 지으려는 경쟁이 있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지금은 누가 봐도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라서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다. 저자가 피라미드 등 각종 건축물의 위치에너지를 분석한 내용도 흥미롭고 각 회사별 빌딩 위치 에너지를 시총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남자들끼리 담배, 술 대결을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내가 더 건강하고 세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과시욕이다. 명품도 마찬가지이다. 고인돌이 무덤 말고 특별한 기능이 없이 쓸데없이 과한 것처럼 명품도 비슷하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지리적 조건이 인류의 문명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지적한다. 수메르문명과 이집트문명은 공통적으로 건조기후대에 위치해 있다. 고밀화된 도시는 전염병에 취약한데, 비가 내리는 지역의 경우 바이러스 전염이 더 잘 되고 세균의 번식도 용이하다. 이에 따라, 고대는 건조한 기후가 더 유리했다. 물론, 그 시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또한 도시 형성에 물도 매우 중요한데, 수메르문명, 이집트문명 발상지는 건조하면서도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런 지리적 조건으로 농사를 지으며 큰 도시를 형성하고 최초의 문명을 꽃피웠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도서관에 대한 저자의 조언도 눈에 들어온다. 낙후된 도서관을 증축하지 말고 용도 변경해서 비싼 값에 판 다음 도심에 접근성 좋으나 낙후된 땅을 사서 작은 도서관을 여러 개 짓자는 의견이다. 

"5천 평짜리 도서관 5개보다는 5백 평짜리 도서관 50개가 더 좋다. 우리 주변에 작은 도서관들이 많아지면 걸어서 쉽게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고, 그곳은 공동체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세상이 더 화목해지고 갈등이 줄어들기를 원한다. 건축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건축은 사람들을 더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건축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건축을 더 이해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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