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역학이라는 분야를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역학과 사회학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고립 등의 여러 문제들이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사회역학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 

저자는 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고민한다. 질병의 원을 개인 차원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역학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고용불안에 처한 사람이 더 일찍 죽는다. 이에 대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정부와 사회는 이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 해결의 시발점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사회역학 탐구의 목적이다.  

고용불안에 처한 사람뿐만이 아니다. 남녀 차별을 경험한 여성의 경우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이 아팠다. 놀라운 것은 자신이 남녀 차별을 받았는지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으로 답한 여성들이 가장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심지어 차별을 경험했다는 사람들보다 더 건강 상태가 안 좋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차별 경험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실제로는 가장 많이 아팠다'라고 이야기한다.  

학교 폭력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을 경험하고 누구에게도 요청하지 못한 학생들의 우울증상 유병률이 높았다. 놀라운 점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학생들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남학생이 더 아프다는 것이다.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며 상처를 숨기는 학생들이 더 큰 아프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현상들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결국 사회의 약자들과 소외받는 자들이 단순히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의 건강까지도 약탈당하고 침해당하며 보호받지 못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서 알려준다. 나아가, 이런 사회역학 구조를 분석해서 원인을 파악하게 되면, 그다음 유사한 위험이 닥쳤을 때에 준비하고 방어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저자는 강조한다.  

폭염도 에어컨이 없는 가난한 이들이 일반인들보다 사망할 위험이 3배나 높았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혼자 사는 이들도 폭염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높았다. 이 원인을 사회역학적으로 파악한 뒤, 그다음 폭염에서는 대체가 가능했음을 저자는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놀랍게도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대응한 결과, 사망자 수가 700명에서 110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낙태 금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1966년 루마니아에서 낙태금지법을 시행했다. 그 결과 처음 잠깐은 출산율이 증가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지에서 낙태수술을 하거나 의사 도움 없이 유산하는 등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출산율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고아원 아이의 수는 늘어나고 모성 사망비가 급증하게 된다. 결국 1989년 12월 낙태금지법은 철폐되고 모성 사망비는 다시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아무런 사회적 제도와 안전망 없이 시행하는 낙태금지법은 오히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임신 상태에서의 영양 공급이 아기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 상태와 아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이 결과는 이 책뿐 아니라 다른 여러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사실이다.   

흡연도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다가서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흡연은 저소득층 사람들이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적은 비용으로 푸는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스트레스는 아주 잠깐 줄어들었다가 원래대로 다시 늘어난다.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10년 뒤에 폐암이 발생할 수 있으니 담배 끊으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그들이 처한 상황이 개선되거나 바뀌지 않은 채, 개인에게 금연을 하라는 것은 옳은 접근이 아니다. 실제로 저자는 연구 결과 금연 프로그램만 진행한 경우와 금연 프로그램과 더불어 산업안전 프로그램 진행을 병행하여 사업장을 안전하게 바꾼 케이스를 비교한다. 그 결과 놀랍게도 후자가 금연율이 2배 가까이 높았다.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이미 치료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나 정부가 제공하지 못하면 여전히 사람들은 치료를 못 받고 죽게 된다.  

저자는 IMF 관련해서도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유럽 나라의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이 14%, 16% 증가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에서 빠져나오면 결핵 사망률이 31% 정도 줄어들었고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슬로베니아는 오히려 결핵 사망률이 감소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데이비드 스터클러 교수는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에 투자하는 비용이 감소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질병과 관련하여 국가와 정부, 공동체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역학 탐구를 통해 그 관계와 원인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 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책에 나오는 저자의 연구결과는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울 때가 있는데, 쌍용차 노동자들의 연구가 그중 하나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50.5% 제1차 걸프전에 실제 참여한 군인(22%), 포로로 잡힌 군인들(48%) 보다 높았다. 정리해고와 파업을 하며 경험한 일이 전쟁보다 더 깊은 상처로 노동자들에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자살을 비롯해, 뇌출혈, 심장마비 등으로 죽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실업률이 증가하면 그 사회의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것도 너무나 슬픈 연구 결과이자 '사실'이다. 그런데,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는 두 지표가 서로 관련이 없었다. 바로, 정부와 국가에서 실업자에 대한 재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있고 없고는 개인의 안녕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의 해고는 북유럽의 해고와는 질이 다른 것이다. 저자는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한다고 표현한다. 

대기업과 연관된 직업병에 대한 이슈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의 근무 환경이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기업의 권력과 돈을 앞세운 공격 앞에서 묵묵히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심지어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약자인 근로자들의 편에 서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살아있고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슈조차 되지 않고 부당한 처우와 죽음을 당한 이들은 잊혀졌을 것이다. 

고용 불안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몸이 아픈데도 참고 일한 경우가 2배 이상 높았다. 언제 해고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몸이 아파도 쉬지도 못하고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바로 경제적으로도 건강에서도 발생하는 상황이다.  

장시간 노동도 문제인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공의들이다. 한국의 전공의들이 비교해보면 노동 시간이 길수록 우울증상 발생 위험도 높아졌다. 그리고 이들도 아파도 참거나 스스로 처방해서 약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직 30%만 다른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다. 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의료과실이고 그 피해는 다시 서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방공무원도 빠질 수 없다. 소방공무원은 업무 중 부상당해도 혹시나 인사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치료 신청을 하지 못했다. 항상 위험을 동반하며 근무할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 일하다 다치는 것도 억울한데 치료도 자기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면서 해야 된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연구결과, 동성 결혼 금지 법안이 통과된 주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만 정신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즉, 합법적으로 결혼한 성소수자들은 이성 부부와 비슷하게 양호했다. 이성애자보다 성소주자의 자살 시도도 높고 우울증 등도 1.5배 높았다. 결국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편견, 분위기, 차별이 이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더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이민자와 재소자의 인권에 대한 부분도 짚고 넘어간다.  

또한 책에서는 사회적 연결과 사망률이 연관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1.8배에서 2.7배가량의 사망률 차이가 존재했다.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지금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은 여전히 그 독성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이렇게 버젓이 사용되는 이유는 독성이 확실히 있다는 충분한 증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새로운 물질이 사용되기 전에(사전주의 원칙) 기업이 충분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크리벨 교수를 인용하며 말하고 있다. 또한 대중들이 사용할지 말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함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책에서 사회 곳곳에 있는 약자들을 대변하며 공동체에 그 책임이 있음을 호소한다. 이제는 더 이상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없다. 나아가, 정부와 국가, 공동체가 변화될 때 더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하고 아프지 않은 상태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보고 고민해야 하는 소중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