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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8
데이비드 웡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굉장히 병적인 느낌의 소설입니다. 아니, 병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가 병신인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굉장히 태연합니다. 이야기를 듣고서 믿지 않으려는 당신의 반응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계속해서 병신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제 능력으론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음악으로 치자면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래가사를 조금 적어보자면, 어이, 정말 구리네, 불을 끄면 조금 덜 하겠지, 나는 멍청한데다가 전염성이 있어, 우린 여기서 즐거움을 만끽할거야, 내 리비도.
혹은 Beck의 <Loser>가 떠오릅니다. 침팬지 시절 나는 원숭이였고, 내 정맥에 부탄을 주입하고, 플라스틱 눈을 가진 마약 중독자를 처단하기 위해 개밥 그릇의 야채와 잘빠진 남자의 누드 팬티스타킹에 페인트 스프레이를 뿌렸어.
그리고 이 같은 노래들의 후렴구에 데이비드 웡의 소설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1』를 함께 놓는다면 대단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난 한 남자를 알아, 아니, 그건 내가 지어낸 말이야, 머리! 머리! 머어어어리! 낙타 대학살! 낙타 대학살!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테죠.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소설의 줄거리를 조금 요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도시에서, 그러니까 역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인물이 겪은 이야기입니다. 편의상 그 인물의 이름을 소설의 작가 이름과 같은 데이비드 웡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웡의 친구, 존이 나오는데 결국 존은 끝에 가서 죽을 친구인 것입니다. 아무튼, 어느 날 이 둘이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을 합니다. 간장 소스 같은 어떤 검은 액체가 몸에 들어갔는데 그 이후로 엄청난 일, 역시 그것도 어떤 일인지 여기서 대놓고 밝힐 순 없지만, 아무튼 어마어마한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제가 병신처럼 요약한 줄거리를 읽어 본 여러분은 이런 식의 설명이 제대로 된 요약이 맞긴 한가, 또는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병신 같은 줄거리란 말인가, 하며 의아해할 것입니다. 네, 네, 여러분의 그런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합니다. 저 역시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궁금합니다. 소설은 영화 <맨 인 블랙>처럼 우리가 모르는 세상과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아니면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처럼 그냥 다 썰어 버리면 속 시원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요. <고스트버스터즈>처럼 두 주인공 존과 웡이 유령을 소탕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식인 벌레들이 바글거리는 <조의 아파트>같은 이야기일지 모르구요.
헷갈리고 혼란스러워 의미를 해독하기 힘든 이야기. 실제로 일어나긴 했는데 일어나지 않았던 이야기. 모르는 사람은 모를 수밖에 없고, 증명할 방법도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성스런 기록과 닮았습니다. 분명 굉장히 다른 느낌의 이야기가 될 테지만, 묘한 믿음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웡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어디로 흘러간단 말입니까. 그리고 지금 제가 하려는 소설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1』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나이까. 제발 알려주세요.
소설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갑자기 튀어 올라 생뚱맞은 방향으로 획 날아갑니다. 그리고 너무 해괴해서 맨 정신으로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전개를 보입니다. 한편으론 너무나 진지해서 병신의 끝은 어디인가, 라는 주제에 대한 장문의 논술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떤 논리에 대해 독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까지 한참을 둘러서 말합니다. 항상 이런 식으로 병신처럼 이야기를 푸는 제 글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 소설이 보인 전개는 보통의 소설이 보인 어설픈 그것이 아닙니다. 병신 같은 분위기 속에 진지함을 깊은 곳에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손짓하는 진지함이 꽤 중독성을 갖습니다. 병신 같은 매력에 이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는 소설의 집요함을 인정하고 소설에게 항복했습니다. 소설의 결말에 존이 죽든 말든,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 스포일러가 되든 말든 상관없이, 이렇게 독특한 모습의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다’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서 평이 심하게 갈릴 유별난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이런 스타일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실 또한 정말로 유별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데이비드 웡의 소설은 대놓고 우리를 병신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상한 이야기, 괴상한 이야기, 호러, 코믹, 판타지, SF, 미스터리, 스릴러, 아무튼 어떤 장르를 가져다 붙여도 가능할, 이 희한한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전도합니다. 아마도 소설을 읽는 우리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이 소설에서 왠지 병신의 맛이 느껴진단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갖는 재미의 유무에 대해 꽤 오랜 시간 갈등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우리가 성수나 십자가를 믿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들이 신비한 효력을 발휘하듯, 처음엔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소설의 이야기를 자포자기한 상태로 즐기며 읽기로 마음먹는 순간,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정말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단지 소설이 만든 환각인지, 아니면 원래 존재했지만 너무 미미해서 차마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미지의 감각인지 무엇이라고 명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어떤 차이를 분명하게 만들어 냅니다. 그건 과학이나 종교로 설명하기 힘든 미스터리한 현상을 소설이 만든 특별한 설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안에서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느껴야만 할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병신을 쫓는 믿음이 내 안에서 자라나 그것이 기묘한 방식으로 퍼지는 느낌입니다.
소설가라면 치밀하게 구성한 자신만의 이야기로 독자를 밀어 넣고선 소설의 이야기를 믿게끔 끊임없이 강요하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작업을 통해 현실에선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리얼리티를 소설 안에서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소설 안에서 그들은 신이고 주인입니다. 특히 장르소설에선 더욱 그러한 똥고집과 똥배짱, 똥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초지일관 병신 같은 느낌으로 독자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형태의 배경, 혹은 내러티브를 보인 소설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소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마침 운명과도 같이 병신처럼 집요한 소설 하나를 만난 듯합니다. 그런데 우린 이 같은 소설을 읽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믿고 따를 수밖에요. 믿음! 믿음! 미드으으음! 낙타 대학살! 낙타 대학살!
철저하게 B급을 추구한 이유 : 데이비드 웡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2]
http://ionsupply.blog.me/130148837131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존과 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병자…… 또라이, 아니면 미친놈처럼 보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대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45쪽)
한 번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손이 아주 빠른 마술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거기서 쇼를 하면서 관객 중 한 명을 불러내서 그 사람이 쓴 안경을 훔치는 걸 보여주더군요. 정말 대단했어요. 그 불쌍한 관객을 다시 자리로 돌려보냈는데 그 관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바라보면서 왜 갑자기 자기 눈이 안 보이는지 어리둥절해하더군요. 그건 마법이 아니죠, 미스터 웡. 그냥 상대방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속임수를 쓴 것에 지나지 않아요. (129쪽)
그걸 보면 정말 머리가 어지럽지 않나? 인간의 손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그림이야. (179쪽)
우리 모두 우리의 인식이 미지의 대상에 씌우는 꽃무늬 벽지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돌아버리지 않도록 보호하려고, 아니면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아니면 그냥 우리가 바지에 똥을 싸지 않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는 우리의 마음. (211쪽)
있죠, 제가 한 이야기가 100퍼센트 진실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사실입니다. 맹세합니다. 저도 가끔씩 좀 웃긴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가끔은 설명하기 힘든 진실도 있으니까요. 그건 제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일 뿐입니다. (290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