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 2 밀리언셀러 클럽 129
데이비드 웡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국내산 토종 가수 싸이가 전 세계적인 음원 시장 차트 빌보드에서 1위를 하는가 마는가 하는 범국민적 사건은 결코 싸이 본인의 운이 갑자기 좋아져 대박난 경우라 여길 우연한 사건으로 볼 순 없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고 즐거워하는 요소를 잘 포착해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계산해 완성된 하나의 전략적 이미지가 성공한 경우라 봅니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본격적으로 B급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보이려 한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란 이야깁니다.

 


    얼마 전 YTN뉴스에서 20분 내외의 시간동안 그룹 UV가 나와 대대적인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최근 가요시장에서 유독 저급해 보인 B급 가수의 노래가 인기를 얻는 이유를 묻자, 최근의 방송에는 예쁘고 잘생기고 바른 이미지의 사람, 특히 아이돌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거기에 실증을 느끼고 갑갑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의바르고 올곧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반감을 느끼는 듯하고, 오히려 자신보다 모자란 사람을 보면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려 하는 심리가 작용하여 B급 가수가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자유를 표현한다는 의미로 뉴스에서 삼선 슬리퍼를 신은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유난히 큰 엄지발가락이라며 앵커에게 들이댑니다. 철저하게 B급의 이미지를 추구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런 유별난 행동을 두고서 그저 B급이기 때문에 저급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일단 그들의 음악이 웃기고 재미있어서 호기심에 듣기 시작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묘한 음악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꽝스런 가발을 쓰고 희한한 복장에 슬리퍼를 끌고 나와 공연을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내용이 있고 열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득 예술을 이야기할 때 바르고 틀리다는 말을 하기에 앞서, 이런 이상한 음악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싸이의 음악은 예술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할 수 없다는 식의 사고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예술과 문화를 이야기한다는 곳에서 나온 이런 사고야말로 진정한 B급의 사고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어렵게 포장함으로서 그들에게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한 고립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분리와 소외는 이런 데서 온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 할 때 시작부터 현학적인 용어를 사용해 고지식한 태도를 보인다면, 요즘 시대에는 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다 하더라도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일단은 자신을 망가트리는 한이 있더라도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쉽고 재미있어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스꽝스럽지만 누구나 따라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우며 중독성 강한 이야기로 관심을 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처럼.

 


    데이비드 웡의 소설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은 철저하게 B급을 지향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보이며 저급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독특한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깊고 풍부한 향의 프랑스산 포도주가 아니라, 아무 길거리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청량음료의 톡 쏘는 맛, 막힌 무언가를 뚫어주고 가려운 무언가를 긁어주는 시원함을 느끼게 합니다. 자칫 취향에 맞지 않아 이상한 소설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한번 빠져들면 광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소설의 시작은 이 무슨 개같고 똥같은 말로 병신 같은 웃음을 만들려 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소설이 흘러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소설의 이상한 세계가 천천히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 괴상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거리를 돌아 왔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결국 소설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 부분도 철저하게 B급의 모양을 따르는 듯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굉장히 거대하고 진지한 모양을 한 미스터리한 세상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그들은 크록 외에 아무도 섬기려 하지 않는가.’ 혹은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하는 식의 문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설은 미국식 농담을 즐기는 독자에게 더욱 큰 재미를 줄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 하는 미국식 농담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미국식 농담을 즐길 줄 안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모험도 모험 나름이지, 누군가에겐 오히려 독이 될 행군일 수 있어서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약간은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날 다람쥐 한 마리가 우연히 하수구를 탐험합니다. 난생 처음으로 구경하는 하수구의 모습.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엔 무언가 대단한 보물이 있을 거라 여긴 흥미로운 모험. 그래서 다람쥐는 들뜬 마음으로 몇 킬로미터로 뻗어 있는 긴 하수구 터널을 여행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결국 그 다람쥐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들이 싸고 내린 똥물에 포위되어 기나긴 하수구 터널 안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갑자기 다람쥐 이야기를 한 이유는, 혹시나 소설을 읽다가 그런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점잖아 보이지만 확실히 병신 같은 이야기. 때가 되면 완전히 미쳐버리는 이야기.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이야기. 커피가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그런 반전 있는 이야기.

 




 



 

    좋아. 그럼, 만약 그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겐 우리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존재일 거야, 그렇지? 수준이 낮아도 한참 낮은 존재란 말이야. 이제 문제는 그 수준이 높은 치들은 그 밑에 있는 아랫것들을 연구하면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성립이 안된다는 거야. 우리는 현미경 밑에 바이러스를 놓고 보잖아. 하지만 바이러스가 현미경 밑에 우리를 두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만약 인간보다 훨씬 고등한 존재가 있다면, 그게 우리와는 극단적으로 다른데다 지극히 크고 복잡한 존재라면, 우리의 뇌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라면, 벌레들이 우리를 볼 능력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볼 수 없다는 말이잖아. 안 그래? (112쪽)

 


    거기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라이플총임에 분명한 것을 가지고 트럭 주위에 서 있었고, 존은 즉시 팔을 뻗어 헤드라이트를 꺼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불빛이 꺼져버리면 거기 있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가 더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헤드라이트를 켰다. 그러자 트럭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 중 두 명이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걸 보고, 재빨리 다시 헤드라이트를 껐다. 이제 존은 이렇게 정신없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148쪽)

 

 

    아주 단순한 이유 하나로 이 사회는 파멸할 것이다. 빌딩을 하나 짓는 데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몇 백만 달러씩 되는 자재를 들여 몇 달 동안 짓지만, 그걸 무너뜨리는 데는 얼간이 하나와 폭탄 하나만 있으면 순식간에 끝난다는 사실 하나로. (190쪽)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너희들이 지금까지 본 걸 이해하려고 노력해 봐. 일단 이해가 되면 그렇게 화가 나지 않을 거야. (220쪽)

 


    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말하겠어요. (317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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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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