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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이 소설을 분석한 감상의 글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글일까.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옮겨다니며 품었던 일종의 '낭만적 집착'을 통해 이 소설에 대한 수많은 감상의 글을 읽어 본다한들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다며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바람둥이형 집착'으로 변형되어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한 감상의 글을 찾아다니다 결국 200편이 넘는 감상의 글과 마주해야만 하는 것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크게는 4명의 남녀가 사랑에 대해 복잡하고 미묘하게 탐구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닌듯해 보여서 이 소설을 무엇이라고 딱 잘라서 단정지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토마시가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지듯, 저는 이 소설에 대한 수많은 감상의 글을 읽어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부분을 눈여겨 보았으며 느낄 수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서 몸소 체험해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토마시는 나름의 결론을 얻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다면 그것이 아무리 은유와 비유가 뒤섞여 한껏 미화되고 실제와 달리 과장되어 부풀려진 것이라 할지라도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 흔히 그렇듯, 처음에 인물들이 갖고 있던 굳은 생각들이 나중에는 치밀하게 분석되어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내적으로 작은 반전을 거듭하는데 이 모습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반전이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인류 최고의 단골 소재와 만나 더욱 궁금증을 유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야기라고 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고, 또는 행복해서 아름다운 것처럼 사랑을 구구절절하게 노래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과 느낌들, 작은 마음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분해해서 언어로 표현하고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는 차갑고 잔인한 이야기입니다. 이성을 통해 감성을 표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에게는 이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여간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사상과 이념, 체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등장인물 개인의 개성있는 사고가 결국 사회 전체의 사고와 맞물린다고 볼 수 있고, 억압받기를 바라는 대중들이나 명령받기를 원하고 거기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한 여인이나 사실은 비슷한 것이라는 듯이 자연스레 양쪽을 교차시켜 가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런 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한가지일 뿐이라 순간적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이해한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든 예처럼 전혀 상관없을 법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가면서 소설을 읽으면 읽을 수록 결국 무슨 말을 했던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모두 사라져버리니 이 점이 저로선 참으로 답답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이 소설의 어떤 부분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의 느낌을 이야기할지, 그것이 무척 궁금한 것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성을 향한 호기심만큼이나 저의 궁금증이 왕성해서, 다가갈 수 없었고 다가가서도 안될 성스러운 영역을 탐구하는 죄를 범하면서까지 꼭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 라는 집착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그래야만 한다'라고 확신하고 나니 그나마 무지함 때문에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일단은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며 더 많은 다른 생각을 은밀히 엿볼 생각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처럼 등장인물의 무게를 재어 본다면, 남자 중에서 가볍고 무서운 사람이 한 명씩, 그리고 여자 중에서도 가볍고 무서운 사람이 한 명씩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만큼은 모두가 무한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자체가 굉장히 무거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행동이 가볍게 보인다고 해서 깊이없는 사고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유의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이유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는 힘이 들 것입니다. 사랑처럼 말입니다. 대자연의 섭리로 구분지어진 남녀의 다름처럼 태생적으로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굉장히 남성적인 소설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남성들과도 굉장히 비슷한 이미지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설은 오히려 여성이 좋아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남성적인 글로 똘똘 뭉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대개 보통의 남성들은 이런 글자체를 읽으려 들지않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글이지만 태생적으로 남성의 관심밖에 있을 수밖에 없는 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의 더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라는 점이 굉장히 오묘합니다.
다시 사랑이야기로 돌아와서, 모든 사랑하는 기간 중에서 동시에 최고의 사랑을 서로에게 줄 수 없는 남녀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게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헷갈려 하고, 혹시나 처음 느낌이 진실된 사랑이 아니었을까 여기며 방황하는 모습에 슬픔을 느낍니다. 두번 부정한다고 해서 다시 강한 긍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녀가 겪어야만 하는 시행착오에 참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이런 과정이 곧 사랑이라고 여기기엔 우리에게 사랑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존재만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가, 소설 속에서마저 그것은 현실에서 절대 이루어 질 수 없고 결코 잡을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라 하고 있어서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토마시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네, 그래야만 합니다! Ja, es muss sein.!" (59쪽)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안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과 죽음의 테마, 사랑의 탄생과 결부되어 잊을 수 없는 이 테마가 그 음울한 아름다움으로 절망의 순간에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93쪽)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106쪽)
그는 빛과 마찬가지로 어둠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다. 요새는 정사를 위해 불을 끄는 것은 웃기는 짓으로 통한다. 이것을 아는 그는 침대 머리에 조그만 램프를 켜 두었다. 하지만 사비나의 몸에 진입하는 순간 그는 눈을 감는다. 그를 사로잡는 관능이 어둠을 예고했던 것이다. 이 어둠은 순수하고 총체적이다. 이 어둠에는 이미지도 환영도 없으며, 끝도 경계선도 없다. 이 어둠은 우리들 각자가 내면에 품고 있는 무한성이다. (160쪽)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201쪽)
우리는 애교의 한복판에 있다. 비록 아무런 보장도 없는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성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런 행동. (237쪽)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미래로 도망친다. (271쪽)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자, 당신의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 (289쪽)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337쪽)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356쪽)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482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