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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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혼자 놀기를 잘 한다는 말을 수없이 많이 했건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혼자 논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은 혼자 노는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혼자 논다는 것은,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할 만큼 대단한 놀이가 아닐지 모릅니다. 우리는 보통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어쩌면 ‘혼자’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혼자 논다는 말이 만들어내는 어떤 유별난 느낌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를 혼자 놀게 합니다.

 


    혼자 놀기를 할 때면 무언가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는 자기 암시, 혹은 최면 비슷한 것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붕 떠있어 기분 좋은 느낌. 현실처럼 생생한 상상, 혹은 환상의 느낌. 그러나 보통의 환각이 만들어낸 세계와 달리, 혼자 논다는 것은 동시에 묘한 불안감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남들과 비교해서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란 것.

 

 


    하지만 우리는 로제 폴 드르와『일상에서 철학하기』를 통해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동안 증명할 수 없었던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쾌하게 정리해 줍니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와 행위들은 꽤 재미있는 놀이와 닮은 듯해 보여 따뜻한 위로와 함께 유쾌한 감정을 만들기도 합니다.

 


    보통 철학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날카롭게 곤두선 차가운 이미지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몰캉몰캉하면서 동글동글한 느낌의 철학도 있었습니다. 딱히 이 책이, 여러분, 철학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철학은 여러분을 물거나 해치지 않아요, 쉽고 재미있으니 한번 따라 해보세요, 라는 말로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하려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은근히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끌림, 저절로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신비로운 힘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 머리 위에 떠있는 전구가 계속해서 깜박거릴 수 있도록 지식과 지혜의 양분을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책은 일상에서 철학하는 방법 101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화장실이란 공간에서 1~2분의 소요시간이 필요한 이 철학하는 법을 통해 확 트인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먼저 조금 웃기지만, 오줌이 나오려는 신호가 감지되면 물 한 잔을 준비하고서 화장실 변기로 향합니다. 그러다 오줌이 나오기 시작하면 준비했던 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이때 우리는 식도와 요도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비현실적이지만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을 생리학적 구조를 고안해냅니다. 무언가 말로 표한하기 힘든 우주의 흐름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순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런 경이로운 철학을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혼자 놀기입니까!

 


    평소에 이렇게 혼자 노는 철학을 행위하며 즐겼던 편은 아니지만, 소극적인 상상만으로 간직했던 이상한 생각들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철학적인 해석을 통해 들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사실을 누군가가 옆에서 대신 설명해준 명쾌함이 있습니다.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미리 가려운 곳을 긁어준 고마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이제는 무언가 대단히 적극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철학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희미하고 흐릿한 이미지였던 자신의 존재가, 이 책을 통해 이토록 확실하게 글의 형태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낍니다.

 






    이 놀이의 핵심은 일상의 사소한 계기들을 들추어내고 촉발시키는 데 있다. 뭔가 행동할 수 있는 단초, 말의 실마리, 상상의 계기들을 새롭게 고안해내어, 철학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결과들을 실제로 느껴보게 하고, 하나의 의문에서 비롯하는 정신적 혼란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7쪽)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은 신념 같은 것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사실이다. 어쨌든 우리의 영원성은 논리로 증명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는 하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렵고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실험을 해봐야 자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엉뚱한 짓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라. (46쪽)

 


    이 체험을 통해 적어도 당신은 객관성이라는 것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이런 확신을 얻을지도 모른다. 즉 순간적이긴 하지만, 우리 몸을 통해 세계를 꿈꿀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이건 결코 사호한 발견이 아니다. (77쪽)

 


    냉소와 비난과 조롱의 시대이니만큼, 자유롭게 그리고 고의적으로 선량한 감수성들을 아무 계산 없이 그냥 재미로 체험해보는 것은 꽤 즐거운 경험이다. (163쪽)

 


    즉 상상력이란 현실에 덧붙여지는 것, 혹은 현실과 대립되는 것, 현실과 모순되는 것, 현실을 감추는 것이 결코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현실 그 자체를 상상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178쪽)

 


    아마 당신은 당신 행위에 대한 몇 가지 원인을 나름대로 주워섬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냥 재미로라도, 당신 행위의 목적과 효과를 납득시켜줄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80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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