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는 반드시 세 번 느낀다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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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 『살의는 반드시 세 번 느낀다』를 야구에 비유해보자면, 9회말 2아웃 3점을 뒤진 상태의 만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팀 내 최고의 4번 타자. 가운데로 깊숙이 찔러 들어오는 초구를 크게 휘둘러 펜스를 훌쩍 넘기는 역전 만루 홈런. 극적인 끝내기타로 경기가 종료……. 물론 이 같은 모습의 추리소설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계속해서 소설 『살의는 반드시 세 번 느낀다』를 야구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9회말 수비 상황, 경기장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팀의 타자 한 명이 느릿느릿 타석에 들어섭니다. 그러다 그 타자는 무언가 깔짝거리며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투수를 자극합니다. 보아하니 좌타자입니다. 그럼 여기서, 추리소설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으로 범인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말하려던 것일까요. 에이, 설마요. 그것은 두고 볼 일입니다.

 


    자 그럼, 일단 투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설렁설렁 힘을 빼고 던진 회심의 일구는 아리랑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타자는 기습적으로 배트를 내밀어 날아오는 공에 번트를 댔고, 공은 투수 앞으로 데구르르 힘없이 굴러 갑니다. 보통의 평범한 우타자였다면 아웃카운트 하나를 손쉽게 늘릴 수 있는 찬스입니다. 그럼 이 비유는, 추리소설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처럼 범인의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단서가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단 사실을 말하려던 것일까요. 에이, 설마요.

 


    상대는 우타자보다 한 걸음 더 빨리 1루 베이스에 진루할 수 있는 좌타자, 게다가 발이 빠른 1번 타자였습니다. 그래서 투수는 자신의 앞으로 기습적으로 평범하게 굴러오는 공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그만 공을 두세 번 더듬고 맙니다.

 


    그래서 노아웃 주자 1루 상황. 하나, 둘, 셋, 넷. 무려 크게 네 걸음이나 리드폭을 늘린 주자의 모습이 투수에겐 무척이나 신경 쓰여 보입니다. 뛸 듯 말 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스텝이 투수의 마음을 심란하게 휘젓습니다. 아직 3점이나 앞서있는 상황이니 주자가 무리해서 베이스를 훔치려 하진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노아웃 상황, 아마도 작전은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 비유는, 추리소설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으로 가장 의심스럽지 않은 인물이 범인이란 말을 하려던 것일까요. 에이, 설마요.

 


    주자가 있기 때문에 투수는 보통의 와인드업 자세가 아닌 셋업 자세로 빠르게 공을 던집니다. 그런데 투수가 왼발을 들어 올려 공을 던지려던 순간, 왼 어깨너머로 얼핏 보인 주자의 움직임이 신경 쓰였던 것인지, 마운드에서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투수 보크.

 


    그래서 노아웃 주자 2루 상황. 그래도 아직은 괜찮습니다. 적시타를 맞아서 실점한다 치더라도 아직 2점의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투수가 주자의 움직임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자칫 타자와의 승부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항상 야구는 우려하던 상황을 현실로 재현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냅니다. 그럼 이 비유는, 추리소설의 매우 고전적인 방식처럼 범인과의 정면승부를 방해하는 주변인물을 배제하란 말을 하려던 것일까요. 에이, 설마요.

 


    리드폭이 유독 긴 주자를 발견한 투수는 2루를 향해 빠르게 견제를 합니다. 하지만 유격수와 2루수의 사인이 맞지 않았던 것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한 공은 중견수 앞까지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실수 연발입니다.

 


    그런데 3루까지 내달린 주자가 혼란을 틈타 홈까지 파고들려 합니다. 자신의 빠른 발을 그만큼 믿어서 일까요, 아니면 뜬금없이 나타난 주루코치가 크게 팔을 돌려서 일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주자의 움직임을 보고 놀란 중견수는 얼떨결에 공을 주워 홈을 향해 힘껏 던집니다.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홈플레이트의 급박한 상황 속에서 포수가 공을 놓쳐 결국 실점했을까요, 아니면 연이어 발생한 엉성한 플레이를 만회하려는 듯 멋진 수비로 위기를 극복해낼까요. 그럼 지금까지 했던 이러한 비유들은, 추리소설의 매우 고전적인 방식처럼 여러분께 직접 이 비유들의 의미를 장황하게 풀이하려는 암시일까요. 에이, 설마요.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의 끝을 제가 어떻게 알려드린답니까, 설마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런 위기상황 하나로 경기 결과가 확 뒤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황들이 계속해서 모이다 보면 최종적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흐름이란 것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니까요. 시간이 되었다고 저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이닝의 아웃카운트 세 개를 모두 잡아야 야구는 끝나기 때문입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소설에선 대단히 화려하진 않지만 간결한 트릭들이 군더더기 없이 오밀조밀하게 잘 조립되어 있어서 좋습니다. 마술로 치자면 잔재주를 부리는 카드마술이라고 할까요. 어색한 실수와 함께 농담을 섞어 놓고 카드를 이리저리 섞는 모습이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특히 이 소설에선 야구에 얽힌 살인 사건을 고등학교 탐정부 동아리 3인방이 나서서 나름의 조사를 펼치는데, 이들이 보여준 좌충우돌 탐정 놀이가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유머러스하고 미스터리한 탐정부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입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선서! 우리 탐정부 일동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준수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필요한 정보를 감추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끝까지 싸울 것을 선서합니다!

    20XX년 여름, 코이가쿠보가쿠엔 탐정부, 아카사카 토오루. (24쪽)


 

    어찌나 무방비 상태로 서로 치고받던지……. 이를 상세히 쓸 필요도 없거니와 전쟁터 같았던 시합 현장을 극명하게 기록하자면 장편소설이 될 형편인지라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다. (82쪽)

 


    이거야 말로 내가 탐정부 활동에서 이루고자 했던 참모습이라고! 이성 대 이성의 논리적인 대결, 지성 대 지성의 세련된 격돌, 감성 대 감성의 통쾌한 공명,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도출해낸 아름다운 진실. 바로 이거라고! 알아들어? 가능성과 신빙성이 자아내는 섬세한 하모니, 사실과 상상력이 연주하는 장대한 심포니.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추리라고! (107쪽)

 


    나는 한기가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릇 비유 살인 같은 건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범죄이다. 현실 세계에서, 그것도 동요나 하이쿠가 아니라 하필이면 야구에 빗댄 살인이라니. (203쪽)

 


    비유 살인의 의미라……. 그야 간단해. 시신을 어딘가에 비유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작품 속의 세계로 단박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지. (222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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