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악마가 여기에 있다 자음과모음 인문경영 총서 2
베서니 맥린 & 조 노세라 지음, 윤태경.이종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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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컬러 사진이라 해도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초원에서의 경험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통계수치로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따라 행동하는지 표현할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편의 사회 초상화만이 역할을 담당할 있다. 초상화는 사회를 개인들 속에 반사하기도 하고 개인들을 통해 사회를 굴절시키기도 한다.” 많은 책들이 2008 미국의 서브 프라임 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무수한 책들이 통계수치 집중하였다면 맥린과 노세라 책은 훌륭한 편의 사회 초상화 해당한다. 요컨대 책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위기를 재구성하고 위기의 원인을 추적해 있다. 물론 이러한 성찰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지고 뒤에 우는 (사건이 지나가고 나서야 얻게 되는 통찰) 다름 아니지만 말이다.

흔히 1930년데 대공황 위기와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비교하면서 전자가 유동성 위기 liquidity crisis 라면 후자는 지불능력의 위기 solvency crisis 라고들 이야기 한다. 새로운 유형의 위기를 저자들은 다각적으로 추적하는데 이들에 따르면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벌어지는 일들이 결국 강물이 바다에서 모이듯이 위기로 수렴된다. 예를 들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과 같은 GSE 자신들의 사업상 이권을 누구도 넘보지 못하도록 엄청난 로비를 서슴지 않는다. 특히 이들 GSE 주된 사업 분야는 MBS 였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이었던 J.P. 모건은 리스크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VaR 모형을 개발하였다. 그런데 모형을 통해 금융혁신이 가능하게 되고 MBS 우량신용등급을 받을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증권화는 대출기관과 대출자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위험요인과 더불어 추가적 위험요인이 등장하는데 컨츄리와이드와 같은 모기지 신용대출 기업들의 불법적인 영업으로 인해 이들로부터 많은 돈을 빌린 소비자들이 주택을 차압 당하게 것이다. 위기의 그림에서 정부 관료들 역시 빠질 없다. 이들은 파생금융상품이야말로 새로운 금융시대를 여는 아이콘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모든 시도는 진보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재무부장관이었던 루빈은 자기 경험에 의거해 파생금융상품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알고 있었으나 역시 결국 규제완화에 동참하였다). 그림의 완성은 신용평가기업들로부터 주어진다. 무디스를 비롯한 신용평가서비스 제공 사업자들은 기업의 신용을 평가하고 이들로부터 돈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부패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모든 것의 귀결이 모든 것이 산산히 무너질 도래이다.

위기의 도래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말과 행동이 그림의 다양한 점과 , 선을 구성한다. 우리는 컨츄리와이드의 안젤로 모질로나, 페니메이의 존슨, JP 모건의 굴디만, FRB 앨런 그린스펀, 상품선물거래 위원회의 브룩스릴 등등 많은 이들이 위기를 향해 진행되는 거대한 드라마 속에서 각자의 배역을 수행하며 나름의 대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퍼즐이 완성되는 것이다.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저널리즘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널리즘이 아카데미즘의 하위 파트너나 혹은 열등한 지위가 아니라 정식 파트너이며 대등한 관계임을 입증해준다. 위기를 다룬 훌륭하고 권위 있는 책들이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크루그먼의 <불황 경제학>이나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 그리고 한스 베르너 진의 <카지노 자본주의> 그것이다. 책들은 훌륭한 책들이지만 오직 통계수치 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책들 사이에 맥린과 노세라 저서가 꼽혀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책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함께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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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제위기가 유동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채무상환의 문제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부채 문제를 역사적으로 다루는 이 책은 현재 경제위기를 이해하는데 직접 도움이야 주지는 못할 것이나 긴 인류 역사에서 부채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넛지> 출간 이래로 행동경제학을 이용하여 현실 문제를 "스마트"하게 해결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빈곤 문제 해결책으로 행동경제학을 사용하는게 이 책의 의도로 보여진다.

이 책이 얼마나 그 목적에 부합하는지 궁금하다. 영어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하였으면 더 좋왔을 듯하다.

 

 

 

 

 

 

 

  

 

소유와 권력은 세속적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들인데 따라서 당연히 이런 책들은 사람들 눈에 띨 듯 하다.

경영대학원에서는 별 거를 다 가르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고인기강의>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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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제국의 몰락 -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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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몰락의 출발점은 아마도 달러의 몰락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의 주장 처럼 달러의 몰락이 미국의 몰락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진실이겠지만 말이다. 아이켄그린의 새 저서 <달러 제국의 몰락>은 세계 패권 국가 미국의 통화인 달러가 어떻게 기축 통화로 등장하였다가 이제 서서히 몰락하는지를 아주 세세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1차 대전 이후 몰락하였지만 여전히 경쟁 상대로 남아있는 파운드화를 대신하여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으려는 미국의 노력은 의도적이며 세심한 계획 아래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 책에서는 그려진다. 지난 세기 초 미국에서 환어음시장이 등장하는 과정이 그러하고,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이 그러하며, 다른 나라들이 달러 레짐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노력하는 과정이 바로 그러하다. 특히 달러가 금이나 특별인출권과 기축 통화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라든가, 미국이 유럽 특히 프랑스와 함께 국제통화시스템의 디자인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러한 과정들의 한 단면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1971년 닉슨 쇼크를 계기로 금과 달러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1973년 변동 환율제가 도입되면서, 그리고 1990년대 유로화가 등장하면서, 마지막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지위가 점차 흔들리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달러 폭락의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투매하는 경우이고 둘째가 미국 국채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변심하는 경우이며 세 번째가 미국의 재정 위기가 심화되어 달러화가 폭락하는 경우이다. 저자는 이 세가지 가능성 가운데 마지막 시나리오를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진행중인 유럽 재정 위기는 미국 달러 가치 폭락의 암시일런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화폐 가능간의 내재적 불안정성에 관한 데이비드 하비의 논의가 떠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그에 따르면 화폐의 가치척도 기능과 일반 교환 기능 간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축적과정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화폐에 대한 수요가 한 쪽에 존재한다. 이는 수익성 있는 거래의 급속한 팽창을 촉진할 화폐 수요를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보편적 등가물로서의 화폐 수요가 존재하는데 이 후자의 수요는 전자의 수요 증대에 의해 약화되는 경향을 갖는다. 달러화를 둘러싼 이해의 갈등이나 모순의 심화는 다름 아닌 이 두 화폐 기능간의 충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간 실물 거래를 뒷받침하는 공통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단지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하였던 달러화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특권이 어떻게 천천히 소멸되어 갔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을 우선적으로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달러의 흥망성쇠를 이처럼 평이한 문체로 알기 쉽게 서술한 책은 필자가 알기로 매우 드물다.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일전에 읽은 신문기사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은 복잡한 사회 경제 문제를 접할 경우 이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문헌을 찾으며 학습하는 대신, 단지 문제를 외면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아이켄그린의 이 저서는 세계경제나 환율 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진입장벽을 낮추어 줌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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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없다 -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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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 학자들 보다도 유난히 경제학자와 관련한 조크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고소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경제학자들이 인심을 잃긴 잃었나 보다. 다음은 내가 아는 조크 한 가지. 신부와 심리학자, 경제학자가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다. 그런데 이들 보다 앞서 출발한 팀이 지체하는 바람에 세 사람은 라운드를 계속 돌 수 없게 되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앞서 팀은 시민들을 위해 화재를 진압하다가 실명한 영웅적인 소방관들이었다. 이를 알게 된 신부와 심리학자는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학자는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캐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분들에게 밤에 와서 골프를 치시라고 전해주시지 않겠어요?”  


이 ‘야마리’ 없어 보이는 경제학자의 말이 비록 합리적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거나 최소한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파운드스톤의 최근 저서 <가격은 없다>는 합리성에 기반하여 인간행동을 형식적으로 모델링하는데 전념하는 경제학자들이라면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폰 노이만 식의 기대효용가설을 따른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사뮤엘슨을 따라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그의 선호를 추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들, 피와 살을 가지고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진짜 인간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종 확률을 무시하고 판 돈이 큰 게임을 선택한다. 또한 선호는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일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주 역전되기도 한다. 요컨대 “선택은 상황에 의존하고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하나의 숫자로 대변될 수 없다.”  


이 책 <가격은 없다>의 전반부는 정신 물리학과 심리학의 전사들이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완고한 고집과 편견을 꺾고 설득하여 이제는 경제학의 한 분과학문으로서 자리잡은 행동경제학이 출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계속하여 앵커링(anchoring)이라는 개념에 논의를 집중하는데 이는 사전에 특정한 정보에 노출됨으로써 이후의 의사결정이 이에 영향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앵커링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저자는 마침내 카네먼과 트버스키의 프로스펙트 이론의 성립까지도 설명한다. 이 이론은 준거점, 손실회피, 그리고 확실성 효과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수익, 손실, 위험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반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신장시켰다. 이제 경제학자라 하더라도 인간 행동과 의사결정에 관한 새로운 지식에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예를 들어 독일의 구트)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예를 들어 미국의 세일러, 그리고 이스라엘 출신의 애리얼리). 특히 최근 들어 경제학과 심리학은 공정함(fairness)이라는 연구 주제를 공유하기 시작하였는데 최후통첩게임이야 말로 이 주제 연구에 대한 중요한 기여라고 말할 수 있다. 제안자가 수용자에게 제시하는 금액 비율을 통해 우리는 그 제안자의 이타심이나 호혜성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스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내내 떠올랐던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정신의 탐험가들> (푸른숲, 2000)과 메리 로취의 <봉크> (파라북스, 2008) 였다. 이 세 권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미지의 영역, 학문의 변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창조적 정신들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참고할 문헌이나 선행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생 분야(각각 행동 경제학, 심리학, 성 과학)의 토대를 닦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씩 전진해가며 분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기업이나 판매자가 가격 매기기(pricing)에 대해 부리는 술수를 논의한다. 예를 들어 상품 A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싼 상품 B나 더 비싼 상품 C를 미끼로 함께 매장에 전시하여야 한다. 바로 다름 아닌 앵커의 원리이다. 이러한 전략은 명품 판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 경우 앵커 역할을 수행하는 상품은 설사 판매되지 않고 전시만 되더라도 대비효과를 가져와 소비자로 하여금 그 아래 단계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든다. 요컨대 트버스키의 말대로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준다.” 결국 가격은 위험한 조작 장치에 해당한다.  


인간은 앞서 제시된 숫자에 영향을 받으며 결정을 내리고, 절대적 수준 보다 상대적 변화에 대해 더 잘 반응하며, 이익보다는 손해에 대해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광고쟁이나 제품 가격을 매기는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팁일는지 모른다. 사실 벌써 기업들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의 몇 가지 결과들을 돈벌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장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경우 소비자들은 2달러를 추가로 더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마케팅은 이와 관련하여 유망한 분야가 되었고 가격 컨설팅 산업은 이제 각광받는 유아 산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 의사결정과 행동에 관한 지식의 이러한 사용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접근은 대중 조작의 가능성을 열고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는 숨겨진 설득자 (hidden persuader)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국 매슬로우의 말처럼 망치를 가지고 있는 이는 이제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인간에 관한 새로운 지식 체계를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행동경제학을 공공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시각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좋은 제도는 좋은 인간을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미덕을 갖춘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 좋은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구조가 인간을 갱생시킨다. 메커니즘 디자인 과정에서 이제 우리는 인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이 구축해놓은 방대한 지식체계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사기업들이 행동경제학을 어떻게 자기 입맛에 맞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준 이 책은 행동 경제학이 어떻게 공공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보여준 선스타인과 세일러의 <넛지> (리더스북, 2009)와는 대비를 이룬다.  


이 책이 갖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인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 거장들의 개인사나 성격에 관한 묘사, 혹은 그들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 들이다. 트버스키가 그처럼 매력적이고 탁월하며 흥미로운 사람이었는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트버스키와 애리얼리와 같이 탁월한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들 이었다. 최후통첩게임의 경우 이스라엘 국적 제안자들은 다른 나라 제안자들 보다 더 낮게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유대인은 ‘선택된 합리적 민족’이라고 비꼰다. 이 책이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는 이러한 가십거리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랜 만에 유익함과 흥미로움 이라는 두 개의 미덕을 고루 갖춘 책을 만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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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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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자들 보다도 유난히 경제학자와 관련한 조크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고소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경제학자들이 인심을 잃긴 잃었나 보다. 다음은 내가 아는 조크 한 가지. 신부와 심리학자, 경제학자가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다. 그런데 이들 보다 앞서 출발한 팀이 지체하는 바람에 세 사람은 라운드를 계속 돌 수 없게 되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앞서 팀은 시민들을 위해 화재를 진압하다가 실명한 영웅적인 소방관들이었다. 이를 알게 된 신부와 심리학자는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학자는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캐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분들에게 밤에 와서 골프를 치시라고 전해주시지 않겠어요?”  


이 ‘야마리’ 없어 보이는 경제학자의 말이 비록 합리적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거나 최소한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파운드스톤의 최근 저서 <가격은 없다>는 합리성에 기반하여 인간행동을 형식적으로 모델링하는데 전념하는 경제학자들이라면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폰 노이만 식의 기대효용가설을 따른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사뮤엘슨을 따라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그의 선호를 추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들, 피와 살을 가지고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진짜 인간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종 확률을 무시하고 판 돈이 큰 게임을 선택한다. 또한 선호는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일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주 역전되기도 한다. 요컨대 “선택은 상황에 의존하고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하나의 숫자로 대변될 수 없다.”  


이 책 <가격은 없다>의 전반부는 정신 물리학과 심리학의 전사들이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완고한 고집과 편견을 꺾고 설득하여 이제는 경제학의 한 분과학문으로서 자리잡은 행동경제학이 출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계속하여 앵커링(anchoring)이라는 개념에 논의를 집중하는데 이는 사전에 특정한 정보에 노출됨으로써 이후의 의사결정이 이에 영향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앵커링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저자는 마침내 카네먼과 트버스키의 프로스펙트 이론의 성립까지도 설명한다. 이 이론은 준거점, 손실회피, 그리고 확실성 효과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수익, 손실, 위험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반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신장시켰다. 이제 경제학자라 하더라도 인간 행동과 의사결정에 관한 새로운 지식에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예를 들어 독일의 구트)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예를 들어 미국의 세일러, 그리고 이스라엘 출신의 애리얼리). 특히 최근 들어 경제학과 심리학은 공정함(fairness)이라는 연구 주제를 공유하기 시작하였는데 최후통첩게임이야 말로 이 주제 연구에 대한 중요한 기여라고 말할 수 있다. 제안자가 수용자에게 제시하는 금액 비율을 통해 우리는 그 제안자의 이타심이나 호혜성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스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내내 떠올랐던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정신의 탐험가들> (푸른숲, 2000)과 메리 로취의 <봉크> (파라북스, 2008) 였다. 이 세 권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미지의 영역, 학문의 변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창조적 정신들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참고할 문헌이나 선행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생 분야(각각 행동 경제학, 심리학, 성 과학)의 토대를 닦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씩 전진해가며 분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기업이나 판매자가 가격 매기기(pricing)에 대해 부리는 술수를 논의한다. 예를 들어 상품 A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싼 상품 B나 더 비싼 상품 C를 미끼로 함께 매장에 전시하여야 한다. 바로 다름 아닌 앵커의 원리이다. 이러한 전략은 명품 판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 경우 앵커 역할을 수행하는 상품은 설사 판매되지 않고 전시만 되더라도 대비효과를 가져와 소비자로 하여금 그 아래 단계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든다. 요컨대 트버스키의 말대로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준다.” 결국 가격은 위험한 조작 장치에 해당한다.  


인간은 앞서 제시된 숫자에 영향을 받으며 결정을 내리고, 절대적 수준 보다 상대적 변화에 대해 더 잘 반응하며, 이익보다는 손해에 대해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광고쟁이나 제품 가격을 매기는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팁일는지 모른다. 사실 벌써 기업들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의 몇 가지 결과들을 돈벌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장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경우 소비자들은 2달러를 추가로 더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마케팅은 이와 관련하여 유망한 분야가 되었고 가격 컨설팅 산업은 이제 각광받는 유아 산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 의사결정과 행동에 관한 지식의 이러한 사용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접근은 대중 조작의 가능성을 열고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는 숨겨진 설득자 (hidden persuader)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국 매슬로우의 말처럼 망치를 가지고 있는 이는 이제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인간에 관한 새로운 지식 체계를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행동경제학을 공공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시각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좋은 제도는 좋은 인간을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미덕을 갖춘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 좋은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구조가 인간을 갱생시킨다. 메커니즘 디자인 과정에서 이제 우리는 인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이 구축해놓은 방대한 지식체계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사기업들이 행동경제학을 어떻게 자기 입맛에 맞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준 이 책은 행동 경제학이 어떻게 공공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보여준 선스타인과 세일러의 <넛지> (리더스북, 2009)와는 대비를 이룬다.  


이 책이 갖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인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 거장들의 개인사나 성격에 관한 묘사, 혹은 그들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 들이다. 트버스키가 그처럼 매력적이고 탁월하며 흥미로운 사람이었는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트버스키와 애리얼리와 같이 탁월한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들 이었다. 최후통첩게임의 경우 이스라엘 국적 제안자들은 다른 나라 제안자들 보다 더 낮게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유대인은 ‘선택된 합리적 민족’이라고 비꼰다. 이 책이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는 이러한 가십거리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랜 만에 유익함과 흥미로움 이라는 두 개의 미덕을 고루 갖춘 책을 만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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