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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 10년 후,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숙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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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코미디 드라마의 장면이다. 주인공이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으며 결정에 따라 그의 이후 운명은 바뀌게 된다. 고민을 거듭한 주인공이 드디어 결정을 이후 그의 인생 경로가 드라마로 그려진다. 그런데 드라마가 끝난 이후 다시 주인공의 결정 장면으로 되돌아가 그가 다른 결정을 하였을 경우 다른 인생 경로가 드라마를 보여준다. 결정과 그에 따른 운명의 분기처럼 저자는 가까운 장래 (2025 ) 일의 세계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번째 시나리오는 소위 3분이 한계인 세상이다 (그만큼 주의 지속시간 attention spans 짧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노동의 파편화가 극단적으로 진전되고 노동하는 사람은 서로 고립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소외가 지배적인 세상이다. 그곳에서는 내공을 쌓기 위한 집중의 기회가 결여되며, 관찰 학습의 능력이 부족하고, 즐거운 창의성이 사라져 버린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이 세상을 휩쓸어도 사람들은 그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반면 번째 시나리오는 훨씬 긍정적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서도 세상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곳에서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개인들이 성장한다. 개인들은 높은 연봉보다도 의미 있는 활동을 중시 여긴다. 일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며 따라서 자신의 삶에 대해 통찰을 가질 기회가 많아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이한 세계로의 분기가 동일한 요인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로 기술과 세계화이다. 컴퓨터 클라우딩 기술의 발전과 밤낮없이 이에 접속할 있는 환경은 세상을 (서로 고립되고 분절된) 네오 노마드의 세계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전체의 발전이 개인의 발전을 가져오는) 협력자들의 세계를 가져오기도 한다. 요컨대 기술 발전과 세계화는 대안적 세계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중립적 수단이라는 것이다.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읽은 책이었으나 장을 더해갈수록 저자가 들려주는 생생한 미래 세계에 대한 묘사에 빠져 들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미래 예측과 관련한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나 책이 갖는 고유한 매력이라는게 아무래도 있는 했다.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묘사뿐 아니다. 미래 세계에 대한 확정적 상이 아니라 가능한 복수 비전을 보여주는 역시 책의 매력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저자가 분석에서 아주 중요한 변수 하나를 간과하였다는 점이다. 어떤 세계로 분기할 것인가를 두고 단순히 우연이 그것을 결정한다고도 말할 있을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로 의존성 개념이 이러한 사고를 반영한다. 초기의 미세한 조건의 차이가 누적될수록 완전히 상이한 세계로 진행한다는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연이 아니라 어떤 의도가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는데 더욱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며 그것은 바로 자본의 의도나 계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0세기 초의 테일러주의의 경험을 먹일 필요조차 없다. 결국 우리의 노동세계를 규정하고 의도대로 이끄는 것은 자본이 아니었던가. 자본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번째 세계를 선택할 수도 있고 번째 세계도 선택할 있다. 자명한 진실, 자본의 미래 전략이 노동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을 저자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여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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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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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물으려면 우리 사회가 토대를 두고 있는 시장은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피할 없게 된다. 일견 시장은 정의로운 것처럼 보인다.

첫째, 시장에서 빈부의 격차는 노동과 여가에 대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고 따라서 정당화된다. 개미가 될지 베짱이가 될지는 오직 자신의 의사결정에만 의존한다. 결정의 결과에 대해 남이 왈가왈부 없다. 롤즈 역시 인정하였던 모든 정의의 제일 원리는 자유이다. 둘째, 시장은 보상과 처벌이 치우침이 없으며 따라서 특혜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자는 모두 자신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만 보수를 받아가며 과정에서 불로소득이나 지대는 발생하지 않는다. 밀턴 프리드만의 말을 빌자면 사과의 구매자는 사과 판매자가 공화주의자인지, 파시스트인지, 민주주의자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는 불편부당으로서의 정의이다 (주류 경제학에 의하면 시장 경쟁은 소수 그룹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경쟁이 있는 곳에 차별이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자발적 합의를 통한 교환은 시장 참가자들 모두에게 상호 이득을 가져다 준다. 교환 이전에 비해 각자의 처지를 개선시킨다. 이는 상호 이익으로서의 정의에 해당한다.

결국 주사위를 던져서 누가 점심을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합의 하였을 경우 주사위 던진 결과에 모두 승복하는 것이 정당하듯이 시장 참가자들은 시장 결과에 승복하여야 한다. 미리 정해놓은 규칙을 문제 삼으면서 경기 결과를 뒤집는 선수들의 행동이 비난 받듯이, 시장의 질서를 부정하는 자들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현실의 시장이 언제 경제학자들 머리 속의 시장과 근접할 때가 있었는가. 생산물 시장은 차지하더라도 요소시장에서의 불평등이나 부정의는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고용관계가 사실상 노예관계라는 , 임금 노예관계라는 것은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가 호혜적인 관계라기 보다는 권력 관계 혹은 위계 관계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본시장의 상황이라고 해서 노동시장의 그것과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토지(임대)시장의 경우 불로소득이나 지대는 정의와 멀어도 한참 멀다.

또한 시장에서 표출되는 소비자의 선호를 가장 충족시켜주는 것이 시장이라고 해도 시장이 정당하지 못할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 다음의 도식을 비교해보자.

 

1 선호 즉흥적 욕망                      이기심         열정          시장

2 선호 즉흥적 욕망에 대한 자신의 평가 공적인 마인드 공정한 방관자 관습과 정부   

 

만일 시장에서 드러난 선호, 1 선호가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1 선호의 충족이나 수단인 시장이 선이 없다. 저자 표현대로 마약 중독자의 1 선호만 두고 마약을 공급할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이는 일견 수긍이 가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정신과 활동의 자율성을 다소 무시하는 주장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서 공리주의는 강력한 개혁의 철학이 있다고 본다. 개인간 효용의 비교가 허용되는 총계주의를 따르는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자 동등한 몫을 분배 받는 것이 사회 전체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경우 한계효용의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은 궁극적으로는 타당치 못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이롭다고 해서 동시에 의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이나 벤덤 보다 롤즈나 칸트에 의존해야 하는 것도 때문이다.

   그나 저나 언제 경제학자들은 뉴욕 법원의 라가디야 판사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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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니치 Niche -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주류를 좋아하지 않는가
제임스 하킨 지음, 고동홍 옮김 / 더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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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노동과정이론을 통해 포스트 포디즘 이론을 접한 기억 난다. 논의에 따르면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으로부터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으로 생산방식 패러다임의 변화가 발생하였고 이는 소비자 취향의 다변화라는 조류와 호응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니치> 바로 이러한 흐름의 가장 최근의 모습을 보여주는 접근이 아닌가 한다.

언제부터인가 소위 중간급 혹은 중산층이라는 대상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마케팅에서는 이제 일반 대중이라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류기업 갭이나 소매점 < 믹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예술 영역에서도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예술을 요리해서 관중의 수고를 덜어주는 시도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모든 평균적인 것들의 종말은 새로운 시기 개막의 징후이다. 이제 모든 기업들은 원래 뜻이 생태적 지위를 지칭하였던 개념인 니치에 주목한다. 종래에 거대기업의 먹잇감에 불과하였던 소비자들이 이제 지위를 바꾸어 사이버 포식자로 전환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책에서 저자가 이끌어내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러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그냥 손쉽게 가격 차별 전략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에는 가지 곤란함이 동시에 발생한다. 첫째 경제학 표준이론에 따르면 가격차별이란 시장 지배력을 보유한 독점기업만이 행할 있는 시장전략인데 반해 책에서 나오는 기업들이 모두 언제나 시장 지배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차라리 기존 경제학 이론 가운데 제품 차별이 이러한 상황에 근사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둘째, 전통적인 가격차별 이론의 경우 소비자를 개의 그룹으로 나누는 근거는 수요의 소득 탄력성 차이 이고 이는 쉽게 계산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최근 이러한 변화에 직면하여 기업들이 고객 세분화 작업을 수행하는 것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특히 번째 논점과 관련하여 한가지 . 책의 저자 역시 해당되지만 저서에서 소비자들의 카테고리화에 고군분투하는 기업 고용 사회학자들이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현실에서 고정된 소비자 범주란 존재하지 않으며 소비자 집단은 무빙 타깃 moving target 이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을 구경온 관광객들에게 단과대학과 도서관을 보여주면 어리둥절해 한다. 관광객들은 대학이 구성 요소의 총합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단일한 건물일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줄리언 바자니, <가짜 논리: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 한겨례 출판). 철학자 길버트 라일은 이러한 인식상의 착오를 범주 착오 category mistakes 라고 명명하였다. 앞서 언급한 사회학자들 역시 이러한 오류에 빠져 있음에 분명하다. 저자 역시 부분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트겐쉬타인의 처럼 모든 것은 자체이며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경구야 말로 경우 곱씹어 볼만한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 예전에 언젠가 유시민 씨가 자신이 지식의 소매상이라는 표현을 있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소매상이 풍부하다. 특정 주제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기본적 주장을 구성하고 이를 예시할 다양한 역사적 경험적 사례를 발굴하는 작가들 말이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없다. 책의 저자 하킨 역시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소매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식의 소매상이란 다름 아닌 지식 시장의 니치에 다른 표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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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정치경제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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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스미스는 자신이 죽을 자신의 모든 미출간 원고를 불태울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나 자칫 세상에서 사라질 스미스의 원고 가운데 일부가 그에게서 법학 강의를 수강한 학생의 필기 노트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학생에게 감사해야 판이다. <하버드 정치 경제학> 저자 역시 자신이 직접 하버드 대학 경제학부 케네디 스쿨 강의에 참가하여 작성한 강의 노트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록 그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사라져버릴 스미스의 원고는 아닐지라도 세계 최고의 지성의 요람에서 행해진 강의를 지상 중계해준 저자의 노력에는 감사의 말이 다소 필요할 하다.

개화기 실학자 가운데 일인이었던 강화도의 한기 집이 무척 부자였다고 전해진다. 다른 여느 학자와는 달리 생계를 위해 벼슬에 나갈 필요도 없었고 덕택에 오로지 평생을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위해 바칠 있었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을 중국에서 들여 신학문 구입으로 탕진(?)하자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 하여 그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많은 재산을 어찌 종이 꾸러미와 맞바꾸다니 자네 지금 정신이 있는 건가. 이에 최한기 껄껄 웃으며 다음과 같은 답을 하였다고 한다. 내가 만일 책의 저자들에게로부터 배움을 얻으려면 중국으로 건너가야 하고 거기에 집을 구해야 하며 스승에게 수업료를 내야 하는데 스승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정리하여 책을 펴내고 그것을 내가 구입한다면 오히려 그게 내게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한기 답변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학문 자체의 가치에 관해 질문을 하였는지는 없으나 아무튼 한기 논리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에 방문하지 않고서도 구입을 통해 쟁쟁한 학자들의 강의를 들을 있다는 것은 크게 수지 맞는 일이 아닐 없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가지. 대부분의 강의 내용이 주로 당면한 현실 문제로부터 출발하는데 이는 물론 저자가 그런 과목만 들어서 있고, 아니면 케네디 스쿨 강의라는 특수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자본개방에 관한 프랑켈 교수의 강의가 그러하다. 후반부에 특강 형식을 빌어 탁월한 학자들이나 저명한 인사들의 강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제레미 리프킨, 조지 소로스, 그리고 마이클 샌델의 대담이나 강연들이 그러하다. 당장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분야 최고의 학자들을 불러 토론하게 하거나 강연을 시키는 것이 부럽기만 한데 이런 것이 하버드의 특권 아닐까 한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책의 내용 가운데 특별히 흥미가 있다거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은 찾기 힘들었다. 많은 부분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의 강의를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면 화면을 통해서 있는 시대가 아닌가 (유튜브에서 MIT 예일대학의 학기 공개 강의를 취향에 맞게 골라 들을 있다). 학문의 발전이 아직 미진하고 인터넷이 활용되지 못했던 15 – 20 전이라면 책의 의의가 아주 컸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간에 소개된 리처드 쿠퍼 교수의 현대 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예외적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문제가 되지 많은 것이 오직 경제학자의 눈에는 커다란 문제가 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경제학이라는 영역에서 비현실적인 가정을 세웠다. 그리고 경제학의 전체 영역이 점차 좁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중에는 복잡한 수학 모형과 추론 방식을 사용하여 보통 사람이 보기에도 신선할 것이 없는 평범한 결과를 도출한다. 그런데 이런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평범한 결과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 경제학 영역에서 학자로서 값을 올리는 자본이 된다. 이렇게 보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미 너무 많이 나갔음을 있다 (79).”  

 

   현대 경제학이 형식주의에 매몰되었음을 조금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판은 깊은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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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예전에 소득 분배론 학부수업시간에 배웠던 라이트의 계급 모델이 생각난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2005년 경에 번역되었다.

 

이제 급진적 사회주의자 라이트가 실현 가능한 대안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경청! 경청!경청!

 

 

 

 

 

 

 

 

 

 

오렌지색 표지의 미시경제학 저자 이승훈 교수가 쓴 글이라니 관심이 간다. 이 분은 어느 수준의 내공을 가지고 시장 경제를 설명할지 . . .

 

 

 

 

 

 

 

 

 

 

 

누구나 문제는 경제라는 것을 다 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해결책이다. 저자의 식견을 믿기에 이 책을 기대해 본다.

 

 

 

 

 

 

 

 

 

 

 

 

이제 정의의 열풍이 드디어 경제학에도 상륙하게 된 것인가? 정의에 대해 경제학은 어떤 이야기를 해불 수 있을까? 궁금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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