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호러 단편집을 만났다. 앞에 “여성주의”가 붙는 다작가-단편집은 여성주의라는 이름이나 작품 그 자체보다도 이것을 붙인 기획 의도의 비장함 때문에 손이 잘 안 가곤 했었는데, ‘피해자성’만을 한껏 강조하여 억울하고 한 서린 존재로 그려져왔던, 혹은 (철저히 남성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욕망과 사고체계로 주인공 남성을 위협하는 미스터리한 존재에 그쳤던 기존의 호러소설 속 여성 캐릭터를 비틀어냈다는 점이 무척 짜릿했다.단편집이지만 실린 작품들의 질이 대체로 균일하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너의 자리>, <성주 단지>가 가장 좋았다. 이 작품들을 읽은 것만으로도 도전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