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과 불의 노래 1부 - 왕좌의 게임 1 얼음과 불의 노래 1
조지 R. R. 마틴 지음, 서계인+이은심 옮김 / 은행나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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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른 사람들의 추천이야 어째건, 내게 이 소설을 읽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작가의 이름이었다. '샌드킹'의 강렬함에 반해있는 나로선 그 작가가 쓴 환타지라는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확실히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이 소설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환타지다.(모범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솔직히, '샌드킹'에서와 같은 강렬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실망감을 준다. 게다가 무엇보다 치명타는 오오- 이제 진짜 재미있어지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1부 끝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난 것. 출판사에서는 1부 4권으로 나누어 놨지만 내가 보기엔 4권짜리 이야기의 첫 장, 겨우 도입부만 나왔을 뿐이다.

등장인물의 소개와 앞으로 있을 사건에 대한 암시만 잔뜩 늘어놓아 읽는 이의 마음을 부풀려 놓고 2부로 넘어가다니 -- 2부까지 읽어야만 하게 생겼으니 1권/2권이 아니라 1부/2부라고 써놓은 출판사에 원망의 마음이 앞선다. 진짜 평가는 이야기가 다 나와야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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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비트 1 - 시공주니어문고 3단계 21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1
J. R. R. 톨킨 글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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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완역이라는 제목을 달고 다시 출간된 <반지의 제왕>과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그보다 조금 이전 시기를 다룬 소설. 작가 자신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기는 했지만 동화라기보다는 소설이라고 말하겠다. 어린이에게는 그 나름의, 어른에게는 또 다른 나름의 맛을 느끼게 해 줄 책이다.

어설프게 나왔던 예전 번역본도 구하지 못해 원문으로 읽은 후에야 이 책이 나온 것을 알았다. 대략 훑어보기는 했지만, 이름을 바꾼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만 빼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교훈적이고(그러나 지나치게 교조적이지 않고), 유쾌하며 즐거운 모험 이야기. <반지의 제왕>에서 보이는 비장미는 없고 호비트 특유의 귀여움이 살아있어 읽는 동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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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의 토끼 1 나남창작선 44
리처드 애덤스 지음, 홍전 옮김 / 나남출판 /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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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적으로, 토끼라는 동물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은 없다. 비뚤어진 성격 탓인지 어린 시절부터 일명 평화의 상징이라는 토끼와 비둘기에게 정이 가지 않았다. 왜냐, <솔로몬 왕의 반지>라는 책을 읽고 토끼란 동물이 처절하게 쥐어뜯고 싸우는, 다소 치사한 동물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육식동물처럼 우아하고 도도하게 살 것이지...하는 생각이었달까. ^^;;

어쨌거나 그래서, 이 책은 직접 고른 것이 아니라 친구의 추천을 받아서야 읽게 되었다. 그리고 놀라고 말았다...내가 아는 토끼의 모습이 야생 토끼의 진면목은 아니었나보다 하는 반성(?)과 함께 (고양이와 싸우는 용맹한 토끼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전체적으로 토끼에 대한 편견이 엷어졌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 이 책에서 중요한 건 토끼가 어떤 동물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숨돌릴 틈 없이 두근두근 하며 죽 읽어나가게 만드는 스토리라인이야말로 최대 강점. 주인공 토끼들이 고난을 이겨나가는 우정과 용기에 감탄하게 된다. 청소년용으로나 성인용으로나 손색이 없을 모험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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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황제들 - 모택동과 등소평 시대의 중국
해리슨 E. 솔즈베리 지음, 박월라.박병덕 옮김 / 다섯수레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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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는 나라지만, 정작 우리가 중국 - 그것도 현대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로 적다. 모택동,등소평, 주은래,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하나같이 어디서 들어본듯은 한 이름들이지만, 정작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고 어떻게살았으며 어떻게 중국을 이끌었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으므로.

특히나 중국 근대사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저 중국의공산주의가 소련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며, 모택동은 지금도 여전히 중국의 국부로 받들어지고 있다는 정도만을 알고 있었다. 그런 나로서도 재미있게 읽어나갈 만큼 이 책은 편하게, 소설처럼중국 지도자들의 권력다툼과 정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기자 출신인 저자가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제시하는 바람에 페이지가 많이 늘어나고 산만해진 감은 있지만 말이다.

제목인 '새로운 황제들'은 모택동과 등소평을 일컫는 말로, 공산 혁명의 지도자인 그들도 역대 중국의 지배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틀 속에서 움직였다는 저자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모택동이 대장정 중에도 늘 가지고 다닌 책이 레닌이나 스탈린과 아무 상관없는 자치통감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례.

700페이지를 순식간에 넘길 수 있다. 재미있는 무협지처럼 읽고, 근대 중국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책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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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창비신서 143
노마 필드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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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다면 감동받을 만한 책.

1988년은 나를 비롯한 대다수 한국인에게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해로만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 해, 수많은 아시아인들과 일본인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전쟁의 시작을 선언하고 또 그 종결을 선언했던 천황 히로히또가 죽음의 병석에 누웠다. 그리고 이듬해 1월, 그는 '빛나는 평화'라는 모순적인 시호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전쟁의 책임에 대해서도, 전후에 이루어낸 풍요 이면에 숨어있는 희생자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 채. 일본의 여론은 천황의 죽음을 처리하는 데 있어 '전후 40년의 번영은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전쟁 그 자체는 간주곡처럼 어물쩍하게 처리'하는 데 주력했고 대다수 일본인이 그 분위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비록 소수였지만 어떤 이들에게 천황의 죽음을 앞두고 조성된 사회 분위기는 그때까지 망각 속에 묻어두려 했던 문제들을 환기시키고 생각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저항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의 모습은 힘겨웠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오끼나와에서 개최된 체육대회에서 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슈퍼마켓 주인, 남편의 위패를 호국 신사에 봉헌한 일 -즉 남편의 죽음을 국가가 이용한 일에 대해 항의하여 15년간 재판을 한 야마구찌의 한 주부, 그리고 공식석상에서 천황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발언한 나가사끼의 시장. 저자는 '그들의 삶이 현재와의 연관성 속에서 역사적 책임을 지는 인간의 능력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세 사람의 행동은 모두 "천황", 그 이름이 상징하는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된다. 일본의 천황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한 사람이 아니라 국가 권위의 응집이며, 복종의 대상으로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쟁 이전에는 군국주의의 모습으로, 그리고 전후 4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모습으로 일본인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이 만들어낸 추모의 분위기에서 어느 때보다도 천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며, 그야말로 "죽음 직전의 군주에게 욕된 언사를 퍼붓"는다는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이들 세 사람이 저항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천황의 죽음을 앞두고 고조된 긴장과 억압의 분위기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들 세 사람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았는가를 따지거나 전적으로 동조할 필요는 없다. 이들의 행동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수많은 욕설과 죽음의 협박, 말도 안되는 비난과 또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진지한 성찰 안에서 나온 비판, 그리고 격려의 편지와 지지가 이어졌다. 지지와 격려는 이들의 주장 자체에만 호응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행동 자체가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 외면했던 일들을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데에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전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역사와 인간의 관계, 역사를 책임지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언제나 과거와 연결되는 것. 현재 안의 과거, 삶 속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망각케 하는 '현대의 풍요'에 대해 저항과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저항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수, 약자, 차별받는 자들을 억누르는 권력의 문제, 은폐되어 있고 스스로도 깨닫고 싶어하지 않는 부당함의 문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일본이라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종종 일본의 왜곡된 역사와 막혀 있는 언로, 민주적이라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를 비웃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우리 사회를 돌아보았을 때에도 과연 그들을 비웃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천황은 없다. 그러나 어중간한 보수 우익 외의 정당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상대주의 관점을 갖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압박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요미딴촌 촌장의 말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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