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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 신들의 보물에서 반지전설까지, 시대를 초월한 상상력의 세계
안인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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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좋아한 지 꽤 오래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열심히 보다가 북유럽 신화에 눈을 돌렸던 것도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각종 2차 텍스트는 물론이고 원전도 다양하게 번역되어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달리 북유럽 신화 쪽에서는 이거다 싶은 책이 없었다. 이번에 한국 사람이 자기 해석을 더하여 정리한 책이 출간된 것을 알고 냉큼 집었다. 일단 책을 받은 순간의 느낌. 깔끔하고 삽화도 멋지게 집어넣어(아서 래컴 그림도 잔뜩!!) 손에 쥔 느낌이 뿌듯하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1, 2권으로 내용을 새로 정리한 방식도 새롭고 두 권 모두 술술 잘 읽힌다. 신선한 해석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부록으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줄거리를 정리해준 것도 가산점. 최근 들어서는 북유럽 신화 관련 책도 꽤 많이 나왔지만 이 책을 빼고는 모두 어린이용이거나(그나저나 어느새 만화로 보는 북유럽신화도 나와있네? 역시 아동서 쪽은...) 외국 저자의 번역서다. 어차피 원전을 읽지 않을 바에는 누가 쓴 책이라도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번역된 신화서는 원전이 두 번 번역을 거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신화책 출간은 언제나 환영할 일.  

즐겁고 재미있게 읽은 만큼 칭찬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다. 저자가 문학에서 출발하여 독일 문화와 신화-> 북유럽(게르만) 신화로 공부를 확대한 결과물이라(신화학 전반과 비교종교학에서 좁혀들어간 방향이 아니라) 그런 걸까... 그렇다고 공부의 깊이가 얕다는 느낌은 없으니 아마 시각이나 해석상의 차이가 아닐까 싶지만.   

예를 들어 1권에서 생명나무에 매달렸다가 되살아난 오딘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와의 유사성을 슬쩍 언급만 하고 넘어간 건 조금 무책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대로는 아무래도 오딘 신화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암시밖에 안된다. 생명나무, 나무에 매달린 남자, 지혜를 얻기 위한 죽음-부활은 굉장히 오래된 신화 요소이고 모든 신비주의와 샤마니즘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 이대로도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연계를 짚어주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반지 모티프를 설명하면서 반지의 제왕과 스타워즈와 북유럽 신화의 유사성을 하필이면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목숨을 걸고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다툼을 벌인다. 이 또한 신과 거인의 대립을 주요 줄거리로 삼는 북유럽 신화의 특징이다'라고 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유사성 자체는 인정하지만 하필 이유로 드는 성격이 저거라니? 그렇게 치면 인도 신화는 안 그런가? 봉신방은 안 그렇던가? 발더(발두르) 신이 '명부에서 살아 돌아온 신'이라는 점을 그리스도와 연관시키는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에다를 저술한 시인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분명 있지만, 명부에서 살아돌아온 신이라는 요소를 이야기하자면 이쉬타르의 애인 이야기가 훨씬 윗길이다. 또한 기독교가 북유럽 신화에 미친 영향만이 아니라 북유럽 신화가 유럽 기독교(초창기 기독교와 동일한 형태가 아니므로)에 미쳤을 영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등등...

그러나 이런 거야 어설프게 공부한 사람이 으레 내놓는 투덜거림일 터이고, 잘못된 내용에 대한 지적이라기보다는 토론으로 치자면 반론, 강의로 치자면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에서 너무 비교신화나 신화학으로 확장하는 것도 안좋은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 신화 전반에 이미 관심이 있던 독자에게도, 이제 막 신화의 재미를 알고 새로운 책을 찾는 독자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었다. 문학적인 흥미만 있어도 만족하지 않을까?

덧. 인터넷에 신화를 독자적으로 공부하고 계신 헤르모트님의 번역으로 에다를 비롯한 게르만 신화 원전 영역본 번역판(http://cafe.naver.com/hermod.cafe)이 존재하니, 이 책을 먼저 읽고 더 찾아보고픈 마음이 생긴다면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덧덧. 나중에 다른 리뷰들을 살펴보니 내 우려가 그냥 노파심이 아니었던 것 같아 안타깝다. 북유럽 신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와 기독교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온 면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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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역사 세계신화총서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9쪽까지 읽었을 때 이런 문장이 보였다. "...넷째, 신화는 재미있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많은 신화학이
취하는 태도지만, 개인적으로는 가끔 반감을 느끼는 탓이다. 왜 재미있자고 하는 이야기로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왜 재미와 의미를 분리시키는가? 어쩌면 재미있자고 한 이야기 그 자
체로서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지 않은가? 신경을 곤두세울 것도 없는 문제이긴 했지만
혹시 또 '신화가 우리를 구원하리라!' 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 탓이었다. (신화를 중요
하게 여기는 것과 별도로 현대의 모든 문제가 신화 부재에 있다는 식의 발상에는 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다른 기회로 미루자)

그러나 16쪽에서 한 문장이 마음을 두드렸다. "...그러므로 신화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유효하기 때문에 진실인 것이다." 잠시 손을 멈췄다가 책 뒤에 있는 주
석을 살펴보았다. 과연, 많은 인용구가 엘리아데에게서 나왔다. 앞에 쓴 문장이 인용구였다
는 것은 아니지만 영향을 끼친 것은 명백했다. 즉 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신화의 의미는 거
의 엘리아데를 단순화시킨 데에 캠벨을 가미한 것이었다. 현대 종교 연구가로서 대중성까지
갖춘 작가라면 엘리아데와 캠벨의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마련이지만, 어쩐지 별로 새로
운 내용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김이 빠졌다.

또 한 번 그러나, 2장 이후를 읽어나가면서 앞서 내린 판단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새로운 이론이나 시각을 제시하지는 않아도 작가는 뛰어난 신화학자들의 논의를 완벽하게
녹여내어 자신이 제시한 틀에 맞추어내고 있었다. 사소한 모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메소
포타미아 고대신화에서부터 공자와 노자,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신
화들을 한 줄에 꿰어 원래 이 책을 쓰는 목적이었을 거대한 화두를 던지는 데 이르면 멋들
어진 솜씨라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화두란 바로 이것이다.

소설은 신화를 대신할 수 있는가.

본문이 160쪽밖에 되지 않는 이 짧고 간결한 책은 많은 신화학자들이 던졌던 물음, 지금
이 시대에 신화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을 요약해서 제시하는 동시에 '신화 다시 쓰기'라
는 기획총서가 던지는 출사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 작가는 내용을 시대순으로 구성했다. 1장에서 신화란 무엇인가
를 묻고, 2장부터 7장까지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신화를 변형시켰는가에 초점을 맞춘 간
략한 세계사를 기술한다.

2장. 구석기시대 - 수렵민의 신화(기원전 2만년경에서 8000년경)에서는 사람들이 죽음과
삶의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여 만들어낸 것이 신화가 아니겠는가고 이야기한다. 즉 저자는
신화란 죽음을 비롯한 삶의 고통들을 설명하고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이야기라는 주장
을 지지한다. 이후 신화 해석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모두 그 기반 위에 서 있다.

3장. 신석기시대 - 농경민의 신화(기원전 8000년경에서 4000년경)에서는 농경이 시작되면
서 죽음을 부활로, 통과의례로 해석하고 변화와 성장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이
당시 신화에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4장. 초기 문명시대(기원전 4000년경에서 800년경)는 처음으로 도시 문명이 일어나면서 신
들이 밀려나고 인간 문명이 신성화되는 시기다. 그러나 옛 신앙은 부정되고 새로운 신앙은
나타나지 않은 공백기라고 말한다.

5장. 기축시대(기원전 800년경에서 200년경). 기축시대라는 표현은 야스퍼스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이 시대에 인류 신앙의 발전에 중추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교가, 도교가
나오고 불교와 힌두교, 유대교로 대표되는 일신교, 그리스 합리주의가 모두 이 시기에 나왔
다. 이런 새로운 사상과 신앙들은 옛 신화를 적대시하거나, 한쪽으로 밀어놓거나, 포용했다.
이 때 서구는 두드러지게 '적대'의 방향으로 향했으며 그 상태가 다음 시기로 이어진다.

6장. 탈기축시대(기원전 200년경에서 기원후 1500년경). 이 시기는 기나긴 신앙의 답보 상
태로 요약된다. 5장까지 비교적 균형을 맞추던 작가의 시선은 이제 서구로 쏠리며, 7장. 대
변혁(1500년경부터 현재까지)에서 현대의 서구 문명 지배가 어떻게 신화의 죽음으로 이어졌
는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초기 문명시대부터 시작된 미토스와 로고스의 갈등이
근대에 이르러 로고스로 쏠리고, 그럼으로써 더 이상 초월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이성의
테두리 밖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는 이 시대는 공허과 절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작
가의 주장이다. 그리고 신화가 제공하던 경험을 이제는 소설과 예술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결론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신화의 역사』는 새로운 신화 총서의 도전장을 던진
다는 임무에 성공했으며 덤으로 괜찮은 신화학 입문서를 한 권 추가했다. 이제 공은 차례로
출판되어나올 작품들에게로 넘어갔다. 이 책과 함께 출간된 총서 2권 『페넬로피아드(마가
렛 애트우드)』는 오딧세우스 신화를, 3권 『무게(재닛 윈터슨)』는 아틀라스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신화와 소설 양쪽을 다 좋아하는 독자로서 과연 이 야심찬 기획이 어느 정도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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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 - 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
힐미 압바스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매진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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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온라인에 돌아다니던 지도를 기억한다. 아마 미국인들이 본 세계 비슷한 제목이었을 것이다. 미국만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고 그 외에는 소수의 '우방'과 '적'만이 모호하게 존재할 뿐인, 수많은 나라와 그 안의 문화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도.

"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힐미 압바스 지음, 조경수 옮김, 이매진)".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있는 쿠르드족의 서사시를 기록한 이 책을 잡으면서 문득 그 지도를 떠올렸다. 하기야 미국 외에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오만함을 비웃기에는 우리 역시 너무나 편협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세상에 내가 알지 못하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라나 민족의 이름을 안다고, 혹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다고 착각하는 일조차 수없이 많으니 알지 못하는 것들이야 오죽하랴. 

개개인이 전세계의 모든 문화와 민족에 대해 알 필요는 없으며, 그런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그 방면의 전문가로 족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알고 사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을 다 읽고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다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사명감을 품고 읽으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멀고 낯선 세상들을 한 조각이나마 들여다보는 재미를 모른다는 것도 아까운 일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다.

이라크 파병지 때문에 조금은 귀에 익은 이름이 되었을까. 쿠르드족은 현재 이라크에 약 300만 명, 터키에 1000만 명, 이란에 500만 명, 그밖에 시리아 및 구소련 아르메니아 등의 지역에 4천 5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숫자를 가지고 말한다면 절대 '소수민족'이라는 이름이 붙을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8천년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쿠르드족 주체의 독립국이 존재한 적 없기에 이들의 입장은 철저히 '약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쿠르드족의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듯, 이 책을 읽다보면 조로아스터교,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마니교는 물론이고 현대적인 종교 해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과 신화와 교리가  아른거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창조에서부터 이어지는 여러 줄거리는 구약과(정확하게는 그 이전에 존재한 수메르 신화와) 비슷하고 빛이 창조됨과 더불어 어둠이 생겨났다는 대목은 조로아스터교를 떠올리게 하며 줄곧 강조되는 '결과들의 사슬' 같은 철학은 천도(天道)마저 연상시킨다.

뿐인가. 인간이었다가 죽어 신성을 얻은 탐무즈가 돌아와 던지는 질타 - "현인 중의 현인들조차 삶의 가장 간단한 법칙인 상호 관용과 존중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인류가 언어들의 암초와 관념의 다양성, 민족들의 경계와 피부색의 다양성을 극복하겠느냐?" - 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비추는 듯 뼈저리게 다가오며, "...그 중에 단 한명도 무한한 자유만이 신성의 개념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같은 대목은 불교 이래의 인도 전통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복합에 서구적인 성찰이 더해져 있다는 점에서, 이 서사시의 몇몇 부분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가 쿠르드족 출신이었음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란 조금씩 수정되기 마련. 이 책에 쓰인 이야기들 역시, 저자가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대로 '외웠다'고는 하지만 매번 조금씩 살이 붙고 새로운 생각이 가미되었을 것이다. 강자와 약자, 관용의 부족, 서로를 증오하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철학들을 찬찬히 읽다보면 특히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마음의 땅으로,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절실한 마음은 물론이고.

"그리고 자기들의 나라에 시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비국(非國), 또는 무인지대라는 뜻이었다."

시움은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고 현인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다가, 모든 민족이 신을 버리고 그 대가로 세운 독재자 아래 신음할 때 유일하게 그에 맞서 싸운 나라로 나온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쿠르드족이 원하는 자신들의, 자신들만의 나라가 아닐까. 역사적으로나 신화적으로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말이다.

저자인 힐미 압바스는 압바스 왕가 혈통으로 쿠르드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독일에 살면서 어린 시절 외운 이 전승을 출간했다. 그러니까 국내판은 독일어 번역인데, 번역이 다소 딱딱하고 조심스러운 데다 특히 앞부분에 관념적인 서술이 많아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은 각오해야 한다. 3백쪽이 조금 넘는 책 안에 창조신화,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자비로운 신과, 대홍수,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땅을 찾아간 이들의 이야기, 수많은 사제와 신전이 창궐한 시기, 망각의 시기, 신들을 버리고 무서운 독재자를 세운 뒤의 암흑기, 그리고 그 지배에 대항하여 싸워 이긴 이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고 이 많은 이야기에 철학적인 사색까지 함께 담겨 있으니만큼 쉽고 편하게 읽힌다면 더 이상한 일이리라. 그러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과 들어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 모두 그렇듯,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그 인내심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우리의 신이 되리라"고 외치며 신을 모두 버리고 대신 신인을 자칭하는 독재자 밑에 엎드린 75민족이 산악민족(쿠르드의 뿌리로 여겨지는)과 벌이는 전쟁과 그 결말에는 장엄한 비극의 무게마저 담겨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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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무당과 춤추지 않는 무당 (양장)
아키바 다카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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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0년대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무(巫)의 습속을 연구했던 일본학자 아키바 다카시의 논문을 묶어 출판한 책. 생각 외로 쉽고 재미있게 썼다는 점, 그리고 지금에는 찾기 힘든 자료들을 꼼꼼히 적어놓은 점 등을 높게 평가할 만 하고, 흥미로운 추측이나 시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흥미로운 추측이나 시각"일 뿐이라는 점을 읽는 사람들이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전에 읽은 1970년대 민속 연구 논문에서도(미국인이 쓴 글이었다) 아키바 다카시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한 것을 볼 수 있었고, 번역자가 우려섞인 목소리로 말했듯이 심지어는 아키바 다카시의 글에서 인용했다는 말도 없이 거의 표절에 가까운 논문을 쓴 민속학자가 있었다. 물론 그때부터 다시 2, 30년이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족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큰 문제 아닌가.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 적절한 이해와 성찰을 바탕으로 하여 그 연구내용을 인용/재고찰한다면 또 다른 얘기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점령자의&아직 근대화의 신화가 지금보다 강하던 시기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찰자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가 일본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작정 불신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아야 하니 어렵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그런 점들을 잊지 않는다면 흥미롭게 볼 만한 책이다. 특히 관찰 내용 중에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이제와서는 풍습이 많이 변해서 진위 여부를 가리기도 힘들고 따라서 학술자료로 쓸 때에는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재미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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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 현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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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 전에(2003년 12월 현재) 인터넷 서점을 통해 '신화' 분류에 들어있는 책의 목록을 쭉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장 많은 권수를 자랑했으며, 가장 잘 팔린 책 열 권 중에도 다섯 권이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팔린 책의 권수를 가지고 매긴 순위만 가지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 결과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줄로 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신화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빨리, 자주, 많이 접하며 국내 출판 시장은 끊임없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재해석을 생산해낸다. 한국 신화보다 훨씬 낯익고 친근한 것은 물론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1970년대 말, 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우리 것을 찾는' 움직임은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하고 많은 결과물을 내놓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어를 잘해야 먹고 살기 쉬운 세상이고, 어지간한 학문을 공부하려면 서구 학자들이 서구 중심으로 정립해놓은 이론을 소화하고 끼워맞춰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 만큼 서구인들이 고전으로 꼽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기일 수밖에. 게다가 뒤늦은 인정이라 미안하지만 그런 이유를 달지 않더라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 구조는 명쾌하고 쉽고 화려하지 않은가. 그리스 로마의......아니 그리스 신들은(로마에도 그리스 신들을 흡수하고 동일시하기 전에 나름의 신화 체계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세계 신화 중에서 가장 성질 더럽고 질투심 강하며 로맨스를 즐기는 이들이라는 점도 매력적이고 말이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 난무하는 근친상간과 동성애와 질투와 복수를 생각하면 국내 학부모들이 어떻게 이 신화를 '교육적'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읽히려 하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스 신화가 자주 거론되는 데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료의 방대함이다.

현재 이야기되는 그리스 신화는 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원전으로 하지만 그 외에도 로마 시대에 쓰고 상연했으며 이후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여러 차례 재해석된 많은 희곡이 바탕이 된다. 그러니까 과거에 이미 문헌으로 남긴 원자료가 적지 않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위에 세월을 거치며 많은 재해석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리스 신화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를 굳이 문헌신화와 구전신화로 나누는 데에 대해 결국 둘 다 근원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이런 분류가 유용한 것이 사실이며, 여전히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채록한 지 20년이 지나 재해석은커녕 해석조차 완전히 되지 않은 신화와 채록한 지 천년이 지나 수많은 연구와 문학작품을 통해 더 풍부한 텍스트로 거듭난 신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 신화의 경우 고대 문헌에 속하는 자료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 정도가 있을 뿐이며 구전신화로 판소리와 민담, 무가 등이 존재한다. 무속이 융성하고 여기에 속한 무가와 설화 등이 풍부한 만큼 이를 따로 무속신화로 분류하기도 한다. 구전신화에 관한 연구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일본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시작, 해방 후 근대화와 서구화, 새마을 운동 등의 흐름 속에 묻혔다가 1970, 80년대경 '우리 것'과 '전통'으로 눈을 돌리고 인간문화재, 무형문화재 등을 지정하면서 다시 활발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초기 일본학자들의 연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발명된' 전통이 많았던 점, 여전히 채록을 중심으로 할 뿐 다양한 연구의 대상이 된 텍스트가 많지 않다는 점 등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국내에 비교신화학이 없고 주로 국문학과 민속학 쪽에서 연구가 이루어진 것도, 그리고 이제까지 나온 관련 서적에 한자가 많이 쓰인 것도 한국 신화를 신화학, 혹은 전체적인 신화 공부에서 고립시키는 이유로 작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이 절반을 차지하는 신화학 베스트 10 중에 들어가 있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서정오)>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서정오)>의 가치는 작지 않다. 전자는 무속신화, 후자는 민담 중에서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뽑아 쉽고 재미있게 새로 쓴 책으로, 장담하는데 재미있다.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지지고 엎드려 군밤을 까며 듣는 옛날 이야기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이 신화를 자료로 남기는 데 있지 않고 널리 알리는 데 있는 만큼, 무엇보다도 이야기로서 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이야기의 본모습을 살리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그 맛을 살리는 데 더 힘을 쏟았다고 하고 또한 "구전되는 이야기는 한두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겨레 모두의 것이므로, 글쓴이도 적극 전승과 창작에 참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이야기를 썼고, 따라서 고치고 다듬는 일을 크게 겁내지 않았다"고 썼는데, 본인은 이 부분에 크게 공감한다. 학문적인 신화 연구조차도 상상력을 동원하고 원뜻을 훼손하는 작업을 피하지는 못하며, 넓게 보아 신화라는 텍스트의 가치는 풍성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끊임없이 변주되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작업 자체가 이제까지 쌓인 무가와 민담 채록본과 연구성과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쉽고 재미있고 인기를 끄는 글이 나와줌으로써 다른 다양한 작업이 가능한 여건이 마련된다는 이득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다. (웃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여러 지역의 무가를 넘나들며 뽑은 것으로, 바리데기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할락궁이나 가믄장애기처럼 낯선 이름들도 등장한다. 여기에 대해 다시 작가의 입을 빌리면 "사실 여러 지역에서 독립하여 전해 온 이야기들을 하나의 틀 안에 묶어 낸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주제넘은 일이요 부질없는 헛손질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우리 신화에 나름의 질서를 얹고 싶었다.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가 거대한 '한국 신화'의 틀 안에서 톱니바퀴 구실을 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충분히 값어치 있는 것이라 믿고 한 일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가르침과 꾸지람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옥황상제 천지왕이 땅 세상의 바지왕과 혼인하여 대별왕과 소별왕을 낳았고 대별왕이 저승을, 소별왕이 이승을 다스린다는 구조나 염라대왕과 각종 저승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사람들이 생각한 신화 체계가 중국의 신화 구조와 이름을 빌렸을 뿐 의미는 상당히 달랐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원전이 있다고는 해도 엄연히 창작물이고 재창조물이다. 그러나 혹 이 책을 시점으로 하여 한국 무속신화, 이야기들에 관심이 생긴다면 그때가서 원전을 찾아보고 배경에 대해 공부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가지 귀띔하자면 대별왕과 소별왕, 할락궁이, 가믄장애기, 지장애기, 사만이와 자청비, 남선비와 여산부인과 노일제대귀일의 딸에 얽힌 조왕신과 측간부인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제주도 본풀이에 기반하고 있다.

( 거울 신화서적 리뷰:  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myth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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